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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문명연재!ㅋ : (12) 정유재란, 그리고 명량대첩
게시물ID : humorbest_6466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마일루
추천 : 30
조회수 : 2830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3/18 04:14:22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3/17 14:56:34

하루정도 늦는거 이젠 익숙하시죠? -_-;;;


죄송.ㅠ



 

1편 : 저도 문명연재 올려보려구요ㅋ : (1) 1592년 4월 14일 http://todayhumor.com/?civil_2474

2편 : 저도 문명연재 올려보려구요ㅋ : (2) 일본군의 북진 http://todayhumor.com/?civil_2489

3편 : 저도 문명연재 올려보려구요ㅋ : (3) 탄금대 전투 : 1편 http://todayhumor.com/?civil_2501

4편 : 저도 문명연재 올려보려구요ㅋ : (4) 탄금대 전투 : 2편 http://todayhumor.com/?civil_2509

5편 : 저도 문명연재 올려보려구요ㅋ : (5) 전쟁 속 조선과 일본 http://todayhumor.com/?civil_2518

6편 : 나도 문명연재!ㅋ : (6) 일본의 보급전략과 한산도 대첩 http://todayhumor.com/?civil_2527

7편 : 나도 문명연재!ㅋ : (7) 평양성 전투 http://todayhumor.com/?civil_2536

8편 : 나도 문명연재!ㅋ : (8) 행주대첩 1편 벽제관전투와 권율장군 http://todayhumor.com/?civil_2544

9편 : 나도 문명연재!ㅋ : (9) 행주대첩 2편 토성과 화차와 화살 http://todayhumor.com/?civil_2558

10편 : 나도 문명연재!ㅋ : (10)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의 유사점 http://todayhumor.com/?civil_2563

11편 : 나도 문명연재!ㅋ : (11) 왜성, 그리고 이순신의 백의종군 http://todayhumor.com/?civil_2566















1593년 2월의 행주대첩 이후

일본군이 왜성을 쌓고 은둔한지 4년이 지난 1597년 1월,

평화협상은 결렬되고 14만의 일본군이 부산 부근 왜성에 상륙하며 전쟁이 다시 시작되니

 

그것이 바로 정유재란이다.

 

일본군은 왜성에서 나와 전라도로 진격하기 시작했는데,

그 목적은 한반도 남부를 점령하여, 이후 조선, 명나라와 화의하여

조선 남부의 땅을 일본 땅으로 완전히 합병하기 위해서였다.

일본군은 임진왜란 초기 경상도부터 문경새재까지는 파죽지세로 장악했었지만,

전라도만은 의병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전라도를 주 공격방향으로 정했던 것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일본군의 보급문제는 당연히 그대로인 상황이었다.

 

원래 도요토미의 계획은 해상 장악을 통한 보급이었는데,

이순신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오히려 행주대첩에서 처럼 조선군이 바다를 보급로로 활용하고 있어

일본군의 진격은 분명히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순신이 모함을 받아 파직되어 투옥된다.

(참고글 : 문명5-(#2-11) 왜성, 그리고 이순신의 백의종군, http://blog.daum.net/smileru/8887982)

 

이것은 일본군에게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현실이 된다.

 

 

 

 

 

 

삼도수군통제사, 해군참모총장에서 일시에 계급이 사라져

권율장군 아래로 이순신이 백의종군 하는 사이,

 

이순신과 갈등을 빚어왔고 선조의 신임을 받은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신중한 움직임을 주장했고 그래서 '게으르다'고 의심 받았던 이순신과 다르게,

원균은 조정의 뜻대로 공격적인 행보를 주장했었고 그래서 이순신 후임으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지만,

정작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상황을 보자 섣불리 공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원균은 30만 대군이 필요하다는 비현실적 장계를 올리고,

일본군을 보자마자 계속 도망가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이순신은 파직당하기 전까지도 오히려 왜성을 직접 공격하기도 하는 등

공격을 통한 견제를 해왔지만, 원균은 아예 근처에도 가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참지못한 권율 장군이 원균을 곤장을 쳐서 출진시키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1597년 음력 7월 4일,

원균의 수군은 또 다시 출동하게 되는데,

바람을 읽지 못해 12척의 판옥선을 표류시켜 잃어버렸고, 일본군의 지속적인 유인작전에 휘말린 끝에

결국 힘을 다 빼고 이후 퇴각하여 가덕도에 상륙했다가 매복해있던 일본군에게 크게 당했다.

