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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방과 문.
게시물ID : humorbest_8231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hinejade
추천 : 35
조회수 : 2145회
댓글수 : 1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4/01/20 03:02:00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1/20 00:39:06

본격! 끝까지 읽기 힘든 글!

용자들이여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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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문



하늘에는 솜사탕 같은 구름들이 드문드문 떠있었다. 

그 아래에는 넓은 평원이 있었다. 너무너무 넓어서 

그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가끔씩 높은 앨범 더미들 때문에도 

지평선이 보이지 않았다.

평원은 앨범의 천국이었다. 북쪽에는 그것들의 산까지 있었다. 

조금만 모양을 다듬으면 대관령 정도쯤은 만들 수 있을만한 양은 부지기수였다. 

앨범언덕들은 가지런히 쌓여 있는 것도 있었고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것들도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몇 개를 펼쳐봤다. 

그 와중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사이에서 하나를 뽑다가 앨범 더미에 깔리기도 했다.

나는 평원을 주욱 훑어봤다. 어딘가에 문이 있을 것이다. 

이번 문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됐다. 문들은 매번 기대를 져 버리지 않았다. 

위태위태하게 쌓여있는 앨범 모퉁이를 지났다. 

그러자 앨범으로 만들어진 뒷골목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끝엔 내가 찾던 문이 있었다.

“여기 있었군.”

항상 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양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이것도 내 기대를 져 버리지 않았다. 

문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말 그대로 배배꼬여 있었다. 

뒤로는 앨범으로 만들어진 뒷골목이 최소한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있었다. 

이 뒷골목엔 문만 있었다. 뒤에는 어떠한 방도 어떠한 공간도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이 상황을 즐기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 함박웃음은 나타나자마자 일그러졌다. 

문은 지금이라도 당장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배배꼬인 구조도 한몫했다. 나는 눈매를 찡그리고는 문을 돌기 시작했다. 

들어가기가 불안했지만 들어가야만 했다. 

한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 다섯 바퀴. 여섯 바퀴. 여섯 바퀴째에 나는 열고 들어갔다. 

물론 인사 한마디를 빼놓지 않고.

“안녕하세요!”




방 한가운데에서 막 목에 밧줄을 매려고 하는 사람이 날 쳐다봤다. 

그는 멋진 세로줄 정장을 빼입었고 머리엔 헤어 젤을 바른 멋쟁이였다. 

비싸 보이는 구두를 신고 작은 의자 위에 올라가 서 있었으며 

두 손에는 밧줄 고리가 들려있었다. 물론 그 고리의 끝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전형적인 자살기도였다.

그는 당황스러웠는지 머뭇거렸다. 나는 최대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괜찮으니깐 하던 일부터 보시죠.”

그는 나와 밧줄을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서 내려왔다. 

그의 넥타이는 명품 브랜드 제품이었다.

“죄송하지만 누구시죠?”

“예! 예? 아, 예. 음. 그러니깐. 어. 으. 어. 뭐라고요?”

나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이번엔 뭐가 좋을까.

“누구시죠?”

“아! 제가 누구냐고요? 아. 어. 음. 아! 그래. 제 이름은 돈키호테에요. 돈키호테.”

“방금 이름을 뭐로 정할지 무척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는데요?”

“에이. 처음 본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하면 실례에요.”

남자는 무척이나 피곤한 듯이 보였다. 

그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 손님을 위해 커피를 타오겠다며 

의자를 지나 방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아 전 블랙으로요! 아! 두 스푼이면 돼요. 예? 에, 그냥 블랙이요. 예. 감사합니다.”

약 세평될만한 방은 온통 실타래로 엉켜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엉킨 실타래들이 천장까지 쌓여있었다. 

그곳엔 온갖 종류의 실들이 뒤엉켜 있었는데 평범한 실부터 

강철 와이어까지 없는 게 없었다. 내가 어떻게 들어 온지도 신기했다.

멋쟁이가 양손에 머그컵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

“그런데 어디서 들어오셨...” 나는 재빨리 매달린 밧줄을 가리켰다. “흐음. 제가 방해 했는지 모르겠네요. 미안해요.”

그는 세 번째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한숨 쉬는데 이력이 난 듯 다시 한숨을 쉬었다.

