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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작가가 판타지 소설을 쓴다면? :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게시물ID : humorbest_15084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hinejade
추천 : 26
조회수 : 3135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7/10/18 17:32:18
원본글 작성시간 : 2017/10/14 13: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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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작가가 판타지 소설을 쓴다면? :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0009458&memberNo=4226828
노벨문학상 가즈오 이시구로.jpg
 
서점가에 불고 있는 가즈오 이시구로 열풍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를 향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들이 인기를 끄는 건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올해는 유독 더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뉴스는 물론이고, 그의 작품들을 함께 읽으려는 독서 모임들도 SNS를 중심으로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예년에 비하여 올해 더 노벨상 작가와 작품에 대한 환호가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오랜만에 순수문학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요인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작년 저널리스트에 가까웠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 이어, 작년엔 대중음악가인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요. 정통 순문학에 매진했던 작가들이 지나치게 노벨문학상에서 소외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올 한 해 우리나라에서도 다소 현실참여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소설이 인기가 많은 측면이 있었는데요. 그런 분위기에서 인간과 세계를 근본적으로 조망하는 '다소 무거운' 작품들은 베스트셀러에서 찾기 무척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문학시장의 흐름에서 노벨문학상이 하나의 전환점이 된 건 아니었을까요? 더욱이 가즈오 이시구로가 (물론 어릴 적 영국으로 이주한 영문학 작가이지만) 일본 태생이며, 한국 독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익숙한 일본 문학의 전통을 일정하게 계승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파묻힌 거인』, 가즈오의 세계를 압축한 한 권의 책

지난 일주일 간의 노벨문학상 열풍 속에서, 가즈오 이시구로가 2015년에 펴낸 마지막 장편소설인 『파묻힌 거인』에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는 1982년 데뷔작 『창백한 언덕 풍경』을 시작으로, 35년간 7편의 장편과 1편의 단편모음집을 발표했습니다. 소설을 쓰는 틈틈이 영화와 드라마 각본을 작업한 것을 고려한다 치더라도 아주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있죠. 『파묻힌 거인』도 그의 전작 이후 무려 10년만에 쓴 신작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내 목에 칼 끝을 겨누며 이시구로 소설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파묻힌 거인』을 고르겠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저자인 데이비드 미첼은 이런 '과격한' 찬사를 남기기도 했는데요. 이 말은 『파묻힌 거인』에 이시구로가 천착했던 세계관과 인간관이 가장 원숙하게 녹아있다는 시각으로 읽힙니다. 비단 노벨문학상이란 휘황이 아니더라도, 『파묻힌 거인』은 놀라운 작품입니다. "아름다운 동화 같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라는 <더 타임스>의 평가가 작품을 한 마디로 설명해 줍니다.

고대 잉글랜드의 브리튼 섬, 역사와 전설이 아직 뚜렷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은 시기에 브리튼족과 색슨족은 거대한 전쟁과 학살을 벌입니다. 『파묻힌 거인』은 그 살육과 전쟁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말살하는 제노사이드를 겪은 후 황량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 소설이 보스니아와 르완대의 대학살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기도 합니다.

『파묻힌 거인』의 배경은 그 집단대학살을 겪은 이후에 브리튼족과 색슨족이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학살의 기억이 생생하지만, 아무도 그 학살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묘한 세계입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되지 않았다’는 역설이 지배하는 시공간이죠. 먼 시간이 지난 후, 당시 학살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 했던 액슬이라는 노인과 그의 아내 비어트리스는 다시금 그 기억을 헤집습니다. 이 소설의 서사를 완성시키는 것은 ‘집단의 기억’이라는 소재와 절묘하게 맞물린 ‘두 노부부의 사랑'입니다.


노벨문학상 작가가 판타지 소설을 쓴다면?
  
아서 왕의 전설은 우리에게도 익숙합니다. 명검 엑스컬리버와 성배를 찾기 위한 13인의 원탁의 기사 등등은 지금도 동화로 널리 읽히는 이야기입니다. 아서 왕은 고대 브리튼을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왕인데, 중세 시대의 유럽에선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유명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서 왕은 5~6세기경 영국 켈트족의 수장으로 브리튼 섬을 침략한 앵글로색슨족을 무찔렀던 영웅 중 한 사람이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실존 인물은 아닙니다.) 켈트족 입장에선 영웅이었겠지만, 앵글로색슨족 입장에선 학살자에 가까운 이름이었겠죠.

맨부커상에 더해 이번엔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쥔 '순수문학' 작가가 아서 왕의 전설을 차용해서 판타지 소설을 썼다면, 과연 놀랄 만한 일일 겁니다. 어느 작가라도 쉬운 도전은 아니었을 것은 분명한데요. 『파묻힌 거인』은 바로 이 아서 왕의 전설을 직접적으로 소설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심지어는 전설 속 그대로 용과 괴물, 도깨비들과 마술이 주요한 캐릭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판타지 소설'입니다!

영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알렉스 프레스톤은 영국 <가디언>지에 이 책의 서평을 썼는데요. 그는 『파묻힌 거인』에 대해 "<왕좌의 게임>에 양심이 더해진 소설, 기억해야 하는 의무와 잊으려는 욕망에 관한, 아름답고 심금을 울리는 책"(The Buried Giant is Game of Thrones with a conscience, a beautiful, heartbreaking book about the duty to remember and the urge to forget)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양심적인 <왕좌의 게임>이라니, 꽤나 흥미로운 표현이죠?

드라마의 재미에 취하여, 철왕좌를 위해 웨스터로스에 뿌려진 그 어마어마한 피를 우리는 쉽게 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드라마와 현실은 자주 서글프게 닮아 있곤 하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모티브까지

『파묻힌 거인』에는 아서왕의 전설뿐만 아니라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 죽은 이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그리스 신화의 뱃사공 카론의 모티브도 등장합니다. 액슬과 비어트리스가 이 늙은 뱃사공과 만들어내는 '러브 스토리'는 처연하고, 비극적이며,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 작품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나가는 반려 관계의 본질에 관하여 절박하게 매달립니다. 작가 자신이 노벨상 수상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그 덕을 부인에게 돌리며, "아내의 가사 전담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까지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진중하고 성찰적인 작가의 성품이 물씬 느껴지는 에피소드입니다. 그 성품은 소설의 행간에도 깊이 배어있습니다.

아서왕의 전설에 암용과 도깨비, 카론 신화가 등장하고, 집단학살을 다루면서도 부부 간의 러브스토리가 얽혀 있다니…. 아직 작품을 읽지 않은 분이라면 어리둥절 불신의 눈초리를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즈오 이시구로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이 모든 모티브들을 하나로 연결합니다. 『파묻힌 거인』을 읽으면 "(가즈오 이시구로는) 위대한 정서적 힘이 담긴 소설을 통해, 세계와 맞닿은 인간의 환상 아래에 있는 심연을 드러냈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지명 이유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파묻힌 거인』은 해피엔딩이 아니지만, 가즈오 이시구로는 작은 희망의 씨앗을 남겨두었습니다. 백귀와 용들이 물러간 <왕좌의 게임> 속 세상에서도, 칠왕국의 주민들은 제각기 서로에 대한 분노와 상처의 그림자를 떠안고 살아나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천년의 평화’를 향한 우리들의 염원은 드라마나 현실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평화를 염원하는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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