 

이후 후방까지 철수했는데,

음력 7월 15일, 칠천량에서 새벽을 틈탄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칠천량 해전이었다.

 

이순신에게 한산도 등지에서 호되게 당했던 장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일본군이었다.

결국 모든 거북선과, 판옥선 100여척, 조선수군 1만명 이상이 일본군에게 당하고 만다.

(야간에 적을 감시할 척후병을 세우지 않았는데, 전날 원균이 술을 엄청 마셨는 말이 있다)

 

거의 학살 수준이었고 일본군은 큰 피해없이 엄청난 전과를 거두며

이순신과 조선수군에게 그야말로 제대로 복수하게 된다.

 

원균은 도망가다가 육지에 상륙해 배를 버리고 달아나려 했지만,

결국 일본군에게 추격당해 그의 아들 원사웅과 함께 전사하였으며,

 

경상우수사 배설이 이끌고 후퇴한 12척의 판옥선을 제외한 조선 수군은

 

완전히 붕괴되고 만다.

 

 

 

(중간에 이어서 계속...)

 

 

 

 

 

 

 

 

 



 

 

 

 

 

 

 

 

 

 

 

 

 

- 지난 줄거리 -

 

본격적으로 남하를 시작한 조선군!

화차의 활약과 함께 남하를 저지하려는 일본군을 무찌르고

강릉을 수복하는데 성공한다.

 

뒤이어 많은 일본군을 전멸시키고 대구를 거쳐

소모전을 진행하면서까지 남하하려는 찰나,

일본군이 한반도 남부지역에 상륙하면서 다시한번 긴장이 고조 되는데....

 

 

 

 

일본군이 와조요새에 상륙!!!!

 

지난 시간에 설명한 것 처럼, 와조란 '왜성'을 뜻한다.

그놈의 왜성... 오늘날 까지도 남아있는데,

아무튼 저 요새가 문제다.

 

 

 

 

 

 

 

 

일단 조총병 4부대가 덜컥 생겼다는건가...

저기 어두운 곳에도 병력이 늘어났을 수 있는데...

 

일단 대구를 몰아치자.

 

일본녀석들, '쇼부(승부)'닷!

 

바다를 지키는 우리 함선들, 어서 모이라구!!!

 

 

 

 

 

 

포격 시작!!!!

 

바다는 일본이 아닌 우리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수륙병진작전은 우리가 사용한다!!!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칠천량 해전에서 패하면서 상황이 급 반전되었었지;;;ㄷㄷ

 

원균 진짜.ㅠㅠ

그 해전에서 죽었으니 뭐라고도 못하겠고;;;;

이일도 아니고 진짜;;;

 

(참고글 : 문명5-(#2-3) 탄금대 전투 : (1) 신립과 이일, http://blog.daum.net/smileru/8887955)

 

 

 

 

 

 

 

 

 

해상에서 상륙한 일본 병력들을 견제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해상 포격으로는 충분히 견제하기 어렵다.

 

그래도 이렇게 '기스'를 내줘야 한다.

 

(참고로 '기스'는 일본말;; '흠집'으로 하자.ㅋ)

 

 

 

 

 

 

 

 

아무튼 그렇게 흠집을 내주면,

화차가 쓸어버리면 되니까~~

 

으랏차차!!

 

 

 

 

 

 

 

 

(이미 지워졌고,)

 

너도!!!!

