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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실존주의다. 실존주의여야 한다.
게시물ID : humorbest_12989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ribint
추천 : 47
조회수 : 3804회
댓글수 : 28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08/25 22:23:37
원본글 작성시간 : 2016/08/21 01: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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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철학의 한 갈래인 실존주의의 대가 싸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주의의 전설적인 명구로 남은 이 문장의 의미는, 우리가 존재하기 이전에 정해진 우리의 본질이란 것은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볼펜은 발명되기 이전에,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목적과, '쓴다'는 성질이 있었고, 그것을 위해 볼펜이라는 사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냥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적 용어로 인간은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다. 그 어떤 목적도 의미도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생겨나기 이전에 정해진 목적이나 사명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중세 시대에는 인간이 태어난 목적과 그 인간의 직업을 신이 정해두었고 신의 계획에 따라 인간이 움직인다고 믿었으나 실존주의 아래의 근대 인간에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냥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제 자신의 삶의 목적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신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목수로 태어난 인간은 목수가 자신의 천직이라는 계율을 파괴하고 노래를 배울 수 있고 대장장이가 될 수 있다. 실존주의는 신의 손아귀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고 인간의 자유를 획득했다.


싸르트르의 아내이자 제자이며 학술 동료였던, 페미니즘의 대모격인 보부아르는 실존주의자였다. 보부아르는 인간이 신에게서 해방된 것처럼, 여성은 남성 중심 사회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실존주의적으로 볼 때 인간이 남성으로 태어난 것이나 여성으로 태어난 것 역시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싸르트르는 그냥 남자로 태어난 것이고 보부아르는 그냥 여자로 태어난 것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고 인간은 그냥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자는 얌전해야 한다, 순종적이어야 한다, 맨살을 보여선 안 된다, 따위의 계율들 역시 보부아르에게 와닿을 리 없다. 왜냐면 여자는 그냥 여자로 태어난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본질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지 태어나기 전에 누가 정해줘선 안 된다.


실존주의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권 신장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법적인 여성의 해방 같은 자유주의 페미니즘과도 다르고, 그들이 개인적인 일로 치부했던 미소지니에 전쟁을 선포한 래디컬 페미니즘과도 다르다. 실존주의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표는 젠더롤로부터의 인간 해방이다.

남자는 울면 안 돼, 남자는 씩씩해야 해,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야 해,
여자는 부드러워야 해, 여자는 연약해, 여자는 감성적이야, 따위의
젠더 자체에 부여된 모든 사회적 선입견들을 실존주의 페미니즘은 적으로 규정한다.

실존주의 페미니즘의 이상 아래에 도대체 어떻게 페미니즘의 적이 남자가 될 수 있을까. 남성 역시 똑같이 젠더롤의 피해자일 뿐이다. 남자에겐 울 권리가 있고, 귀여움을 받고 싶어할 권리가 있고, 겁 먹을 권리가 있다. 여성이 침해받은 수많은 권리들처럼 남성도 (여성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것들을 피해보았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실존주의를 잊으면 그것은 이익집단의 모토가 된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이익집단으로 전락하면 그들은 동성애자나 장애인들의 인권을 상관하지 않게 된다.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 운동이지 장애인 인권 운동이 아니다." 같은 멍청한 소리를 페미니스트라는 사람이 내뱉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동성애자를 혐오하고도 떳떳한 얼굴로 페미니즘을 얘기할 수 있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이익집단으로 전락하면 그들은 남성을 적으로 규정하는 함정에 빠진다. 이 경우에 그들은 여성의 이익을 빼앗아가는 적을 남성으로 설정하고, 남성이 이 사회에서 가지는 몫을 줄이면 여성이 더 많은 몫을 얻게 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남성의 몫을 줄이기 위해 투쟁하는 동안 더욱 많은 미소지니가 사회에 만연해지며 페미니즘의 갈 길이 멀어지게 된다. (나는 권리를 위한 투쟁은 긍정하지만 그것은 평등 개념 아래에서 주장되어야 한다.)

