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겨울 천사
게시물ID : humorbest_295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추참치
추천 : 15
조회수 : 1228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4/02/29 12:56:35
원본글 작성시간 : 2003/11/28 17:51:37
  우리들의 상처          아홉 살 신영이는 아빠와 동생들과 함께 세평 남짓한 단칸방에 세들어 살았다.   어릴 적에 엄마를 잃은 신영이는 엄마 대신 어린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다.     신영이 아빠 이씨는 수년 전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심하게 절룩거렸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그의 야윈 몸은 금세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이씨는 변두리 음식점들을 돌아다니며 수세미 행상을 했다.   언제나 지친 걸음이었지만 이씨의 충혈된 두 눈엔 세 아이들에 대한 희망이 서럽게 담겨 있었다.  하지만 수세미를 팔아 네 식구가 살아간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음식점 주인들은 이씨가 수세미 가방을 메고 들어가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나마 핀잔을 주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이씨의 오른쪽 다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마비되어 갔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어린 세 자식들과 살아갈   험난한 세월을 생각하면 이씨는 당장이라도 죽어버리고 싶었다.   발꿈치 부위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뼈 때문에 정기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이씨는 그것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비되어 가는 다리에 통증까지 있는 날이면 이씨는 하던 일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벌써 여러 달째 월세가 밀린 이씨에게 집주인도 더 이상 동정을 보이지 않았다.     이씨는 보육원에 어린것들을 맡겨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번번이 후회의 눈물만 흘리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고아원에 맡겨진 아이들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씨 마음엔 선인장 가시처럼 아픔이 쑤셔 박혔다.   더욱이 벙어리인 막내 지영이를 생각할 때면   이씨의 퀭한 눈은 금세 붉은 노을이 졌다.     이씨는 불우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이씨는 어릴 적 새어머니 밑에서 온갖 천대와 괄시를 당했다.   어느 날은 개처럼 매를 맞고 얼어붙은 산비탈에 앉아   마른 풀잎으로 흐르는 피를 닦아내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어느 겨울밤, 맨발로 집에서 쫓겨난 그는   함박눈 내리는 새벽을 더듬거리며 그 길로 영영 집을 떠나와버렸다.     승호는 오후 내내 누나 신영이에게 과자를 조르며 징징거렸다.   신영이가 승호를 달래보았지만 떼가 난 승호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신영이는 하는 수 없이 승호와 지영이를 데리고 산동네 골목길을 내려왔다.   맵찬 겨울 바람이 산동네 지붕을 날려버릴 듯 괴물처럼 웅성거리며 불어왔다.     "우리 여기서 아빠를 기다리자. 좀 있으면 아빠 오실 거야."     희미한 백열등 불빛이 새어 나오는 가게 앞에 이르렀을 때 신영이가 말했다.   신영이는 동생들과 함께 가게 앞에 나란히 쪼그려 앉았다.     "누나가 까까 사 달라고 아빠한테 꼭 얘기해야 돼, 알았지? 꼭이야."   "응, 알았어."   얼굴에 눈무루 자국이 가득한 승호는 그제야 빙긋 웃어 보였다.   "근데, 우리 지영이가 너무 춥겠다."     신영이는 지영이를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조그만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주었다.   그때 어둠 속 저 멀리서 쓰러질 듯 절룩거리며 걸어오는 아빠의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저기 아빠 온다! 아빠 맞지?"   "응, 아빠 맞아. 아빠야..."     승호와 지영이는 한달음에 달려가 아빠의 양팔에 매달렸다.     "아빠!"   "날도 이렇게 추운데 왜 여기들 나와 있어?"   "승호가 아까부터 까까 사 달라고 하도 졸라서, 아빠 기다리고 있던 거야."     신영이는 추위에 잔뜩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그랬구나."     이씨는 아이들을 앞세워 가게로 들어갔다.     승호는 진열대에 놓여 있는초콜릿을 집더니 코끝으로 가져갔다.   숨을 길게 들이 마시며 초콜릿 냄새를 맡던 승호가   막내 지영이 코에다 초콜릿을 갖다 대며 말했다.     "정말 맛있겠다, 그치?"     승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초콜릿을 진열대에 다시 내려놓았다.   