 

 

 

 

 

 

 

 

아, 이녀석들은 흠집이 안난 녀석들이라 못보냈다.

아쉽군. 쳇.

 

 

 

 

 

 

 

우리의 화포도 사용해주자.

 

게임 설정상 신식 대포이긴 하지만, 아무튼 뭐.ㅋㅋ

 

 

 

 

 

 

 

우오, 역시 도시에는 화포가 딱!

 

원래 우리도시라 포격하기 좀 그렇긴 하다만 어쩌겠어.ㅠ

 

 

 

 

 

 

 

 

한편 남해의 우리 수군들은 여전히 일본군을 상대로 사격훈련 놀이를 하며

상륙하는 일본군들이 없나 감시하고 있었는데....

 

 

 

 

 

 

 

 

 

우옷, 이게 뭐야. 갑자기 등장한 일본 캐러벨! 두척!!!

 

이동능력이 좋은 캐러벨이다보니 쑥 나타나는구만!

 

잡아줘야지 또!

 

 

 

 

 

 

 

 

헐, 이게 뭐야. 4대나????

 

이거 피해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겠는걸...

그나마 거북선 한대는 상태도 좋지 않은데....

 

 

 

 

 

 

 

 

 

급히 동해의 우리 함선들도 남해로 집결!!!

이렇게 큰 해전이 없었다!!

 

전라도 지방으로 서진하는 일본 함대!!!

 

남해를 넘겨줄수는 없지!!!

 

 

 

 

 

 

 

 

1597년 음력 7월 15일,

조선수군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칠천량해전에서의 참패로 남해의 재해권이 일본에게 완전히 넘어가게 되면서

일본의 보급은 비로소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하였고,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은 힘을 얻게 된다.

 

따라서 정유재란의 발발을

14만의 일본군이 부산지역 왜성에 상륙한 1597년 초가 아닌,

일본군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칠천량 해전 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재해권을 지켜냈다면, 일본군이 그렇게 움직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큰 전투는 칠천량 해전 이후부터 진행된다)

 

 

 

여튼 상황이 그리 되자 조선 조정은

1주일 뒤인 음력 7월 22일에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임진년 승첩이 있은 뒤부터 업적이 크게 떨치어 변방군사들이 만리장성처럼 (이순신을) 든든히 믿었는데,

지난번에 그대의 직할을 갈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하도록 하였던 것은

역시 사람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와

그리하여 오늘날 이같이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라.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생략)"

 

- 선조, 기복수직교서 중

 

이렇게 말하며 이순신을 다시 불러들였던 선조였지만,

이순신이 전선을 다시 수습하고 보니 판옥선 12척에 후에 확보한 1척을 추가해

총 13척의 전선밖에 남아있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수군을 아예 폐지하려 하였는데,

이순신은 "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나이다." 라는 유명한 장계로 그를 막는다.

 

한편 일본 수군은 몇 척의 전선으로 조선 수군을 간보며

조선 수군의 배가 13척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는데,

 

그 때마다 삼도수군통제사로 돌아온 이순신은

일본 수군 몇척을 격퇴하면서 조금씩 뒤로 후퇴하며

8월부터 9월까지 원하는 전장으로 일본군을 이끈다.

일부러 자신이 겨우 13척만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출한 것이었다.

 

이순신이 돌아왔지만, 겨우 13척의 전선만 남았다는 것을 확인한 일본군은

자신있게 조선 수군을 향해 대형함 133척, 소형함 200척, 총 333척의 전선을 이동시키는데,

 

이에 대한 보고를 받은 이순신은 다시한번 그 유명한 말,

 

'필사즉생, 필생즉사'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라는 말을 병사들에게 하며 13척의 배를 이끌고

 

1597년 9월, 출정한다. 

 

 

:

 

(아래에 이어서 계속)

 

 

 

 

 

 

 

그래도 한두척은 남았다.

