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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심리학에 정답은 있는가
게시물ID : humorbest_11761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열혈심리학도
추천 : 71
조회수 : 6847회
댓글수 : 2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12/28 19:29:48
원본글 작성시간 : 2015/12/27 12: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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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이 게시판에서 "심리학에 정답이 있을까요?"
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쓰신 분이 있었죠.


원글에서 몇 마디를 퍼와보면
---------------------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단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일단 '틀린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정말 틀린 것은 자신이 설정한 '정답'이라는 프레임 밖의 사람들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협소한 자신의 편협함"

"인간의 개성이 다양한 만큼 많은 심리학 이론이 필요하며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는 것은 개인의 개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되네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단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일단 '틀린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정말 틀린 것은 자신이 설정한 '정답'이라는 프레임 밖의 사람들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협소한 자신의 편협함 아닐까요?"
---------------------



뭐... 대략적 요지는

"인간은 모두가 다르며, 거기에 대한 이해가 깊어 질 수록, 개인의 개성은 다양성을 갖고 있음과 그에 많은 심리학 이론이 필요하며, 저마다 나름대로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 이고, 하나만 정답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 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제목처럼..

"모든 사람은 다르고, 다양하므로 심리학에 수학공식 같은 정답은 있을 수 없다"
뭐..이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꺼 같습니다.





이 외에도 뭐..프로이트 떡밥이라던가, 과학지상주의 떡밥 등..뭐 많이 있었죠..



아무튼 저는 저 글을 보자마자..몹시 오글거리는'열혈심리학도'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는 사람으로써
여기에 대해 뭔가 글을 써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는데..학업과 귀차니즘 때문에..미뤄오다가 드디어 발동 한번 걸어봅니다.

뭐가 거창한 것이라고..발동이 어쩌고 저쩌고 이러냐면..

저 글쓴이 님의 생각은 사실...심리학이라는 학문과 과학에 대한 어떤 나이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과 동시에
심리학도들에게 공부하면서 좋은 생각을 해 볼 여지가 많은 떡밥을 뿌려주는 물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심리학 공부한다 그러면... 이런얘기 꽤나 듣습니다..심리학 주변에 이런 얘기 하시는 분들 꽤 많아요.

"You use the monster of mechanical reason to kill off our humanity."
"당신은 기계적 이성이라는 괴물을 통해 우리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You can't pin down the human mind like a butterfly in a display case. Each one of us is different."
"인간의 정신을 그런식으로 표본상자에 박제된 나비처럼 핀으로 고정시킬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르니까요"




즉, 모든 사람은 다른데 어떻게 수학의 공식 처럼 정답이 있을 수 있느냐 이것이죠..



하지만 이건 핵심을 놓치고 있는 말 입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제각기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모두에게는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정신의 속성'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바로 이런 정신의 근본적인 속성들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 입니다.



종종 사람들은 심리학을 두고 "왜 영희는 자기 엄마를 증오하는지, 왜 철수는 여자들 앞에서 수줍어 하는지, 옆집 김씨 아저씨의 심리는 무엇인지, 이 사람의 심리는 어떻고 저사람의 심리는 어떻고..."
와 같은 한개인의 사적이고 비밀스런, 그런 내적생활에 전념하는 분야로 간주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질문은 학문의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개인차 심리학으로 불리는 몇몇 소수의 주제들이 있긴 있음을 밝힙니다)
심리학은 외진 연구실에서 혼자만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독백의 학문’이나, 정신이 이상한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학문이 아닙니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목표가 뭘까요? 정신과정과 행동이라는 현상을 기술하고, 설명하고, 예측하고, 통제하는 것 입니다. 
가장 주된 목표는 바로 인류 모두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실, 즉 일반원리을 파악하는 것 입니다.


과학이란 다양한 사건들이 공유하는 기저에 깔린 일반성을 탐구하려 노력한 후에 발견 된 것을 개별 사례에 응용을 합니다.(전자가 기초학문, 후자가 응용학문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고립된 사건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한 사건이나 물체나 사람이 다른 것들과 공유하는 그 '무엇' 입니다. 

이를 위해...아까전 예를 다시 가져와 보면..
철수가 왜 수줍어하는지, 왜 영희는 엄마를 증오하는지.. 등등 이런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어떤.. 사춘기의 갈등, 그리고 부모-자식 관계 관한 기본원리..뭐 이런 '일반화된 원리' 같은걸 찾고자 시도하는 겁니다.


뭐 이런 원리들이 밝혀지면 실제의 문제에 응용이 될 수 있긴 있죠.
그러나 과학의 주 관심사는 일반원리의 발견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인간은 모두 제각기 다르지만 인간은 모두 같은 종의 동물입니다.
공통점이 차이점을 압도하죠.

우리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음식을 소화하고, 같은방식으로 추론하고, 사물을 봅니다. 

Human-Being-Photo.jpg
(그니까 휴먼빙 아닙니까 ㅎ)



모두 머리가 달려있고, 팔다리가 있고, 입이 있으며 공통성을 가진 뼈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심리' 라는걸 뭐 특별하게 생각하는데 그게 별게 아닙니다. 그냥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하는 정신과정의 이치라는 뜻입니다.
 
정신과정은 어떤가요? 모두 '기억'을 하고, 그 기억은 특정 메커니즘으로 작동합니다. 인류는 거의 일반적으로 특정한 형태로 환경에서 자극정보를 받아들여서 그것을 동일한 형태의 신경정보로 코딩하고, 머릿속에 특정한 형태로 담아두며 특정한 형태로 인출합니다. 그리고 특정한 방식으로 기억의 오류를 범하죠,  흔히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을 말하지만 남자나 여자나 모두 같은 인류라는 같은 종에 속한 동물입니다. 모두 아주 높은곳에 올라 가 있으면 특정한 방식으로, 특정한 이유로 공포를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는 동일한 생리적 메커니즘이 있으며,  모두 혐오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보면 역겨움을 느끼며, 사람이든 남자든 같은 형태의 음식을 먹고 소화시킵니다.  


사람은 모두 특정한 방식의 주의과정을 보입니다. 예컨대 나이지리아 사람이든, 뉴기니에 사는 사람이든, 저 멀리 북유럽 아이슬란드에 사는 사람이든..
모든 사람은 같은 메커니즘으로 착시를 경험합니다. 수적우세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반원리죠. 심리학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하는 정상적인 정신과정들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런 정신과정의 예로는..사람이라면 누구나 행하는, 지각과정, 인지과정, 기억, 사고과정 따위와 또 그것과 관계된 뇌, 신경기제도 들 수 있겠고요...물론 수적우세라는 것에는 예외가 항상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예외는 어떤건가....병이라던가..뭐 여러가지가 있죠.(정상 비정상, 수적우세. normal, abnormal..그러니까 abnormal psychology라는 분야가 따로 있음을 밝힘)



흔히들 개인의 사사로운 정신적 사건은 남과 공유할 수 없는 경험, 주관적 사건이라고들 여기죠(이걸 Qualia라고 함) 항상 그렇기만 할까요? 모든 사람들이 컴퓨터 모니터 스크린의 맨 위에서 아래로 검은점이 계속 내려오는 장면을 1분 이상 처다보고 ESC키를 눌러 점의 이동을 멈추면, 객관적으로 점이 움직이지 않음에도 주관적으로(즉 내적 경험) 점이 느리게 위로 올라간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 운동잔여효과를 경험합니다. 심리학의 오랜 고민에 역사는 이 내적경험을 기어코 관찰가능하게 바꾸어버리는 테크닉을 발달시키게 됐습니다. 게다가 지난 기술의 발전으로 이 관찰 불가능한 내적경험을 문자 그대로 정말로 측량이 가능하게 됐죠. 이를테면 fMRI라던가, PET라던가..각종 첨단기술이 등장했고 자꾸 개량되어 거듭 발전하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과 방법이 또 계속 등장 중 입니다. 
 

뭐 아무튼...이렇게 공통점이 차이점을 압도하고, 이를 근거로 '일반원리'라는 걸 구성할 수 있게 되는거죠.

다른 학문은 어떤가요?


18세기 화학에도 똑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원소라는 개념이 발견되기 전에 화학자들은 바위를 연구하면서, 심리학에서 흔히들 딴지거는 "모든 인간은 제각기 다르다. 정답이 없다" 라는 식의 비슷한 난관에 부딪혔죠. 
모든 바위는 제각기 달랐거든요.


다들 중고교시절 생물학 수업때 '계문강목과속종' 기억나시죠? 이건 뭘까요? 왜 과학자들이 비슷한것 끼리 묶고, 분류를 하는데 집착할까요? 그리고 왜 일반화된 무언가를 만들어낼려고 할 까요? 공통점이란 말이 어느정도 감이 잡히시나요?


분류(classification)과 차원성(dimensionality)는 모든 과학의 기본 핵심 조건이에요 . 
심리학 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을 표방하는 학문'이 그렇습니다.


이 일반원리라는걸 끄집어 내고 결론을 내릴 때 사용하는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관찰방식이 있습니다. 그걸 두고 과학이라 하는 겁니다. 






-과학자는 진리를 찾는 사람인가- 

심리학에 과연 정답이 있을까요? 여기서 이 정답이라는게 만일 '진리'라는걸 의미하는 거라면 어떨까요...

자. 심리학을 떠나서 애시당초에 진리, 절대적 참이 인간이 획득가능한 성질의 것이라고 보시는지?
그런걸 찾는다고 주장하는 학문은 일단 과학에는 없습니다.


완벽한 지식이란 인간으로서는 획득이 불가능한 것 입니다. 과학이 얻는 지식은 확률적 참이지 절대적 참이 절대 아닙니다. 
과학이 진리를 찾는 행위라고 여기는 것은 정작 과학을 잘 모르시는,  과학 초보자 분들의 전형적인 착각 입니다. 
과학에선 절대적 참은 절대로 확립될 수 없거나 획득될 수 없다고 봅니다. 그 어떤 과학자도 자신이 진리를 찾고 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은 영구불변의 절대적 해답을 추구하는 체계가 아니라 그저 인간의 무지를 감소시키는 작업입니다.



