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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분노
게시물ID : humordata_17560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흙향기(가입:2018-03-19 방문:28)
추천 : 2
조회수 : 16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6/14 08: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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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문득 뜨거운 불기운을 느끼고 계룡산 기슭에서 깨어난 영랑은 일월오봉도가 무사히 그려지기를 부처님께 축원을 하려고 우선 급히 말을 달려 가까운 갑사로 향하였다. 한참동안 더 말을 달리니 저 멀리 계룡산이 보이고 그곳에서 풍경소리가 은은히 울려왔다. 갑사에 도착하니 높은 대웅전 앞마당에 스님들이 가득히 모여 있었다. 잠시 후 스님들의 맨 앞에서 들려오는 엄숙한 목소리가 그의 귀청을 세게 두드렸다. “그대들의 얼굴을 보니 두려운 빛이 가득하구나. 하지만 사람은 원래 죽고 사는 것이 따로 없다고 하는데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그러자 한 스님이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두렵기도 하오나 어찌 승려의 몸으로 살생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세상을 등진 승려라 해도 나라와 백성의 도움으로 탁발을 하고 땅을 일구어 살아가지 않는가? 죄 없는 백성들이 왜적의 칼날 아래 무참하게 목숨을 잃어 원통한 피와 눈물이 온 나라에 가득하다.”

“......”

피를 토하는 절절한 음성으로 말을 잇는 영규대사. “보라. 처참하게 죽어간 백성들의 비명과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가? 우리가 나서야 이 땅의 백성들을 구하고 부처의 법을 바로 세울 수 있다.”

 

다른 스님이 억울하다는 눈빛을 던지며 말했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 일은 조정에서 하여야 할 일 아닙니까? 그동안 백성을 살려야 할 조정과 임금이 민생을 팽개치고 불교를 탄압하며 사리사욕에 얽매여 나라꼴이 이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런 조정과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합니까?”

우리는 잘못된 조정과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주인인, 부처의 근원인 백성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만약 이 나라 조선을 왜적들이 모두 차지한다면 우리가 산속에서 한가롭게 부처를 모시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가?”

대사님. 저희들은 도를 닦아 성불을 하러 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싸움을 하다니요?”

순박한 백성들이 무참히 죽어 가는데 혼자 부처를 섬겨 도를 통하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살생을 하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으며 헤맬 것 아닙니까?”

부처의 가르침은 자비 아닌가? 그 자비를 위해서 죽어가는 백성을 구하고 지옥에 가면 염라대왕께서도 분명 참작할 것이네.”

“......” 모두들 숙연한 분위기속에 대사의 열변을 듣고만 있었다. 대사의 말은 속속들이 영랑의 귓가에 파고들어 그의 가슴을 깊이 울렸다. ‘그렇다. 그동안 왜구들이 우리 신라에 얼마나 많은 노략질을 하여 왔던가.’

 

나무 뒤에서 듣고만 있던 영랑도 피가 끓어 참지 못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나와 대사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대사님. 왜놈들은 전부터 우리를 괴롭혀왔던 족속입니다. 마땅히 그들과 싸워 이 땅에서 모두 몰아내야 합니다.” 그 말에 스님들이 모두들 고개를 돌려 영랑을 바라보며 웅성거렸다. “저건 어디서 굴러온 개뼈다귀야? 지가 무슨 신라화랑처럼 머리에 깃털을 꽂고 있네그려.” “맞아. 스님도 아닌 주제에 무슨 큰소리를.” “저놈이 같이 허풍치고 선동하니 우린 꼼짝없이 전쟁터에 끌려가 죽게 생겼군.”

 

조용! 조용!” 대사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처마 아래 풍경을 쳤다. 감미롭고 은은한 풍경소리가 바람을 타고 계곡 아래로 잔잔히 흘렀다. 그 소리처럼 부드럽게 사뿐히 지 지붕 처마 위로 대사의 몸이 솟구쳤다. “!” 모두들 감탄하여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지붕 위의 대사가 엄숙한 목소리로 호통 쳤다. “아직도 내 말에 따르지 않을 자는 앞으로 나와라.” 모두들 쥐죽은 듯 잠자코 있다. 왜적과 싸우는 것보다 당장 대사의 호령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대사의 말을 듣지 않다간 이 자리에서 목이 달아날까 걱정된다. “그럼 다른 생각 없는 것으로 알고 당장 지금부터 군사훈련을 시작하겠다.”

 

그때 영랑이 앞에 나섰다. “대사님, 저는 병사로 써주지 않으시렵니까?”

그대는 승려가 아니기 때문에 승병이 될 수 없다.”