견제를 또 계속 해주긴 해줘야 되니까....

 

아무래도 지금 육지에서의 승리가 중요하긴 하거든.

선조처럼 '수군 폐지론'은 아니다.

 

솔직히 문명 게임에서는 육군이 훨씬 중요하잖아!

 

 

 

 

 

 

 

일단 우리 사정권에 들어온 일본 함선 하나를 처리해주자.

 

간보지 말라구.

 

 

 

 

 

 

 

요것이 바로 학익진!!!!!!!!

 

 

 

 

 

 

 

 

격침!!!!ㅋ

 

 

 

 

 

 

 

 

 

 

저 멀리에도 포격해주고~~~~

 

쓸어버리자구!!!!!

 

 

 

 

 

 

육지에서의 공격도 계속중이다.

 

우리 화차가 우호유닛 보너스에, 위대한 장군 보너스에,

그동한 업된 경험치로 인한 평지 공격 보너스 까지!!!

 

 

 

 

 

 

 

 

당연히 일본군 전멸!

업그레이드를 어느쪽으로 해줄까나...

 

남부지방은 전반적으로 험지니까 '탄막'으로?

 

 

 

 

 

 

 

 

일제사격으로 해주자.

 

일본군이 버티기에 들어간 상황이기 때문에 요새화된 유닛을 공격하는데 유리한 것이 더 좋다.

 

실제로 일본군은 행주대첩 이후, 칠천량해전 전까지

왜성에 틀어박혀 있었고, 우리는 요새화된 그들을 공격하는 쪽으로 전술이 맞춰졌었다.

영 골치아팠었지... 

 

 

 

 

 

 

 

 

 

 

 

 

이제 승부를 보자.

 

공성 병력들을 모두 성으로 집중해주고!!!

 

 

 

 

 

 

 

 

피해를 입더라도 병력들을 진격!.... 하고 싶은데 이건 좀 아닌가?-_-;

 

 

 

 

 

 

 

아무튼 대구 함락은 금방이다.

 

전주쪽도 본격 남하를 시작하자.

 

양쪽 다 커버칠 자신이 없어서

전주의 사거리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내려가도 될 듯 하다.

 

 

 

 

 

 

 

 

북방은 안정적인 상황.

 

병력들을 쭉쭉 모집해주자~

의주와 함흥에서는 상업 건물들을 건설할 정도로 상황이 나아졌다.

 

 

 

 

 

 

 

으잉? 이게 뭐야. 명나라 군대인가?????

 

뭐 다 끝나가는데 이제 오는거야????

 

좀 아쉬운게, 이번 연재 하면서 명나라 녀석들 이야기를 왕창 다뤄줬어야 하는데....

 

다음 주에 다뤄야지.

 

 

 

 

 

 

 

나도 알아.

 

넌 한 거 없는거 알지?

 

은근 도와준것 처럼 얘기하네?

 

 

 

 

 

 

 

 

누르하치와는 평화협정이후 별 일은 없는 상황.

 

'당신과 전쟁한 경험이 있지만, 원한을 가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신이 소유한 영토를 탐내고 있습니다!'

 

뭐지;;; 아무튼 저기 유목 민족들의 확장적 영토 정책은 참 골치라니깐.

 

 

 

 

 

 

 

 

 

 

엇, 아까 아래에 있던 일본 수군들이 포착!!!

 

여기서 싸운다!!!!

 

딱걸렸어!!!

 

 

 

 

 

 

이순신이 한달동안 공을 들여가며,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켜가며,

칠천량 해전 이후 자신감에 부풀어 있고 자신에 대한 '진짜 복수'를 꿈꾸고 있을

일본군을 13척의 배로 유인하며 이동한 곳이 바로 '명량'이었다.

 

명량에 있는 '울돌목'은 조선의 바다에서 조류의 흐름이 가장 강하고

암초들 때문에 조류가 소용돌이치기까지 하는 곳이었다.

