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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러브크래프트
게시물ID : humorbest_15265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2222
추천 : 20
조회수 : 1118회
댓글수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7/11/26 19:52:54
원본글 작성시간 : 2017/11/23 21:45:03
러브크래프트 책은 읽지 않아도 읽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런저런 독서 모임을 했는데,  할 때 마다 앨런 포 단편은 빼놓지 않았죠. 검은 고양이만큼 토론하기 좋은 단편도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모인 사람중 한 명은 포와 빗대어 러브크래프트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공감은 안되었지만. 읽어보려다가  접점이 안생겨서 접어뒀습니다. 하기사 러브크래프트와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 기회에 읽다보니 접점이 아주 많네요. 오해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호감이 생기는 순간-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명의 이야기가 나올 때 쯤인데-그 호감이 이토 준지의 만화에서 느끼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인공이 흐에에엑 놀라고, 비린내나는 네 발 달린 물고기 떼가 뛰어 다니고 와장창창. 이말년의 스토리텔링도 비슷하지요. 호기심이 있고, 갈등을 쌓아나가는 서사일까 싶을 때 청와대로 간다는 식의 깽판 놓기. 사람들은 심지어 그 다음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도 않아요. 그런 스토리텔링의 원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전에는 데우스엑스마키나처럼 깔끔하게 떡밥을 회수하고, 질서를 정리하는 정리벽있는 플롯만 있었지,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는 식의 플롯은 없었잖아요.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은 러브크래프트적이죠. 클라이맥스로 달려가다 사정하고 뚝 끝나버려서 현자 모드로 적는 신랄한 리얼리티. 대개의 공포는 러브크래프트적으로 다가옵니다. 기승전결로 이루어지는 공포가 아니라. 어떤 사전 신호도 없어요.

포털의 뉴스 사회면을 보면 명확하죠. 온 가족이 화목하게 단풍구경 가는 길. 중앙선 넘어온 차로 인해 사망.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가장이 생애 전환기 검진을 받아보니 대장암 말기. 승승장구하던 검사가  덤태기 쓰고 화장실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일상의 안온함은 현실 세계에서 너무나 위태롭죠. 믿었던 배우자가 바람피고 있을수도, 다정한 애인이 술 취해 폭력을 휘두른다던가… 

차분하게 위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공포가 아니죠.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시련이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새 다가오는 것. 더 공포스러운 것은 경악하는 나를 내려보는 시선입니다.  타인의 불행은 카타르시스가 되어 씹고 맛보고 즐기는 최음제가 되죠. TV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은 다양한 곤경에 처해있는데… 백한 명 중에서 뽑혀야 한다던가, 한쪽 뺨에 점 찍힌 여자와 재혼한다던가, 복불복에 지면 굶어야 한다던가. 그들의 고난의 정도가 크고, 바깥 날씨가 춥고, 이불 안이 따뜻하고, 전기 장판 위에서 귤들이 노골노골하게 데워지고, 유머러스한 연인이 바짝 붙어서 킥킥거릴 때 묘한 행복감이 커진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러나… 남의 불행을 감상하고 있기에는 인생이 만만치 않죠. 러브크래프트 씨는 이런 말을 해 주는 듯 해요. 오늘 하루 쿠크다스같은 너의 행복을 지켜봐라. 크툴루의 그늘 아래서. 와장창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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