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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혐오/주의]세종실록에 나온 '조선의 인간돼지'
게시물ID : humorbest_3235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동물의피
추천 : 37
조회수 : 9209회
댓글수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1/11 11:48:16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1/10 14:24:45
[펌]글이라 작성자의 말투는 양해부탁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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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돼지 중국버전은 다들 아냐능??

팔다리 자르고 똥통에서 구른 그거랑은 쫌 다른(?) 조선의 여후돼지가 있어서 올려봐. 

출처는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라는 책에 나온거고 나냔이 본문 그대로 옮길게. 
참고로 이 챕터는 '정승 황희'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종 시대야. 

-본문 中-
집현전 응교 권채의 '인간 돼지 사건'은 또 다른 사회 문제였다. 이 사건은 형조판서가 우연히 발견했다.

"모습은 사람 같은데 가죽과 뼈가 서로 붙어 파리하기 비할 데 없는" 이상한 물체를 지고 가는 노비를 길을 가던 형조판서가 수상하게 여겨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만약 그때 발견되지 않았으면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도 충격이었다. 

형조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권채는 여종 덕금을 첩으로 삼았는데, 그의 아내가 이를 질투해 덕금을'인간 돼지'로 만들어버렸다. 
즉 권채의 아내 정씨가 "덕금이 다른 남자와 간통하고 도망친 것을 붙잡아왔다"고 말하자, 권채는 "여종의 머리털을 자르고 매질하고는 왼쪽 발에 고랑을 채워서 방에 가두라"고 했다. 

다른날 정씨가 칼로 덕금의 목을 베려 하자 다른 여종 녹비는"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니 고통스럽게 해 저절로 죽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정씨는 "그 말대로 음식을 줄이고 핍박해 스스로 오줌과 똥을 먹게 했다."
하지만 덕금이 오줌과 똥 안의 구더기를 보고 먹으려 하지 않자 정씨는 "침으로 항문을 찔러 그 고통을 참지 못해 구더기까지 억지로 삼키게 하는 등 수개월동안 침학했다. 

이 사건은 주상께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듯하다. 
"나는 권채를 안존(성품이 얌전하고 조용함)하고 세밀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었는가. 아마도 그 아내에게 제어를 받아서 그렇게 된 것 같으니 끝까지 조사하라"

권근의 조카로 가학을 전수한 덕에 학문적 식견이 높을 뿐만 아니라, 집현전 학사로서 당신의 지우(남이 자신의 인격이나 재능을 알고서 잘 대우함)을 입은 권채가 그럴 리 없다고 여긴 것이다. 
실제로 의금부에서 다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권채는 여종 덕금이 학대받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권채가 집현전 일에 몰두해 있는 동안 그의 아내가 덕금을 학대했다는 진술이 남자 종과 또 다른 여종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권채와 그의 아내 사이에 진술이 엇갈리고, 결정적으로 여종 녹비와 덕금, 그리고 권채의 말이 각각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세 사람을 대질할 수도 없었다. 종이 주인을 고소하거나 그와 관련해 당국이 조사할 수 없게 만든 '부민고소금지법' 때문이었다. 
법은 사실 7년 전인 1420년(세종 2) 내가 건의해 제정됐다. 

"근자에 들어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일을 엿보다가 조그마한 틈이라도 발견되면" 참람하게 고소하는 일이 잦은 것을 보고, 나는 "아전이나 백성으로서 그 고을의 수령이나 감사를 고발하는 자가 있으면, 비록 죄가 있다 하더라도 윗사람의 죄를 논해서는 안 되며,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아랫사람은 보통의 죄보다 더 중하게 처벌받게 하는" 법을 제안해서 재결을 받은 것이다. 
그 다음해에는 '대명률'에 의거해 "노비가 주인을 고발할 경우 거짓과 참을 묻지 않고 그 노비를 모두 참형에 처하는" 법규도 추가해 만들었다. 

법이 이렇다 보니 의금부 관원들도 난처하게 됐다. 법조문이 사건의 진상을 가리는 것을 막고 있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상께서 새로운 법 해석을 내놓으셨다. 
"권채의 일은 비록 종과 주인 사이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노비가 스스로 고소한 것이 아니고 국가에서 알고 추핵한 것이니" 이 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탁월하신 해석이었다. 기존 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잘잘못을 가려낼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다. 

이틀 후 보고된 수사 결과에 따르면 권채가 덕금의 학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의금부 제조 신상은 "이 사람은 글만 배웠지 부끄러움은 알지 못합니다"라면서 권채의 몰염치를 비판했다. 
권채와 그의 종들을 대질한 결과 애초에 형조에서 조사한 것처럼 권채가 덕금의 학대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는데, 끝까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형조판서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권채는 직첩을 회수당하고 외방에 부처됐으며, 그의 아내는 속전(곤장 맞는 대신 내는 돈)을 내고 풀려났다. 

이 판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너무 가벼운 처벌이라고 말했다. 권채에 대한 처벌은 그렇다 치고, 그의 아내는 좀 더 무거운 벌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신사 정흠지나 내 생각은 달랐다. 

다행히 여종 덕금이 아직 살아 있고, 역모와 관련되지 않은 죄에 대해서 사대부집 부인을 함부로 처벌할 수 없는 국법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권채의 문재를 아끼는 주상의 배려도 작용했다(권채는 곧 석방돼 집현전으로 복귀했다).


 
[출처]공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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