일본군도 명량 울돌목의 조류를 모르지는 않았으나, 일본 수군도 마찬가지로 해안이 복잡하고

특히 조류가 강한 '미야쿠보'지역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울돌목'을 크게 두려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울돌목'의 조류 방향의 변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명량 해협에 들어선 일본군은 늘어선 등뒤에서 밀려오는 조류, 순조를 타고

13척의 조선 함대를 향해 빠르게 진격해 왔는데, 그 순간 조선 수군이 그들을 명량해협에서 막아서며 공격이 시작되었다.

 

 

 

 

좁은 해협에서 싸우게 되었기 때문에 일본군이 수적 우위를 이용하여

조선수군을 포위하기는 어렵게 된 상황이었지만, 그 자체만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곧 오후가 되자 조류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조류의 방향이 바뀌며 일본군은 역류, 즉 역조를 거슬러 올라가는 모양새가 되었고,

그 역조가 너무 거세서 조선 수군에게 접근하기 힘들어지면서,

조선 수군과 제대로 붙지도 못한채 조선 수군의 포격을 얻어맞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국 300척이 넘는 전선들이 뒤로 돌아 퇴각하려 했지만

이미 좁은 해협에 너무 많은 배가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배들은 마구 뒤엉켰고,

반대로 조선군은 순조를 타고, 또 바닥이 납작해 방향과 속도조절이 용이한 판옥선을 통해,

13척의 판옥선이 300여척의 일본 함대를 쫓아가고 사이를 누비며 포격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결국 일본 수군 대형함 133척중 33척이 완전히 침몰했고 나머지 배도 큰 피해를 입었으며,

결과적으로 전체 333척중 절반 정도가 침몰하고, 18,466명의 일본군이 전사한다.

 

조선군은 한척의 배도 침몰하지 않았음은 물론, 전사자도 수십명 뿐이었다.

바로 1597년 9월 16일의 명량해전이었다.

 

 

이 전투로 조선수군은 칠천량 해전을 완전히 설욕하게 된다.

 

무엇보다 남해안의 재해권을 2달만에 다시 되찾게 되었고,

 

결국 일본군은 다시 보급에 문제를 겪으면서 결국 전라도 진출을 중단,

다시 왜성으로 들어가 전쟁이 끝날때까지 농성만 하는 신세가 된다.

 

 

 

 

 

그래 그렇지!!

 

그게 너희의 최후라고! 역사에도 잘 쓰여 있거든?

 

 

 

 

 

 

 

격파!!!ㅋㅋ

 

학익진이고 뭐고 필요 없어~~~

 

사실 역사속에서는 학익진을 펼칠 전선도 없었고 말이야.. 13척 뿐이니!

여튼 13척으로 133척, 소형선까지 해서 333척을 무찌른건,

아무리 화포가 우수하고 해도 정말 굉장한 일이야?

조선의 바다를 잘 이용한 것이고....

 

 

:

 

 

그래서 상대방의 바다를 측량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금지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에야 배의 성능이 좋으니 조류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지만,

암초 지하지형을 확인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서해와 남해는 낮은 수심에 복잡한 해안선이 펼쳐져 있고,

특히 동해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잠수함들이 활동 할 때 숨기가 좋고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특정 지역에서는 잠수함을 탐지하기 어려워 지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바닷속의 지형과 조류의 양상등이 상대국에 알려지면 안되고 말이다.

 

왜 서해와 동해에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의 잠수함이 수시로 왔다갔다 한다지?

얼마나 자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한다면 다 그런 바닷속 특성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일본땅이 보인다. 나가사키!!

350년후 핵폭탄이 떨어지게 될 곳이구만....

 

뭐 그 때 희생된 무고한 일본 국민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임진왜란때의 희생자는 핵폭탄 희생자보다 수배, 열몇배는 많은걸...

 

수천명의 무고한 조선인들의 '귀'와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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