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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사 ] 닥터콜 19화 리뷰 (펌)
게시물ID : humorbest_8058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쇠소깍
추천 : 69
조회수 : 5112회
댓글수 : 7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12/24 22:50:45
원본글 작성시간 : 2013/12/24 11:02:46
응답하라1994, 성나정 거절보다 무서운 이 여자의 오지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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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이런 의문을 가져봅니다. 혹여 성나정-쓰레기가 재결합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권한이 자동으로 칠봉에게 주어지는 걸까? 라고요. 소위 '어장관리 여주'가 존재한다는 대부분의 트랜디 드라마는 남자 둘의 구애에 어찌할 줄 모르는 여주인공의 갈등으로 기승전을 채우잖습니까? 하지만 성나정은 부전승으로나마 칠봉을 고려해보지 않았어요. 아니 그런 뉘앙스조차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죠. 명백히 말하면 그녀는 칠봉과 쓰레기를 놓고 고민을 한적이 없습니다.

커플로서의 성나정-칠봉은 굉장히 중대한 결점을 하나 갖고 있는데 이 커플에겐 성적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쁘고 풋풋하지만, 성인남녀의 야릇함이 없어요. 스킨십도 꽤 잦았고 고백도 수차례였고 둘만의 시간도 몇 번이나 가졌는데 무려 6년간 나정은 칠봉을 남자로 바라보지 않았어요. 키스를 받아도 고백을 받아도 그냥 무덤덤해요. 차라리 밀어내고 선을 그었더라면 희망이나마 있었을까요. 그건 칠봉을 남자로 의식한다는 증거니까요. 경고 신호가 들어왔다면 정색하며 그를 밀어내고 차갑게 외면했을 거예요. 그러나 나정은 고백과 키스를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해맑게 웃으며 친구의 악수를 청하죠. 관계의 전환을 전혀 고려해보지 않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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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에서 제작진은 아주 능동적으로 성을 이야기하고 또 그려냅니다. 대놓고 섹스를 화제에 올려 수다를 떨고 섹스 매니아니 콘돔이니 하는 낯뜨거운 대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죠. 전작 응답하라 1997의 그 유명한 "하드 사왔어?" 씬을 돌이켜보면 남녀주인공의 성적 긴장감은 응답 시리즈의 필수 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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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응답하라 1994의 9회를 역대 최고의 회차라고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이날의 완성도가 뛰어났던 건 오히려 스킨십에 거부감을 느끼는 행위에서 성적 긴장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이에요. 거부를 하고 불편해하는데도 이보다 더 야릇할 수가 없었습니다. 쓰레기 오빠에게 속옷이 보일까 필사적으로 빗물에 젖은 옷을 떼어내던 성나정과 실없는 농담을 던지고선 쓰게 웃던 쓰레기를 생각해보세요.

19회에서 성나정은 꽤 많은 시간을 칠봉과 할애합니다. 한쪽에서 폐인이 되어 죽어가는 쓰레기를 돌아보면 얄미워도 이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죠. 더군다나 남자들이 침을 흘리는 치어리더의 구애를 받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다." 라고 잘라 말했던. 그리고 모든 남자들이 배워야 할 성실한 연인의 교본이라 부를 만한 한마디. "니가 왜?" 씬등을 통해 단호한 거절의 의사를 밝혀왔던 쓰레기에 비하면 나정의 이 지나친 오지랖은 어장관리라 부를 만큼 불성실해 보이기 짝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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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정이 칠봉과 얼마나 많은 공간을 그리고 시간을 함께 보냈느냐가 아닌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전혀 관계의 진전이 없었다는 부분입니다. 나정과 칠봉이 이날 함께한 공간은 모두 쓰레기와 나정이 거쳐 갔던 공간들이었죠. 영화관, 병원, 그리고 단둘만의 드라이브. 영화관은 나정이 그 웃긴 코미디 영화에 집중조차 하지 못할 만큼 옆자리의 그 남자를 의식하던 공간이었고 병원은 쓰레기의 고백을 받으며 최고의 환희에 울음을 터뜨리던 공간이었습니다.
 
