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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페르몬 : 거짓말의 멸종
게시물ID : humorbest_13425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야설왕짐보
추천 : 63
조회수 : 3965회
댓글수 : 4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11/29 16:31:13
원본글 작성시간 : 2016/11/29 12: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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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몬~1.JPG
 
 
 
 
 
 
페르몬 : 거짓말의 멸종
 
한 일은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방문객과의 느닷없는 조우,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을 반가이 맞이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건넨 진심어린 인사와 선물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푸른별 지구에 사는 형제들이여. 저희는 센타우르스 성좌의 C612 항성에서 온 여행자들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 말이 잘 들리시는 지요. 이것은 저희가 당신들에게 드리는 우호의 선물입니다.”
 
지구 상공에 나타난 거대한 함선과 연녹색 빛줄기 아래 그들은 말했다. 지구의 모두가 들었고 언어의 경계는 무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들의 선물이었다.
 
완벽한 언어
 
이 곳 지구의 형제들은 서로 다른 언어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 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희의 선물이 마음에 드십니까? 이제 여러분은 마음껏 대화하실 수 있습니다. 언어의 장벽은 지금,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수만년 간 인류를 속박해온 의사소통의 한계, 그 거추장스러운 굴레가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학자들은 그들이 선물한 언어의 자유가 금전적으로 따질 수 없는 막대한 가치를 줄 거라 평가했다. 꼭 학자들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인류의 문화, 경제, 생활은 물론이고 전 분야의 발전을 이끌 것임은 자명해 보였다.
 
지구 대표 기문 반입니다. 어떤 원리로 그런 놀라운 일이 가능한거죠?”
페르몬입니다. 지구에선 곤충들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대화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페르몬은 단어가 아닌 진심을 전달합니다. 진심이 여러분을 소통하게 할 것이고, 여러분을 번영케 할 것입니다.”
진심이요? 설마 거짓말이 멸종되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하하핫 놀랍군요.”
진실입니다. 아직은 익숙치 않아 의사소통만이 가능하지만 지구인들도 곧 100%의 진심을 전달하는 완벽한 언어 페르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어떻게 그런 놀라운 일이... 당신들에 대해 느꼈던 우리의 우려가 기우였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누리세요. 오해와 거짓이 없는 세상. 그것이 저희 문명이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놀랍도록 기쁜 소식이었지만 한편으론 슬펐다. 처음 만날 때와 같이 이별 역시 갑작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저희는 조금 빨리 떠나지만 아쉬워 마세요. 저희는 선발대입니다. 더 큰 만남을 위한 인사와 선물을 전했을 뿐입니다. 곧 항성 C612의 더 많은 이들이 지구를 만나러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부디 안녕히!”
 
작별을 고한 그들의 함선은 곧 지구 상공에서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아쉬움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더 많은 기술을 배우지 못해 아쉬웠고 다시 찾을 그들이 이번엔 어떤 선물을 줄까 하는 기대가 그들의 빈 자리를 메웠다.
하지만 그런 감정에 매달려 있기엔 변화의 소용돌이가 너무 거셌다.
페르몬을 통한 언어의 통합은 순식간에 사회 전반의 대 변혁을 가져왔다.
여행, 무역, 정치, 사회, 문화 전 방위에 걸친 활발한 교류가 지구 전체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누구나 장애없이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세상, 학자들은 저마다 페르몬이 가져다 줄 유토피아에 대해 앞다퉈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견 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완벽한 언어, 페르몬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을 때 까지는 말이다.
 
당신 어제 대체 어딜 갔었던 거죠?”
그야 당연히 늦게까지 야근했지 뭐겠어!(그야 당연히 총무과 미스 김과 모텔에 갔지!)”
십일조는 주님을 믿는 자들의 신성한 의무이자 권리입니다.(십일조를 하십시오. 내 교회를 더 크게 지어야 합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 국민의 꿈이 이뤄지는 국가를 만들겠습니다.(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대통령이 되는 것은 저의 꿈입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배를 침몰시키라는 명령을 받아 수행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사악한 테러위협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군수업체들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전쟁은 수행 될 것입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던 우리의 세상이 아수라장이 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것이 페르몬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 사회에 썩은 환부가 너무 많았고 그것이 도려내어지는 치료의 과정이라 주장했다.
다소간의 마찰은 있었지만 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이기도 했다.
거짓은 나쁘다.
진실은 옳다.
그것은 인류의 태동과 함께 해온 진리였기 때문이었다.
 
