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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 사람이 열리는 나무 - 7부 -
게시물ID : humorbest_6574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14
조회수 : 1551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4/09 23:07:46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4/09 21:40:31



끝도 없이 이어진 길을 뛰고 또 뛰어도, 지연이를 잡을 수 없을 듯 했다.
하늘을 유영하듯 지연이의 몸은 유유히 떠내려갔다.

그 몸은 점차 도로와 거리를 벌리는 방향으로 뻗어있는지,

지연이는 곧장 산 너머로 몸을 띄웠고, 도로는 지연이의
진로와 평행하지 않고 점차적으로 거리가 벌어지는 사선을 그렸다.

‘이렇게 멍청하게 바른 길로만 달려갈 수는 없다.’

오른켠의 풀숲으로 냅다 발을 찼다.

고만고만하게 자란 풀의 키가 눈을 현혹시켰을까.
생각한 것보다 몸이 깊이 꺼져 내려가, 착지하는 발목이 휘청였다.

가슴에서 어깨까지 솟아있는 풀 속을 헤엄치듯 지연이를 향해 달렸다.

이게 모두 편집장의 탓이었다.
그깟 3류 찌라시 정보로 사람을 이런 흉흉한 동네에 보내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소스도 명확하지 않은 정보였잖아. 오지 말았어야해. 다른 일도 할 것이 산더미 같았다고.’

“김성규 전 비서실장 자살사건 기억해?”

편집장의 물음에 그게 뭐 어쨌냐고 물어볼 것을.
왜 “그럼요. 당연히 기억하죠.” 하고 대답했을까.

“그 당시에 김성규씨, 자살 현장에선 아무도 취재사진 따오지 않은 것도 알고 있냐?”
“사인이 뭐였죠?”
“자기 고향에서 목을 맸는데, 그게 동네 한복판에 있는 향나무래.”
“그런 자살이었어요?”
“가볼래?”
“예?”
“김성규씨가 목을 맨 장소에서 조약돌이 얹어있는 유서가 나왔기 때문에 명백한 자살이라고, 수사 종결 됐던 건 알아?”
“그런 건 신문에서도 자세하게 다루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그래. 근데, 그 유서가 아주 골 때려.”

유서 따위가 뭐가 어쨌냐. 그런 취재는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에서 하면 되지 않느냐.
바보처럼 편집장 비위나 살살 맞추며, 신기하네요. 재미있는 취재네요.

편집장이 나를 보냈다는 말도 내 핑계인가.

이번 여름에 대비해서 살짝 흥 돋는 납량특집 취재로 할까봐요.
분위기 잡아가며, 생각해보면 이 미친 산골동네에 가겠다고 자처한 꼴이잖은가.

죄 없는 지연이까지.

“저, 선배랑 단 둘이서만 가는 거에요?”

무슨 일이 생기면 내 탓이다.
모두 내 탓이다.

“유서 문을 좀 읽어 봤는데 말이야. 이게 정말 기사감이야.
김성규씨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밖에는 말 못하지 이런 상황이면. 들어봐 여기부터 읽어줄게.”

「청송마을 천령수 향나무에는 사람이 열린다는 소문이 있다. 천년동안 숱한 전쟁의 역사 속
사람들 주검의 산이 그 향나무 앞에 쌓여왔다. 가슴앓이 하던 아낙, 과부들 자살도
줄줄이 이 나무에서 이루어졌다. 하루에 서너 구의 시체를 매달고 있었던 날도 있더라는 구전.
이전 까지는 믿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 실을 내 몸소 체험한다.

이 나무는 사람이 이끈다. 나는 자살을 선택하려 고향땅에 찾아 든 것이 아니다만,
이 나무는 나의 목을 자신의 팔에 매달고 싶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증거로, 나는 이 향나무 주변만을 맴돌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 나무에 결박당했다.

이 나무는 자신의 표적을 놓이지 않을 샘인 듯,
나를 보이지 않는 밧줄로 엮어 가축처럼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가지고 놀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죽으나, 그것을 자살이되 자살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나무에게 살해당한다. 이 나무가 내 목숨을 원하기에 나는 이곳에 목을 건다.

어차피 나는 나무를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

“재미있네요. 편집장님. 가볼게요. 한 번.”
“갈 때, 지연이도 좀 같이 가.”
“혼자서도 괜찮은데요?”
“가서 일도 좀 가르쳐 주고 그래라. 예쁜 여후배 좀 챙겨준다 생각하고.”
“그래요. 그럼. 좋죠. 뭐!”

좋죠. 뭐? 등신새끼. 좋죠 뭐가 아니잖아.

눈을 지연이에게만 고정한 채 정신없이 앞길을 헤쳤다.
푹푹 꺼지는 풀길의 물웅덩이로 종아리까지 젖어버렸다.

“선배, 저 내려줘요.”

또 지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녹음기는 도로위에 버려둔 채 왔기 때문에 들리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선배, 저 내려줘요.”
“어떻게 들리는 거냐고!”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를 쫓아 등을 돌아봤을 때, 김성규씨 유서 글이 떠올랐다.

‘나를 보이지 않는 밧줄로 엮어 가축처럼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가지고 놀고 있다.’

그 헛소리의 실체가 이런 것인가.

사방천지의 풀이며 능선은 사라지고, 눈앞에는 돌멩이가 차곡차곡 쌓인 돌담과
덩치가 커다란 향나무가 우뚝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향나무에는 지연이의 몸이 목을 매단 사람처럼 걸려있었다.
달빛에 비추어 보이는 지연이의 목에는 밧줄 따위는 없었으나, 그 모습이 대롱거리는 게
나뭇가지에 목을 걸은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저 허공에 떠있을 뿐인 그 모습에
넋을 잃어야했다.

“선배, 저 내려줘요.”

나무로 달려가, 지연이의 발을 잡아당기자, 지연이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퍽이나 무거운 지연이의 몸을 받아내다가 나까지 바닥을 나뒹굴고 나서야 주변이
좀 더 보여오기 시작했다.

돌담길을 따라 둥그렇게 패인자국. 달그림자 운영이 옴폭 패인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돌담을 따라서 수백도 넘어 보이는 자국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발자국?’

나는 계속해서 이 담 안에만 있었던 것인가.
지연이를 살포시 땅에 내려놓고, 돌담길 발자국에 발을 올려보니,
내 발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 7부 끝 8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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