정답, 즉 영구불변의 절대적인 진리, 엄밀한 포멀리즘 이런게 갖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으며 결국 획득불가능 하다는 것을 지난 세기동안의 과학사와 과학철학사가 거듭 증명 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학문 중 가장 엄밀하고 정형화된, 포멀한 학문이 뭘까요? 바로 수학 입니다.
수학은 과학이 사용하는 언어이자, 최상의 형식과학이라고 할 수 있죠.

심리학 말고 일단 수학 얘기를 좀 해 봅시다.


도형은 무엇일까요?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도형의 실체는 개념이고 그리스인들, 정확히는 플라톤 학파는 그것이 이데아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참고로 이데아는 아이디어 idea의 어원입니다.


도형이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과연 무슨 말인가?...



유클리드 원론 제1권의 가장 첫번째 명제에는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유클리드 원론 제1권 명제1>
On a given finite straight line to construct an equilateral triangle

"한 선분이 주어졌을때 정삼각형을 구성하라"



여기서 '그려라' 라는 말 대신 Construct, 구성하라, 이 단어를 왜 썼을까요
construct하라는 것은 개념적으로도 정삼각형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참고로 구성개념을 실재하는 것으로 취급하는 오류를 구상화오류(reification error)라고 합니다. 뭐 이 부분은 일단 넘어 갑시다.


유클리드는 정삼각형을 이렇게 증명했습니다.


학창시절에 다들 해봤을 겁니다.

'눈금없는 자와 컴퍼스'

이 두 가지만을 이용하여...



2qjs.JPG

선분 AB가 주어지고



3qjs.JPG
점 A를 중심으로 하고 선분 AB를 반지름으로 하는 원을 그린후..




4qjs.JPG

점 B를 중심으로 하고 선분 AB를 반지름으로 하는 원을 그리고, 원과 원이 만나서 생긴 교점 중 하나를 C라고 하면





1qjs.JPG
이제 선분 AC와 BC를 그립니다.


이제 하고싶은 주장은 삼각형 ABC가 정삼각형이라는 것입니다.

언뜻보면 정삼각형이 맞는 것 같죠.


유클리드의 설득 :

" AC=AB이다. 원의 반지름이기 때문이다. AB=BC이다. 원의 반지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AB=AC=BC가 되어 ABC는 정삼각형이다 "

이게 정삼각형의 증명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심을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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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A라고 부르는 점은 공간상의 무한히 작은 위치에 불과한데 어떻게 컴퍼스를 A에 찍어 원을 그렸는가? 당신이 신이라도 되는가?

: 컴퍼스로 그리면 완벽한 원인가? 원 위의 점들이 중심에서 똑같은 만큼 떨어져 있는지 당신은 어떻게 확신하는가? 그리는 도중 컴퍼스가 다리를 좀 더 벌렸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 당신이 두 원의 교점을 C라고 부르자고 했는데 A와 C를 잇는 선분은 어떻게 그릴수 있다고 확신하는가? 점은 무한히 작기 때문에 점을 통과하도록 선을 그릴 수는 없다. 자로 그렸다고 해도 선분이 약간 휜다면 과연 그것은 곧다고 할 수 있는가?
----------------

이에 대해, 점, 선, 면, 원, 삼각형 등 도형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 유클리드는,
결국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증명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 있다"


이러한 명제들을 공리(axiom), 공준(postulate)이라고 합니다.


유클리드 원론의 첫장을 펴보면 읽어봤을때 당연한 사실들을 열거해놓았는데

"이것만큼은 당연하다고 인정하자" 라는게 유클리드의 주장입니다.


그 중 위의 명제1의 증명에 쓰이는 것을 한번 봅시다.


공준1 두 점 사이에 선분을 그릴 수 있다
공준3 한 점을 중심으로 하고 어떤 반지름을 가지는 원을 그릴 수 있다
정의15 원은 한 직선에 의해 둘러싸인 도형으로 도형 안의 한점이 존재해서 해당 점에서 원 위의 점으로 그은 선분의 길이는 모두 동일하다
정의20 세 변의 길이가 같은 삼각형을 정삼각형이라고 한다
공리1 같은 것과 같은 것은 같다(쉽게 말해 A=B이고 A=C이면 B=C)


이제 주어진 명제
<유클리드 원론 제1권 명제1>
On a given finite straight line to construct an equilateral triangle
를 증명해보면.


1) A를 중심으로 하고 반지름이 AB인 원을 그릴 수 있다. [공준3]
2) B를 중심으로 하고 반지름이 AB인 원을 그릴 수 있다. [공준3]
3) 두 원이 만나는 점을 C라 하면 선분 AC, BC를 그릴 수 있다. [공준1]
4) AC는 AB와 같다 [정의 15]
5) BC는 AB와 같다 [정의 15]
6) 같은 것과 같은 것은 같으므로 AC는 BC와 같다 [공리1]
7) 세 변의 길이가 같은 것은 정삼각형이므로 ABC는 정삼각형이다 [정의20]





, , 의 주장은 애초에 크기가 없는 점, 폭이 없는 선, 그러한 선으로 둘러싸인 원을 그릴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인데 
이걸 공준으로 할 수 있다고 인정한 셈 입니다


정삼각형은 학자들이 인정한 당연한 사실들과 정의에 의한 추론의 결과물이므로

결국, 정삼각형은 개념으로 세워진 구조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삼각형을 "작도하라", "그려라" 라고 한 것이 아니라 "construct, 구성하라. 개념을 만들어내라" 라는 표현을 쓴거 아닌가요? 
언뜻 보편적으로 타당한 진리처럼 보이는 정삼각형이란 개념 조차도 사실은 인간이 만든 구성개념을 토대로 깔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거죠

그러니까 정삼각형 자체가 '개념'으로 세워진 구조물이란거 아닙니까?





과거에 "수학에는 모순따위는 없고, 참과 거짓의 판정이 가능하다"라고 믿고 수학으로 세상의 진리에 도달하고자, 

완전무결한 수학의 논리적 완성을 시도했던 '힐베르트 프로젝트' 라는게 있었습니다. 

이 꿈은 러셀이 발견한 역설에 휘청거리며 결정적으로, 단 한명의 수학자 쿠르트 괴델에 의해 완전히 '수학적으로' 박살이나면서 좌절이 되었죠.
 
수학이론은 불완전하고 인간의 이론체계는 절대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라는 것을 아예 '수학적으로 증명'해버린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떤 이론적 체계에서도 증명불가능한 역설이 반드시 존재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이성체계는 진리에 도달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바로 이 괴델의 불완전성에 정리를 통해 아예 수학적으로 증명이 되버렸었죠.


애시당초에 '과학'을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은 과학을 모르는 초보자나 학문에 몸을 담지 않는 일반인들의 생각아닌가요? 절대적 참은 확립되거나 획득될 수 없고, 인간의 모든 지식은 진리에 보다 더 가까운 지식, 부분적인 지식, 즉 확률적 참이고 단지 진리에 더 접근한 앎을 가지는 것이지 진리 그 자체가 아니지 않나요? 세상 어느 과학이 영구불변의 절대적 답을 추구하나요? 과학은 그런 체계가 아니라 무지를 감소시켜주는 체계적 과정의 총체 아닌가요?

간혹 수학을 인간이 하는 하는 학문 중 가장 완벽하며 순수하고, 완전한 진리를 찾아가는 학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지금까지 보듯 오해입니다.

애초에 수학의 시작은 증명없이 시작하는 공리에서 출발하게 되는데 이 공리는 증명을 할수가 없고 참이라고 가정하는것이죠

그다음부터 연역적으로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것이고. 그런데 연역의 문제는 항상 최초의 시작을 증명하지를 못하고 참이라고 가정하는것으로 부터 시작한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공리가 부정당할수 있다는 불안감이 항상있습니다. 
Russelll.jpg
수학이란게 인도신화에 나오는 우주와 비슷하죠, 토대가 우주를 받치는..
그리고 그 우주는 겉보기에 확고한 듯해도 토대에 있는 거북이가 변덕을 부리면 위태롭게 흔들리는...

이렇게 수학을 떠받치는 토대도 위태롭습니다.

수학은 과학이 사용하는 강력한 언어입니다. 과학의 대빵이죠. 그런데 수학은 증명되지 않은 전제들과 순환적인 정의들이 널려있는 난장판인데 그 상황을 개선하려면 강력한 논리학이 필요했었죠.

그리해서 최고의 수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역설이 없는 논리학을 구성해 수학을 지탱하려 애썼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었죠..그러나..

아무리 깊이 내려가도..

hilbert_turtles.jpg

아래로 한없이 이어지는 거북이가 나왔습니다.
토대를 이루는 체계에 토대가 없다라는 사실만 계속 나왔죠.

인간의 지식체계 하에는 진리가 획득불가능하다, 절대 획득될 수 없고 해결불가능한 형태의 지식이 존재한다는게 수학적으로도 증명이 된겁니다


 


-그래서 학문체계에 정답이라는게 없다는거야 뭐야?-

심리학의 몇몇 이론이나 물리학에는 어떤 현상이 더이상 하위 수준으로 나눌 수 없고 환원 불가능한(irreducible)특성을 지닐 수 있는 특성을 지닐 수 있음을 잘 보여줬죠. 그러니까 어떤 현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개별 특성들과는 전혀 다른 특성, 창발적 특성이 전체에서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건 하위 구조성분으로 분해 환원시켜 설명될 수 없는 것이죠. 

지금까지의 과학은 어떤 연구 대상의 현상이나 수준에 따라 다른 설명 수준을 적용해야 함이 과학사를 통해 계속 드러났습니다. 
과학적 설명과 이론에서 현상을 '단순'하며 '효율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들어 민주노총이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고, 로스쿨 학생들이 자퇴시위를 하며, ISIS라는 집단이 발생하여 테러를 일삼는 행위를 이해하고 설명함에 있어서 수억개의 뇌세포들이 연결된 양상을 자세히 기술한다는 극단적인 환원주의적 발상의 단순함은 효율성을 지니고 있을까요? 왜 더나아가서 물리학적 수준에서 전자들의 갯수와 움직임, 방향 등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환원시켜야 할 하위 수준으로 정한 임의의 하위 수준이 옳은 수준의 설명임을 보여줄 근거는 어디에 있나요? 이게 효율적 설명 이전에 '설명'이라고 할 수 있기는 한가요?