계속 깨는 발언만 늘어놓던 쓰레기 오빠가 심지어 휴짓조각을 입에 묻히고 있는데도 나정인 푸석한 그의 얼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뻗은 손에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성인남녀의 설렘으로 채워지던 자동차 안에서 나정이는 칠봉과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오로지 운전하는 것에 여념이 없었죠. 그녀를 긴장하게 하는 건 핸들이었지 옆자리의 그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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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늘어진 티 쪼가리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자던 나정이가 분홍색 잠옷을 입고 와선 쓰레기 오빠의 방문을 얌전하게 기다립니다. "내도 엄연한 여자다! 여자맨치 대해라."를 외치듯이 말이죠. 하지만 칠봉이 앞에서 나정은 자신의 여성성을 포기합니다. 너무하다 싶은 폼으로 결핍을 채우듯 우걱우걱 게를 씹어 삼키는 데 집중해선 칠봉이 왔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하죠. 그가 손을 뻗어 입술에 묻은 게살을 떼어주며 무드를 만들어보려 하는데도 나정은 언제나 같은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입니다. 고백을 받을 때와 똑같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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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하게도 제작진은 그 순간을 지켜보는 하숙집 친구들의 정적을 넣음으로써 그만큼의 반응보다 미약하거나 같은, 그래서 전혀 그를 의식하지 않는 나정일 가르쳐주죠. 그리고 나정은 그런 무드 이후에도 그의 이성이 되어주지 않아요. 열 손가락 다 사용해서 무자비하게 게를 먹어치우죠. 언젠가 그녀의 무릎에 기대 멜론을 먹는 쓰레기 오빠 때문에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진 나정의 동요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건조한 반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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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눈에 들어오냐고. 영화가. 쓰레기는 웃겨 죽드라. 내는 오빠가 태어나서 그렇게 크게 웃는 거 처음 봤다." 쓰레기와 영화를 보고 왔던 날 나정은 허탈한 얼굴로 그가 나를 여자로 보고 있지 않음을 서러워합니다. 실은 완전히 오해였지만. "내를 여자로 안 보는 거 맞제. 기제?" 선무당 윤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통곡하던 나정이. 남녀가 완성되기 위해선 서로를 이성으로 인식하는 것이 첫걸음이라는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정입니다.
 
이런 나정이 옆자리에 앉은 칠봉을 아랑곳하지 않고 영화를 봤습니다. 너무나도 영화가 재밌어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옆자리의 칠봉이 자신을 떠나간다는데도 무관심할 정도로요. 쓰레기 오빠와 영화를 볼 땐 너무나 긴장해서 팝콘이 목구멍에 들어가는지 어디에 들어가는지도 몰랐다던 나정이가 엔딩크레딧조차 놓치기 싫을만큼 내용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쓰레기를 응시하며 얌전히 콜라를 빨아들이던 나정이가 게걸스럽게 팝콘을 먹어치우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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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나정은 같은 장소에서 또 한 번의 고백을 듣습니다. 칠봉은 여전히 나정을 잊지 못하고 있노라 말했고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널 쭈욱 사랑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죠. 무려 6년간 나를 잊지 못한 남자. 거기다 김혜수의 플러스유에도 출연한다는 메이저리거의 고백을 받는 순간임에도 나정인 그저 무감동합니다. 쓰레기에게 고백을 받으며 환희로 차오르던 눈물을 어찌할 바 몰라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다가 그의 품에 안기던, 그토록 절정의 감정을 표현해냈던 나정이가 너무나 담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죠.

나정이의 대답을 일부러 생략시켰건 보여진 그 모습이 다였건 간에 사실 그 대응만으로도 나정이는 거절보다 잔인한 거부 의사를 표현했던 셈입니다. 몸과 마음이 그를 원하지 않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단호하게 칠봉을 끊어내지 못하고 그를 계속 곁에 두는 나정이를 역설적으로 풀이해본다면 그를 차단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 머릿속에 아무런 경고 신호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무려 6년간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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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릴 쓰다듬던 오빠의 손. 오빠의 숨소리. 오빠의 냄새. 오빤 분명 그대로였는데 그날 난 오빠가 낯설어졌다." 그날 밤. 병원 침대 위에서 그의 품에 안겨있을 때 나정에게 다가온 첫 번째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쓰레기 오빠는 남자라는 자각이었습니다. 그의 체온과 손길과 품을 낯설게 느끼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나정의 사랑은 눈을 뜨게 되죠. 이후 나정은 끊임없이 그와 자신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임을 강조합니다. 8회 공중전화 고백에서 단순한 심리테스트에 살을 붙여 아이를 낳고 종족 번식까지 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거는 나정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던가요. "야는 식구 아이가. 식구." 그것은 결국 남매의 선을 넘지 않으려는 쓰레기를 도발한 것이었죠. 오빠와 나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라고.

분명 나정인 칠봉을 밀어내지도 거부하지도 불쾌해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칠봉에게 희망적인 일일까요. 현재의 상태에서 칠봉을 밀어내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양심이 시켜서지 다른 이유가 아닐 텐데요. 어쩌면 칠봉이야말로 주머니에 손을 꽂고 나정에게 따져 물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구가 멸망을 해." 고백보다 먼저여야 했던 그것.
 
 
 

http://doctorcall.tistory.com/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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