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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극 초반에 전사한 지휘관들
게시물ID : humordata_17387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V20잉여
추천 : 20
조회수 : 2549회
댓글수 : 59개
등록시간 : 2018/02/10 10: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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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

부산진성 첨철제사 정발

 

교과서나 사극에선 준비조차 제대로 안하고 놀고먹고 있었던걸로 알려져 있는데

 

실상은 준비할거 다 하고다닌 인물중 한사람 큰 기록은 없지만 북방에서 동년 7월 30일 국경을 넘어 염탐하던

 

여진족을 활로 쏴 죽였다는 얘기도있는거 보면 나름대로 유능한 장수가 아니였나 싶음

 

임진왜란 발발하기전 왜관에 있던 일본인들이 급히 피신하는걸 보고 수상하게 여겨

 

부산 앞바다 절영도에 주둔하여 군사훈련과 사냥을 실시함

 

어떻게 보면 개인취미로 사냥하는걸로 보일지는 모르는데 현실적으로는 유해조수 구제및

 

민심 안정의 일환이였다고 하는데 주로 멧돼지나 호랑이같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 위주로 사냥했다고함

 

뿐만 아니라 사냥도 훈련 끝나고나서 했다고함.. 드라마 징비록에서 보면 사냥끝나고 술파티 하는 장면 나오는데

 

하루 일과 마치고 했다면 딱히 큰 문제로 볼만한 사항은 아니였을 것으로 보임

 

그리고 사극에선 죶도 못버티고 왜군에게 함락당한걸로 알려져 있지만 800명의 병력으로

 

수십배 넘는 왜군 상대로 4시간을 버팀 오히려 재평가 받아야 할 수준


2.jpg

다대포첨사 윤흥신

 

중종시절 을사사화로 양반 신분에서 노비 신분으로 떨어졌다가

 

훗날 선조에 의해 양반으로 다시 복권된 장군

 

노비로 살다보니 글공부를 하나도 못해서 몸을 단련해 무과에서 급제했는데

 

교육을 제대로 받아보질 못해서 양반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하였고, 문자해독을 못한다고

 

파직되는 수난을 겪음

 

당시 다대포 첨사로 발령났는데 하필 임진왜란이 터져버림

 

부산진 전투 직후 일본군 일부는 동래성으로 향했고, 일부는 다대포와 서평포로 공격해왔는데

 

800의 급조된 병력만으로 2만에 가까운 왜군에 맞서싸움

 

1차전에선 어떻게든 막아냈지만 이후 탈영병과 전사자수가 너무많아 2차전에서 점령당함

 

주의에선 1차전 막고나서 후퇴하고 후일을 도모하자고 했지만 윤흥신은 이를 거부했다고함

 

결국 자기 이복동생 윤흥제와 같이 전사했지만 여기서 놀라운점은 하루 넘게 버텼다는점임

 

조선에서도 사실상 기록이 없다싶이했고, 교과서에선 아에 설명조차 거의 없을 정도 수준


3.jpg

동래부사 송상현 

 

정발과 다르게 원래는 문관 출신이며, 외교관 경력도 있음 한마디로 엘리트 출신

 

동래성에 부임오자마자 한 일은 성벽과 성문 보수였으며, 전쟁준비를 계속 해왔음

 

의외로 군역에 대한 반발이 없었던거 보면 인망이 두터웠지 않았나 싶음

 

고니시와 맞붙을때 가장 유명한 말이 있으니 전사이 가도난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죽었음 죽었지 길 못비켜준다로 이해하면됨

 

생각외로 준비를 철저히 해왔기에 초기에는 어느정도 막아냈지만 결국 머릿수 앞에서 무너지고 패배함

 

위 정발 처럼 쉽게 점령당했다는 식으로 인식이 박혀있는데 진주성처럼 지형빨 받는 성도 아니고

 

머릿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였다는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오래 버텼다고 봐야함

 

애시당초 왜군도 전면에서 승부 못내니까 병력 쪼개고 양동작전으로 점령함

 

 

 

 

그리고 이 인물들은 부산을 지킨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음

 

무엇보다 이 3개 전투들 공통적인 부분이 있는데

 

왜군이 의외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점

출처 http://bbs.ruliweb.com/best/board/300143/read/3641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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