“전 여기서 이 엉킨 실들을 푸는 일을 하죠.”

나는 방안을 한번 주욱 둘러봤다.

“이런. 꽤 힘들겠네요.” “그리고 포기했어요.”

“그래도. 음. 어. 으. 음. 꽤. 평범한 일인데요?”

“최소한 줄다리기용 밧줄까지는 괜찮았지요.”

나는 줄다리기용 밧줄을 발견해냈다.

“흐음. 솜씨가 대단하신데요?”

“사실 거기까지 푼 것도 참을 인자를 만 오천 육백 개나 먹어야 했어요.”

“쌀값이 굳었겠네요.”

“계속 풀어오면서 생각했죠. 이 실만 풀면 좀 괜찮아질 거야. 좀 쉬워질 거야. 좀 편안할거야. 

그러면서 줄다리기용 밧줄까지 풀었는데 다음 줄은 뭐가 나온 줄 아세요?”

“강철 와이어?”

“그건 좀 낮네요. 곧아서 잘 빠지거든요. 그 다음은 유조선 정박용 밧줄이었어요.”

“저런 젠장.”

“굵기가 제 머리통보다도 더 굵죠.”

“그래서 시도는 해 봤나요?”

“해보긴 해봤죠. 눈물을 이억 번 마신다음에 시작했죠.”

“시작하고서?”

“정확히 두 번하고 포기했어요. 세 번째 시도는 안했어요. 물론 네 번째도 안했고요. 

포기할게 뻔하니까요. 난 지칠대로 지쳤어요. 

몸도 마음도 이젠 지쳐서 뭐든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죽기로 했어요.”

커피는 꽤 맛있었다.

“커피향이 정말 좋군요. 흐음. 제가 뭘 도와드리고 싶은데 뭐 도와드릴 일 없나요?”

“아! 좋아요. 그럼 같이 죽어주시겠어요? 꽤 쓸쓸했거든요.”

“이야!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흐음. 밧줄 여분이 있나요?”

나는 멋쟁이와 나란히 의자위에 올라갔다.

그는 밧줄을 잡고서 말했다.

“유언을 남기고 싶어요. 들어주실래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선서를 하는듯한 동작으로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승진을 못할 거예요. 그래서 일 계급 특진을 하려고 

이 밧줄을 준비했죠. 아 상사님. 나 갈 길에 진달래꽃이나 뿌려주세요.”

멋쟁이는 지친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나도 미소를 지어줬다.

“이봐요. 돈키호테나리. 이제 우리가 뭘 할 줄 아시겠어요? 우린 구원 받을 거예요!”

나는 웃었다. 너무나 즐겁게.

“맞아요! 죽음을 이용해서 말이죠!”

“예?”

그는 내말을 듣자마자 안색이 싹 바뀌더니 갑자기 혼란스러워 하다가 

결국 뒤로 넘어졌다. 멋쟁이는 뒤통수를 내 눈앞에 들이대면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피나요? 피나요? 피나냐고요!”

“안 나는데요?”

“아 다행이다.”

멋쟁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방금 전 상황이 생각났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죽음을 이용 한다고요?”

“예! 그 말엔 얼마나 큰 뜻이 함축되어있는지 몰라요. 만화책에서 베낀 말이지만요.”

“죽음을 이용한다고요?”

“예? 예!”

“죽음을 이용한다고요?”

“예!”

“죽음을 이용한다고요?”

“예.”

나는 미소를 잃지 않았고 그는 찡그린 인상을 잃지 않았다. 

멋쟁이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심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물어봤다.

“죽음마저 이용한다고요?”

나는 인상을 찡그리고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음. 약간의 문법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맞는 것 같네요.”

그때 천지를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깡총! 오, 이런 젠장. 

깡총! 나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봤다. 깡총! 나일론 줄. 깡총! 

줄다리기용 밧줄. 깡총! 낚싯줄. 깡총! 털실. 깡총! 강철 와이어. 

깡총! 아무것도 없는 문. 깡총! 고무줄. 깡총! 잠깐! 깡총! 문?

“아, 예. 음. 그러니깐. 어. 으. 아. 저 가야되겠어요. 거북이가 오거든요.”

깡총!

“뭐라고요?”

깡총!

“안녕히. 커피는 고마웠어요.”

깡총!

