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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낙원의 입장
게시물ID : humorbest_15360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햇살좋다
추천 : 13
조회수 : 3042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7/12/18 05:04:05
원본글 작성시간 : 2017/12/16 22: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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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찾지 않는 그곳은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어요.
바람만 불어도 무너질 것 같은 아주 초라하고 허름한 곳이었지요.
해가 지고 달이 차오르기를 반복했지만, 어둠은 떠날 줄을 몰랐어요.
해님의 빛도 달님의 빛도 닿지 않았지만 어느 날 환한 빛이 찾아왔어요.

화가 난 해님의 뙤약볕을 시원하게 보내줄 새콤한 물의 호숫가와
토라진 달님의 동장군을 따듯하게 달래줄 달콤한 음식의 벌판과
날카로운 바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줄 향기로운 동굴도 왔어요.


좋은 것만 있어서 모두 사이좋게 지냈어요.
나쁜 것이 없어서 서로 다투지 않았어요.
행복한 꿈 꾸러미가 한가득 있는 걸요.
언제나 즐거움만 가득하게 됐답니다.

나긋하게 울려 퍼지는 따듯한 목소리는 아이들을 품어줬다. 호기심 어린 눈들이 저마다 상상의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온기 어린 바람의 끝을 타고 먼저 내려온 아이가 물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별빛같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낙원은 어떻게 찾아가야 해요?"
"그건 할아버지도 잘 모르겠는걸? 너희의 눈빛을 보니 이곳인 것 같기도 하구나. 허허"
별빛 가득한 은하수에 파묻힌 할아버지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른 아이가 혜성같이 손을 번쩍 들며 애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알려주세요! 할아버지. 정말로 궁금하단 말이에요!"
할아버지는 잠시 고민하더니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낙원의 환한 빛은 마치 '두 개의 문'처럼 보인다더구나!"
아이들은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할아버지는 '낙원은 정말로 있단다.'라고 타이르며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점차 새로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단 한 명의 아이만을 제외하고.

나는 무수한 모험을 할아버지와 함께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시작하면 나의 모험도 시작됐다. 한번은 잠자리가 되었다. 무서운 참새를 피해 도망치고 투명한 날개를 자랑하듯 광활한 하늘 높이 날아다녔다. 한번은 개구리가 되었다. 건강한 피부를 자랑하면서 누구보다 높이 점프하고 누구보다 멋지게 다이빙했다. 한번은 아무도 가보지 못한 깊고 푸른 호수의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서 탐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날이 지렁이가 되어갔다. 살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가는 지렁이. 비가 오면 다시 땅 위로 올라오는 지렁이. 몇몇은 살아서 돌아가지만, 대부분은 비참하게 죽어버리는 지렁이. 죽음은 예측할 수 없지만, 필연적이고, 잔인함을 품은 땅은 점점 좋아지며, 그런 땅속에서 다시금 성장하는 지렁이. 성장하는 만큼 어떤 방법으로든 하늘에 다가가는 지렁이.
그렇게 내가 지렁이가 됐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절친했고, 존경했으며, 영원할 것 같았던. 모험의 동료는 과거가 되었다. 그를 애도하며 함께했던 많은 추억 속에 잠겼다. 추억의 끝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모험, 낙원을 찾았다. 그곳을 향하는 모험. 둘도 없는 동료를 위한 나만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길을 나섰다.

하늘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 눈물을 멈출 줄 몰랐다. 울다 지친 어린아이처럼 잠잠해지기도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대성통곡의 눈물을 흘리기를 반복했다. 나도 점점 지쳐만 갔다. 챙겨왔던 식량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더 이상의 탐험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모험을 포기해야 하나? 아냐 아직은 더 갈 수 있어.' 다양한 생각들이 격렬하게 부딪혔다. 쉽게 결정이 나지 않았다. 일단은 비부터 피하고 차분히 생각하기로 했다.
정처 없이 걸었다. 어디가 길인지 알 수 없었다. 비를 피할 곳을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빛나는 불빛을 발견했다. 머릿속에는 쉴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자리 잡았다.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무거워진 발걸음이었지만 마지막 힘을 쥐어짜는 듯 열심히 움직였다. 정신은 점점 몽롱해졌다. 불빛에 다가설수록 묘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투명한 문을 통해 나오는 불빛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힘을 다해 밀어봤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위에 문을 열 수 있는 도구가 없는지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도구 대신 따듯한 바람이 불어오는 통로를 찾았다. 내가 들어갈 수 있을만한 크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온도와 습도도 적당했다. 밖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양질의 음식과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정신없이 허기진 배를 채우고 지친 몸을 달랬다.
몸이 편안해지자 아까 봤던 입구가 '두 개의 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낙원에 있다고 했었던 다른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한참을 찾아 헤맸지만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밖에 비해 좋은 환경이긴 하지만 낙원은 아닌 것 같았다. 이곳에서 충분히 쉬었다가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낙원을 찾는 모험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쓰하아아아아아아ㅡ
갑자기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도 비가 오는 건가? 놀란 마음에 하늘을 살펴보았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아래쪽을 살펴보니 안개가 차오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다시 주위를 살펴보려던 중에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그리고 애타게 찾았던 보물들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보물을 향해 나아갔다. 새콤한 음식, 달콤한 샘물, 향기로운 동굴. 모든 것이 다 있었다. 모두 사실이었다. 할아버지는 틀리지 않았다. 낙원은 바로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모험에 성공한 것이다!
후우우우우우웅, 파아앙!
갑작스러운 굉음이 내 몸을 강타했다. 정신이 몽롱해졌다. 눈앞이 흐릿하다. 온몸이 아프다. 한참을 아래로 떨어진 것 같았다. 이곳은 어디지?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어서 도망가야 한다. 입구는 어디에 있지? 내 다리는 왜 움직이지 않는 거야? 고민하는 사이 거대한 물체가 내 위로 엄습해왔다. 어서... 어서 이 지옥을 빠져나가야 한다.
후우우웅, 파앙!

지금 내리는 비만 아니라면 정말 최고의 날일 텐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설레는 첫 출근은 성공적이었다. 어제 이사한 자취방도 마음에 쏙 들었다. 이 가격으로 이런 방을 구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햇빛이 잘 들지 않는다고 했지만 거의 잠만 자게 될 터라 큰 상관이 없었다. 오늘의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따듯한 물에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를 마셔야지. 아, 따듯한 물이 천천히 나온다고 했던가? 이전에 살던 사람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따듯한 물이 나올 때까지 수도를 틀어두기로 했다. 얼마 뒤 따듯한 수증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웬 벌레가 얼굴 쪽으로 날아왔다. 손을 휘휘 젓다가 양손으로 벌레를 잡았다. 어? 잡은 줄 알았는데 손을 펴보니 벌레가 보이지 않는다. 멀리 가진 못했을 텐데... 두리번거리다 벌레를 찾았다. 바닥에 기절한 채로 떨어져 있었다. 깨어나기 전에 발로 가볍게 잡았다. 앗싸! 벌레도 쉽게 잡았고! 따듯한 물을 몸에 끼얹었다. 모든 피로가 가시는 것 같았다.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기분 좋은 노곤함이 퍼진다. 아! 이곳이 낙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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