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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과 한국독립운동 과의 관계
게시물ID : humorbest_17218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가가
추천 : 33
조회수 : 3418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23/02/05 21:48:27
원본글 작성시간 : 2023/02/05 15:5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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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래 출처 내용입니다:

https://historylibrary.net/entry/현대-베트남의-국부-호치민과-한국독립운동

 

기사링크 https://www.yna.co.kr/view/PYH20180929038400081  2018년9월기사

01.jpg

파란표시된 문구들:

1) "M.Nguyen-ai Quoc se base sur tout ce que font les Coréens, il a suivi presque exactement le plan des révoltés coréens."

2) "Pour être au dovant de ce que fait Quoc, nous n'aurons qu'à ppocurer des publications périodiques des Coréens en Amérique. Il parait que les Coréens à Paris font aussi fonder un journal. (A renseigner)."

 


00-0.png

 

 

 

1921년당시의 호치민

02.jpg

 

 

당시 한국인들은 3.1운동의 크기와 의지 등에 감화받아 빠르게 임시정부를 수립 후 정부대표의 자격으로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하려 했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합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당시 호치민은 아마도 혼자 '독립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고민하며 미국과 프랑스를 오고가던 시절이었는데, 한국인들은 조직을 이루어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이 지침이 되어 주지 않았나 싶네요.

실제 임시정부가 1919년 4월 수립된 후 김규식이 '한국독립 항고서(抗告書)'를 강화회의에 제출한 시기가 5월인데 호치민이 '베트남 인민의 요구서' 를 제출한 시기가 6월입니다. (두 청원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음)

 

 

저는 '과학하고앉아있네' 라는 팟캐스트의 2022년9월9일방송 (유투브로도 있을듯) 을 듣다가 이걸 알게 되었는데 심지어 그 방송에서는

미국에 있던 한국인들이 파리에 가기 전 필라델피아 한인대회가 먼저 있었는데, 거기 가기 위해 한국인들은 막노동을 해 여비를 벌어 다음 역까지 이동하고 다시 막노동을 하는 여정을 이어가며 모였다고 합니다만 그걸 지켜본 호치민이 심지어 이들이 파리에 사람을 보낼 거란 계획을 듣고는 '이 사람들이 하는 걸 내가 못할 것이 있겠는가' 고 결심, 파리로 따라갔다고 표현했는데... 위키백과에 있는 행적과 비교해 볼 때 이게 맞나? 싶은 부분이 있어 조금 더 교차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최소한 한국인들에게 영향받은 것만큼은 사실인 듯 합니다. 

(팟캐스트에서 설명하신 분은 이 책을 참고하신 것 같습니다 https://www.amazon.com/Ho-Chi-Minh-Missing-Years/dp/0520235339 )

 

 

출처 https://historylibrary.net/entry/현대-베트남의-국부-호치민과-한국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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