“이봐요! 어딜 가는 거예요?”

깡총!

나는 아무것도 없는 문으로 달렸다. 그 문 너머로는 식사를 하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깡총!

나는 아무것도 없는 문을 훌쩍 통과해 버렸다. 그리고 뒤를 홱 돌아봤다.

깡.

깡총 소리는 뚝 끊겼다. 돌아본 자리에는 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온갖 소스 병이 들어있는 찬장만이 천장까지 닿아 있었다. 

나는 다시 뒤를 홱 돌아봤다. 그리고 동시에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노인은 노인다운 모습이었다. 머리 위는 설원이었지만 벗겨지지는 않았다. 

검버섯이 막 피어날 징조들이 보이는 피부에 이마에는 굵직굵직한 주름들이 잡혀있었고 

눈가에는 자글자글한 잔주름들이 있었다. 

약간 패인 볼을 빼고는 전형적인 정정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노인은 방 한가운데에서 식탁 앞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식사를 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 식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 보니 고추장에 밥을 비비고 있는 모습이었다. 

노인은 한손으로는 양푼을 잡고 한손으로는 열심히 숟가락으로 밥을 비비며 얼굴로는 나를 바라봤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한 번에 세 가지 일을 하는 건 좀 힘들지 않으세요?”

그는 아직도 비비고 있는 손을 쳐다보더니 허허하고 웃으며 식탁에서 손을 떼고 나에게 돌아앉았다. 

그리고 지긋한 눈빛과 함께 물었다.

“젊은이는 누군가?”

“흐음. 항상 그 질문엔 애를 먹죠.”

“허허. 희한하군. 나는 보시다시피 밥에 고추장을 비벼먹고 있는 노인이라네.”

“예! 예? 아, 예. 음. 그러니깐. 어. 으. 아! 매콤한 냄새가 나는 게 잘 비벼졌군요.”

어흠. 노인이 헛기침을 했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음. 어. 흐음. 그래서 아! 전 순신이에요. 이순신.”

노인이 놀랐다.

“오호. 이름한번 장군감이군.”

“감사합니다. 그런 소리 많이 듣죠.”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저통에서 숟가락 하나를 꺼내면서 말했다.

“식사는 하셨나?”

고추장은 햇살을 머금은 듯 빨갛고 매콤하며 달콤하고 새콤했다. 

나는 아직 삼키지도 못했지만 예의상 한 숟갈 더 입에 쑤셔 넣었다.

“이어 어마 마히느데오?”

“허허허. 웬만하면 삼킨 다음에 말을 하게나.”

꿀꺽!

“이거 정말 맛있는데요?”

식사가 끝나자 노인은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러 방 맞은편으로 갔다. 

그 사이에 나는 방을 한번 죽 훑어 봤다. 약 세평될만한 방은 네 면이 찬장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찬장에는 전 세계 아니 전 우주에서 모아 온 소스들이 있었다. 

고추장과 된장은 물론 있었고 케첩, 마요네즈, 타바스코, 칠리, 캐러멜, 에스파뇰 등 없는 게 없었다. 

모두 요리에 쓸 소스인 것 같았다.

나는 노인에게 말했다.

“우와! 이거 다 모으신 건가요?”

“그렇지. 당장이라도 비벼 먹을 수 있는 소스들이지.”

“죄송한데 잘못들은 것 같아서요. 뭐라고요?”

“난 이곳에서 맨밥에다가 소스들을 비벼먹는 일을 하고 있지. 

끼니때만 하는 거라 하루에 세 번밖에 안하지. 난 이 일이 정말 마음에 든다네. 

시간이 정말 많이 남아.”

“자 잠깐만요. 다른 요리는 안하세요?”

“전기밥솥밖에 없거든.”

노인이 전기밥솥을 가리켰다. 전기밥솥은 그와 함께 나이를 먹은 듯 밥이 지어지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았다.

“그래도 이렇게 소스들이 많으니 심심하지는 않겠네요. 

그런데 마요네즈에도 밥을 비벼 드셔보셨어요?”

“허허. 사양하겠네.”

“다행이네요. 절대로 드시지 마세요. 먹고 일주일동안 밥만 보면 토했어요.”

“자네도 파란만장하게 살았구먼.”

“그 사람이 정말 맛있게 먹고 있었거든요.”

