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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끝내야 하는 연애 (약간 19)
게시물ID : humorbest_14696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몽시스(가입:2017-07-12 방문:34)
추천 : 37
조회수 : 12740회
댓글수 : 3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7/07/18 05:52:19
원본글 작성시간 : 2017/07/17 01: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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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팅만 하다가 가입하고 글쓰기는 처음이네요. 글이 길어질 것 같아 미리 죄송합니다. 

딱히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글은 아니고 그저 현재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을 곳이 없어서 왔습니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저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라도 내 상황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일차원적인 마음에 글을 써 봅니다. 
조언이든 질타든 어떠한 리액션이나 코멘트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는 30대 초반, 남자친구는 30대 중반, 둘 다 평범한 월급쟁이들입니다. 만난지 1년쯤 되는 달달하고 괜찮은 연애중이구요. 

자세히 다 설명은 못 하지만.. 곧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지게 됩니다. 지금은 너무 가까이에 있어요. 
과거에도 잠시지만 조금 떨어져 있어 보았고, 특히 둘 다 전 애인과 그리 좋지 않았던 장거리 경험도 있기에 얼마나 힘들지 예상이 됩니다. 이에 대해 대화도 해 보았고, 연애 초기에 쿨함을 무장한 저희들은 '그 때가 되면 헤어져야지 뭐..' 이런 태도를 취했습니다. 

익명 게시판이기에 솔직하게 털어 놓을게요. 저희 연애의 시작은 거의 '엔조이' 하는 관계 같았습니다. 책임감 없는 그저 즐기는 관계요. 
아주 많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나이기에 보통 주변을 보면 미래를 생각하고 누군가를 만나시더군요. 그렇지만 저희는 순간 불붙은 감정을 인정함과 동시에 미래까지는 어렵겠다는 판단 또한 함께 내렸습니다. 쉽게 말해 지금 당장 너무나 매력적인 상대지만 결혼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 이면에는 결혼과 출산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저의 철학과, 여러 맞지 않는 환경적 요소들이 있었습니다(서로 다른 습관, 가정환경, 종교 등).

만남을 고민했지만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과 화학반응을 결국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관계를 시작함과 동시에 서로를 어떤 제도에 얽매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로 합의 아닌 합의를 봤습니다. 아, 물론 완전 프리한 관계는 아니고 만나는 동안 만큼은 서로에게 충실하기로 했습니다. 포인트는 '결혼'이라는 목적지가 없었고, 서로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이 조금 덜한 상태로 현재를 즐기자는 마인드였죠. 미래에 장거리가 될거라는 사실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영화 보고 맛집 다니는 데이트도 하고, 짧은 여행도 다니고, 떨어져 있을 때는 꾸준히 연락도 하며 남들처럼 평범한 연애를 해오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속궁합도 말도 안되게 잘 맞습니다. 성욕의 정도라고 해야 할까요, 그 욕구도 비등해서 한 번도 한 명이 원할 때 다른 한 명이 거부하거나 꺼려한 적도 없습니다. 이 부분만 보면 놓치기 정말 아까운 상대입니다. 

다만 보통의 연인들과 조금 다른 점들이 있다면 각자 차타고 만나서 각자 차타고 헤어지는 것, 친구들과 함께 만나지 않는 것,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다는 것, 따로 선물하지 않는 것, 그리고 칼같은 더치페이입니다(이에 대한 대화는 없었지만 서로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 같아요). 둘 다 수입활동을 하고 있기에 되도록이면 철저히 각자 돈을 썼고 이에 대해 불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상황을 잘 모르는 남들이 왜그렇게 남남처럼 칼같이 더치페이를 하느냐고 한마디 할 정도였지만요. 

종종 대화를 해 보면 제 남친은 결혼이라는 것은 언젠가 하고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더라고요. 아기들도 너무 좋아하구요. 다만 그 결혼상대가 저였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한 번도 한적이 없습니다. 일단 제가 결혼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아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걸 알아서일까요. 아니면 정말 저를 결혼상대로는 생각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지금이야 너무 좋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남자친구의 결혼적령기인 나이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결혼생각이 없는 저는 절대로 이 사람을 결혼 못하고 연애만 하게 잡아 둘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어떻게 해야 데미지를 조금이라도 줄이면서 어른스럽게 안녕을 고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합니다. 헤어지는 타이밍은 마침 장거리가 다가오고 있으니 이 때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걷잡을 수 없이 정은 깊어지고 다른 것 보다도 마초같던 상남자가 요즘들어 너무 다정해져서 혼란스럽습니다. 분명 시작할 때부터 둘 다 헤어질 때를 예상하고 있었고, 장거리는 자신 없다던 남자가 마치 앞으로 오래도록 만날 사람처럼 저에게 너무 과한 애정을 보여줍니다. 말로 하는 표현은 원체 잘 못 하지만 행동과 몸짓, 말투로 느껴져요. 저를 너무 예뻐해주고 생각해 주는 것이 느껴질 때마다 요즘은 괴롭기까지 합니다. 일부러 기대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 자꾸 기대하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요. 최근에는 자꾸 장거리 이후에 올 시간들에 대한 말을 합니다. '어떤 시기 이후에 뭘 같이하자..' 이런 식으로요.

