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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일가친척 팔아서 베스트를 노려보는.SSul
게시물ID : humorbest_15632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냥노동자
추천 : 112
조회수 : 9579회
댓글수 : 37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8/07/26 18:08:54
원본글 작성시간 : 2018/07/26 17:18:34
 
 
길드 단톡방에서 종의기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고
같은 길드원 알바문제로 시작해 일가친척 이야기를 잠깐 하던 나는
이 소재라면 베스트를 노려볼 만 하겠다 싶어 한번 써본다.
참고로 일가친척을 포함한 구성원 중 일부가 오유를 하므로, 이 글을 본다면
전화가 오거나 페이스북 메세지에 '전화받아라' 라는 메세지 등이 올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다.
 
타인이 보기에는 이게 가족인지 친척인지 잘 구분이 안갈 것이다.
 
 
1.
 
둘째 작은아버지는 굉장히 머리가 비상한 분이시다.
지금도 비상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은
그 지식의 보고가 영원히 간직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둘째 작은아버지(이하 작은아버지)께서 열 아홉살 때의 일을 회상하며 말씀하셨다.
 
"광주에서 올라와 서울 자취방을 구하고 나니 등록금은 커녕 기본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었단다."
 
"힘드셨겠군요."
 
"그래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지만 턱없이 부족했단다."
 
"그때는 학자금 대출같은 제도도 없지 않았습니까?"
 
"할아버지께서 소를 팔아 등록금을 마련해주셨지. 흔한 이야기 아니냐."
 
"그럼 다음학기부터는..."
 
"집에 손벌리는 것이 부끄러워 그냥 장학금을 받았다."
 
배가고파 라면을 끓여먹었다 라는 수준으로 말씀하시는 작은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비루한 내
대가리가 어디까지 비참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2.
 
둘째 작은아버지가 시골에서 열심히 공부하시고, 결과를 보고 난 뒤 크게 통곡하시며
공부방의 거울을 깨셨다고 한다. 할머니께서는
 
"대학에 떨어졌다고 인생이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란다" 라며 위로하려고 하셨다.
작은아버지는 오열을 하시며 "붙었습니다." 라고 하자 할머니가 크게 놀라시며
"그런데 왜 그렇게 서럽게 우느냐" 하시자 "제가 머리가 나빠 연대 상대밖에 가질 못합니다"
라고 하셨다고 한다.
 
작은아버지는 그 이후로 나쁜 자신의 머리를 한탄하며 대학을 열심히 다니는 와중에
군생활이 무서워 카투사로 도망치듯 지원했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군대가 무서우면 카투사를 가면 될 뿐인 일인거다.
 
 
 
 
 
 
3.
 
아버지는 공수부대를 나오셨다.
문제는 지금으로 치면 대단한 진보진영의 파수꾼과 같은 느낌이였는데
하필 아버지가 복무하던 시기는 5.18 광주민주화항쟁과 맞물린 시점이였다.
참고로 아버지의 고향은 당연히 광주다.
총체적 난국 와중에 그나마 다행이였던건 아버지가 전역을 이틀 앞둔 상황이였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당시 3공수의 무자비한 시민진압에 크게 분노하시고 내무반에서 분대원들과 욕을 하다
중대장에게 소환당하셨고, 곧 영창이라는 징계를 받을 위기에 놓였지만(영창으로 끝나는 수준이라니
참 다행인 듯 싶다만...) 무사히 전역해 고향인 광주로 돌아오실 수 있었다.
 
그리고 공수부대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미친듯이 도망다니신 끝에 본가로 들어가실 수 있다고 했다.
그 뒤로 아버지는 공수부대의 잔혹함을 미친듯이 비판하시며 본인은 분명히 아니라는 어필을 하고 나서야
마을사람들로부터 적개심을 걷어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4.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하실 때 즈음 있었던 일이다.
안그래도 까만데, 사우디에 가기 전 즈음에는 복사열에 의해 홍익인간의 그것과 같이 변해있었다고 했다.
술을 좋아하시는 우리 아버지는 지금의 외삼촌과 술을 드시다 안주상을 내오는 어머니를 보고
한눈에 반해 웃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미소를 시작으로 결혼했다고 한다.
 
