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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도깨비, 문경관
게시물ID : humorbest_15849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42
조회수 : 14517회
댓글수 : 9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9/02/13 15:41:04
원본글 작성시간 : 2019/02/13 11: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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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전설에서 도깨비들은 이름이 없는 채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저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조선 말엽의 야담집인 청구야담(靑邱野談)을 보면, 자신의 이름을 ‘문경관(文慶寬)’이라고 스스로 밝힌 도깨비가 등장하는데, 이 도깨비에 관련된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조선 시대, 한양의 남대문 밖에는 심(沈)씨 성을 가진 양반이 한 명 있었습니다. 비록 양반이기는 했지만, 그는 집안이 너무나 가난해서 매일 같이 물에 만 밥이나 죽으로 끼니를 겨우 떼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날, 대낮에 심씨가 한가하게 방 안에 앉아 있는데 대청 마루 위에 웬 쥐 한 마리가 나타나서 다니기에 심씨는 담뱃대로 쥐를 때리려 하자, 갑자기 허공에서 “나는 쥐가 아니라, 당신을 보기 위해 일부러 멀리서 왔으니 나쁘게 대하지 마라.”는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심씨는 “귀신이라면 대낮에 올 리가 없을 텐데, 설마 도깨비인가?”하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런 심씨를 향해 허공에서는 “나는 멀리 와서 배가 고프니, 밥 한 그릇만 대접해 달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상대한테 밥을 달라는 말에 심씨는 난감해져서 방문을 닫았는데, “왜 나의 부탁을 무시하는가? 나는 앞으로 이 집에서 오래 머물 것이다.”라는 소리가 허공에서 계속 들려오기에 할 수 없이 물에 만 밥 한 그릇을 가져다 마루 위에 놓자, 밥알을 씹고 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려오고 얼마 후에 밥그릇은 완전히 비워졌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심씨는 “당신은 누구인데 내 집에 왔는가?”라고 물었고, 이에 허공에서는 “나는 문경관(文慶寬)이라 한다. 앞으로 이 집에 자주 올 것이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다.”라는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자신을 문경관이라고 밝힌 보이지 않는 존재는 다시 심씨의 집을 찾아와서 계속 밥을 요구하였고, 심씨는 그 요구에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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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나 도깨비를 쫓는다고 믿어졌던 부적들의 그림. 그러나 "무식한 도깨비가 부적을 못 알아본다."라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어떤 도깨비들한테는 부적도 통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하루는 문경관이 계속 오게 내버려두면 무슨 나쁜 일이 생길지 몰라 두려웠던 심씨는 귀신을 쫓는 부적을 구해 와서 집의 곳곳에 붙여 놓았더니, 문경관이 와서는 “나는 요사한 귀신이 아니니, 부적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오는 것을 막지 마라.”고 말하기에 심씨는 부적을 모두 떼어버리고는 문경관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그대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운명을 말해줄 수 있는가?”


심씨의 질문을 받자 문경관은 “당신의 수명은 69세이고, 평생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 것이다. 당신의 손자가 비록 과거시험에 합격을 해도, 높은 벼슬은 얻지 못하리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쓸 곳이 있으니, 돈 2냥만 다오.”라고 말했습니다.


심씨가 “나는 그럴 돈이 없다.”라고 거절하자, 문경관은 “이 집 창고에 당신이 예전에 돈 2냥을 넣어 두지 않았나? 내가 그 돈을 가져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심씨가 창고로 가서 문을 열어보니, 정말로 넣어 두었던 돈 2냥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문경관이 자신의 돈을 멋대로 가져가자, 심씨는 또 무슨 물건이 없어질지 몰라서 아내를 친정에 보내고 자기는 친구의 집으로 피신했는데, 놀랍게도 거기까지 문경관이 쫓아와서 “당신이 천리 밖으로 도망가도 내가 따라갈 것이다.”라고 으름장을 놓고는 심씨의 친구한테 밥을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는 집안 살림을 모조리 부숴버렸습니다. 심씨는 친구를 보기가 부끄러워서 얼른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아내도 친정에서 문경관이 행패를 부려서 집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이렇게 멋대로 굴던 문경관은 어느 날 “내가 고향인 경상남도 문경현(聞慶縣)으로 떠나야 하니, 여비로 돈 10냥만 달라.”고 심씨한테 부탁했습니다. 민폐만 끼치던 문경관이 제 발로 떠난다니, 심씨는 속으로 기쁘면서도 “나한테 그럴 돈이 없다.”라고 거절했는데, 문경관은 “절도사(節度使) 벼슬을 하고 있는 이석구(李石求)를 찾아가서 부탁하면 그가 돈을 줄 것이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심씨가 이석구의 집에 찾아가서 문경관이 시킨대로 하자, 이석구는 순순히 돈 10냥을 주었습니다.


돈을 가지고 이석구가 집으로 돌아와서 그 돈을 창고에 넣어두자, 문경관은 뜻밖에도 “내가 그동안 이 집에서 이미 2냥을 가져다 썼으니, 10냥은 필요 없다. 그 돈으로 술이나 사 마셔라. 나는 이만 떠나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렸습니다. 


골칫거리 문경관이 사라졌다는 말에 심씨 가족은 크게 기뻐했는데, 갑자기 허공에서 “안녕하신가?”라는 소리가 들려오자 심씨는 “문경관, 그대는 왜 다시 왔는가?”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목소리의 주인공은 “나는 문경관의 아내인데, 당신이 내 남편을 잘 대접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으니, 앞으로 나를 잘 모셔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도깨비의 출현에 심씨는 그저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습니다.


이 문경관 이야기는 일반적인 한국의 도깨비들처럼 만나는 인간에게 풍요의 혜택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민폐만 계속 끼쳤으니 참으로 특이한 경우입니다. 서구의 고블린처럼 한국의 도깨비들 중에서도 심술궂고 못된 족속이 있었던 듯합니다.  

출처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 336~338쪽/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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