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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가지고 남편과 했던 이야기들이
게시물ID : humorbest_15044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agetsu
추천 : 142
조회수 : 5647회
댓글수 : 19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7/10/08 17:06:53
원본글 작성시간 : 2017/10/08 16: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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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사실을 알고 나누었던 이야기들, 나는 남자 아이였음 좋겠다. 난 여자애도 좋은데 왜. 티비는 벽에 걸어야겠네. 그러네. 내가 욕을 하면 배에 대고 귀막아 하던 남편의 말....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이 그렇게나 행복했던 기억이 될줄을 몰랐다. 

평소 아이를 싫어하고 지저분한 집을 싫어하며 혼자있는 시간을 즐기고 술을 좋아하는 나였고 남편은 모든걸 이해해 주고 받아주었다. 모자란것도 불만도 없었다.

테스터기에 두줄이 떴을때 나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지만 남편은 기뻐했고, 병원에서 아기 심장소리를 듣고도 나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남편은 너무 좋아했는데.

명절 연휴 내내 배가 싸르르 아프고 친정에 갔을때 하혈하고 나서도 아 뭐 인터넷 찾아보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대요 하며 당장 응급실이라도 가보자는 남편을 내일 가자고 별 일 아니라고 말렸는데.

임시공휴일이라 진료하는 가까운 부인과 전문 병원을 찾아서 갈때까지만 해도 남편에게 농담도 던지고 그랬는데.

왠지 느낌이 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괜찮겠거니. 으레 있는 일이겠거니 했는데.

피가 많이 나온다고. 심장소리가 안난다고. 11주면 이거보단 커야 하는데 8주 크기라고. 아이가 8주에 심정지를 한것 같다고했다.

현실감이 없는 와중에 옷을 갈아입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왔다. 나는 이런걸로 우는 사람이 아닌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오열을 하고 있었다.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 임신 초기에 이런 경우는 높은 확률로 염색체 이상인 경우가 많다. 염색체는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렇게 되는데 이게 이러이렇게 되면 이러이렇게 되어서 몇번 염색체가 이렇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자력으로 살 수가 없어서 유산되거나 태어나도 오래 살 수가 없고 우리나라에서는 키우기도 힘들다. 종이에 막 그리면서 설명을 하셨다. 그런 설명을 듣고 있으니 어줍잖은 위로의 말보다 더 위로가 되어서 눈물이 그쳐졌다. -옆에서 내 어깨를 잡아주던 남편은 의사한테 화가났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선생님 스타일이 호불호가 심한 스타일일것 같았다- 그러면서 울고불고 한 산모들 나중에 나한테 다시 와서 둘째까지 잘 낳은 사람도 많다고 너무 아까워하지 말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너무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날은 언제 잡아야 하죠. 메인 목소리로 물어보니 날을 잡을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한다고 했다. 시간은 10분도 안걸린단다. 그러면서 수술 후유증 설명을 했다. 자궁 천공이 생길수도 있고 협착이 될 수도 있고 태아의 피가 산모에게 흡수?되면 높은 확률로 사망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내가 의사 하면서 10년쯤 전인가 딱 한번 봤다고... 하면서 수술 동의서에 중절수술이라고 적으셨다. 사인을 하고 나가서 또 울고....그쳤다 시덥잖은 농담을 하고, 그 와중에 다른 산모들이 앉아있고 왔다갔다 하고....그걸 보니 또 눈물이 나고...간호사가휴지 가져다 주시느라 애쓰셨다.

수납할때 국민행복카드인가... 그걸로 수납되냐고 물어보니 창구 직원이 된다고 하셨다. 처음으로 결재하는게 소파수술이라니... 피식 웃음이 났다. 좋네. 나라에서 이런것도 지원해주고. 경과 보러 올때도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몸조리용 한약도 지을수 있다고...

주사 맞고 검사하고 수술실의 수술대에 오르면서 대기하고 있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제모를 안해서... 죄송해요 따위의 멍청한 소리를 하면서 울고... 너무 울면 마취했을때 숨 못쉰다고 이제 울면 안된다고 하셔서 누워있던 자세를 잠시 일으켰다. 아래를 보니 버킷이 하나 놓여있다. 아 아이를 꺼내서 저기 버리는구나...

수술이 끝나고 링겔 맞고 일어나니 몸이 가벼워서 허탈했다. 아프지도 않았다. 어떤 산모와 그 친정엄마인듯한 사람이 신생아를 안고 집에 돌아가려고 탄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차를 찾으러 내려갔다. 그 와중에 남편에게 주차도장은 찍었는지 주차비 더 내야 되는지 같은 멍청한 질문을 또 했다.

근처에 종종 가는 빵집에 들르고 싶어서 들어가서 거의 울면서 빵과 케익을 사가지고 집으로 갔다. 배가 고파서 남은 명절 나물을 비벼 먹고 그동안 못 마신 커피 한잔을 빵이랑 맛있게 먹었다. 케익은 도저히 먹을래도 먹을수가 없었다.

나는 이런걸 잘 극복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티비 보며 웃다가도 울고 오유 하다가도 울고. 

임신 사실을 알고 술도 못먹고 커피도 못마신다고, 원래 붙는 옷을 잘 입는데 이젠 입을 것도 없다고, 이제 행복한 시절 다 갔다고, 당신도 편하고 좋은날 다 갔다고, 배도 나오고 너무 피곤하고 속도 안좋아서 짜증난다며 아 애는 가지고 싶지 않았는데, 둘이서 조용하게 잘 살고 싶었는데, 무리하지 말라고 하면 이정도도 못 버틸 애면 생기지도 않는다고,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는다고 했던 내 말들이 다시 나한테 돌아와서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남편과 나누었던, 그 때는 몰랐던 소소한 대화들이 이제서야 너무너무 행복한 순간이었구나 싶어서 또 고통스럽다.

아직 낳아보진 않았지만 왜 아이를 가지면 행복한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이유의 1%정도는 알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알게 되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제 3일짼데 이쯤 되면 좀 안 울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눈물이 좀 안나야 어머님과 친정엄니와도 통화를 할텐데. 결혼 6년차에 처음 임신이라 너무 좋아하셨는데... 도저히 안 울고는 통화가 안될 것 같아서 오는 전화는 남편이 다 받아줬다. 내가 이래서 더더욱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남편이 안쓰럽고 미안하다. 

좀 쉬고 한참 쉬었던 운동이나 시작해야겠다. 근데 평소대로 돌아가는 것 뿐인데 평소처럼 행복할지가 걱정이다. 너무 좋아하던 남편 얼굴이 자꾸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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