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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 박도경을 보면서 내 모습을 들킨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게시물ID : humorbest_12626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기욤뮈르소
추천 : 39
조회수 : 3047회
댓글수 : 9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06/08 00:14:38
원본글 작성시간 : 2016/06/07 21: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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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제 방송된 11화에 나온 '박도경'은 무척 답답한 모습을 보여줬다. 문제는 내가 이 답답한 그의 행동들에 공감을 한다는 사실이다. 답답함으로 욕을 한바가지 먹고 있을 박도경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면서 하루 종일 알몸으로 길에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해영의 말대로 그는 '감정불구'가 맞다. 그가 이렇게 된 건 그를 주변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 먼저 아버지는 음향일 때문에 매일 집 밖을 전전하며 아들을 방치했다, 쓸데 없이 아들을 데리고 나간 날 떨어져 죽는 바람에 도경에게 죄의식만 심어놨다. 엄마도 아들을 방치했다. 성인이 되고, 음향 전문가가 된 다음엔 돈 달라는 얘기 밖에 하지 않는다. 아들이 밤샘을 밥먹듯이 하지만 그런 것엔 관심이 없는 여자다. 그것이 아니라면 돈줄이 되 줄 왕회장 얘기만 늘어 놓는다.

 철 없는 동생 '박훈'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영화감독의 꿈, 철없는 21살 여자친구, 오너인 형이 주는 업무 스트레스가 대화 주제의 전부다. 누나 '수경'도 문제가 있다. 철저한 방관자다. 옛사랑의 아픔이 너무 커서 여력이 없다고 할 순 있지만, 지나칠 정도로 동생의 아픔에 무관심하다. 마음 속에 얘기들을 허물없이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가족이다. 결혼을 하루를 남겨놓고 파혼을 당한 '도경'은 1년이 지났지만 상처를 제대로 치료받은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나도 몇번의 연애에서 입은 상처를 제대로 치유받은 적이 없었다. 못난 소리 부모님에게는 하기 싫어 물어 봐도 남의 일처럼 대답했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간혹 내가 여자를 찼던 이유를 설명한 적은 있지만, 내가 어떤 잘못으로 관계가 끝장났는지 얘기해본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연인과 헤어짐을 맞이하면 시간과 술에 기대 잊으려고 했을 뿐, 연애에 대한 내 감정을 주변에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와 반대로 서해영은 엄마에게 상처를 치유받는다. 더운밥 먹이기 위해 도시락을 싸들고 점심 시간에 학교로 찾아가는 사람이 서해영의 엄마다. 딸이 전해영에게 비교당하며 상처받을 때마다 얘기도 들어주고 밥도 먹여준다. 서해영은 파혼당한 사실을 엄마에게 계속 숨길 수 없었던 것도 엄마에게 위로 받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서해영은 가족과 함께 노래방에 몰려가 고함도 지르고, 같이 울고 술도 마시면서 마음의 문제를 지워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현재 그녀는 사랑이 떠나고 다시오고 또 소멸되는 과정이 너무 빨라서 괴로운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도 같이 해결 해 줄 가족의 존재 때문에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입장이다.

 하지만 도경은 마음 속에서 삭히면서 일로 시간을 채우면서 문제를 해결한다..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결혼을 약속했었던 전해영도 그의 마음에 난 상처엔 관심이 없다. 그녀는 일년 만에 마주친 자리에서 화를 내는 도경을 보면서, 아직도 나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여자다. 게다가 오해영을 오해영으로 착각해 태준을 망하게 만든 사람이 도경임을 알고, 자신이 이별로 아파한 것 이상으로 고통스러워 했던 도경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위로를 받는 사람이다.

도경은 성인이 되고 난 뒤 집, 작업실만 왔다갔다 하면서 일중독자로 살아왔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주변으로부터 어떠한 심리적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다. 

 도경이는 감정해소가 되지 않은 채 살다보니, 감정불구가 되버린 것 같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만나던 여자에게 내가 정말 큰 잘못을 했을 때, 무릎 꿇고 빌어야 했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무릎 꿇고나면 떳떳하게 만나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감도 이겨냈어야했다. 사랑했던 여자를 앞에 두고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절절히 사랑하는 내 감정을 먼저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박도경처럼 어떻게든 해결 되겠지라는 식으로 머뭇거리다 말았다. 

 한 동안 너무나 사랑했던 여자가 내꿈에 나타났다. 잔인하게도 1년 동안이나 거의 하루 걸러 하루 그녀가 꿈에 나타났다. 너무나 괴로워서 정신과를 찾아갔던 건 박도경과 나의 공통점이다. 꿈속에서 그녀가 나타날 때마다 나는 현실에서 내가했던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었다.

 그녀에게 매번 이별을 고하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행복하라고 했었다. 현실이 꿈에 반쯤 걸려있는 자각몽 상태에서는 더했다. 억지로 이별상황을 만들려고 애를 썼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꿈 속에서 다시 만나서 생기는 잠시 기쁨보다 깼을 때 만나게 될 현실의 공허함이 두려웠다.

 결혼까지 생각한 여자를 보내고 머뭇거리는 시간동안 그녀는 새출발을 했다. 작년에 결혼도 했다. 찌질하게 가끔 SNS에 접속할 때는 그녀의 담벼락을 둘러본다. 지금의 남편과 여행가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그렇게라도 니가 행복하니까 됐다"는 머저리같은 생각만 하고 있다.

 그 지독한 꿈들이 나타나지 않게된 지금, 내 소원은 그녀 마음 속에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내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경의 코마가 만들어낸 공간 속에 서해영이 계속 떠오르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그녀와 맺어지지 못한 아쉬움에서 시작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상 현실속에서조차 떠나 보내면서 그리워하고 있는 도경이 한심하기도하고 안쓰럽기도 한 것은 극을 통해 잊고 있었던 내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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