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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병신 PD입니다.
게시물ID : humorbest_8837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isegoria
추천 : 401
조회수 : 64886회
댓글수 : 8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4/05/17 03:38:42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5/17 03:07:11

 

답답한 마음에 글을 씁니다.

 

방문횟수가 엄청 낮습니다. 가입한 이후에 줄곧 눈팅만 해와서 그렇습니다.

대신 실명을 밝히겠습니다. 제 이름은 권성민이고, 예능PD입니다.

 

오늘의 유머는 제가 학부 졸업학기에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수업에서 온라인 공론장의 연구주제로 삼았을 만큼 관심 있게 봐온 사이트입니다연구의 결론만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온라인 상의 공론장은 공론장 자체를 목적으로 했을 때보다는, 유희적 기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을 때, 다양한 사람들의 꾸준한 상호작용을 유지함으로써 오히려 더 충실한 공론장으로 기능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또 한 가지, 온라인의 주요 기능인 유희적 문화 대부분은 오유를 비롯한 유머 커뮤니티들에서 1차로 생성된 후 온라인 공간 전반으로 확산된다는 사실과, 이러한 흐름을 타고 공공 이슈에 대한 여러 의견들도 함께 확산된다는 사실도 수치상으로 확인했습니다.

사실 그때는 이런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불과 3년이 지난 지금은 너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워낙 곳곳에서 오유발 자료들을 많이 볼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오유를 즐겨보는 편인데, 최근의 분위기와 관련하여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조심스레 키보드를 열었습니다.

 

저는 신방과 출신이지만 TV를 거의 보지 않고 살았으면서도, MBC만큼은 꽤 좋아했습니다. 시사부터 예능까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다루어내는 솜씨를 보며 감탄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그 MBC에 들어왔습니다. 사실 이미 그 때도 슬슬 엠병신의 모습이 한창 엿보일 때였지만, 머잖은 미래에 다시 마봉춘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금방, 바닥이 어디인지 짐작조차 안가는 모습으로 추락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희 입사동기들은 한동안 회사에서 파업둥이로 불렸습니다. 합격통보를 받고 입사를 기다리는 동안 파업이 시작됐고, 파업이 시작된 바로 다음 날이 입사일이었으니까요. 노조 가입이 제한되는 수습기간 동안 빈 회사에서 일을 했고, 그동안 회사 밖에서 만난 선배들은 어차피 수습 3개월이 끝나기 전에 파업도 끝날테니 염려 말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파업은 거짓말처럼 7개월 동안 이어졌습니다.

 

저희 동기들도 수습기간 동안 이런저런 압력을 받았습니다. 수습해제 후 파업에 동참하려고 하면 임용을 취소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각자가 느끼는 무게는 달랐지만, 저희들도 수습이 해제되자마자 바로 노조에 가입하고 파업에 참여했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믿기지 않지만, 마봉춘은 엠병신과 꽤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나마 학생 신분과 별다를 바 없었던 저 같은 경우는 수입이 없는 7개월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가정이 있는 분들에게는 훨씬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파업에 마땅한 알바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꾸준히 이어지는 서명운동과 집회에 사실 구한다고 해도 제대로 하기는 불가능했습니다. 대출을 받고 대리운전을 뛰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측의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에도 업무로 복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간혹 있었지요. 그리고 지금 이 회사는 그들의 독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시에 거리에 나가면 응원해주시고, 서명에 참여해주시는 수많은 시민분들 덕분에, 힘이 나고 때론 눈물도 났습니다.

 

하지만 파업은 졌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봤지만, 결국 방문진에 의해 좌우되는 사장인사의 문제는 정치 역학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언론을 노예삼지 않을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기대하는 것 말고는 다른 활로가 없었고, 대선의 결과는 절망만을 안겨주었습니다. 문제의 경영진 대부분이 유지된 채, 얼굴마담일 뿐이었던 김재철 사장은 전혀 다를 바 없는 다른 허수아비로 바뀌었습니다.