이렇듯 어떤 현상이나 대상은 수많은 구성요소들의 계층, 즉 위계로 이루어 집니다. 즉, 구성요소가 여러 층으로 되어있고, 이 위계의 어느 한 수준을 택하여 설명해야 하는 것이 과학적 연구자의 입장 입니다. 

신경과학 얘기를 좀 해보죠
젊은 나이에 책 한권 달랑 내놓고 요절해버린 '데이비드 마 David Marr' 라는 심리학자가 있었습니다. 그 책 제목은 'Vision' 이라는 건데..이 책 한권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여러 학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그후로 '계산신경과학(computational neuroscience)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했다고 평가받고 있죠.

이 책에서 핵심 대목이 'Levels of Analysis' 라는 겁니다.
마음이라는 정보의 처리를 이해할려면 세가지 단계 수준의 처리가 있음을 깨달아야 하고
그 모두를 반드시 상호보완적으로 함께 고려하며 이해해야 하면서, 한 수준만 고려하는 것은 전혀 효율성이 없는 무쓸모한 연구란겁니다.
여기서 특정한 마음의 정보처리 시스템이 무슨일을 하는지, 어떤 문제들이 풀리고 극복되는지, 왜 이런것들이 이렇게 되는지를 분석하는 Computational 단계  

특정 정보처리시스템이 어떻게 계산을 처리하며 그 표상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고려하는 알고리즘 단계 

마지막으로 어떤 정보처리 시스템이 어떻게 물리적으로 구현이 되고 작동이 되는지..예컨대 시각계에서 어떻게 신경구조가 이뤄지고, 어떤 활동이 일어나며 위의 것들이 구현이 되고 실행되는지..

인지과학에서는 이런것들을 모두 함께 고려해야 마음에 관한 엄밀하고 효율적인 모델을 그려나갈 수 있다는 주장을 했고 
그 결과 계산신경과학(computational neuroscience)이라는 신생학문이 탄생했습니다. 이런식으로 연구하면서 인공지능 및 뇌과학 연구에 엄청난 성과를 가져오게 됐죠, 그리고 제작년 노벨생리학상 수상한 존오키프, 에드바르모서, 마이브리트모서 박사 연구도 계산 시스템적인 신경과학연구에 해당되고요

음.......쓰고보니 예가 너무 새나간거 같네요..그럼 더 쉬운 예를 들어보죠



rmfla.JPG

만약 여러분이 친구를 이 그림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가정해 보세요
이 그림을 어떻게 설명하겠나요? 친구가 이 그림이 대해 정확하게 묘사하기를 원한다고 가정해보세요. 
친구는 이 그림을 어떻게 설명하겠나요?

개인의 행동을 탐색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서로 다른 분석수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Levels of Analysis라는건 매우 광범위한 것에서 부터
매우 작고, 특수한 수준까지 다양하죠

예컨대 저 그림에서 광범위한 수준에서는 박물관 안에 다른 그림들 간의 위치 수준으로, 혹은 제목으로, 베르메르 같은 예술가 이름 순으로 기술 할 수 도 있습니다.

좀 더 세부적인 수준에서는 그림의 특성들을 하나하나 열거할 수 있죠. 예를들어 그림에서 어떤 사람은 의자에 앉아있고 어떤 사람은 서있다 처럼.
혹은 더 세밀한 수준에서는 작가가 사용한 기법..예컨대 뭐 점묘법이라던가, 곡선이라던가, 빛을 표현한 방식이나, 사용한 물감이라던가 그림의 크기라던가...를 기술할 수 있죠..이런 각 수준에서의 기술은 그림에 대한 서로 다른 질문, 혹은 효율성있는 답을 요구하는 특정 상황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정답은, 아니 물음에 대한 효율적인 답은 그 수준과 위계에 따라 다르다는 겁니다.










-그놈의 과학 과학.-


점점 과학이 발달하면 심리학의 과학화도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또 그래서 뭔가 특정 과학에 힘입어 단순화될 것 같지만, 
실은..오히려 분과 다양성이 일어나죠. 왜 그럴까? 

심리학에서의 분과들의 다양성은 '다양성'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격리성'을 띠어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한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다른 분야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어서 말이죠. 

심리학은 그냥 '심리학'이라고 불러서는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각 분과간의 연결성이 약해져가고 있습니다. 신경심리학, 임상심리학, 산업/조직 심리학,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 상담심리학, 발달심리학 등등등등등.... 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상대분야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셔도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각 분야들이 각각 발전해가면서 한 분과에서 공부해야만 하는 주제들도 너무 많습니다.

서로 격차가 너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지심리학쪽에서의 정교한 실험 이야기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게는 무슨 별나라 이야기 같고, 또 발달이나 Health쪽에서 많이 사용하는 장기종단적 분석들도 그렇고, 임상, 사회, 산업과 같은 쪽에서 많이 사용하는 SEM도 그렇고... 

옛날에 SEM(구조방정식모델링) 세미나를 갖다온 적이 있었는데, 말만 같은 SEM이지 임상 전공자들은 자기들끼리도 활용목적에 따라서 다른 용도의 SEM기법들을 서로 거의 모르거나 이해하기가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더군요. 

간혹 이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이 다시 자신들의 공통적인 정체성을 찾아야 합니다." 
"너무 자신들의 좁은 분야에만 치우쳐서 주변 다른 분야의 같은 심리학자들이 하는 연구에 대해서 너무 무지합니다."

실제로 옛날 미국심리학회 APA 회장이었던 William Bevan이라는 사람은 '심리학과' 라는 것은 그냥 대학 행정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심리학회 회원들은 그저 동일한 우편함에서 우편물 받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까지 말했었죠

뭐..딱히 심리학만 그런건 아닙니다. 생물학은 어떤가요, 분자생물학, 생태학, 세포생물학, ..화학도 무기화학 유기화학 물리화학, 물리학은 역학, 열역학, 음향학, 전기역학 등...모르는 사람이 보면 모든 분야가 하나로 딱 통합이 잘 되어 있다 생각하시겠죠. 이런 상황은 심리학에만 있는 특수한건 아닙니다. 이들도 마찬가지이에요

일단 한 학문분야가 자연에 있는 특정 지식을 자신의 영역 내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역사적 부산물이며
학문의 구조를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과 역사적 요인의 함의를 깨닫게 되면, 인간이 자연에 있는 지식영역을 대학이 '학과'로 분할하는 행정편의적 방법임을 이해하는게 중요합니다. 

어떤 학문을 하나의 학문으로 통합시켜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나마 공통성을 찾을 수 있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같은게...'방법이 비슷하다' 라는 겁니다. 



실제로 심리학이라는 용어보다 '심리학적 연구'라고 부르는 표현이 심리학을 더 정확히 보여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심리학 전공하신 분들은 'Psychological Science'라는 말 들어보셨죠?
이걸 왜 이렇게 부르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던데..사실 그런 연유가 있는겁니다.(심지어 교수님 조차도 그저 '있어 보일려고' 그런 이름을 쓴다고 말하시는 것도 본적 있네요)

이거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표현입니다. 역사적으로 부면 미국에 있는 대학들이 Department of Psychology에서 Department of Psychological Sciences로 슬슬 바꿔 쓰기 시작한데서 온거죠. '심리학적 연구들의 집합.' (최초로 이 말을 쓴게 다트머스 대학이 학과 이름을 그렇게 변경한대서 유래)
(그리고 생물학이 Biology에서 Biological sciences로 불리는것과도 연관되어있음)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주제 아래에서 그런 학문으로 통합시켜주는 어떤 응집력있는 주제 집합으로 묶이는게 아닙니다.
다루는 대상이나 주제가 아니라, 그 대상을 알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들에 있어서 공통적인 근거가 있는겁니다.


연구방법이야말로 심리학자들 간의 공통적 근거라는 겁니다.


그럼 인간행동이나 마음을 연구한다는, 
그러니까 '방법'이 아니라 '주제'에 대한 것으로는 심리학이란 학문의 공통적 근거를 들  수 없는가?


사실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사회학도 그러하고, 법학도 마찬가지며, 인류학, 정치학, 역사학, 철학, 신학, 교육학 등등등등 온갖 분야가 다 나옵니다.

심리학만 인간행동과 마음을 연구하는게 아닌겁니다. 결국은 다들 저마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합니다.


정리하자면 심리학적 연구들을 심리학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은 주제가 아니라 지식을 만들어내는 특유의 연구방법에 공통적 근거를 갖고 있고, 
또 그 방법이 심리학의 정체성이며, 그 방법이란 과학이라 불리는 방법이다.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게 아니라면 이 학문이 '심리학' 이라는 이름의 독립학문으로 존재할 이유가 그냥 없습니다. 

각종 유관 분야는 그냥 다른 학문으로 떠나갈 수 있습니다.
예컨대 경영학이라던가, 컴퓨터과학이라던가, 생물학, 인류학, 사회학 등으로요.

심리학이라는 한 카테고리 안에 있으면서 

왜 심리학은 과학적 방법을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왜들 그렇게 과학 과학 거리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방법론에서 찾는걸까요


이를 이해할려면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탄생 역사를 좀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심리학의 오랜과거-

심리학사라는 과목은 대게 전세계 어디서든 4학년 막바지에 커리큘럼에 끼여있기 마련인데..
어쩐연유에서언지..다들 심리학사를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고  심리학사 과목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조금 있더군요.



제가 심리학사를 처음으로 재밌다고 느낀게, 물리학박사 출신 과학철학하시던 선생님의 강연을 우연찮게 듣고 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 선생님이랑 다른 생물학박사 분들이랑 세미나 및 강독회 하는걸 옆에서 그냥 엿듣고 줏어먹으면서.."오호 아하.. 그런거였구나"
하고 있었는데..심리학의 역사이야기가 주요 토픽이었습니다. 다른 전공의 분들이 심리학의 역사에 대해서 대단히 깊게 아시는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아무튼 심리학의 역사는 과학철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입니다.