저 또한 저도 모르게 남자친구를 더 챙겨주고 애정어린 말투로 애교를 부리고 있더라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해진 감정이 무르익어서 이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두려워요. 

압니다. 이게 사치스러운 고민으로 보이실 수도 있겠죠. 남자친구가 잘해주는게 왜 고민이냐 하시겠죠. 서로 좋아하는데 무슨 걱정을 하냐 하시겠죠.

그런데요 헤어질 데드라인을 정해 놓고 보니 이게 너무 큰 고민입니다. 이기적인거 아는데 저는 제가 상처받기 싫어서 100을 줄 수 있는 사랑을 60~70 정도만 주고 있었거든요. 결혼 직전까지 갔던 전 애인과 말도 안되게 헤어진 경험 이후로 갖게된 방어기제인 것 같아요. 정말 죽을만큼 사랑하고 이 사람과 내 죽을 날까지 함께하고 싶다 - 이런 사람이 아니라면 저는 100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헤어지게 된다면 그 고통스러웠던 경험, 다시는 겪고 싶지 않거든요. 지금 상황에서는 만약에라도 남자친구가 저와 미래를 계획하고 싶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다면 아마도 저는 마음이 아프겠지만 관계를 정리할 것 같아요. 

지금 남자친구는 같이 노는 것도 좋고 자는 것도 좋은데 그 이상의 어떤 것(약혼과 결혼)을 상상하게 되는 사람은 아니어서.. 제 머릿속 생각으로는 절대 제 마음을 전부 주고 싶지 않습니다. 여기서 저를 비난하시는 분들도 물론 계시겠죠. 마음이 100이 아닌데 왜 연애를 하느냐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저는 제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서 이 연애 시작했습니다. 시작 당시에 남자친구도 저에게 100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했고, 저도 그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초적으로 끌리는 감정에 굴복해서 일단 당장 하고 싶은대로 해 보자는 결정을 내린 겁니다. 그리고 끝낼 때가 오면 깔끔히 끝내자고. 그렇기에 이제 와서 저도 제 남자친구도 서로가 소홀해 진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배신감을 느낄 이유는 없어요. 언제라도 한 쪽의 마음이 식거나 끝난다면 슬프고 서운하겠지만 쿨하게 보내줘야지 어쩌겠습니까. 미래를 약속한 사이도 아닌데요. 

문제는 제 마음이 자꾸 100을 주고싶어한다는 겁니다. 남자친구도 비슷한 것 같아요. 바쁜 와중에 저에게 전보다는 확실히 더 큰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어요. 점점 저의 보호자처럼 행동을 하고 제 일이 자기의 일인 마냥 덤벼들어서 해결을 해 주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저의 존재를 숨기더니 지금은 그리 친하지 않은 사이인데도 저의 존재를 알리더군요. 

저는 아직 결혼할 자신도 없고 아이를 낳을 자신도 없습니다(나중에야 바뀔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냥 싫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남자친구와(물론 상대가 저였으면 하는 말은 한 적 없음) 기약없는 연애를 언제까지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꼭 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당장 코앞에 장거리라는 장애물이 닥쳐있습니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고 만지고 싶을 때 만질 수 없는 장거리 연애는 정말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옛 악몽이 떠오를 것도 같고 제가 미쳐버릴 것 같아서요. 

이제와서 보면 그냥 정말 '엔조이'만 했어야 하나 생각도 드네요.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솔직히 남자로 여자로 끌렸던 건데.. 육체적인 관계만 맺고 욕망만 해소하는, 미드에서나 보던 그런 관계만 유지했어야 했나봅니다. 언젠가는 놓아야 하는 사람인걸 알았으면 그냥 적당히 60정도만 마음 쓰고 서서히 정리 했어야 했는데 괜히 데이트를 하고, 괜히 밤새 전화통화를 하고, 서로의 인생에 너무 많은 관여를 했나봅니다. 

마음이 복잡합니다. 
이런 제 기분과 마음에 대해 어른스럽게 마주 앉아 어른스러운 대화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네요. 이러다가 어영부영 자연스레 장거리 커플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는거 너무 싫어요. 언제 어떻게 연락을 얼마나 하고.. 아무리 대비책을 탄탄히 세워도 저는 정말정말 장거리가 힘들었고 결국 악몽같은 기억만 남았습니다.
이와 동시에 드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은... 그럼에도 이 사람이 인간적으로 또 남자로서 너무나 끌린다는 겁니다. 아무것도 생각 하지 않고 그냥 현재를 즐기고도 싶어요. 당장 만나면 좋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면 칼같이 인연을 끊어버리는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이 남자는 칼같이 끊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만약 헤어지더라도 나중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으면 단 몇 번이라도 같이 맛있는거 먹고 싶고 자고 싶고 그래요. '나한테 왜이렇게 잘해주고 다정하게 해주지?' 의아해 하다가도 '조금만 더 많이 그래줬으면 좋겠다' 싶고... 이제는 말로도 표현을 듣고 싶고... 그러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아니지.. 이제 곧 헤어져야지. 다 의미 없다.' 이런 생각도 하고요. 차라리 남자친구가 먼저 뭐든 말을 먼저 꺼내줬으면 좋겠는데 과연 제가 무슨 말을 듣고 싶은건지도 모르겠어요.

제 안의 여러 생각들이 서로 부딪치고 싸우고 엉망진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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