“염려 말게. 나는 고추장을 제일 좋아하거든.”

“그 말 정말 듣고 싶었어요. 아! 이거 다 모으셨다면서요? 

그럼 여기 있는 거 다 드셔보셨겠네요? 아니 비벼 드셔보셨겠네요?”

“아니.”

“그럼 반 정돈 드셔보셨겠네요? 아니 비벼 드셔보셨겠네요?”

“아니.”

“그럼 얼마나 드셔보셨어요? 아니 비벼 드셔보셨어요?”

노인은 너무 당연한 듯이 말했다.

“물론 한 개지.”

“예? 그 한 개는 뭔데요?”

“당연히 고추장이지.”

“설마?”

“설마가 사람을 잡는 건 못 보았네만 가끔씩 뒤통수를 치긴 하지.”

“죄송하지만 몇 년 동안 여기서 일하셨어요?”

“62년.”

“그동안 고추장만?”

끄덕.

“계속?”

끄덕.

“왜요?”

“처음에는 아는 소스가 고추장밖에 없었다네. 그래서 고추장에만 비벼먹었다가 지금까지 온 걸세.”

“그럼 아직까지도 저 소스들을 모르세요? 저 이름표들은 누가 붙인 건가요?”

“물론 내가 붙였지. 이젠 나도 다 아는 소스들이이지.”

“그럼 왜 안 비벼 드세요?”

“이 나이 때까지 고추장만 먹고 살아왔네. 다른 걸 도전하기에는 이미 늦었어.”

“하지만” 노인이 말을 가로챘다. “또 맛없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럼 영감님. 영감님은 꿈이 없으신 거네요?”

“꿈?”

“예. 더 이상 아무도 없는 거잖아요.”

“꿈 꿀 나이는 지났네. 그리고 늙은이들 사전엔 꿈이란 없네. 

꿈이 없는 게 아니라 꿈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는 거라네.”

노인은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저 소스들을 왜 모으셨어요?”

순간 노인은 얼굴이 빨갛게 변하더니 냅다 소리를 질렀다.

“늙은이를 놀리면 못써!”

그 순간 갑자기 노인의 키가 불쑥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 발에 무지막지한 고통이 엄습했다. 내 입에선 비명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우왁!”

아무래도 내 발 밑에 문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우. 젠장. 누구든지 일단 안녕하세요?”

나는 일단 허공에 대고 인사부터 했다.







깡총! 소리가 벽 바로 밖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왜 문이 나타나질 않는 거지?”

나는 방 한가운데에 서서 짜증을 냈다. 이제 깡총거리는 소리는 방 주위를 돌고 있었다. 

약 세평될만한 방은 바닥, 벽, 천장까지 모두 회색 시멘트로 칠해져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먼지와 고뇌하는 청년밖에 없었다. 

내가 이방에 온지 얼마 안됐을 무렵, 정확히 내 발에서 통증이 누그러질 무렵 나는 이 청년을 발견했다. 

가끔씩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려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때리는 모습만 뺀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청년다운 청년이었다.

여러 번 말을 걸었지만 그는 처음 나를 한 번 힐끔 쳐다보더니 방을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신발을 벗고 발을 주무르면서 청년에게 말을 걸려 노력했지만 그는 계속 무시했다. 

나는 지루해 지기 시작했고 잠시 눈을 붙였다. 잠시 후 나를 깨운 건 깡총거리는 소리였다.

“문이 없을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절대로! 아니야! 믿기 싫어!”

나는 전후좌우상하를 다 살펴봤다. 심지어 허공에 대고 문에게 말을 걸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청년은 어느새 부턴가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잠시 거북이에게 내뱉는 욕지거리를 멈추자 그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 당신은 누구...” 나는 그의 말을 끊고 소리를 질렀다. “아까 도로시라고 말했잖아요!”

“아 그건 여자...” “이름이 아니에요! 그런 게 여성차별 발언이라고 하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고민 할게 한 가지 줄어들어서 다행이군요.”

깡총거리는 소리가 천장에서 드려왔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징조였다.

“아! 고맙군요. 제가 고민을 해결해 드렸으니 당신도 제 고민을 해결해 주시는 게 

당신이 배은망덕하고 파렴치한 사람이 아닌지 증명할 기회가 되겠네요. 