무엇이 과학인가, 어떤 것이 과학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 논쟁에서 가장 딱 좋은 떡밥을 뿌려주는게 바로 심리학이거든요.(참고로 과학의 형식과학, 경험과학-Naturwissenschaften자연과학/Geisteswissenschaften정신과학 구분 자체가 분트라는 양반이 만든 말)

예컨대 철학자 칸트 같은 사람은 심리학은 결코 자연과학 같은 과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었죠..반면 헤르바르트 같은 사람은 심리학은 경험과학이지만 실험과학은 될 수 없다라고 생각했고,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철학자는 마음을 과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리적 대상들과 비교하여 정신적 사건은 관찰불가능하고, 수학에서와 같은 정밀함의 유지나 대상의 정의, 측정 불가능한 문제등... 
천천히 설명하겠지만 그때는 바야흐로 엄청난 발견들이 봇물 터지듯 이어진 과학의 르네상스 같은 세기었습니다. 독일의 많은 자연과학자들은 생리학의 성공에 힘입어, 같은 나라 사람이던 칸트가 펼쳤던 그런 비슷한 주장들을 뭉게고자 도전 했었죠.


심리학과 학생이라면 다들 들어봤을 헤르만 에빙하우스, 최초로 기억과정이라는 정신적 사건을 측정 가능하게 수량화해서 실험을 했던 사람으로 유명하죠
심리학사에서는 이 사람이 했던 유명한 명언을 절대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심리학의 과거는 길고 역사는 짧다"

갑자기 짜잔! 하고 학문이 나타나는게 아니에요.

여기서 '오랜과거'라는 말의 의미는, 인간의 본질과 인간행동의 원인, 마음, 정신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들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는 인간이 문명을 시작하면서 최초로 질문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을 때 부터 어떤 형태로든 던져 왔던 질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깊은 뿌리가 오랜 과거 철학 속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오랜과거를 수박 겉핥기로 살피려면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연합주의(associationism)나 기독교 신앙과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을 통합한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경험론(empiricism), 르네상스시대 후반의 데카르트에 심신상호작용론-이원론, 존로크의 경험주의라던가 죠지 버클리, 데이빗 흄 , 데이빗 하틀리등 영국 연합주의자들 그리고 최초의 과학적 심리학을 주장한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까지..  이 오랜과거를 꼼꼼히 들여다볼려면 이런걸 다 들여봐야 합니다..이런걸 공부하다 보면 심리학의 역사속에서 나타난 여러 생각들이나 이론, 개념들의 연속성에 대한 대략적인 느낌을 알게 됩니다.

뭐 아무튼 이렇게 현대 심리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은 모두 철학자들이
이미 오랜세월간 직면했던 문제들입니다. 철학의 역사를 모르고서는 심리학의 역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죠.. 

그렇다면 오늘날 독립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은 어떤가, 철학적 분석과 추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하여, 경험적으로 실험실에서 연구를 함으로써 인간행동이나 정신과정을 연구하려는 시도가 생겨난 근대심리학(New Psychology)이라 불리기 시작한 독자적인 학문 분야는
겨우 150년 전에 일어난 사건 입니다. 그 전까지는 심리학적 의문과 주제는 여러분야에 걸쳐 어떤 토픽으로써 산재 해 있었어도 
독립 학문으로서의 '심리학' 이라는건 존재하지 않았단 겁니다.

에빙하우스의 심리학의 과거는 길고 역사는 짧다라는 말에서
자연과학으로서의 본격적인 독립학문, 심리학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다는거죠

이렇듯 심리학이 19세기에 갑자기 불쑥 나타난게 아닙니다. 
철학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동일한 주제들과 씨름을 했다는거요.

다른말로, 이런 주제(인간의 마음과 정신과정)의 의문들은 여러 분야에 걸쳐서 산재해 있었다는 겁니다.
그들은 그런식의 연구를 psycho에 logy를 붙이는 이름 쓰곤 했었죠


그런데 뭐가 다를까요?

방법이 달랐습니다. 안락의자에서 사유를 해가며 문제를 찾던게 아니라, 직접 되나 안되나 해보는거요

즉 직접적인 실험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거죠.

이 시도를 누가 했을까요? 당시 물리학자들과 생리학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것도..우리가 하는 것 처럼 연구하다 보면 뭐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했던 생각이 슬슬 나타났던겁니다.

이 사람들이 어쩌다 심리학이란 학문과 엮이게 됐을까요?





-심리학의 짧은 역사-

수박 겉핥기로 심리학의 과거가 그렇다면 진짜 본격적인 독립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의 역사는 독일로 가서 찾으면 됩니다.


19세기에 독일은 학문의 성지이자 천국이었습니다. 전세계, 특히 유럽과 미국 학생들은 의학이나 과학등의 학문을 연마하려고 늘 당시의 독일 유학을 꿈꿨었죠.

독일대학이 인기가 있었던것은 다른게 아니라, 단순히 숫자 때문이었습니다. 1800년대에 비스마르크에 의해 독일이 통일되기전에는..사실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38개의 자치 공국(예, Bavaria, Hanover, Saxony등)들이 느슨하게 조직된 연방이었는데 각 소국가는 이웃 국가들과 수준을 맞추려고 노력했었고..그 방법 중 하나가 자기네만의 대학을 가지는 것이었죠..

따라서 공국 연합 전체에 걸쳐서 대학의 수가 엄청 많았습니다.
 

이 당시에 베를린 대학교를 그 기원으로 비센샤프트, Wissenshaft(그냥 과학, 협의로는 '자연과학' 이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라고 알려진 독특한 교육철학을 발전시키고 있었는데 이때 생리학자들의 성공적인 연구들은 연구중심의 Wissenshaft적 분위기를 더욱 강화했으며, 이런 분위기에선 그 당시 '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여러분야에 산재하며 존재했던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관한 여러가지 토픽들을 잘나가고 있던 자기네들의 방법을 써서 새로운 '과학적 심리학'이란 형태로 시도하기에 아주 적절했던 시기였죠..독일..특히 라이쁘찌히에서 심리학에 대한 새로운 실험적 접근이 성장하는데 직접적으로 공헌했습니다.

생리학자들이 개발하여 당시 신경계의 연구에 적용하고 있었던 측정, 반복검증 가능성, 객관적 자료 및 통제와 비교, 처치를 포함하는 이런 방법들은 인간 행동의 다른 측면들에 똑같이 적용되어도 좋은 것이었죠.

결국 독일에서는 생리학적(physiological)이란 용어는 '실험적(experimental)이란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분트라는 양반이 최초의 신심리학, 즉 근대심리학을 생리심리학(physiological psychology)라고 불렀을 때는 과학적 방법론을 기초로 한 학문이라는 넓은 의미에서의 심리학이었습니다.

1800년대에 독일로 유학을 가서 학문을 닦는 꿈을 꿨던 미국 학생들에게는 여러가지 선택이 가능했는데(예컨대 괴팅겐, 하이델베르크, 베를린 등)
그 중 가장 시설이 좋고 명성이 있었던 곳은 바로 분트가 실험실을 차려놓고 있던 대학인 라이쁘찌히였습니다.

라이쁘찌히에 유학하는게 최고였었죠.

분트가 그 대학에 있는 동안..분트 밑에서 박사논문을 마친 미국학생만  대략 36~37명 정도에 이르렀고 미국학생 뿐만 아니라 다수가 분트의 실험실 환경을 맛보고 갔었죠..

분트 얘기를 하기전에 분트가 있던 그 이전의 사건들에 대해 좀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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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후반에 이탈리아의 루이지 갈바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개구리의 근육경련을 통해 생체가 전기를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었습니다.
후에 이 발견은 볼타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배터리를 발명케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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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에는 스코틀랜드의 찰스 벨과 프랑스의 프랑소와 마겐디라는 학자들이 척수의 후근-감각입력과 전근-운동출력이라는 두가지 분화된 경로가 있음을 밝혔죠. 두 학자는 상당히 라이벌관계였고 서로 물고 뜯고 험담하는 사이었지만 알고보니 둘 모두 상화보완적인 주장을 하고 있던거였습니다. 이게오늘날 벨-마겐디 법칙이라고 불리죠 

여기서 챨스 벨은 "두 감각신경을 동일한 도구로 자극하여, 생성된 느낌은 두가지 구별되는 감각을 생성해낸다" 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컨대 혀에 있는 어떤 돌기에 날카로운 송곳으로 건드리면 '날카로움' 이라는 느낌을 얻었지만, 근처 다른 돌기를 건드리면 '금속성 맛'에 대한 느낌이 유발된다는 겁니다. 반대로 같은 유형의 감각계 신경에 서로 다른 자극이 가해져도 경험이 되어지는건 그 감각신경의 종류에 따라 결정되는거죠. 

이 아이디어는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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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최고의 대학이던 베를린 대학 최초의 생리학 교수 요하네스 뮐러에게 전달되어 특수 신경 에너지설(Doctrine of the specific energies of nerves)라는걸로 발전되었죠

특수신경에너지설이란것은 서로다른 신경섬유들은 서로 다른 정보를 전달하지만 그 메시지의 기본적 성질은 모두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라는겁니다. 한마디로 그것이 혀끝에서 맛을 전달하는 것이든 발바닥에서 오는 불의 뜨거움을 전달하는 것이든, 그 무엇이든간에 신경이 보내는 정보 자체는 항상 동일하다는 거죠    


19세기 전반을 선도한 최고의 생리학자 요하네스 뮐러에게는 대학원생 제자가 한명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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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헤르만 폰 헬름홀츠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스승이 19세기의 전반을 선도했다면 이 사람은 19세기 후반을 선도하던 최고의 생리학자이자 물리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업적이 정말 참 많습니다. 물리학에서 에너지 보존 법칙에 대한 수학적 기초를 만들어 열역학 이론을 정립하는가 하면, 전기역학, 열화학, 유체역학등 상당히 여러분야에 걸쳐 업적을 남겼죠.. 헬름홀츠는 제자도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아요. 에디슨이 백열등을 발명하게 도운 프란시스 업튼도 헬름홀츠의 제자였고, 음극선의 유진골드슈타인, 호흡연구의 지그문트 마이어, 주파수의 발견자 하인리히 헤르쯔 등등..정말 대단한 사람이죠.