왜적과 싸우려면 반드시 승려가 되어야 합니까?”

정식 스님이 되고 안 되고는 나중문제. 우선 승병이 되려면 머리를 깎아야 하느니.”

아이고, 대사님. 어떻게 빡빡 머리를 밀어버린단 말입니까?”

싫으면 그만두어라.”

한참을 생각한 영랑은 드디어 결심한 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머리를 깎겠습니다.”

한 스님이 칼을 가져와 영랑의 탐스럽고 긴 머리털을 잘라내었다. 푸르른 빛마저 감도는 자신의 머리를 바라보던 영랑이 갑자기 구슬퍼 눈물을 흘렸다.

인물이 좋군. 누가 보면 여승이라고 할 것이야.”

아이 대사님도 부끄럽게 놀리시나요.”

 

대사의 말대로 스님들의 군사훈련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예불을 드리기 위하여 평상시 해 오던 일이라 스님들에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영랑은 자주 늦게 일어나 꾸지람을 듣기 일쑤였다. 어느 날 대사는 스님들을 절 마당에 모두 모아놓고 훈시를 하였다. “이제 칼 쓰는 법을 가르치겠다. 영랑 앞으로 나오라.” 영랑이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람들 앞에 나갔다. 대사가 잔잔히 웃으며 영랑에게 말했다. “종이를 하나 가져와 너의 팔위에 붙여보아라.” 영랑이 그렇게 하자 대사가 영랑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 비명을 지르고 영랑이 땅바닥에 엎어지면서 칼날을 피했다.

 

영랑이 볼멘소리로 하소연한다. “대사님. 저를 왜 죽이시려고 하십니까? 저는 왜놈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자 대사가 껄껄껄 하고 웃었다. “이런 못난 놈! 누가 칼을 피하라고 하였느냐?”

대사님. 어찌 제 팔은 무사하고 종이만 잘라지겠습니까?” “이놈! 그렇게 무서우면 여기를 나가라.”

, 아닙니다. 이번에는 가만히 있겠습니다.”

그래. 조금도 움직이지 마. !” 대사가 칼을 휘두르자 팔은 멀쩡하고 종이만 베어졌다. “와아!” 스님들은 감탄하여 모두 입이 벌어졌다. 대사가 그런 스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신을 집중하면 못 할 일이 없다. 알았느냐?” “! 대사님.”

스님들은 용기를 얻어 신나게 검술을 익혀나갔다. 처음 쥐어보는 칼에 대한 무서움이 사라지자 그들의 실력은 나날이 나아졌다. 스님들이 칼 쓰는 법을 배우고 나자 대사는 활 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대사가 이번에도 웃으면서 영랑에게 말했다. “영랑. 너의 몸에 있는 이 한 마리를 꺼내보아라.” 그러자 영랑이 얼굴이 새빨개지며 말했다. “아니, 저는 목욕을 자주해서 이가 없습니다.” 그러자 대사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만약 내가 찾아보아서 나오면 넌 벌을 받아야 한다.” 그 말에 영랑이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얼마든지.” “이리 가까이 오너라.”하더니 대사가 영랑의 겨드랑이에 손을 쑤셔 넣었다. “아얏!” 겨드랑이 털이 따끔하였다. 잠시 후 대사의 손에 기어가는 이 한 마리가 있었다. “이젠 벌을 받아야지.” 영랑이 부끄러워 고개만 숙이고 있자 대사가 입을 열었다. “벌로 이것을 실로 묶어 문고리에 매달아라.”

 

영랑이 이를 실로 묶으려고 하였으나 하도 작아 자꾸만 실패하였다. 간신히 이의 다리를 누르고 실로 묶어 문고리에 매달아 놓으니 대사가 아주 조그만 활로 바늘을 당겨 쏘았다. 화살은 정확히 이의 가슴에 명중하였다. “야아!” 영랑과 스님들은 이일로 인하여 대사를 더욱 믿고 따르게 되었다. 세 달이 지나자 스님들의 칼과 활 솜씨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푹푹 찌는 듯 심한 무더위가 찾아온 칠월 말 대사는 마당에 스님들을 모두 모아놓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우리는 적과 싸우러 청주로 갈 것이다. 여기에는 어린 영랑과 나이든 스님들 백여 명만 남아 잘 지키도록.”

 

그러자 영랑이 간곡한 어조로 매달렸다. “저도 대사 곁에서 왜적들과 싸우고 싶습니다.”

그러자 남게 된 스님 한 사람이 불안한 표정을 보이면서 말했다. “대사께서 나가시고 저희들만 남아 있는데 만약 왜적이 이곳으로 쳐들어오면 어떡합니까?”

