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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한 결벽은 근본적인 현실인식의 부족.
게시물ID : humorbest_4113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연.
추천 : 33
조회수 : 2270회
댓글수 : 8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11/28 12:59:32
원본글 작성시간 : 2011/11/28 12:29:45
우리는 순수함과 폭력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폭력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육화된 존재인 한 폭력은 우리의 운명이다. 유혹 없는, 다시 말해, 최종적으로 분석했을 때 경멸 없는 설득이란 없다. 폭력이란 모든 체제에 공통된 출발 상황이다. 삶, 토론, 그리고 정치적 선택은 이 기반 위에서 일어난다. 중요한 것으로 우리가 토론해야 할 것은 폭력이 아니다. 폭력의 의미 내지는 폭력의 미래이다. 이것은 미래를 향해서 현재를, 타자를 향해서 자기를 뛰어넘는 인간적인 행위의 법칙이다. - 모리스 메를로 퐁티, '휴머니즘과 폭력'에서.


우리에게 육체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자원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고, 자원의 필요는 분배와 축적의 문제를 낳습니다. 그리고 자원의 분배와 축적 과정에서 폭력이 빠지는 건 불가능하죠. 하다못해 가족단위의 자원분배에서도 갈등과 폭력은 빠지지 않습니다. 형제나 자매가 성장기에 다투는 이유가 유, 무형 자원의 쟁탈이죠. (무형 자원의 대표적 예로는 부모의 관심과 애정이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모든 종류의 자원분배 불평등은 폭력입니다. 같은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이 다같이 열심히 일했는데 누군가는 필요 이상의 자원을 가져가 재산을 축적하고, 누군가는 축적은 커녕 당장 쓰기도 빠듯한 자원을 분배받습니다. 그렇게 되면 후자가 반발하고 정당한 분배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막기위해 전자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합니다. 형제라면 협박, 회유 또는 주먹이 오가겠지만 큰 사회는 훨씬 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죠.

바로 여기서 현식인식의 오류가 발생합니다. 근본적 폭력인 분배의 불평등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구조를 인지하지 못하고 여전히 직접적이고 가시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의 폭력만을 폭력이라고 이해하는 거죠. 좋든 싫든, 모든 생물의 삶은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자원을 필요로 하는 육체를 가진 시점에서 이미 폭력은 숙명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 누구도 폭력과 순수함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는 의미에서 결국 모든 선택은 적든 많든 폭력을 수반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죽음조차도 타인에게 감정적 폭력을 주게되죠. (이 표현이 매우 불편하리라 생각되고 그게 옳은 감정적 반응인데, 논리적으로만 따져서 그렇다는 얘깁니다.)

이런 시점에서 결국 생물은 폭력과 폭력 중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절망적인 얘기가 아니예요. 그저 현실일 뿐이고, 이걸 인정하고 '그렇다면 옳은 선택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하는거죠.

무엇보다도, 가시적 행위만을 폭력이라 규정하고 규탄하는 행위는 구조적 차원의 근본적 폭력을 강화하는 심각한 폭력입니다.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것이야말로 일반적인 가시적 행위보다 더한 폭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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