이 사람이 이제 지각의 문제(problem of perception) 같은 '정신과정'과 관계된 연구에 관심을 가집니다. 헬름홀츠는 그 자신도 심리학에 많은 관심이 있어서 여러 가지 업적을 남겼는데, 그 중에 무의식에 대한 공헌과 함께 물리학의 에너지 개념을 심리학에도 적용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감각부터 출발했죠. 삼원색설, 대립과정설 같은 색체지각 연구에서 부터 지각에서의 무의식적 추론문제, 오늘날 3D안경의 기초가 되는 binocular vision연구 같은 시각인지와 생리광학, 청각에 대한 공명이론(resonance theory)...그리고 위의 요하네스 뮐러와 함께 신경세포에서 전기신호가 전달되는 속도를 최초로 측정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때의 연구는 저 맨 위의 루이지 갈바니와 함께 인류 최초의 전기생리학(electrophysiology)적 연구가 되었습니다. 이런 헬름홀츠의 업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대로 통용되는 것들입니다. 






여기서 잠깐,




가끔 프로이트를 심리학의 창시자라고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시기에 생리학계에는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생기론(vitalism) vs 유물론(materialism) 논쟁이었죠. 당시 생리학계 전체에는 생기론이란 아이디어가 만연해 있었는데..어떤 물질과 화학적 요소에는 환원불가능한 생기(vital force)가 흐른다는 그런 아이디어였습니다. 오늘날 동양적 마인드로 생각하면 무기물과 달리, 생명체 이면에는 기가 흐른다 뭐 이런 비슷한 마인드였죠.


이를 굉장히 불편하게 여기던 학자들 무리가 있었습니다. 무려 피의 선언이란걸 하면서 과학계에서 쫒아내버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집단이죠

이 사람들이 바로 


요하네스 뮐러의 동료 에른스트 브뤼케(Ernst Brücke), 에밀 드부아 레이몽(Emil du Bois Reymond) 칼 루트비히(Karl Ludwig). 그리고 위의 헬름홀츠였습니다. 이사람들은 결국 서로 평생 친구가 되었으며 이들은 당대 독일 과학계의 지도자가 되었죠.







-프로이트는 심리학의 창시자인가?-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바로 이 생기론의 반대 선언에 피로 서명한 사람들과 그들의 제자가

근대 심리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요하네스 뮐러에게는 지금까지 말했던 '빌헬름 분트'라는 대학원생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분트가 본격적으로 심리학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기 시작했던것은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헬름홀츠의 실험실 조수를 하던 시절입니다.

앞서 봤듯이 헬름홀츠 자신이 심리학적인 문제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칼 루트비히는 라이쁘찌히 대학 교수였는데..그에게는 멀리 러시아에서 온 유학생이 한명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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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바로 '파블로프의 개'로 잘 알려져있는, 
고전적 조건화에 대한 연구로 행동주의라는 심리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파블로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에른스트 브뤼케의 제자가 누구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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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입니다. 




그의 무의식에 대한 강조나 리비도(성적 에너지), 정신분석의 핵심근간을 이루는 '억압' 같은 개념들이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짜잔~ 하고 프로이트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런 미묘한 학문적 계보가 존재하는 것 입니다.


 


일반적으로 정신분석학의 시작을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출판한 1900년으로 보죠. 프로이트 자신이 분트와 비교하면 한 세대나 뒤의 사람이고, 정신분석학의 시작은 근대 심리학의 시작보다 거의 20년이나 늦어요. 저 위의 에빙하우스에 "기억론" 출판(1885)과 비교해도 무려 15년이 늦습니다. 

심지어 미국 심리학회(APA)의 창립 연대조차 1892년으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보다 8년이나 빨라요.
 



그러니까 전체적인 심리학의 역사로 봤을 때, 정신분석학이라는 것은 분트를 위시한 생리학자들이 몰두하고 연구하던 문제들의 연속성과는 동떨어진, 근대 심리학의 전개 과정에서 전혀 다른, 외딴 곳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이 오히려 근대심리학 역사보다 최신이란 얘기죠.



오늘날에도 정통적 심리학자들은 여전히 헬름홀츠와 페히너, 티치너, 분트, 파블로프등으로부터 시작된 연구 전통에 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매우 매력적인 소재들로 대중적인 파급력을 얻으면서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미국에서 록음악하면 엘비스 프레슬리를 떠올리듯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심리학을 두고 원래 정신분석과 같은 것 정도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이트에 대한 이야기는 밑에가서 다시 하기로 하고,

일단 하던 분트 이전의 이야기를 마저 끝내고 봅시다.





앞서 얘기했듯이 어떤것이든 정신, 마음과 관계되어있는 것을 언급하는 학문은 많았습니다. 그런 주제에 대해 얘기할 경우 어떤 분야든 정신,psycho+논리logy 라는 단어를 쓰곤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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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피에르 폴 브로카는 언어와 관련된 좌뇌의 특정 영역을 발견한 첫 인물입니다.
그 당시 유행을 타던 프란츠 갈의 거의 미신, 관상학이나 다를바 없던 '골상학'에 대항하여 이런 말을 했죠


"I had thought that if phrenology of convolutions, and not the phrenology of bumps"
만약 골상학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머리에 튀어나온 혹들에 관한 골상학이 아니라 피질에 있는 주름들에 대한 골상학이 될 것이다."

"Nous parlons avec l'hémisphère gauche!"
"우리는 좌반구로 말한다!"

브로카는 프란츠 갈의 골상학과는 구분시켜, 자신의 연구들을 총칭해서 '정신과정의 과학' 즉 Neuropsychologie, 신경심리학이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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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브로카 연구에 깊은 영향을 받은 독일의 생리학자 칼 베르니케는  
26세에 오늘날 베르니케영역이라고 불리는,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어준 발견에 대한 논문을 쓰는데

그 논문의 제목은 바로

"Der aphasische Symptomencomplex. Eine psychologische Studie auf anatomischer Basis"
"The Symptom-Complex of Aphasia: A Psychological Study on an Anatomical Basis."
"실어증 증후군: 해부학적 기반의 심리학적 연구"

였습니다. 


이처럼 Psychology라는 단어 자체는 심리학이 학문으로써 존재하기도 전에, 어디에나 쓰였던 말 입니다. 
한마디로 '학'으로써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의 토픽이었고 
그런 토픽에서는 철학이든, 생리학이든 무엇이든 의례 Psychology라는 말을 썼다는 겁니다.

여러분야에 걸쳐 산재 해 있었던 거죠.

그런데 19세기 독일 대학가에 퍼져있던 wissenshaft적 분위기 하에서 철학자들이 갖던 마음과 행동에 관한 기본적인 물음들에 대해서 사변적접근이 아닌, 이렇게 경험적접근으로 다가가는데 관심을 갖던 생리학자들이 막 생겨나기 시작했던 겁니다.



즉, 심리학적 주제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19세기에 행해졌던 생리학적 연구들이 자연스레 연장이 되면서 시작된거죠.


예를들어 헬름홀츠의 신경세포에 전기 전도 속도의 측정에 관한 생리학적 연구는 그대로 후에 '반응시간'이라는 심리학적 방법으로도 연결이 되었고..
감각과정을 연구하던 생리학적 연구들은 자연스레 인간의 정신과 연결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저 위에서 앞서 언급했었지만, 당시 생리학자들이 개발하여 신경계의 연구에 적용하고 있었던 "측정, 반복가능성, 객관적 자료 및 통제된 검사를 포함하는 방법들은 인간 행동의 다른 측면들에 똑같이 적영되어도 좋은 것이었죠.

이런 감각과정에 관한 생리학적 연구들은 자극의 지각(정신)과 지각된 자극의 물리적차원(물리)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정신물리학(Psychophysics)이라는 학문의 발달과도 연결이 됩니다. 쉽게말해서 물리적 자극과 그에 대한 심리적 반응 사이의 관계에 대한 학문이 정신물리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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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발을 디딘 사람이 위의 에른스트 하인리히 베버 라는 생리학자입니다(참고로 심리학 전공생은 교과서에서 한번쯤은 봤을 해골 착시 그림의 주인공이 바로 이 사진의 베버 얼굴임)
 

베버는 라이쁘찌히 대학 한 곳에서 학생과 생리학자로서의 삶 대부분을 보낸 사람입니다. 
베버 시대의 생리학자들은 
위의 헬름홀츠를 비롯해서 감각과 지각의 문제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실험실 절차의 응용이 나오기 시작했고 시각과 청각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서서히 알게되기 시작했지만, 

다른 감각에 대해선 별로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이때 베버는 이 틈새를 노려,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촉각이라는 감각의 최고의 권위자가 되어보고자 했었습니다. 
.

이 사람은 크게 두가지 중요한 공헌을 했는데, 
하나는 피부상의 다양한 위치들의 상대적인 민감도를 지도로 그려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심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 사이의 수학의 관계를 보여 준 것인데, 이는 이후에 베버상수, 혹은 베버의  법칙이라 불리게 되었죠


당시 베버는 촉각의 민감도를 알아보려는 연구를 하면서, (현대에 이르러선 그보다 더 복잡한 것으로 드러났긴 했지만) 
이점역(two-point threshold), 감각환(sensory circles)개념등을 토대로 촉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모델을 만들어가며 많은 연구를 했었습니다.


또한, 물체의 상대적인 무게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보면서, 사람이 두 무게를 구별하는 능력이 절대적 차이에 의존하는게 아니라 좀 더 복잡한 관계에 있음을 나중에 발견했는데
이걸 두고 베버상수라고 했습죠...이때 최소한 식별 가능한 차이를 두고 JND, Just Noticeable Difference라고 하는데, 이 베버상수는 JND/S=k 라는 공식입니다.

이런 베버의 발견들은, 정신적 사건들을 측정 및 수학적 공식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고, 정신적 사건과 물리적 사건이 서로 수학적으로 연관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물리적 세계 내에서의 변화와 이런 변화에 대한 심리적 경험 사이에 1:1 대응 관계가 성립하지 않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한마디로 베버는 스스로 깨닫지 못했지만 사실 자기는 정신사건, 즉 지각(perception)을 측정하고 있었던거죠.
베버가 생리학자로서 목표로 한 것은 촉각과 근육감각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었는데 이 목표를위해 베버가 사용한 방법이 나중에 정신물리학이라는 새로운 시도의 발판을 닦고 있었던 겁니다.