또한 실존주의를 잊으면 페미니즘은, (포스트모더니즘 지식인들의 몹쓸 버릇처럼) 모든 문제를 권력 균형의 시각에서 파악하려고 하게 된다.
예컨대 "여의사"나, "여군" 따위의 단어를 보라.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그 단어가 성차별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들은 이것을 권력 균형의 시각에서 파악한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남성이 권력을 독점하기 떄문에 '의료 산업에 종사하는 어떤 한 사람'을 설명할 때 아직까지 성별이 판별되지 않은 '그 중성적인 사람'을, 사회가 남성으로 1차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 사람이 여성일 경우를 2차적이고 특수적인 경우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여의사나 여군 같은 단어의 배경에는 사회의 권력 불균형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권력 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직업의 성별비에 대한 통계적 인식의 문제다. 만약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 "남자 간호사"라는 단어를 쓰는 모든 사회는 여성을 1차적 성별로 인식하는 여성 권력 우월의 사회란 말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이런 표현들은 해당 직업군에 종사하는 성별의 불균등 때문에 생기는 것들이다. 바로 그렇다. 진정한 문제는 해당 직업군에 종사하는 성별의 불균등 그 자체다.
페미니즘은 여성 의사가 남성 의사에 비해 숫자가 적다는 사회 현상 자체를 문제시하라. 그것이야 말로 진짜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며 실존주의 인간인 우리가 파괴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대상이다. 여성의 의대 진출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지원하는 사업을 벌여라. 여의사 같은 말장난 따위를 문제로 설정하는 순간 우리는 정말로 힘을 쏟아야 하는 지점을 놓치고 페미니즘의 갈 길은 더욱 멀어진다.
그나마 여의사 같은 단어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시비를 거는 경우는 차라리 양호한 것이다. 예컨대, 설현이 안중근 의사를 긴또깡이라고 불러서 욕먹고 사과하게 된 이유를 '설현이 남자가 아닌 여자이기 때문에'에서 찾으려는 시도들은 대개 많은 시행착오와 함께 실패하고 만다. 그럼 박재범이 korean is gay. 라는 문장 하나를 몇 년 전에 자신의 개인 페이지에 썼던 이유로 2pm에서 퇴출당하고 한국에서 쫓겨난 것은 박재범이 남성이기 때문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또는 남성에게 더 엄격한 수준을 요구하는 가치들은 많이 있으나 어떤 사회현상을 평할 때 그것이 정말로 젠더 권력 불균형 때문에 빚어진 것인지는 잘 따져보아야 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적을 설정할 때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 언론들, 진중권을 비롯한 진보적 지식인들은 평론가적 자세에서 팔짱 끼고 독선적인 말투로 훈계질하는, 그 역겨운 방관자의 의자에서 당장 내려오길 바란다. 당신들은 평론가의 위치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특히 정의당은 문제 해결을 위해 발로 뛰어야 하는 '정당'이다. 그들이 메갈리아를 편들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평론가적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멀리 떨어져서 남성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사회를 관찰하고 있으면 메갈리아의 발생이 불쾌하지 않다. "그래, 많이 당했으니 화낼 때도 됐지." 하고 그 놀라운 혐오 발산에 박수를 쳐줄 수 있다는 것이다. 거친 비유가 되겠으나 마치 일진에게 괴롭힘 당하던 모범생이 일진을 두들겨 패는 것을 옆에서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과 같다. 나는 이번 모든 논란들에서 그들이 가장 실망스러웠다. 그들의 행동에 역겨워서 구토감이 느껴진다. 그 동안 여성 인권을 위해 정의당이 도대체 무슨 투쟁을 거나하게 했는가. 진중권은 뭘 했나? 쥐뿔도 한 것 없는 것들이 이제와선 메갈리아가 남성을 공격하니 그 시류에 편승해서, "맞아 사실 너희들이 그 동안 너무 했어. 얘네가 이럴만도 해." 하면서 심판자적 입장에서 잘잘못을 가려주고 있는 셈이다. 어이가 없고 가소롭다.

정의당과 진보 언론들, 또는 진보 지식인들의 눈에 정말로 메갈리아가 하는 게 페미니즘으로 보인다면 왜 직접 페미니즘 안 하는가? 특히 정의당은 직접 행동해야 하는 정당 아닌가, 오피셜한 평론을 그렇게 써보시라. "한남충들 재기하라"고. 미러링임을 밝히면 되지 않는가? 그들이 그렇게 쓰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람직한 사회운동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위해 훨씬 더 깔끔하고 위력적인 운동들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방관자적 위치에서 평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메갈리아가 하는 일을 긍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운동을 직접 해보라고 하면 못 한다. 이는 거센 역풍이 두려워라기보다 그것이 사회운동이라 하기에 너무나 찌질하고 수준 낮은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 운동권 인사들이야 과거에 화염병을 들었던 이들도 많을 테니 인터넷에 한남이니 뭐니 하는 욕설 몇 줄 쓰는 게 어렵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그게 쪽팔려서 못한다. "여성혐오에 당한 많은 여성 일반이 할 만한 수준의 투쟁, 우리가 직접 할 만한 건 아니고. 흥미롭네." 정도로 평가했으리라. 그들은 고압적이고 독선적인, 관찰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 여성 혐오가 만연했던 사회에서 이런 역풍이 일어나는구나, 신기하네. 난 메갈리아의 마음이 이해가 돼. 얼마나 속상했으면 이러겠냐.. 불쌍하네, 그 동안 심하긴 했지, 꽤 조직적이네 애쓴다, 화이팅!' 하면서 말이다.


페미니즘은 실존주의다. 실존주의여야만 한다. 실존주의를 떠난 페미니즘은 본연의 뜻을 잃고 이익집단으로 전락한다. 이익집단의 정치적 싸움들은 승리하거나 패배할 수 있으나 사회를 진보시킬 수 없다. 그들의 결핍된 철학을 제시하고 방향타를 잡아야 할 이들이 정당과 언론과 지식인들이다. 사실 이 모든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자 죄인은 바로 그들이다. 일베가 온갖 여성혐오를 발산하는 것을 방치했던 언론. 제대로 된 페미니즘 기구를 창설하고 운영하지 못한 정당, 실존주의와 페미니즘을 제대로 알리고 가르치지 않았던 지식인들. 책임져야 할 그들이 남성 일반에게 죄를 덮어씌우고 고압적인 자세로 잘잘못을 가려주고 있으니 황당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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