일년 전 명절때 집에 갔을 즈음 어머니께서 그 일을 회상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생각해봐라. 시뻘건 사람이 날 보면서 웃는데 술까지 취했는데 안만나주면 죽을것 같은데 너같으면 안만나겠니."
 
어머니의 회고에 의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시뻘건 도깨비라고 했다.
지금도 우리아버지는 시뻘겋다.
 
 
 
 
5.
 
내가 전역하던 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온 친척들이 다 몰려와 외식을 하게 되었다.
그날의 계산은 내가 했다. 지금도 명세서만 떠올리면 피를 토한다. 이것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포함되는거 인정합니까?
 
아무튼 그날, 일가친척들을 포함해 성인이 된 친척동생들까지 총 소주 35잔을 두바퀴나 돈 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고 간다르바가 단물 뿌리듯 작은아버지 셔츠에 토를 하고 나서야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그 뒤 한동안 소주만 쳐다봐도 속이 울렁거렸다.
 
 
6.
 
친척동생들과 세달에 한번씩은 모여 죽을때까지 술을 마시는 것이 관습이다.
20대 때야, 새벽 다섯시까지 먹고 해장술까지 먹고 집에갔는데 서른 중반에 가까워지는 요즘은
진짜 스틱스강 뭐 그런거 건너도 이상할 것 같지가 않다.
 
아무튼 그날도 3차까지 달리던 와중에
 
"이새끼들아 그만쳐먹어" 라고 중얼거렸지만
184넘는 장신 셋이 "육회 육회" 를 외치며 육사시미집으로 끌고가는걸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우리집안에선 내가 키가 제일 작다. 173... 또르르)
아무튼 그렇게 먹고 나는 진짜 집에 가려고 했는데 우리집안 관습법상 먼저가는놈은 대역죄인이다.
그리고 난 가장 큰 형이고, 그래 이렇게 된 거 정말로 죽어보자고 술잔을 들려는데 작은아버지께서
우리가 먹는 술집에 들어오셨다.
 
갑자기 술이 확 깼다.
나는 얼떨결에 "헉 오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한 뒤 친척동생들을 둘러보며 '누가불렀어' 라고 텔레파시를
보냈다. 제일 나이가 작지만 키는 제일 큰 친척동생이 "아버지 진짜 오셨네요" 라고 했다.
 
작은아버지는
 
"육회에 소주도 좋구나. 그런데 오늘같은 날은 작은아버지가 양주 한번 사야지" 라며
근처의 바에 데리고 가셨다.
 
제발 그만... 그만...
 
나의 외침은 들리지도 않는 듯 작은아버지는 테이블에 앉아 호기롭게 조니워커 블루라벨 그래 그 요망한
파란뚜껑을 힘차게 까셨고 남자는 언더락 얼음없이 스트레이트라며 세병째 마셨을 즈음 나는 기절했다.
깨어보니 모르는 차 안이였고 모르는 사람이 날 뒷좌석에 태운 채 내가 아는 모르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납치당했다는 생각에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잠시 차를 세운 모르는 차의 모르는 사람은 나를 향해 아주 조근조근 말했다.
 
"사장님께서 댁까지 모셔다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네? 누구 사장요?! 누구신데요?!"
 
"(삐-) 사장님께서..."
 
잠시 잊고있었다. 작은아버지가 사장이라는걸.
나는 쪽팔림과 함께 십년짜리 이불킥을 획득했다.
나는 그날 두 손을 모으고 얌전히 집에 간 뒤 기사분에게 몇번이나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서야 집으로 올라왔다.
 
