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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연의와 정사의 가치에 대한 단상.
게시물ID : humorbest_15976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小石(가입:2013-06-30 방문:2212)
추천 : 58
조회수 : 8367회
댓글수 : 5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9/06/17 02:14:20
원본글 작성시간 : 2019/06/16 23:52:20
삼국지 조조 손권 유비.png




안녕하세요 유자게에 가끔 나타나 삼국지 글 쓰는 小石입니다.
오늘 글은 좀 진지 빨고 쓰는 노잼글입니다.

제목대로 역사로서의 삼국지와 허구로서의 삼국지, 그리고 그 가치 대한 글을 쓸 건데
우선은 연의와 정사가 뭔지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우선 이거부터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삼국지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역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중국 삼국시대를 기록한 정사와
훗날 이를 기반으로 생겨난 이야기들을 나관중이라는 작가가 모으고 엮어 소설로 만든 역사소설, 삼국지연의입니다.

삼국지연의는 중국사대기서(삼국지연의,수호전,서유기,금병매)중 하나로 여겨지는 고전이죠.


삼국지를 접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로 삼국지연의를 기반으로 한 매체를 보게 됩니다.
아무래도 역사보다는 소설이 더 재밌고 상품성이 있기 때문이겠죠.
저 역시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만화를 통해 삼국지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삼국지의 독자들은 나중에 '연의의 그 사건이 사실 픽션이었어?' 하고 놀라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서 인터넷 유머 게시판 등에서 삼국지 관련 글 중 '사실 이건 나관중의 창작임ㅋㅋ'하는 글이 올라오는 거고요.
덕분에 저도 베오베 몇 개 먹었습니다. 별로 좋지 않은 글인데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정사 글을 썼다가 연의 글을 썼다가를 반복해서 그런지
연의 관련 글을 올리면 댓글에 '이건 허구다. 픽션이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하는 것이
혹시 제가 쓴 글이 연의와 정사 어느 쪽으로 치우친 것처럼 보였던 게 아닌지 걱정되서

일단 제 입장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저는 정사 삼국지에도 관심이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연의를 좀 더 선호하는 쪽인 삼국지 팬입니다.

무엇보다 정사와 연의, 둘 중 하나가 다른 것에 비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서론은 여기까지로 하고 삼국지의 가치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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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중국 삼국시대 역사가 왜 이렇게 사랑받는가,
애초에 이 텍스트의 가치가 무엇인지부터 알 필요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세계사 수업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아시겠지만
삼국시대 자체는 역사학적으로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나마 중요한 장면이 한나라 멸망에 쐐기를 박은 황건적의 난 정도죠.


그렇다면 역사적 관점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삼국지가 왜 시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는 걸까요?

가끔 삼국시대가 연의 때문에 유명해졌다는 주장도 보이지만
이는 정사와 연의 사이에 쓰인 '삼국지평화'의 존재를 잊은 발언으로
삼국시대의 이야기들은 연의가 쓰이기까지 민중들에게 1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랑받았습니다.

삼국지가 그렇게 사랑받은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중국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하는데
특히 중국 역사에서 한나라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와, 삼국시대의 로망스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한쟁패 이후 세워진 한나라는 400년이 넘는 긴 통치기간동안 중국과 동아시아권 문화를 확립했습니다.
과장 섞어서 말하자면 한나라야말로 중국의 진정한 통일이자, 중국의 근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중국 토착민들이 자신을 한족이라 부르고, 사용하는 문자 이름을 한자라 부르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죠.

동아시아권을 아우르는 정신인 유교사상을 정착시킨 것도 한나라입니다.

그리고 한나라의 멸망 이후 있었던 삼국시대는

1. 국가가 분열된 상태에서도 이민족의 침입을 세 나라가 모두 막아낸 중국의 전성기시대 중 하나이며
2.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한나라로 회귀하고자 했던 영웅호걸들이 있던 시기였으며
3. 무엇보다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던 요소인, 로망스적인 요소가 있었습니다.


인기가 없을 수가 없죠.

1번이나 2번은 아무래도 중국 민중들에게 호평받을 여지가 많은 요소들이고
3번인 로망스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합시다.


(여기서 말하는 로망스는 서양의 기사 이야기로 대표되는 로망스 장르를 말하는 것이지 사랑이야기 로맨스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god_of_war_02.jpg


삼국지의 로망스를 말하기에 가장 적절한 예시는 관우라 생각합니다.


조조 밑에서 일하던 시절 관우는 유비가 어디 있는지 알면 바로 가겠다고 늘상 말하고 다니다가
진짜로 유비가 어디 있는지 알자마자 조조를 떠나 유비에게로 향합니다.

이 사건을 요즘식으로 풀어 말해보자면
제일 잘 나가는 대기업 회장 조조 맘에 들어 간부로 스카웃되어 일하다가
예전에 같이 일한, 몇 번이고 파산한 유비가 어디 있단 얘기 듣자마자 의리 지키려고 직원으로 일하러 간 겁니다.