아니 최소한 같이 고민을 해주셨으면 정말, 정말, 정말 고마울 것 같군요. 

전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이게 제 고민이에요. 

도대체 지금까지 당신의 뇌는 뭘 하고 있었길래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난 당신이 말을 걸기 전에 내 고민을 당신에게 천 번이나 더 말했어요. 

어서 이곳에서 나갈 방법을 말해줘요!”

“싫어요!”

순간 방안에 정적이 흘렀고, 흘러 차올랐고, 흘러넘쳤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물었다.

“뭐라고요?”

“싫어요!”

나는 절규했다.

“왜요!”

“싫어요!”

그도 절규했다.

“그러니깐 왜요!”

“싫어요!”

그는 이제 눈물까지 뚝뚝 흘렸다.

“그! 러! 니! 깐! 왜! 요!”

“싫어요!”

나는 인상을 찡그리고는 그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가 눈물을 멈출 때까지 안았다.

“포옹을 하면 애정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 되죠. 

그리고 아드레날린과 세로토닌의 분비가 증가해요. 

이 물질들은 기억력을 높여주고 몸을 건강하게 해주죠. 포옹은 가장 아름다운 약이에요.”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과생이세요? 낭만을 깨는 소리만 하는군요!”

“이런! 아니에요. 라디오에서 들은 소리랍니다.”

다시 깡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기겁하고서 재빨리 말을 이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나 눈물을 뚝뚝 흘릴 정도로 싫은 건가요?”

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서 나에게 책 한권을 보여줬다. 

책 제목은 고뇌와 방황이었다.

“이게 뭘 어쨌는데요.”

“이 책은 내가 쓴 책이에요.”

“우와! 대단해요. 나 같으면 오늘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을 그림일기로 쓰라고 해도 못 쓸 거예요. 

하긴 좀 복잡하긴 하죠. 그리기도 어렵고.”

“난 자랑하려고 보여준 게 아니에요.”

“그럼요?”

“이 책에 써져 있는 모든 고뇌와 방황들은 내가 지금까지도 겪는 이야기를 쓴 거예요.”

“파란만장하게 살았군요. 사전만한 두께라니.”

“이 혈기왕성한 시기에 이런 고민들을 안고 살다니 죽고 싶을 지경이에요. 

고뇌와 방황을 하기에는 너무 바쁜 시기인데! 어떻게 생각하자면 아예 하기도 싫어요. 

누가 그런 걸 사서하고 싶어 할까요? 그렇지만 이 세상은 날 그렇게 만들고 있어요. 

심지어 여자 친구 관계 까지도 말이에요!”

그는 다시 울먹거렸다.

“고뇌와 방황이라. 좀 봐도 될까요?”

“싫어요.”

“창피해요?”

“그 것도 고뇌하는 이유 중에 하나에요.”

청년은 턱을 괴고 책을 멍하니 바라봤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깡총소리가 멈춰있었다. 불안한 공기가 나를 맴돌았다. 

고뇌하는 이가 날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티 없이 깨끗했다.

“생각보다 동안이신 것 같은데 올해 몇이세요?”

“그런 소릴 많이 들었어요.”

“스물다섯?”

“아니에요. 스물 셋이에요.”

“정말 동안이시네요.”

“고마워요.”

“스물셋이라. 내가 아는 사람은 그 나이 때에 술 퍼마시며 되도 안 되는 소리들을 지껄였죠. 

사회의 부정부패부터 참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등등 말이에요.”

“저랑 비슷하네요.”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 자기는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도 자기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울어댔죠.”

“저랑 비슷하네요. 전 소주를 좋아하지만.”

“아. 또 있어요, 또 있어요. 대통령 될 만한 능력도 없으면서 대통령 욕을 해댔죠. 예? 뭐라고요?”

“나도 그 사람들이 싫다고요.”

“아 그래요? 어?”

“왜 그래요?”

“음. 어. 흐음. 그래서 뭐였더라?”

“왜 그래요?”

“음. 잠깐만 조용히 해봐요. 방금 뭘, 말 하려고 했는데 까먹었어요. 음. 중요한 거 같은데.”

청년은 어리둥절하며 나를 쳐다봤다. 방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그 순간이었다. 쾅하고 엄청나게 큰 소리와 함께 내 옆에 있는 벽이 쩌저적 하면서 금이 갔다. 