그 사이 사측은 시용직이라는 전무한 고용형태로 대체인력을 대거 뽑았고, 눈에 거슬리는 이들은 차례차례 해고해나갔습니다. ‘공정보도를 위한 파업은 합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도, 사측의 직원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와도 이들은 콧방귀를 뀌며 오히려 보란 듯이, 이미 두 차례나 중복징계한 바 있는 PD수첩 제작진에게 또 다시 징계를 내렸습니다.

 

변명을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수치스러운 뉴스가 계속 나가고 있습니다. 결정권을 쥔 이들은 모든 비판으로부터 두 귀를 틀어막은 채 자화자찬하기에 바쁩니다. 세월호 참사의 MBC 보도는 보도 그 자체조차 참사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이번 보도가 ‘MBC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떠들었습니다

(다음은 사내 게시판에 올라왔던 글 전문이 실린 기사 링크입니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427114505927)

 

어째서 맞서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상황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변명처럼 보이고, MBC 밖의 분들에게나, 안의 분들에게나 그리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경솔한 발언인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명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MBC는 노조가 세 개가 되었습니다. 2012년의 파업까지를 주도했던 원래의 MBC 노동조합(편의상 제1노조라고 부르겠습니다)이 하나이고, 이 노조의 활동 대부분을 편향적이라 공격하던 기자출신 직원 이상로 씨가 만든 노조가 두 번째(2노조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2012년 파업 이후, 파업 복귀 세력과 시용직들이 중심으로 새롭게 만든 노조(3노조라고 하겠습니다)가 세 번째입니다. 2노조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미비한 편이고, 따라서 현재의 MBC는 크게 제1노조와 제3노조의 두 세력으로 양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경영진은 노골적으로 제3노조에 소속된 인원들의 입장을 최대한 지원해주고 있고, 3노조 세력들 역시 가장 적극적으로 경영진의 결정사항을 수용하고 실행하고 있습니다. 파업 중에 사측에서 대체인력으로 채용하기 시작한 시용기자세력은, 파업 인원들이 전원 복귀하여 제작 인력이 전혀 부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경력직 채용 등의 형태로 그 수를 늘리고 있습니다. 1노조 소속으로 활동하던 기자들이 조금이라도 결정사항에 반발하면 징계나 발령부서 조정 등으로 취재부서로부터 배제시키고, 그 자리를 남아도는 제3노조 세력의 직원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질이나 완성도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방송되고 있는 엠병신의 뉴스입니다.

(몇가지 기사 링크를 첨부합니다

 

시용기자 관련 기사

http://media.daum.net/society/media/newsview?newsid=20130619164518875

 

MBC 파업 정당 판결 기사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118030226753

 

가장 최근 시행된 MBC 경력기자 채용 기사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40429104809475

 

김재철을 변호하던 변호사를 법무부장으로 채용한 기사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40429210507145 )

 

 

가장 앞에서 적극적으로 싸우던 분들이 본보기로 해고되어, 회사 바깥에서 대안언론으로 고군분투하고 계십니다. 그분들의 피나는 노력, 저도 늘 알리고, 후원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MBC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대다수도 그들과 함께 많은 것을 각오하며 싸웠고, 졌고,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사실 예능국 소속인 저는, 보도와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부당한 지시를 받을 일은 없습니다. 예능국은 아직까지는 은근슬쩍 시사적인 풍자도 가능한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슬쩍 넣는 풍자는 처연한 자위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런 예능국에 있기에, 보도국의 기자들 스스로는 차마 하지 못하고 있는 말들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 저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복종 실험,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MBC에서는 아주 사소한 반발로도 취재 업무를 빼앗깁니다. 명령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어떤 기사든 써낼 기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반발로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까지 떨쳐내고 분연히 일어난 영웅들께는 박수를 보냄이 마땅하지만, 그 십자가를 지지 못하는 이들에게까지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조가 존재합니다. 질 수 밖에 없는 개인들의 싸움을, 해 볼만 한 덩치끼리의 싸움으로 바꿔내야 합니다. 그러나 노조는 지난 파업 때 할 수 있는 싸움을 다했습니다. 더구나 지금의 회사 구성원은 상당수가 새로운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함께 싸움에 참여했던 지난번과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지금 똑같은 싸움을 다시 시작하면, 사측은 기다렸다는 듯 너무나도 손쉽게 자신들의 입맛대로 구성원을 교체할 것입니다. 대놓고 MBC를 영원히 넘겨주는 꼴이 될 뿐입니다.

