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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주작
게시물ID : humorbest_9312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새치.
추천 : 22
조회수 : 1691회
댓글수 : 1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4/08/14 16:16:43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8/11 07: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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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ck! Check! Check! 책을 읽읍시다!
젠틀한 당신은 책게 와요 걸출난 작품들 Check It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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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삼에게 2학기는 무엇을 의미할까?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가장 먼저 총알 여섯 발을 받게 된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여섯 발은 구름처럼 사라졌고, 그 반대 급부로 확실해진 것은 나는 이제 수시 2차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시도 있기는 하다만야 3등급으로는 뭔가 아쉬웠다. 차라리 수시 2차를 눈 앞에 두고 글을 쓰는 노예가 되는것이 한결 나아보였다. 나는 그 당시 미술실에 틀어박혀서 미친 듯이 채색을 하던 친구를 보며 잠시나마 위안을 삼고는 했다. 물론 그 것도 오래 지나지 않아 내개 더 큰 부담감으로 찾아들어왔고 이미 수시 1차에서 결판을 본 친구 놈들의 깐족거림은 더 이상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멘탈케어를 위해서라도 비웃으면서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리오.” 라고 비웃을 뿐이었다. 다만, 그 녀석들이 이따금 ‘봉황은 무슨 주작하지마’ 라고 일갈할때는 걸음걸이를 불편하게 해주었다.


나는 당시 매일 밤 스님이 달 아래에서 문을 밀어야 될지 두드려야 할지 같은 고민에 휩쓸린 나의 정신은 저 천장의 검은 모서리의 곰팡이와 달까지 걸어가는 듯했고, 새삼 작가들이 다르게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의 눈에 그들은 성인(聖人)이요 초인이었고 최소 두 번씩은 모욕했던 싸구려 판타지 소설의 작가들 에게도 나름의 경외심이 생길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럴 일은 없다.― 다만, 그러한 퇴고의 작업보다도 더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바로 미래였다. 혹여 누군가가 나에게 미래의 계획을 세워 보라 한다면, 모름지기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한 25살쯤에 문학상을 받고 등단한다고 세웠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계획이었고 사실상 완벽해보였다. 그렇게 우뚝 세워버린 25살 이라는 거인이 눈에 보일만큼 다가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문뜩 뉴턴의 말이 생각난다. 자기가 남들보다 앞설 수 있던 이유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성공한 사람들 말은 그럴싸하기 마련이다. 내가 세운 25살이라는 거인은 내가 올라서기에는 너무 커보였다. 매일 매일 나를 밟으려는 것처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왔다. 내가 올라설 수 있을까?


입시 결과에 대해서 많은 글자를 할애하고 싶지는 않다. 예대에서 불합격통보를 받고 나에게 남은 길은 이제 재수뿐이었다. 내 소설이 어디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심사위원장에 참새들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소설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가정을 하고 싶다. 이어서 그러하다면 나는 몇 년을 앞서간 것일까? 이미 대학생이 된 놈들은 자기들 삶을 열심히 살고 있었다. -다만, 저번에 만난 친구놈이 이미 날씨가 따스한 상태에도 과잠을 입고 온것은 명백한 도발이요, 선전포고였다. 그놈은 집에 절뚝거리며 가게 해주었다- 나도 나의 이야기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하루의 반은 글 쓰고 나머지 반은 글을 읽는대 쓴 것 같다. 다만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이 사람보다 뭐가 못난 건가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은 나중에 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을 몇 개월 후에 깨닫게 되었다. 재수에 실패하고 군에 입대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의 나날은 굳이 여기다 적을 만큼 밝은 내용은 없고-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밝다는 것은 아니다.―그간의 생활도 창작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었다. 제대 후에도 걸작이라는 것은 영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25살이 되는 생일을 며칠 앞두고 생각했다. 나는 군대를 계획에 넣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응당 25살이 아닌 27살이어야 하지 않은가? 나는 단지 이러한 실수를 한 내 자신에게 피식하고 웃을 뿐 이었다. 더 이상 n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동안에 고통을 만회할만한 한방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점점 아버지는 빽으로라도 일자리를 알아본다고 주섬주섬 하신다. 결단코 그런일은 없다. 매일 밤 꿈에서 봉황이 보였다. 문뜩 정신착란인가 싶기도 했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단 하나의 걸작만 있으면 된다. 봉황, 그것은 길몽이다.


이쯤 되면 다음문단의 내용도 알만 할 것이다. 27살의 생일을 얼마 앞두고 아버지는 중소기업의 사원 자리에 대해 말했다. 내 자신이 한심했다. 나는 가방을 챙기고 잠시 바다로 향했다. 어지러웠다. 입사를 하자. 집필이야 회사 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것 아닌가? 술로 목을 적시는 내 눈에 들어오는 파도의 노랫소리는 괴이하게도 시끄러우면서 부드러웠다. 꿈속에서 본게 봉황이 아니라 주작이었던가? 나는 애초에 글쓰는 재주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언제부터 글을 쓰게 된걸까? 아마 고2였을까? 공부로는 전교권에 들지 못하던 나의 도피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 꿈에서는 봉황이 굶어 죽었다.


나는 아마 그나마 다른 사람들 보다는 앞서있다는 안일한 생각에 묶여 죽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가끔은 저 생각 또한 시련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 드는 전쟁이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다. 나는 그때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은 힘들었다. 나는 원고 더미를 밖으로 가져와서 근처에 있던 식당용 식용유 깡통에 넣어버렸다.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지포라이터의 감촉, 치익 하면서 돌아가는 부싯돌의 소리는 애원처럼 느껴졌다. 불이 켜졌다 손가락이 슬슬 뜨거워지고 있다. 나에게는 결심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이대로 놓을 탠가?


나는 놓아 버렸다. 내가 놓아 버린 것은 단지 지포라이터 뿐만이 아니었다. 그간의 노력, 아니 그간에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그렇다고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원고들이 타고 있다. 아마 잠시 후면 여느 신문지 재와 똑같은 모습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노력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잠시 바람이 일렁이더니 원고 한 장이 불이 붙은 채로 하늘로 날아간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환상의 날개라도 있는것처럼 날아 올랐다. 제 딴에 살아보려는 발버둥일까? 그때 머릿속을 관통한 생각은 ‘저 날아가는 불붙은 종이가 참 주작을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헛웃음 외에는 달리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다만, 저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오르는 주작을 보면서 한참을 서있을 뿐이었다.


고사에 따르면 봉황은 벽오동 나무가 아니면 쉬지 아니하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에 늘 봉황이란 존재는 한없이 굶주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참새는 흔하디흔한 전깃줄에 몸을 기대어 볍씨를 먹을지언정 배는 주리지 아니하거늘…….



[우리는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았습니다.]

나라오르라 주작이여 환상의 날개 날아 오르라!

이 글을 마씨성을 가진 주작의 현신에게 바칩니다

마지막 두번째 글은 더 병신력 넘치는걸로 선정하겠습니다

앞에 있는 책게 홍보글은 무시하세요 지금 쓰고나니 저도 조금 소름돋네요. 이불은 튼튼한 솜이불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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