결과적으로 마음이 어떻게 경험들을 통합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접하는 자극들의 물리적 차원 이상의 것들을 고려해야만 하며, 
또한 마음이 물리적인 자극을 어떻게 지각하는지를 알고자 하는 시도가 필요하단걸 알려주는 계기가 됐죠







-근대심리학의 문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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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라이쁘찌히 대학에는 베버의 나이어린 동료였던... 물리학자겸 생리학자, 철학자이던 구스타프 페히너(혹은 페크너)라는 사람이 있었슴다.
페히너는 베버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전혀 다른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페히너가 라이쁘찌히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베버가 강의한 생리학 관련 과목 일부를 들은적이 있었는데 그때 베버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죠.

페히너는 당시 철학계에 있던 심신관계문제(mind-body problem)를 유물론을 타파하는 방향으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베버의 연구방식이 그것을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생각했었슴다


1822년에 의학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한번도 의사로써 활동한적은 없었고..대신 그당시에 페히너의 관심은 온통 수학과 물리학에 쏠려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무보수로 강의를 하고 돌아다니며, 불어로 적혀있는 물리학 및 화학서적을 독어로 번역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었는데... 이시절에 당시 전기물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아주 독창적인 업적을 남기기도 했었습니다(참고로 페히너의 아버지는 벤자민 프랭클린과, 이 양반이 수행한 전기실험과 어떤 관계가 있는 사람임)

그 후에 그 업적을 인정받아 라이쁘찌히에서 물리학 교수 자리를 얻을 기회가 생겼고..., 그 해가 바로 위의 베버가 촉감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 해였습니다.


페히너는 본래 물리학자로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정신 측정에 대한 그의 관심의 바탕은 과학적이기보다는 훨씬 형이상학적이었습니다.
가령 모든 자연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beseelt")는 생각인 범심론(panpsychism)을 신봉한다거나, 데카르트적 심신 이원론을 거부하면서 심적인 것과 물적인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한

특이한 '이중양상 일원론적 견해' 라는걸 취했죠.


페히너는 시각잔상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태양빛에 의해 시력이 심각하게 손상을 당해, 결국 교수직을 잠시 그만두게 됐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1851년에 건강이 호전되어, 다시 교수직에 재임용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페히너는 철학적인 문제들에 몹시 몰두하는 경향을 보였고
mind-body problem에서 유물론을 박살내버리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죠..

여기서 말하는 그 유물론이란 모든 사건이 물리적, 화학적 변화에서 기원한다는 생각으로 저 위의 헬름홀츠를 비롯한 대부분의 생리학자들이 이런 생각의 입장이었습니다.

페히너는 그런사람들의 생각을 Naghtansicht라고 불렀고, 이것을 Tagesansicht라는 관점으로 바꾸는걸 자신의 학문적 목표로 삼았죠.

이 단어들은 당시 독일 철학에서는 유행하고 있었던 관념론 운동(idealism movement)라는게 있었는데 거기서 페히너가 따온겁니다.
당시 철학의 관념론은 총체적으로 본 우주가 의식의 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우주 안에 있는 개체들의 개별적인 의식 이상의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페히너에게 의미한 바는, mind-body관계가 동일한 근본적 실재의 두 가지 측면으로 간주할 수 있고, 이 실재의 일차적이며 주도적인 특징이 마음이더라 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페히너는 이 mind-body, 마음과 몸의 정확환 관계를 개념화할 방법을 찾던 중 위의 에른스트 베버가 쓰던 방법을 자신의 연구에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페히너에겐 마음-몸이 조화롭게 그리고 수학적으로도 정밀하게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이었고, 그 방법이란게 심리적 감각과 그 감각을 낳는 물리적 자극을 측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이런 발상은 10여년에 걸쳐 온갖 연구를 촉발하게 됐죠..

예컨대, 저 앞서 말한 페히너의 '이중양상 일원론'이란 마음과 신체는 단 하나의 존재하는 것(existent)의 두 가지 양상이라는 주장입니다. 곡선이 어느 점(point)에서든 오목함과 볼록함 둘 다에 의해 특징지어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자연은 물리적인 관점만큼이나 쉽게 심리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다고 페히너는 주장한거죠.. 바꾸어 말하면 심적인 것과 물적인 것은 자연이 경험에 나타나는 이중 양상이라 이겁니다. 자연의 양면성을 가정하면 자연의 심적인 양상과 물적인 양상 사이에 존재하는 기능적 관계에 관한 질문이 다시 발생합니다. 이 질문을 다루면서 페히너는 정신 물리학의 계획(program)을 세웠는데.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The task did not at all originally present itself as one of finding a unit of mental measurement; but rather as one of searching for a functional relationship between the physical and the psychical that would accurately express their general interdependence."
"작업은 처음에는 정신 측정의 단위를 찾는 것이 전혀 아니었고, 물적인 것과 심적인 것의 일반적 상호 의존성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둘 사이의 함수 관계를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페히너는 정신 작용의 강도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외부적이고, 공개적이고, 직접 측정에 열려있는 물리적 과정과 달리 정신 과정은 내부적이고, 사적이고, 주관적이며 직접 측정될 수 없었죠.... 

어떻게 해서든지 간접적 방법을 개발해야만 했습다. 

페히너의 말에 의하면 이 문제의 해답을 제공해 줄 통찰이..딱..하고 떠오른 것은 '1850년 10월 22일'(참고로 지각심리학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이 날을 페히너데이 라고 서로 맥주한잔 하는 날)의 일이었습니다. 
정신 강도의 상대적 증가는 그것을 발생시키는데 필요한 물리적 에너지의 상대적 증가에 의하여 측정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거죠. 

이 통찰은 사실상 정신물리학적 계획의 특징이 되었고, 다음 10년 동안 페히너는 측정 방법을 개발하고, 들어올린 무게, 시각적 밝기 그리고 촉각 및 시각 거리의 정신 물리학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의 연구의 기초를 이루는 수학적 원리를 체계화하는 데 전념하면서, 1860년에 그는 10년간의 노력의 성과를 실험 심리학의 가장 독창적인 특수 연구서(monographs)인 Elemente der Psychophysik로 발표합니다.

이 Elemente der Psychophysik, '정신물리학 요강' 이라는 책은 흔히 최초의 근대심리학 책으로 간주되고 있죠 

페히너는 베버의 연구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그걸 저렇게 쓰게끔 깨달은건 저 앞서말한 1950년 10월 22일에..짜잔~ 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베버의 연구를 엄청 정교화시키기 시작하게 되죠..예를들어 베버상수는 S = k log R 등으로 다시 수정을 가하는가 하면 베버의 JND를 절대역(absolute threshold), 차이역(difference threshold)로 새로운 척도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 외에도 한계법(method of limits), 항상자극법(method of constant stimuli), 조정법(method of adjustment)등...요즘도 통용되는(심리학전공생들은 지겹게 봤을 지각심리학 교과서 제일 첫장에 나오는..).기발하기 짝이없는 정신 측정법을 개발하게 됩니다.


심리학 역사를 최초로 정리한 Boring이라는 학자는(안그래도 역사과목은 지루한데 이름도 Boring....) 페히너를 가리켜서 "우연히 정신물리학의 창시자가 된 사람" 이라 평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페히너는 본래 생리학 및 물리학자로 교육을 받기는 했었지만... 그의 주요 관심사와 목표는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형이상학적..즉 철학적인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철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유물론, Naghtansicht을 물리치고 이것을 Tagesansicht라는 관점으로 돌려보겠다는 목표를 가지면서 이런 연구들을 수행했고
불행하게도 이런 철학적 목표는 전혀 달성되지 못하였지만

그걸 해나가는 과정에서 개발된 연구방법들과 노력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페히너 자신이 보지 못한걸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해줬습니다.

바로 "아...심리적 현상이란게 충분히 과학적 방법론의 대상이 될 수 있구나!" 라는 것을요..

혹자는 이 페히너를 두고 진정한 최초의 근대심리학 창시자(참고로 심리학에서 진정으로 가장 오래된 분야로 취급되는 것이 지각심리학임)라고도 보는 시각도 있지만,

심리학계에는 분트=심리학의 창시자 라는게 못이 박혀있죠.

왜 특정한 한사람, 빌헬름 분트라는 사람을 '심리학의 창시자' 라고 부를까요?


이제껏 페히너의 연구를 보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용되는 심리학연구를 한 셈이고 최초의 심리학자라고 주장할 이유가 충분했으나,
지금까지 봤듯이 페히너는 철학적인 다른 목표가 있었고, 자기자신을 철학자로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


원래 창시자란 것은 선동가입니다.. 
단순히 최초로 무언가를 확립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업적이 극적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이라는 주장을 최초로 요란하게 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과학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재능은 그것보다는 '선전'하는데 있습니다.












-새로운 학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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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빌헬름 분트라는 양반에게는 그런 재능이 있었죠

다들 분트를 라이쁘찌히에 실험실을 만든 시기 하고만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분트가 라이쁘찌히에 왔을 때는 이미 40대를 훨씬 넘긴 나이였고

분트는 자신의 주요 업적과 학자로써의 삶 대부분 17년동안을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쌓은 사람입니다.


베를린대학의 요하네스 뮐러라는 위대한 생리학자에게서 실험생리학을 공부한 뒤, 자신의 원래 학교이기도 했던 하이델베르크대학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생리학 교수가 되기로 결심하죠

그때 독일대학 시스템상 Privatdozent라는, 지금의 시간강사 비슷한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이때 독일 교육체제 특성상 맘대로 강의를 개설할 수 있되, 월급은 학교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학생들의 사례금에서 전액이 나왔다고 하네요..아무튼 그렇게 생계를 유지하다가 분트는 결핵에 걸리고맙니다. 1년 뒤에 회복 후에..분트는 드디어 자신이 존경을 마지않던 헤르만 헬름홀츠의 연구실 조수자리에 들어갈 기회를 갖게됐습니다.