 

그럼 MBC는 그냥 영원히 엠병신으로 망하게 놔두고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새로운 언론을 형성하면 된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한참은 쉬이 망하진 않을 겁니다. 계속해서 쇠퇴하는 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은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이토록 열심히 손에 쥐려 하는 것이지요. 계속해서 활약하는 대안언론들을 지켜보셔서 아시겠지만, 대안언론을 찾아볼 수 있는 분들은 사실 장악된 지상파 언론에도 쉽게 속지 않습니다. 문제는 분별없이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입니다. MBC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와 뜻을 모아 새로운 언론을 만든다 한들, 지상파 전파를 타는 것은 여전히 MBC입니다. 아니, 그때의 MBC는 더욱 노골적이겠지요. TV조선을 지상파에 안착시켜주는 모양이 될 겁니다. 지상파 사업자의 허가는 엄격합니다. 새롭게 만든 대안언론이 지상파를 타고 송출되기란 요원할뿐더러, 그런 허가가 날만한 정부라면 MBC도 얼마든지 마봉춘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싸워온, 원래의 마봉춘을 자랑스러워했던 대부분의 직원들은, 다시 언론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독을 차고 있습니다. 혹은, 노조에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까지 참고 있습니다. 지금 참을 수 없이 화가 나지만, 그 화를 못 이겨 똑같이 싸웠다가는 또 똑같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뼛속 깊이 배웠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 자리를 지키고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치욕을 삼키고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무력한 싸움들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템을 거부할 수 없다면, 리포트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바꿔가며 그래도 차라리 차악의 형태로 바꾸어 방송에 내려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 뉴스, 내가 안하면 더 최악의 형태로 읽어줄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세월호 관련 보도들은 그 싸움을 하지 않는 이들의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 기자들 아나운서들 당사자들은 못합니다. 어쨌든 같은 배를 타고 나간 뉴스이니까요. 묵묵히 기레기임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엠병신을 욕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마음껏 욕해주세요. 더 먹어야 합니다. 사실 욕은 저희들이 제일 많이 합니다. 불매운동도 좋습니다. 뉴스도 이미 안 보시겠지만, 주변에 잘 모르는 분들에게도 이런 상황임을 알려드리고 보지 말라고 해주세요.

 

다만 이 얘기를 드리는 것은, 다시 싸움을 시작하려 할 때는 싸우는 이들과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리고자 함입니다. 최근 KBSMBC의 보도국장들과 관련하여, 노조와 기자협회 등에서 성명서를 내고 발언을 할 때마다 만나게 되는 차가운 반응들을 봅니다. 실망하고 분노하신 마음들 이해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그 움직임들은 물타기도 아니고 여론전환용도 아닙니다. 그 속의 사정은 이랬고, 이런 싸움들이 이어져왔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박근혜 정권의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모든 국민이 박근혜의 국민이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박근혜의 대한민국이 된 것이 수치스럽지만, 그 속에서도 다시 한 번 싸워 비록 대통령이 박근혜라 한들 그 정부에게라도 국민들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움직임들이 있지 않습니까. 엠병신의 직원들이라고 해서 모두 엠병신에 적극적으로 충성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침묵하고 있지만, 이길 수 있는 싸움을 기다리고 있고, 그 승패는 뜻을 같이 하는 국민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부디, 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에서 동의할 수 있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는 힘을 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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