다음날 작은아버지께 죄송하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웃으시며
'그래 해장술은 잘 사먹었냐' 라고 하시길래 이건 또 뭔가싶어서
"예...?" 라고 하니까 아니라며 으하하 웃으시고 또 전화를 끊으셨다.
 
나는 전날 벗어놓은 옷 틈 사이에서 십만원짜리 수표 두 장을 발견하고는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향했다.
나 대체 어제 뭐한거...?!
 
며칠 뒤 친척동생이 말해주길.
 
"형 진짜 와 그때 작은아버지 옆에 붙어서 팔짱끼고 '해장국 사먹게 용돈줘여 작은아빠 히히힣히' 와 진짜 와...
용돈주니까 더 신나서 '히힣히히 제 잔 한잔 받으세여 작은아빠 히힣힣히히'..."
 
...작은아버지는 지금도 명절때마다 이십만원짜리 해장국 먹어본 사람 있냐며 날 놀리곤 하신다.
 
...제발...죄송합니다... 10년전 일인데 이젠 제발 제바류ㅠ
 
 
 
5.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함경도 분이시다.
6.25때 큰아버지와 함께 피난와 광주를 떠돌았는데, 그때 크게 도움을 준 것이
할아버지셨고 두 분은 결혼을 하셨다고 했다.
 
뭐 그런 러브스토리는 그렇다 치고 아무튼, 할머니는 말을 엄청 억세게 하셨다.
고향 사투리를 거의 잊어버리신 시점에서도 마음같지 않게 말을 툭툭 던져
뭇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곤 하셨는데 사실은 마음이 그런것이 아니라 말투가 단지
그럴 뿐이였다.
 
나는 어렸을 때 작은아버지댁에 가서 친척동생들과 방학을 함께 보내곤 했다.
잠자리에 누울때면, 친척동생들은 항상 내 옆에 와서 자려고 했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작은 동생을 당신 옆으로 끌어들이시며
 
"깔려죽어"
 
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몇번 깔아뭉개기도 했고.
 
...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장례식장에서 삼일 밤낮을 새며 문상객들을 맞이하던 와중에
나는 정말 일면식도 없는 노인 두 분이 오셔서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니가 노동자구나
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셨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그런데 누구...' 같은 병신같은 말실수나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황하게 이야기를
해 주시길
 
두 분은 할머니와 사촌간이라고 하셨다.
6.25때 찢어져 부산으로 피난을 와 그대로 사셨고 서로간의 소식도 모른 채 살다 내가 태어날 때 즈음
연락이 닿아 만나셨고 그 때 나를 처음 보셨다고 했다.
 
그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를 보며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잘 몰랐다.
우리 가족중에는 내가 할머니를 가장 많이 닮았고, 하는 행동이나 말투도 그렇다고 했다.
자라고 보니 더 그렇다고, 이제 내가 언니를 보고 싶으면 너를 보면 되겠구나 하며 우셨다.
 
글쎄 언제 한번 인사라도 드리러 가야 하는데.
 
 
 
 
 
 
+
 
서술한대로 작은아버지는 연대를 나오셨다.
그리고 그분의 아들 즉 친척동생은 고대를 나왔다.
 
지금도 연고전 시기만 되면 첨예한 논쟁을 거듭하며 대립한다고 한다.
 
작은아버지는 지금도 말에서 밀리면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고 한다.
 
"우리학교 앞에는 신촌과 독수리다방이 있지만 너네학교에는 뭐 있냐? 하나있네. 이명박."
 
예송논쟁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가장한 부자간의 싸움을 지켜보던 나는 아버지에게
 
"나도 아버지가 연대를 나왔으면 고대를 갔을건데"
 
아버지는
 
"내가 연대 할애비를 나왔어도 이놈아 여즉껏 연애할 머리도 없는 니 대가리로는 고대는 커녕
졸업장 받은게 신기하다 이놈아."
 
뼈좀 그만 때려요. 제발. 제발. 제바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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