이씨는 희미한 백열등 아래 서서 잠자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동생들 옆에 서 있는 지영이를 바라보던 이씨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동생에게 자기 운동화를 신겨준 신영이는 한겨울 추위에 찢어진 여름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신영이의 조그만 발가락이 추위에 새파랗게 얼어 있었다.     바로 그날 밤, 주인집 아줌마가 험상궂은 얼굴로 남편을 앞세우고 신영이네 방으로 들어왔다.     "이번 달까지 나가지 않으면 강제로 쫓아낼 거예요. 월세가 벌써 몇 달째 밀린 줄 알기나 해요?  8개월이 다 되어간다구요! 그렇게 봐줬으면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말야...   이번 달까지 밀린 월세를 다 내든지, 아니면 나가든지 알아서 해요."     "이번 겨울까지만 지내게 해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엄마도 없이 자라는 저 어린것들이 불쌍해서 그럽니다.   제가 다리가 성치 않아 일을 자주 못 나갔거든요.   저 어린것들이 여러 날 동안 불씨 없는 차가운 방에서 서로 껴안고 잤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밀린 방세는 꼭 해드리겠습니다."     간신히 말을 끝낸 이씨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런 소리도 이제 지긋지긋해요. 나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장 바닥에서   국밥 한 그릇이라도 더 팔려고 이놈 저놈 비위 맞추며 죽지 못해 산다구요.   나 원 참, 한두 달도 아니고 말야. 긴 얘기 할 거 없어요. 이번 달 내로 나가요!   안 그러면 이 방에 불을 지르든지 경찰을 부를 거예요.   지난번처럼 겁만 주고 또 그냥 넘어갈 거란 생각은 아예 말아요!   이번엔 아주 끝장을 볼 거니까 알아서 해요."     주인 남자는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이씨를 노려보고는 방을 나가버렸다.   겁에 질린 채 아빠 얼굴만 바라보던 승호가 울음을 터뜨렸다.   말을 못하는 막내 지영이는 영문도 모르고 승호를 따라 울었다.     주인이 강제로라도 쫓아내겠다고 한 날이 얼마 남지 않자 이씨는 더욱 초조해졌다.         이씨는 방을 구하려고 벌써 여러 날 동안 산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산동네 꼭대기에조차 그들이 몸을 누일 수 있는 방은 없었다.   이씨의 머리 속에는 지난날들이 하나 둘 불꽃처럼 스쳐 지나갔다.   죽은 아내와 함께 배고픔을 채우던 중앙시장 구석의 허름한 국수집,   동물원에 놀러 갔다가 딸 신영이를 잃고 애태웠던 시간들,   생전 처음으로 받아본 생일 케이크 앞에서 아빠를 위해     참새같이 노래를 불러주던 아이들의 모습,   말을 못하는 막내 지영이 때문에 눈물 흘렸던 시간들...     오래전부터 치료를 포기해 감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다리를 생각하며,   ...이씨는 다시 절망했다.     이씨는 잠든 아이들 옆에서 몇 번이고 방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   서러운 울음이 이씨 입가로 자꾸만 터져 나왔다.     다음 날, 이씨는 다른 날보다 서둘러 일을 나갔다.     이씨는 수세미를 들고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음식점을 돌아다녔다.   수세미를 내밀고 한번 거절당하면 돌아서던 이씨는 여느 때와 달리   몇 번이고 고개를 조아리며 음식점 주인에게 동정을 구했다.     이씨는 그렇게 해서 번 돈과 지난 며칠 동안 조금씩 모은 돈으로   콜라와 돼지고기, 연탄 몇 장을 샀다.   그리고 어린 승호가 달짝지근한 냄새만 맡고 내려놓았던 초콜릿도 여러 개 샀다.   자기 운동화를 동생에게 신기고 한겨울 추위에도 찢어진 슬리퍼를   신고 아빠를 마중나왔던 딸 신영이가 생각나 조그만 털신 하나도 샀다.   털신을 살 때는 흐르는 눈물 때문에 신발가게 주인 얼굴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노을이 새빨갛게 타는 저녁 무렵, 다른 날보다 일찍 들어온 아버지를 보며 아이들은 기뻐했다.   아버지 양손에 들려 있는 먹을 것들을 보며 아이들의 입가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났다.   이씨는 먼저 번개탄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검은 연기를 손으로 몰아내며 싸늘한 아궁이에 연탄을 넣었다.     얼마 후, 빨간 꽃봉오리 같은 아이들의 입에 한 점씩 돼지고기를 넣어주며 이씨가 말했다.         "꼭꼭 씹어 먹어라. 지영아, 고기 맛있어?"     말을 못하는 막내 지영이는 입 안 가득 고기를 물고 아빠의 물음에 고개만 끄덕였다.     "승호도 많이 먹어."   "응, 아빠. 아빠, 나는 초콜릿은 두었다가 내일 먹을 거야."     이씨는 슬픈 눈으로 승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빠도 어서 먹어. 아빠는 왜 하나도 안 먹어?"     아빠가 마음에 걸렸는지 고기를 먹다 말고 신영이가 말했다.     "아빠는 밖에서 많이 먹었어. 어서 많이 먹어, 신영아."     승호는 아빠가 사다 준 콜라병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는 조금씩 아껴가며 마셨다.     "아빠, 콜라도 맛있고, 고기도 맛있어. 내일 고기 또 사 와. 알았지?"   "...."     이씨는 승호의 말에 대답 대신 슬프게 웃어 보였다.   이윽고 아랫목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승호는 따스해진 방 아랫목에 뺨을 살짝 대보기도 했다.   오랜만에 배부름으로 활짝 웃으며 좁은 방에서 뛰어놀던 막내 지영이는 이씨 품 안에서 잠이 들었다.   이씨는 아랫목에 누워 잠든 승호 옆에 막내 지영이를 나란히 뉘였다.   