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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성의 역사(수박겉햝기)..
게시물ID : humorbest_8294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려
추천 : 23
조회수 : 2792회
댓글수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4/01/31 02:08:40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1/30 20:16:36
운남성의 역사를 한번 찾아봤습니다.
그러나 상세한 내용을 구할 수 없었고,
중국어 원문으로는 언어장벽으로 단편적인 것만 알게 되었네요..
 
중원왕조의 동북방에 우리민족이 있었고,
서쪽에 서역과 티베트가 있었고,
북쪽에 몽골 등 유목민족이 있었고,
남쪽에 베트남이 있었다면,
 
서남쪽 끄트머리에는 운남성일대의 독립국들이 있었습니다.
몽골에 점령된 이후 다시 나라를 세우지 못 하였는데요.
 
간략히 한번 적어봅니다.
 
운남성의 역사,
 
중국 최초의 원인이 발견되었다는 게 있더군요.
운남성도 기원전 1000년경부터 청동기문화가 꽃피웠다고 합니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전국시대에는 초楚나라 장군 '장교'가 들어가서
이 지역 원주민들과 접촉했으나
진秦나라가 운남성과 초나라의 중간길목을 차지하면서
'장교'는 그곳에서 왕을 자칭하니
이후 중국 기록에 전滇나라라고 불립니다.
 
전나라는 약400년 간 이어졌으며(B.C278~85)
진나라나 한나라의 간섭을 받았습니다.
 
현재 운남성 성도인 곤명일대가
전나라의 영역이었습니다. 
 
곤명 일대 주변지역에는
"야랑, 미막, 공도, 동사, 접유 등"
많은 나라들이 사기 서남이전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조선,부여,임둔,진번,옥저,동예,마한과 흡사하네요.
 
한漢나라는 이 여러 세력들간의 갈등을 조장하여
친한세력에게는 작호를 내리는 등 지원을 해주고
반한세력을 통제합니다. 
 
삼국시대에는
맹씨가 이 일대 유력한 세력이었는데,
촉나라의 제갈공명의 원정이 있었습니다.
 
제갈공명은 중국 실크로드 길목인 서북방면의 강羌족(이후 티벳에 흡수되는 종족)을
1만여호나 운남성일대로 이주시킵니다.
 
운남성일대 여러 세력들이 통합하지 못 하도록
더욱 갈등을 조장시킨 거죠.
 
이후 진晉나라 때와 남북조시대에
운남성 일대는 찬씨 군벌이 세력을 잡고 왕을 칭합니다.
 
찬씨왕조는 330~580년 약250년간 이어진 후
동서로 분열됩니다.
동찬씨왕조(580~748)
서찬씨왕조(580~786)
이렇게 이어집니다.
 
찬씨왕조가 분열하면서
6개의 조調나라(6조시대 648~794)가 들어섭니다.
그 여섯 나라는 "몽수,월석,시랑,등섬,낭궁,몽사"입니다.
이 6조를 통일하고 잔존해있던 동찬씨,서찬씨왕조를 무너뜨린 것이
바로 몽사조蒙舍調라는 나라입니다.
조調는 지역말로 "우두머리"란 뜻이라네요.
 
738년 몽사조의 5대 귀의왕 피라각은 6조를 통일합니다.
몽사조가 6조 중 남쪽에 있었기에 이나라는 "남조南調"라 불립니다.
 
남조는 부자연명父子連名 풍습이 있었는데,
부자간 이름을 끝말잇기 하는 겁니다.
 
남조의 왕들의 이름을 보자면
1~3대 : 세노라 - 라성염 - 염각
4~11대 : 성라피 - 피라각 - 각라봉 - 봉가이 - 이모심 - 심합권 - 권룡성,권리성,권풍우
12~14대(황제칭호사용): 세륭(경장황제) - 륭순(성명문무황제) - 순화정(효애황제) 
 
재밌는게 형제들끼리 이름 첫자는 같으나 끝자가 다르니
사촌끼리는 서로 이름 첫자가 다 다르게 됩니다. 신기하죠?
 
남조가 망한 뒤에는
"대장화→대천흥→대의녕(902~937)"이란 국호로 이어지다가
대리석의 유래인 대리(大理)국(937~1253)이 들어서서
송나라 시대에 남쪽 강국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나라 고려시대 시절입니다.
 
이후 몽골군에 점령되어
양왕국→대리총관부→운남등처행 중서성을 거친 후
명나라 청나라 그리고 현재까지 운남이란 지역명으로 이어집니다.
 
대리가 멸망하면서 독립국을 다시 세우지 못 하였죠.
 
 
..
틀린 곳이나 잘못된 곳, 부정확한 부분이 있다면
댓글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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