당시 헬름홀츠는 이제 막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교수를 막 시작할 떄였습니다. 이때 경험은 분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그 경력에도 대단한 도움이 되었습죠

참고로 1858년에서 1864년간 헬름홀츠의 연구실에 조수로 있으면서 분트는 공식적으로 무려 5만4천 여페이지에 달하는 책과 논문들을 남겼는데...요즘기준으로 봐도 엄청난 얘기죠. 이는 한명의 학자가 평생에 걸쳐서 내는 것보다 많은 양입니다.

아무튼..그 중에 다음의 중요한 책들을 출판했습니다.
Beiträge zur Theorie der Sinneswahrnehmung (Contributions to a Theory of Sensory Perception, 감각적 지각이론에서의 기고)
Vorlesungen über die Menschen -und Tierseele (Lectures on Human and Animal Psychology, 인간 및 동물심리학 강의)

첫째 책은 저 위에서 언급했었던, 철학을 중심으로 당시 여러 학문에 산재해 있던 '심리학적 토픽'과 의문, 물음들에 대해서 명백하게 실험적인 접근을 할 것을 최초로 제안한 것이고
둘째 책은 정신물리학과 반응시간등의 초기 연구들 중 일부가 기술되어있었습니다.

후에 분트는 헬름홀츠 연구실을 떠나 10여년간 계속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남아있으면서 학생들 강의비와 책인세로 생활을 유지하다가, 마침내 하이델베르크 대학측에서 특별교수 자리를 제안했죠.
그때 분트 나이가 마흔살이 가까웠는데 그제서야 월급을 안정적으로 받고 생활하면서 결혼도 할 수 있었죠.

이때 분트가 가장 중요한 책을 하나 썼습니다.

Grundzüge der physiologischen Psychologie (Principles of Physiological Psychology, 생리심리학 원리) 라는 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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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심리학 전공 학생들이 심리학이 신경과학과 연계된 경향, 생리/생물심리학을 가장 최근에 뭐..무슨 뇌과학과 심리학이 만나기 시작했다 이런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실은 뭐 최근의 경향 이런게 아니라, 생리심리학은 이렇듯 가장 오래된 심리학 이고, 원래 심리학의 탄생순간부터 뇌는 심리학 연구의 중심에 있었슴다.

(참고로 생리심리학Physiological Psychology가 생물심리학Biological Psychology로 이름이 바뀌게 된 연유는 심지어 생물심리학 전공 교수님들도 정확히 아는 경우가 드문, 국외 문헌을 찾아도 답을 찾기 힘들정도로 희소가치가 높은 과학사가 얽힌 질문임. 모르는 분들이 그냥 생물심리학은 광의로써, 생리심리학은 협의로써 사실 동일한 분야라고 하지만 생리학이 생물학으로 발전해간 역사와 생리학 이외 다른 생물학 분야가 심리학 연구에 낑겨 들어간 것과 연관되있는 것. 생물심리학사를 제대로 정리한 책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부분 심리학사는 방법론이나 그 철학적 목적, 배경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분트->과학적 심리학 이런식으로 넘어가기 때문 입니다. 더욱이 진화생물학을 생물학의 통합이념으로 묘사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국내외에 득세하면서 한때 진화심리학=생물심리학 이라는 개소리가 나돌기도 했죠..아 졸라 복잡하죠 ㅆㅂ? )

아무튼 이 생리심리학 원리라는 책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어요

"Die Arbeit die ich hier der Öffentlichkeit präsentiere,ist ein Versuch einen neuen Bereich der Wissenschaft abzugrenzen."
"여기 내가 대중에게 공개하는 이 책은 과학에서 새로운 영역을 설정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렇게 명시적으로 새로운 학문에 관해 '선언'을 한거죠.

무언가 새로운 학문을 창시한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연구의 시도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분트는 하이델베르크에서 '생리심리학 원리'라는 책을 출판한 후, 명성을 얻었고, 그 후에 스위스 취리히대학에서 분트에게 귀납철학 분야 정교수직으로 올것을 권유합니다.
스위스에서 그렇게 교수생활을 단 1년만 보내다가 당시 독일에서 가장 큰 대학이던 라이쁘찌히대학에서 정교수직 제안을 또 다시 받고, 결국 거기로 가서 학자로서의 생을 다 살았죠.

그리고 라이쁘찌히대학에서 이른바 새로운과학, 즉 본격적인 독립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이라 불리게 될 것을 확립하기 위한 계획에 착수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분트는 여러가지 연구를 하며 꽤 많은 실험도구들을 소장하게 되었는데, 라이쁘찌히 대학이 분트에게 그 장치를 비치하도록 허락한 공간은 1879년에 그 유명한 '심리학실험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실험실을 설립하고 과학으로서 그리고 철학으로부터 독립된 학문 부문으로서 양쪽으로 심리학의 학문적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분주한 움직임속에서 온갖 연구를 수행하며, 
독일 대학가의 Wissenschaft적인 환경은 경험적 토대 위에서 심적 현상을 연구하는 분위기를 마련해 주었고, 학업 프로그램을 설립하고, 교육과정을 만들고 분트의 실험실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면서 '심리학자'들이 양성되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오늘날 부르는 '심리학'이 대학기관에 학과로서 발생합니다. 

이런 커리어들이 빌헬름 분트를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창시자' 라는 타이틀을 씌우게 된 스토리입니다. '심리학적 토픽'이 아니라 학문으로서의 심리학 말입니다. 오늘날 심리학이라는 학문도 여전히 그 전통에 속해있습니다.

분트 밑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 중에는 미국인이던 '제임스 카텔'과, '스탠리 홀' 옥스포드 출신인 '영국인 '에드워드 티치너' 등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에서 윌리엄제임스라는 천재 양반과 함꼐 미국심리학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합니다. 

그외에도 G. E 뮐러 라던가, 에빙하우스라던가, 오스발트 쾰페 같은 수많은 걸출한 심리학자들이 분트의 실험실을 거쳐갔죠.  요즘도 교과서에 간혹 찾아볼 수 있던 mind set, 마음갖춤새 같은 개념을 만든 바로 그 사람이 오스봘트 쾰페임다.
퀠페는 분트 실험실을 떠나서 뷔르쯔부르크로 옮기고 거기서 뷔르쯔부르크학파라는걸 만들고 자신의 세력을 굳히는데, 지금도 그 지역에서는 '퀠페상' 이라는게 매년 수여되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퀠페 제자 중 한명이 칼 뷜러고, 뷜러의 애제자가 Egon Brunswick, 뷜러의 제자중 잘알려진 철학자는 바로 그 유명한 과학철학자 칼 포퍼임.





가끔 모르시는 분들이 무조건적으로 빌헬름분트가 엄밀하고 측정가능한 잘 객관화된 수치, 통계를 이용한 연구, 조작적 정의를 들먹이며 연구를 했는데 과학적이었기 때문에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라고 뭐 이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하시는데..분트의 사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분트에게 있어서 심리학은 두 종류였습니다. 하나는 개인의 더 단순한, 미시적 심리적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physiologischen Psychologie(생리심리학)이었고, 다른 하나는 문화와 역사에 속한 개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더 복잡한 과정을 다루는 Völkerpsychologie(Völker는 매끄럽진 않지만 문화, 민족, 공동체라는 형용사로 대충 번역됨. 오늘날 사회심리학의 모체가 됨)였습니다.. 자연과학의 실험적인, 실험실 방법과 분석적·개념적 접근법은 생리심리학 내에서 유용할지도 모르지만 그것들은 분트의 견해에서는 가치와 의미를 산출하는 생성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거시적 심리학에는 근본적으로 부적당하다 뭐 이런 생각을 했었죠. 생리심리학 내에서 설명은 물리적 원인과 결과의 닫힌, 예측적 시스템으로 구성될 수 있지만 그러나 거시적인 사회, 집단, 문화를 다루는 경우 현상은 심리적 요소와 그것이 수반하는 가치 속성 사이의 경험된 관계로 정의되는 심리적 인과성에 의하여 분석되어야만 했고..그런 분트에게 있어서 심리적 인과성에 의한 설명은 결코 예측적이지 않고 항상 사후적(post hoc)이었습니다.

분트 역시 물리학과 심리학 둘 다 경험을 그것들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는 자연 과학에 의해 연구되는 (주체에서 분리된) 간접 경험과 심리학에 의해 연구되는 (주체에 관계한) 직접 경험 사이에 physiologischen psychologie / Völkerpsychologie, 혹은  Naturwissenschaften / Geisteswissenschaften 식으로 뚜렷한 구별을 지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분트는 심리학은 '주체(the subject)에 관계하여 경험의 총체적 내용'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였고 이런 정의와 주관적 경험의 흐름에 대한 설명에 있어 분트가 말하는 '심리적 인과성(psychic causality)' 같은 개념의 사용은  실험주의자..예컨대 쾰페 같은 사람이 보기엔 자연 과학에 대한 심리학의 동화를 가로막고 있었던거죠..

 

또한, 분트는 자연 과학 방법론을 심리학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을 전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느꼈고 단호히 반대했습니다. 분트의 견해로는 실험 방법론은 감각에 수반되는 것과 같은 개인의 더 단순한 심리 과정에 대한 조사에는 유용할지도 모르지만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에 수반되는 가치 및 의미 부여의 더 복잡한 과정에 대한 연구에는 전혀 소용이 없는 것이었져. 그러므로 심리학의 일부(그것도 비교적 작은 부분)만 자연 과학의 방법론을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다라는게 분트의 생각이었습니다..졸라 복잡하져? 어후..ㅆㅂ



이런 연유로 심리학은 나중에 심리학은 자연과학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의 엄격한 실험주의자와 형이상학적인 방향의 학자 두 입장으로 갈라서게 되는데 분트의 이런 입장은 그런 실험주의자이던 몇몇 제자 및 동료학자와 약간의 갈등을 벌이기도 했었습니다.

퀼페(Külpe), 에빙하우스(Ebbinghaus), 티치너(Titchener), 에른스트 마흐(Mach, 미사일, 비행기등의 속력 단위를 나타내는 그 '마하'의 주인공, 지각심리학에선 마하의 띄라는 이론으로 유명)등의 소장 실험주의자들은 심리학을 자연과학과 갈라서게 할 마음이 전혀 없었고, 소위'심리적 인과성(psychic causality)'처럼 형이상학적으로 파생된 구성물을 사용할 마음이 전혀 없었죠.