이 에피소드는 연의에서 창작된 게 아닌, 실존인물이었던 관우의 행보입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굉장히 인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죠.



이런 에피소드들 안에는 삼국지의 주제 중 하나인 '인의'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훗날 관우가 손권에 의해 죽게 되었을 때
유비는 제갈량이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오나라에게 전쟁을 겁니다. 이릉대전의 시작입니다.


이 전쟁은 유비의 처참한 패배로 끝났기에 사람들은 유비가 이릉대전을 일으키지 말았어야한다고 말하지만
만약 유비가 관우의 죽음 이후, 제갈량의 합리적인 판단대로 이릉대전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소설로서의 삼국지는 지금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했지 않았을까 하는 게 제 의견입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나서 지금까지 보여주던 모습과 정 반대로 달라지는 사람들,
자신을 도와준 조강지처를 너무나 쉽게 버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지금도 많이 봅니다.

그러나 도원에서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조조를 버리고 유비를 찾아간 관우와
무리하다싶은 전쟁을 일으킨 유비의 모습은 그런 현실과 차이를 보입니다.


이런 로망스가 삼국지가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많은 이유 중 하나인 것이겠죠.




다운로드.jpg



이처럼 삼국지라는 '사실' 자체는 역사학적으로 가치가 떨어지지만
삼국지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삼국지 이야기의 주제 중 하나인 의리는

먹이를 줄 땐 고개를 숙이지면 하늘로 날아가고 나면 우리에게 똥을 싸는
비둘기 같은 호1로새끼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직 유효한 가치를 지닙니다.

물론 삼국지라는 이야기 자체엔 더 많은 주제와 매력이 있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서 의리 하나만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아는 삼국지의 대부분은 허구라는 사실과
삼국지연의라는 텍스트의 가치를 살펴봤으니

정사와 허구를 두고 삼국지에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야기의 가치는 허구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이야기 자체가 품은 가치에 의해 달라집니다.


일단 이야기라는 게 사실이냐 아니냐를 논하려면 시뮬라크르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네요.
어려운 이야기 하면서 잘난척 하는 걸 좋아해서 꼭 언급해보고 싶습니다.


순도 100% 진실만으로 기록된 역사는 없습니다.

다큐멘터리, 르포, 수필같은 것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사실과 가깝긴 하지만
이 역시 감독이나 작가의 의도대로 '편집'된 것이며, 완전한 사실 그 자체는 아닙니다.

신문 기사/뉴스 보도 또한 사실일 수 없습니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 조중동과 한겨레는 다른 시선으로 사건을 보도합니다.
영상 촬영이나 편집에 따라서 같은 곳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다르게 보일 수 있겠죠


역사 기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의
그날 컨디션, 기분, 시력, 독자적인 판단, 사상, 착각과 같은 수많은 변수에 의해 원본 사실과는 다르게 기록됩니다.
기록하는 사람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됩니다.

또한 역사를 기록할 때 기본적으로 사관은 그날 있었던 일 중 의도적으로
"기록해야 할 것"과 "기록하지 말 것"을 선별하는 작업을 하고
그 이후에 기록해야 하는 것들을 역사로 남깁니다.


결정적으로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쓰인다는 말을 생각해볼 때,
완전히 객관적인 역사 기록이라는 건 있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라는 것이 사실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사실로서 가치있는 것은 맞으나, 그것이 100% 진실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야기가 사실이냐 아니냐에 따라 가치가 정해진다면,
결과적으로 볼 때 이 세상에 가치 있는 이야기란 없어지는 것이 되는 겁니다.




Dark-Knight-Movie-2008-10th-Anniversary-Review-Screening.jpg



때문에 삼국지연의에서 일어난 사건을
팩트가 아닌 후대의 창작이기 때문에 무시하거나, 가치가 떨어진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다크나이트는 허구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보다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건 예술 무용론에서나 나올 소리인데
다크나이트는 이미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9.11테러 이후 미국 사회의 광기를 담아낸 영화임을 증명했습니다.

허구의 캐릭터인 배트맨과 조커, 투페이스가, 현실의 모방인 영화가
사실보다 더 현실을 잘 담아낸 거죠.


삼국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연의의 이 기록은 사실 이건 정사에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글을 꽤 올리긴 했으나
그것이 연의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모순을 지적하려고 올린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정사와의 비교가 재미있고 흥미로운 자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는 그것이 연의라고, 창작된 것이라고 해서 비하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물론 이건 제 의견이 그렇다는 거고

삼국지에 관심두신 분들께서는 정사와 연의,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방향대로 삼국지를 즐기시되
한쪽이 다른 쪽에 비해 낫다! 고 주장하는 식의 의견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삼국지라는 텍스트는 아직 우리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지니는 재밌고 흥미로운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정사의 기록이든, 아니면 훗날 소설로 묶인 연의이든 말입니다.






단 예외적으로, 손권이 병2신이란 제 의견은 병1신이 아니라는 의견보다 우월합니다.
이견은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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