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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옛 마을을 지나며
게시물ID : humorbest_13938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6
조회수 : 827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7/03/10 00:44:22
원본글 작성시간 : 2017/03/07 23:40:57
사진 출처 : https://ssheerans.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KOWx5RWoSY8




1.jpg

김남주옛 마을을 지나며

 

 

 

찬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2.jpg

안도현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3.jpg

이성부산길에서

 

 

 

이 길을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를 나는 안다

이렇게 길을 따라 나를 걷게 하는 그이들이

지금 조릿대발 눕히며 소리치는 바람이거나

이름 모를 풀꽃들 문득 나를 쳐다보는 수줍음으로 와서

내 가슴 벅차게 하는 까닭을 나는 안다

그러기에 짐승처럼 그이들 옛 내음이라도 맡고 싶어

나는 자꾸 집을 떠나고

그때마다 서울을 버리는 일에 신명나지 않았더냐

무엇에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도

힘이 다하여 비칠거리는 발걸음들도

무엇 하나씩 저마다 다져 놓고 사라진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나는 배웠다

그것이 부질없는 되풀이라 하더라도

그 부질없음 쌓이고 쌓여져서 마침내 길을 만들고

길 따라 그이들 따라 오르는 일

이리 힘들고 어려워도

왜 내가 지금 주저앉아서는 안 되는지를 나는 안다






4.png

이면우빵집

 

 

 

빵집은 쉽게 빵과 집으로 나뉠 수 있다

큰길가 유리창에 두 뼘 도화지 붙고 거기 초록 크레파스로

아저씨 아줌마 형 누나님

우리집 빵 사가세요

아빠 엄마 웃게요라고 씌여진 걸

붉은 신호등에 멈춰 선 버스 속에서 읽었다 그래서

그 빵집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과

집 걱정하는 아이가 함께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자세를 반듯이 고쳐 앉았다

못 만나 봤지만삐뚤빼뚤하지만

마음으로 꾹꾹 눌러 쓴 아이를 떠올리며







5.jpg

문정희알몸 노래

 

 

 

추운 겨울날에도

식지 않고 잘 도는 내 피만큼만

내가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내 살만큼만 내가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면

내 뼈만큼만 내가 곧고 단단한 사람이었으면

그러면 이제 아름다운 어른으로

저 살아 있는 대지에다 겸허히 돌려드릴 텐데

돌려드리기 전 한 번만 꿈에도 그리운

네 피와 살과 뼈가 만나서

지지지 온 땅이 으스러지는

필생의 사랑을 하고 말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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