그리고 어린 동생들 때문에 고기 한 점 제대로 먹지 못한 딸 신영이를 가슴에 안았다.     "신영아, 어린 네가 엄마 대신 고생이 많구나. 신영이 너, 엄마 많이 보고 싶지?"     고개를 끄덕이던 신영이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여왔다.   아빠 품에 안겨 있던 신영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 나 엄마 보고 싶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아빠."   "아빠도 알아. 우리 신영이 마음 아빠도 다 알아."     이씨는 흐느끼며 울고 있는 신영이의 등을 쓸어주며 울먹였다.   신영이를 이씨는 한참 동안 안아주었다. 잠시 후, 북받친 설움을 가라앉힌 신영이가 말했다.     "아빠, 나 그만 잘게. 졸려."   "오늘은 말야, 아빠가 우리 신영이 안아서 재워줄게."   "신영이 안으면 아빠 다리 아프잖아."   "괜찮아. 아빠 다리 안 아파."     신영이는 아빠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죽은 아내를 쏙 빼닮은 딸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이씨의 눈에선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씨는 잠든 신영이를 동생들과 나란히 뉘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까칠한 얼굴에 하나하나 입을 맞췄다.   이씨는 얼룩진 액자 안에 있는 죽은 아내의 사진을 꺼내서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웃옷 주머니 속에 넣었다.   잠시 후, 이씨는 승호 손 위에 막내 지영이의 조그만 손을 포개어놓았다.   그리고 지영이 손과 신영이 손도 함께 포개어 아이들 모두가 나란히 손을 잡게 했다.     이씨는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을 가누지 못한 채 무릎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비장한 얼굴로 부엌으로 뛰쳐 나갔다.   양손에 벽돌을 여러 장 집어 들고 방 안으로 들어온 이씨는   다시 부엌으로 뛰쳐나가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연탄 한 장을 가지고 들어와 벽돌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막 불으 붙은 연탄은 방 안 가득 지독한 가스를 뿜어내며 타고 있었다.     좁은 방은 금세 매캐한 가스 냄새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씨는 두려움 때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씨가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야윈 몸을 간신히 벽에 기댔을 때,   종이로 주둥이를 틀어막은 승호의 반쯤 남은 콜라병이 이씨 눈에 들어왔다.   이씨는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부들부들 떨려오는 몸으로 이래서는 안 된다고 수도 없이 다짐해 보았지만,   차라리 먹을 걱정, 추위 걱정 없는 아이들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엾은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이씨는 생각했다.     아이들만이라도 세상에 남겨두고 싶었지만 겨울이 지나가고 또 다시 봄이 온다 해도   아이들을 따뜻하게 지켜줄 세상의 봄은 올 것 같지 않았다.   이씨는 곤히 잠자는 아이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 아빠하고 그리운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자.   아빠는 너희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을 절대로 잊지 않을게.   너희들의 예쁜 얼굴도..."     방의 불을 끈 이씨는 큰딸 신영이의 손을 꼭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여보... 조금만 기다려. 이렇게 온 가족이 함께 나란히 손을 잡고 당신한테 가려는 거야.   그리고... 애들아. 부디 아빠를 용서해 주렴.'     시간이 지나면서 눈을 감은 이씨의 귓가로 아이들의 가파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눈물을 흘리며 연탄 가스에 몇 번을 쿨럭이던 이씨도   점점 죽음 속으로 빠져들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창문 밖에선 노란 달빛이 슬픈 눈으로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아무리   ...몸부림쳐 보아도 도저히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의 ...밤이 지났다.   그리고 ...어둠이 가시지 않은 조그만 방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아무런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연탄길 중에서.  추신.... 연탄길은... 실화라고 하네요...    << *  내일이 찾아와도 * >>    네가 떠나던 그날 눈물 대신 웃음을 보였네  차마 울지못한 마음은 아쉬움 때문이었네    네가 떠난 그 다음날 웃음 대신 눈물을 보였네  혼자라는 아픔만이 내곁으로 밀려왔네    *내 곁을 떠나버린 마지막 순간  보내야했던 마음을 너는 알 수 없을꺼야    내일이 찾아와도 너는 나를 찾지 않겠지만  내일이 찾아와도 나는 너를 기다릴테야    *반복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