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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국회프락치 사건 수사담당이던 극우반공검사 오제도의 증언.jpg
게시물ID : humorbest_15252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esert_Fox
추천 : 29
조회수 : 2425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7/11/23 15:55:12
원본글 작성시간 : 2017/11/19 12:22:08
1511061188146.jpg

이 국회프락치 사건 담당 수사했던 사상검사로 악명높은 그 오제도의 입으로 '증거는 없다'는 실토 나옴.(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이 사건에 대한 진위를 알기 위해 당시 수사했던 사상검사 오제도씨를 직접 찾아가 증언청취했던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국회프락치 사건은 오늘날도 재심해서 사법부가 바로잡았다는 소리 들어보지 못했어요...(...)

 

이런 조작사건이 여전히 복권되지 못한 현실..

 

극우세력들은 이 사건이 '실존하는 사건'인거 마냥 여기고있다는것..(..)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그들이 '정재한이라는 여인이 이 사건의 핵심임에도 법정에 단 한차례조차 증인조차도 왜 못나왔는가?'에 대해 제대로 입장 못내놓고 논리가 발릴때마다 '히든카드'로 써먹는 소리 가운데 하나가 북한측 자료를 근거로 듭니다. 그 북한측자료로 들이내미는것이 '1997년 북한 로동신문에 성시백이라는 북한간첩이 제헌국회의원들 포섭했다고 북한에서 대서특필로 썻으니 실체가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죠. 이거 관련해서 나름 관심있게 스크랩해서 국립중앙도서관 5층 북한자료실에 직접가서 그 '문제의 로동신문'기사 한번 쭉 찾아보고 실제 교차검증하면서 찾아봤는데 사실관계 자체가 틀렸다는것을 확인했어요... 

 

국회프락치 사건은 '남로당이 포섭했다'고 당시 검사측에서 공소장 썻는데, 그 문제의 성시백이라는 인물은 북로당쪽 사람이었다는것, 또, 대검찰청에서 발간한 '좌익사건실록'이라는 책자에서도 성시백이 이 국회프락치 사건에 관여했다는 기록 어디에도 없습니다...(성시백이 잡혀들어간것은 1950년 5.30총선때 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공작원으로 개입한 혐의였어요) 그리고 성시백이 검거당한것이 '미제 고용간첩 박헌영의 수하 안영달과 홍민표(양한모로 개명)의 밀고로 성시백이 붙잡혔다'고 기록되있어 북한측 자료는 사실관계조차 틀리는 소설에 가까운 수준이라는것.. (안영달과 홍민표-후에 '양한모'로 개명-는 이미 1948년에 남로당에서 전향하고 서울시경 정보과쪽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박헌영의 부하'로 미제 고용간첩이라고 북한측에서 떠드는건 말이 안맞는 얘기..)

 

다시 강조하지만, 정작 이 사건 담당 수사 검사였던 그 유명한 오제도씨는 '증거 없다'고 실토함. 단지 '그 당시 남로당이 아니면 주장할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헌국회의원 소장파 10여명 의원들 전부 빨갱이로 몰아버림.ㄷㄷㄷ

 

연루된 제헌국회의원 소장파 10여명 전부가 반민특위 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이끌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1949년 6월부터 시작된 반민특위 습격사건-국회프락치 사건- 김구 암살. 위 연쇄적인 사건들은 각각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친일경찰 세력들의 공작정치 반격'으로 움직인 한묶음 패키지 세트 작품이라는것. 특히 반민특위를 때려부수기 위한 목적이라는데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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