곧이어 굉장히 두껍고 커다란 짐승의 포효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청년은 너무 놀라서 딸꾹질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고 

나는 욕지거리를 하면서 기억해내려 애썼다. 

다시 한 번 쾅하는 소리와 함께 금이 간 벽에 더 많은 금이 거미줄처럼 그어졌다. 

벽이 갈라진 틈으로 그렁그렁 거리는 괴수의 가래 낀 숨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머리를 쥐어 싸고 나 자신에게 생각해내라고 중얼거렸고 

청년은 그런 나를 마구 흔들었다. 그는 마구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내 어깨를 잡은 그의 손이 움찔하는 것으로 보아 

거북이가 다시 한 번 벽을 후려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세 번째 충격이었고 시멘트벽으로는 이제 두어 번 정도 밖에 견디질 못할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 잊어버린 생각이 꾸물대면서 천천히 부상하고 있을 때 

청년은 내 어깨를 놓더니 멍하니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때 기억이 되살아났고 나는 무심코 청년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방향은 벽에 금이 간 방향이었고 그 금은 이제 바깥을 볼 수 있을 만큼 넓어졌으며 

이젠 금보다도 틈이라고 부를만한 그 방향에는 눈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끔찍하고 정말 징그럽고 굉장히 컸다.

나는 청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거북이는 내 목소리가 들리자 경계하는 듯이 뒤로 물러섰다.

“이봐요.”

청년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청년의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이봐요.”

“예? 예! 예? 저게 뭐죠?”

“시 좋아해요?”

“뭐라고요? 당신 이럴 때 무슨...” 나는 화를 내며 그의 말을 끊었다. “시 좋아하냐고요.”

“예? 아니오.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청년은 경악했다. 나는 양 팔을 벌려 소리쳤다.

“아! 젊은 날의 고뇌여 방황이여!”

그리고 내 말이 끝나자마자 거북이가 커다랗고 끈적끈적한 손으로 벽을 뚫고 나를 집어 가버렸다.

거북이는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쳤고 나는 데굴데굴 구르면서 고통에 찬 목소리로 깔깔대며 웃었다.

“아욱!젠장!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콜록콜록!깔깔깔깔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난!봤다고!봤어!깔깔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켁켁켁깔깔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너도!그!얼굴을!봐야하는데!깔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콜록콜록!깔깔깔깔

시구를!깨닫는순간!그혼란스러움과!통쾌한미소!깔깔깔깔깔

깔깔깔깔깔깔깔아이고!아파죽겠네!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해냈어!깔깔깔깔깔깔쿨럭쿨럭!깔깔

깔깔깔깔깔깔정말!타이밍이!죽여!줬다고!깔깔깔깔깔깔깔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깔깔깔깔깔깔깔깔잡히기!바로!직전이라니!깔깔깔깔깔

쿨럭쿨럭!아오젠장!죽겠네.”

나는 한참 동안이나 웃은 뒤에야 겨우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약 세평될만한 방이 아니었다. 그곳은 둥지였다.

그곳은 엄청 큰 동굴이었는데 천장이 뻥 뚫려 있어 하늘이 보이는 희한한 구조였다. 

내가 그곳이 둥지라고 단번에 알아챈 건 너무 둥지 같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내 옆에는 거대한 새둥지가 있었다.

그 순간 내 등 뒤로 훅 하고 소름끼치도록 찝찝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즉시 뒤돌아서서 말했다.

“안녕?”

거북이는 괴기스러웠다. 그 피조물은 토끼처럼 두 다리로 서 있었으며 

뒷다리만 빼고는 모두 징그러운 초록색 피부로 덮여있었고 검은색 혹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몸에서는 파란색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상태가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엄청 뚱뚱했으며 눈은 얼굴에 비해 너무 컸다. 

손가락은 뚱뚱한 몸에 비해 얇고 길쭉했는데 마치 촉수를 연상시키는 모양이었다. 

등껍질은 다른 거북이들과는 다른 점이 없었으나 

뒷다리는 심하게 다른 색으로 물들긴 했지만 하얀색 토끼다리임이 분명했다.

“경주에서 이긴 대가로 토끼의 다리를 뜯어 붙였구나.”