사랑해... 그치만 오늘 니가 입은 옷 정말 형편 없어.”
장모님 안녕하세요. 오기 싫었지만 억지로 끌려 왔습니다. 용돈 드릴 생각하니 끔찍하군요. 먹고 살기도 힘든데 혹이라니요.”
이 제품엔 흡입시 인체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는 독성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저희는 그 점을 사전에 인지하였지만 이 정도의 후폭풍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법적인 배상을 진행할 겁니다. 어차피 우리가 얻은 이익에 비하면 푼 돈이니까요.”
리도카인은 프로포폴 투약시의 통증 완화를 위해 팔팔정과 비아그라는 원활한 성행위를 위해 구입하였습니다.”
전쟁의 이유였던 대량 살상용 화학 무기는 존재하지도 존재한 적도 없습니다. 그냥 자원이 탐이 났다고 해두죠.”
“3번의 대통령 1번의 총리 직을 수행하기 위해 정적을 암살했다는 루머는 모두 사실입니다. 불만을 가지려면 가지세요. 시체는 늘고, 달라질 건 없을테지만.”
배의 침몰을 지시한 것은 저입니다. 국가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조언을 받고 그렇게 지시 하였습니다.”
그것은 제 시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형기술이 놀랍도록 발전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만 해두죠.”
가축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요? 눈 째진 동양인이나 시꺼먼 검둥이나 이 시간에도 국경을 넘는 멕시칸들이나... 우리의 기득권을 수호합시다. 전쟁? 그게 두려우면 방구석에 주저앉아 TV나 보라고 하세요. 겁쟁이들! 응석받이들... 위대한 미국을 만듭시다!”

그 분은 자살하지 않았습니다. 
.
.
.

모두의 손에 횃불이 들렸고, 공개처형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일이 되었다.
완벽한 언어는 거짓을 목졸라 죽였다.
하지만 빈자리에 남은 것은 번영이 아닌 진심이란 이름의 추악한 욕망 뿐이었다.
 
입 함부로 놀리지마! 그 놈의 입 놀리다가 뒤진 인간이 어디 한 둘인 줄 알아?”
! 절대 아무 말도 하지마. 그래야 살아.”
 
모두가 입 다문 세상...
들려오는 것은 오직 옛 친구가 남기고 간 진심어린 인사 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푸른별 지구에 사는 형제들이여. 저희는 센타우르스 성좌의 C612 항성에서 온 여행자들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 말이 잘 들리시는 지요. 이것은 저희가 당신들에게 드리는 우호의 선물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긴급 방역대상 혹성으로 지정된 지구의 해충들이여. 우리는 센타우르스 성좌의 C612 항성에서 온 해충박멸 수행단입니다. 눈 앞에서 보니 끔찍하군요. 약효가 잘 받나요. 이것은 저희가 당신들을 박멸하기 위한 해충 퇴치제입니다.]
 
이 곳 지구의 형제들은 서로 다른 언어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 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희의 선물이 마음에 드십니까? 이제 여러분은 마음껏 대화하실 수 있습니다. 언어의 장벽은 지금, 무너졌습니다.”
[이 곳 지구의 해충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다툼을 거듭하는 사악한 존재라고 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희가 준비한 당신들의 파멸이. 이제 여러분은 멀지 않아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의 정화작업은 지금, 시작되었습니다.]
 
페르몬입니다. 지구에선 곤충들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대화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페르몬은 단어가 아닌 진심을 전달합니다. 진심이 여러분을 소통하게 할 것이고, 여러분을 번영케 할 것입니다.”
[해충제입니다. 지구에선 선량한 곤충들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제거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해충제는 물리적인 방식이 아닌 근본적인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진심이 여러분을 상처 입힐 것이고 여러 분을 멸망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진실입니다. 아직은 익숙치 않아 의사소통만이 가능하지만 지구인들은 곧 100%의 진심을 전달하는 완벽한 언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파멸입니다. 아직은 약효가 돌지 않아 느낄 수 없지만 해충들은 곧 100%의 확률로 스스로의 문명을 파괴하게 될 것입니다.]
 
누리세요. 오해와 거짓이 없는 세상. 그것이 저희 문명이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깨달아요. 당신들 스스로의 파괴적 성향을. 그것이 우리 문명이 지구를 괴롭히는 너희 해충들에게 주는 징벌입니다.]
 
저희는 조금 빨리 떠나지만 아쉬워 마세요.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위한 준비의 과정일 뿐입니다. 지구의 평화와 번영을 바랍니다. 부디 그때까지 안녕히
[지구를 죽여가는 너희들의 끔찍한 모습에 구역질이나 참을수가 없어. 지금은 떠나지만 2차 방역이 다시 이루어 질 거야. 지구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그러니 부디 좀... 죽어! 이 해충들아.]
 
옛 친구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왔지만,
세상은 이미 고요했다
약속은 지켜졌고, 완벽한 언어를 얻은 그들은 거짓말처럼 하나 둘 소멸됐다.
지구는 더 푸르고 아름다웠다.
 
<끝>
 
시국이 혼탁하고 정국이 어지럽습니다. 거짓말이 활개치고 진실이 사라졌습니다.
거짓이 사라진다면... 목졸라 죽은 거짓의 빈 자리엔 무엇이 남을까 하는 생각에서 써 보았습니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작게나마 희망을 드려야 하지만... 아직은 너무도 어둡고 추잡하기만 합니다.
다음에 글을 쓸 때는 부디 희망찬 글을 쓸 수 있는 대한 민국이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출처
http://blog.daum.net/ozthewond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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