분트에 관한 또 다른 유명한 오해로는 분트를 두고 구성주의라고 불리는 학파를 창시한 사람이라 부르는 겁니다. 이건 아주 광범위하게, 특히 심리학과 1학년생들이 보는 전공서에 광범위하게 퍼진 오해인데...구성주의자는 분트가 아니라 그 제자 티치너였습니다. 이렇게 된 연유는..티치너가 분트의 실험실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분트는 영어를 할 줄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생동안 써온 저서들을 누군가가 번역해야 했었는데..그 작업 대부분이 티치너에 의해 이뤄졌죠. 그리고 티치너의 제자 중 한명이 Boring 이라는 이름의 심리학자였고 이 Boring이란 사람이 심리학 역사를 최초로 정리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이 어마어마한 오해가 전파가 되기 시작했죠..이외에도 많습니다

아 아무튼 

분트의 업적과 그리고 그와 관계된 여러 썰은 분량이 너무 많고, 제가 슬슬 삼천포로 빠지고 있으며, 이미 이 글 분량이 너무 불필요하게 길어졌기 때문에 그냥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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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정리 도표)



자 아무튼 여기까지의 맥을 더듬어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심리학이라는 토픽에 학문적 정당성이 부여된 특정 사건은 바로 '생리학자들의 과학적 방법론'이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고로 연구방법 자체가 심리학에 학문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정체성이 된다는겁니다.
방법이 오늘날 지금 우리가 하는 '심리학' 그 자체다 라는거죠..


심리학은 발달과정에서 정말 걸림돌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그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마음을 과학적으로 연구한다고 한다면 인문학집단은

"You use the monster of mechanical reason to kill off our humanity."
"당신은 기계적 이성이라는 괴물을 통해 우리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라는 반과학주의적 논조의 딴지를 걸기 십상이고

다른 분야 과학자집단은

심리학은 인문학 아닌가요? 그게 과학이 될 수 있나?

라는 식의 딴지를 걸기 십상입니다


역사적으로 '정신'이나 '마음'을 과학의 영역에서 제외시키고자 하는 세력은 항상 있어왔어요.. 하지만 그런 시도들은 모두 실패했죠.
비단 마음에 관한 문제만 있는건 아니죠..아시겠지만 망원경을 들여다보기를 거부했고, 시체절단이 금기였던 시대가 있었듯이  인간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려는 모든 과학적 시도는 어떤 저항이 항상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지식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인간의 성취에 공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된 오늘날에는 누구도 이런 저항을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나 연극을 보러 갈 때 공상과 판타지를 원하죠..그렇지만 병원에 가거나, 보험을 들거나,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거나, 
자동차 수리를 맡길 때는 그런 공상과 판타지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 '본질'과 그 '기원', '정신'이나 '마음'..혹은 '행동'에 관한 것이라면 그 저항이 엄청나게 거셌고 
구태의연한 반대의 잔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심리학이 뭘 하는 학문이겠습니까? 

철학자나 종교학자나 논평가들이 논평이나 논하던 마음이라는 주제를 종교적 권위와 상식과 미신과 싸워오며 선두에 앞서서 경험의 영역에 올려놓은 학문입니다. 

인간에 대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증거와 상반된 강한 신념들을 최근에야 겨우 경험적인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끌고 나온 심리학을 현재 일반 대중이 그 타당성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억울한면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놀라울 만한 일이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심리학이 아닌가?-

이러저러한 맥락으로 보면 근대심리학의 역사에서 1세대 실험심리학자들이 원래 행하고 몰두하던 문제가 있었고, 오늘날의 심리학도 여전히 그 연속성상에 이어지고 있고 아직도 거기 속하고 있지만, 프로이트식 정신분석은 그 과정에서 그것과 관계없이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난거란걸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신비스럽고 매우 매력적인 이미지로 인하여 대중적 파급력이 어마어마했죠. 그리고 심리학보다는 철학자와 몇몇 소수의 의학계에서 그 추종자들이 많이 나타났습죠. 그런데 잠깐..가끔 정신분석을 두고 심리학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첫째, 마음을 다루는 학문을 심리학(psychology)이라고 한다면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이 마음 외의 다른 무엇을 다루지 않는바에야 그 일부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정신분석학이 주류심리학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학문 수준에서 분립될 수는 없어요.

둘째, 미국 심리학회 APA에는 모두 56개 분과가 있는데. 이 중 임상 영역에 속하는 분과학회는 임상심리학회(제12분과), 건강심리분과(제38분과), 정신분석분과(제39분과), 임상신경심리분과(제40분과)입니다. 적어도 APA가 규정하고 있는 심리학의 범위에는 정신분석학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결정적으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 자신이 정신분석학을 심리학의 한 부분으로 정의했습니다.

정신분석은 심리학 맞다고 보면됩니다.

물론...좀 래디컬한 심리학자 중에는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의 일부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습니다. 
근데 이 사람들 주장을 잘 들여다보면 정신분석학이 다른 학문이라는 것이 아니고, 그냥 학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원래 신경생리학자였다가 생계문제로 신경과의사(정신과의사 아님다. 프로이트 당시엔 정신과는 존재하지도 않았음)로 개업을 한 사람이에요.
당시에는 뇌든 마음이든 거의 알려진게 없었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당시의 과학적 지식과 자신의 임상적 경험을 버무려서 어떻게든 최선의 이론을 만들려고 노력했었죠.

가령 뇌에 있는세포가 겨우 어떻게 생겨먹은지가 알려진게 1890년대입니다. 1890년대에 이탈리아 카밀로 골지는 은크롬 염색법을 개발했는데 이걸로 우연찮게 뇌조직을 관찰했습죠. 이때 신경세포 주위의 돌기에는 표면막이 없어서 골지는 이걸로 뇌의 신경세포들은 정맥과 동맥마냥 거미줄처럼 연속적인 신경망을 이룬다고 주장했슴다.(이 썰을 reticular theory, 망상설이라고 함)반면 옆나라 스페인의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은 골지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골지가 만든 염색법을 다르게 이용해 뇌가 독립된 신경세포들로 이뤄져있음을 보였습니다.(이 썰을 neuron doctrine뉴런이론이라 하고 이런입장을 cellular connectionism, 세포연결주의라고 함) 이 업적으로 1906년에 골지는 은 염색법을 만든 공로로, 카할은 신경망의 기본구조를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죠. 골지는 자신이 반대한 주장을 증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탄 셈인데, 그는 노벨상 수상연설에서도 자신의 이론을 옹호하면서 라몬 이 카할의 발견을 비난했다고 하네요.

자 여기서 연도를 잘 봅시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대표작인 "꿈의 해석"을 출간한 것은 1900년입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뇌의 기본단위가 신경세포라는 것조차 아직 확실치 않았던 시절이에요. 그제서야 골지와 카할이 뇌 속 신경세포 모양을 관찰하고선 그게 뭐다 뭐다 라고 서로 헐뜯고 치고 받던 시대였죠

아리스토텔레스가 상대성 이론을 몰랐다고 비난할 수는 없어요. 

심지어 프로이트는 라몬 이카할의 이론을 정신분석학과 조화시키기 위해 "과학적 심리학 초고"라는 논문을 쓰기 까지 했습니다.

프로이트가 20세기 서양문화 전반에 걸쳐서 중차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심지어 서구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에도 그 영향력이 들어가있죠(한국인들은 모르겠지만 이고, 컴플렉스, 형제간경쟁, 프로이디언슬립, 거부불안, 투사 등등 이런 표현은 영어에서 일상언어로 쓰임) 프로이트가 살던 그 당시에도 성가시리만큼 프로이트를 비과학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요즘도 그렇지만) 프로이트의 심리학은 세월이 흐르면서 맞지않는 상반된 발견들이 자꾸만 발견되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해체되었지만, 이 양반의 통찰들중에는 여전히 세월의 평가를 이겨낸 것도 꽤 많습니다. 아..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데 무의식은 프로이트가 발견한 것이 아니에요(이건 무려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이디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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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프로이트에겐 Dr. Sickman Fraud라는 별명이 있음)


보통 묘사되고 있는 것 만큼 프로이트의 주요 아이디어들은 이미 19세기에 존재하고 있었던 관련된 생각, 혹은 동일한 생각에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천재성은 창조가 아니라 합성과 선동, 여러 갠며들을 끌어다가 인간행동에 대한 통합된 이론으로 직조한것과 의학계에서 이 이론의 선전이었습니다. 역사적인 맥락으로 보면 프로이트를 두고 뭐 막무가내로 비과학적이다라고 까는게 적절치 못한 부분도 많습니다. 그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보면 적절하고 타당하기 짝이 없는 아이디어와 진술들이 많았고, 심지어 프로이트 자신이 그걸 선견지명까지 한 부분도 있습니다. 


문제는 프로이트를 '철학'으로 재포장한 사람들에 있어요. 이 사람들은 프로이트가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 역사적 맥락과 마음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려고 했던 그의 노력을 모두 날려버리고 정신분석학을 사변적 이론으로 재구성하면서 자신들의 그런 지적 난동을 "프로이트의 '생물학적 편향'을 제거했다"며 우쭐해합니다. 밥벌이 때문에 생물학을 손에서 놓아야 했지만 끝까지 그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프로이트가 들으면 밥숟가락을 집어던질 일이죠. 





-끝-



PS) 쓰다가 보니...너무나 긴 글을 쓰게 되었네요..나는 왜 크리스마스시즌에 이런걸 쓰고 자빠졌을까요.......흐읍...
출처 Gleitman, H. (1995). Psychology. New York: W. W. Nor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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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sychologicalscience.org/index.php/publications/observer/2011/september-11/identity-shift.html
Goodwin, C. J. (1999). A history of modern psychology. New York: J. Wiley.
Wozniak, R. H. (1999). Classics in psychology, 1855-1914: Historical essays. Bristol, U.K: Thoemmes Press.
Mills, J. A. (1998). Control: A history of behavioral psychology.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이정모. (1998). 과학도로서의 심리학도의 자세
Blumenthal, A. L. (1975). A reappraisal of Wilhelm Wundt. American Psych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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