거북이는 포효했다. 그리고 가래가 낀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냐, 넌.”

“음. 어. 흠. 음. 아. 난 차이코프스키야. 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

“응. 그래. 그런데 넌 대체 왜 날 따라다니니?”

“넌 도로시가 아닌가?”

“응?”

“넌 이순신이 아닌가?”

“아니. 잠깐만.”

“넌 돈키호테가 아닌가?”

“잠깐. 사람 말 좀 들어봐.”

“그럼 난 누구인가?”

“젠장. 저번의 그 놈보다 더 골치 아픈 놈이군.”

“그 놈?”

“그래. 저번엔 원숭이였지. 사자 가죽을 끌어안고 오더군.”

“그를 어떻게 했는가?”

“나를 잡아먹으려 하기에 도망쳤지. 아마 아직도 거기 있을 걸? 문을 잠가놨으니. 그래 문제가 뭐야?”

“‘넌 누구고 난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가장 먼저 나와야 할 질문이야.”

“가르쳐 달라. 나는 지금 고통을 받고 있다.”

거북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물은 푸른색이었기에 불쌍하기 보다는 징그러웠다.

“답을 알려주는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을 수락하겠다.”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데?”

젠장. 이런 레퍼토리라면 뻔할 뻔자 인데.

“‘넌 누구고 난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잠깐만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면 재미가 없다고.”

“‘넌 누구고 난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일단 차라도 한 잔 한 뒤에.”

“‘넌 누구고 난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이봐.”

“‘넌 누구고 난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안 말해준다?”

“‘넌 누구고 난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이봐 거북아.”

“‘넌 누구고 난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알았어. 알았다고. 답은 너와 나야.”

침묵. 거북이는 침묵했다. 나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원숭이 때도 그랬다. 

이 녀석들은 조용해지면 위험하다. 조심스레 말을 걸어봤다.

“이봐. 그러니깐 말이야...” 거북이가 갑자기 화를 냈다. “거짓말 하지 마라!”

“아니. 진짜야. 얘가 사람을 못 믿네.”

“‘넌 누구고 난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너와 나야.”

“‘넌 누구고 난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너와 나야.”

“답을 가르쳐 주지 않을 모양이군.”

“아, 제발! 너희들은 왜 뭐든지 어렵다고 생각만 하는 거야?”

“널 먹어야겠다. 내 뱃속에서 소화가 된다면 그 답도 같이 내 피와 살이 되겠지.”

“아까 조건이 그 짓을 하지 말라는 거였어.”

“조건? 무슨 조건 말인가?”

“이젠 뻔뻔한 척을 다 하는군.”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사방이 막혀 있었다. 

분명 문이 있을 텐데 하면서 필사적으로 문을 찾기 시작했다. 

거북이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나에게 한 발짝씩 다가왔고 나는 획하고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큼지막한 깡총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내가 도망치는 방향에는 문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욕지거리를 하며 뜀박질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거북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가 들어도 화가 난 사람의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말이야.”

거북이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 눈동자는 사방팔방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저 끝에 덩굴로 엮어진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 멀었다.

나는 강하게 말을 이었다.

“절대로 소유에 집착 하지 마.”

“헛소리 말고, 순순히 먹히시지.”

거북이가 기다랗고 질척질척한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나는 거북이가 문을 눈치 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이 있는 방향으로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어느 정도 간 뒤에 냅다 뛰면 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말했다.

“이 말 아나?”

한 걸음.

“마지막이니 마음껏 지껄여라.”

한 걸음.

“네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에는”

한 걸음.

“길이 너를 인도하리라.”

한 걸음만 더 가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한 걸음만.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지?”

한 걸음.

“저기에 문이 있다는 소리지!”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달렸다. 그러나 나보다 더 빠르게 거북이의 손이 내 앞을 막았다. 

나는 재빨리 녀석의 가랑이 사이로 뒹굴었고 다행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간 뒤에 단숨에 문을 잠가 버렸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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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끝까지 읽기 힘든 글.

고등학교 3학년땐가...닥터후를 보고 삘받아서 썼습니다.

이제보니 재미도 없고 유치하기만 하네요.

새로 쓰기에는 귀찮고 해서 복붙 복붙.


뭐 기회는 세번이니. 잇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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