그러자 대사가 태연한 표정을 보내면서 말했다. “걱정마라. 적이 쳐들어오면 스스로 물러가게끔 하면 된다.”

, 어떻게 말입니까?”

내 말에 따라 하도록 하라.”

대사는 스님들을 시켜 주변 산에서 소나무를 베어오게 하였다. 그 소나무들을 깎아 먹칠하여 조총처럼 보이게 하였다. “적이 절에 쳐들어오면 이것을 겨누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백회를 풀어 쌀뜨물처럼 보이게 하여 절에 양식이 넉넉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하고 영랑과 늙은 스님들을 남겨두고 청주로 떠났다.

 

열흘 후 청주에 싸우러 갔던 스님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갑사에 돌아왔다. 궁금한 스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어찌되었소?” 그 말에 스님이 얼굴에 가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이겼소.” “허면 대사께선 갑사로 돌아오시나요?” “금산으로 가신답니다. 소승은 다시 금산으로 가야 해요.” 그러자 영랑이 매달렸다.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그러자 마땅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여기나 잘 지키고 있어요.”

 

영랑이 지지 않고 말했다. “제가 가서 도와드리겠습니다. 반드시 공을 세울 것입니다.” 그러자 스님이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 뒤에 타고 같이 갑시다.” 금산에 도착한 두 사람. 이미 전투는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금산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은 조헌의 의병과 영규대사의 승병들이 얼마 안 되는 것을 알고 성을 나와 앞뒤로 포위하고 공격을 하였다. 활을 잘 쏘는 승병들은 적들을 잘 맞추어 세 번이나 물리치니 그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렸다.

 

적이 쫓겨 가자 영랑이 달려가 대사를 불렀다. “대사님. 제가 왔습니다.”

그러자 온 몸이 피범벅이 된 대사가 영랑을 반겼다. “! 영랑!” 두 사람은 부둥켜안았다. “영랑. 왜 죽을 곳에 왔느냐? 어서 떠나거라.”
저는 대사를 버리고 떠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세 번이나 적을 물리쳤으나 화살이 다 떨어졌어.”

? 그럼 어떻게 칼 잘 쓰는 왜적을 상대합니까?”

할 수 없지. 죽음을 각오하는 수밖에.”

조금 있으려니 적들이 함성을 지르며 다시 몰려왔다. “! ! !” “으악! ! !” 양쪽 병사들의 기합소리와 비명소리가 다시 메아리치며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자꾸만 이쪽 병사들이 쓰러져 가고 나중에는 영랑과 대사만이 남게 되었다. 왜병 하나가 영랑을 향해 칼을 내리치려는 순간 대사가 몸을 돌려 그자의 등을 베었다. “으악!” 바로 그 순간 다른 적이 대사의 빈틈을 노리고 칼을 찔렀다. 동시에 대사가 그자의 가슴을 칼로 푹 쑤셨다. “!” “!” 배에 칼을 찔린 대사와 영랑이 몰려드는 왜적들을 피해 칼을 휘두르며 싸움터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등을 보이자 왜장 하나가 부하들을 거느리고 쫓아왔다. 그러자 분노에 불타는 눈을 부릅뜬 대사가 죽은 승려의 옆에 있던 칼을 집어 들고 온 힘을 다하여 힘껏 던졌다. “!” 왜장의 목에 칼이 꽂히며 말에서 떨어지자 놀란 왜병들이 추격을 멈추고 왜장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 틈에 영랑은 대사를 간신히 부축하고 들쳐 업은 다음 죽으라고 뛰어 풀숲으로 뛰어들어 산길을 타기 시작했다. 계속 피를 흘려 정신이 가물가물한 대사에게 영랑이 물었다. “대사,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러자 대사가 증오에 불타는 눈을 부릅뜨고 간신히 말했다. “, 충청감영으로.” 그러자 어리둥절한 영랑이 물었다. “갑사로 돌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 아냐. 난 어차피 죽을 목숨. 이번 싸움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승려들과 의병들의 원수를 갚아야 해.”

대사가 말하는 기막힌 사실은 이러했다. 대사와 조헌이 합심하여 왜군을 몰아내고 청주성을 함락하자 충청순찰사가 조헌의 공을 시기해 의병 중 관군출신들은 의병에서 빠지라고 위협하였다. 관군출신을 따로 모아 부대를 새로 편성하겠다는 것이다.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의 부모와 처자를 잡아 가두니 의병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칠백 명의 병사들만 남은 것이다. 물론 충청감영에선 군량도 전혀 대어 주지 않았다. 함께 적을 치기로 약속한 전라감사 권율은 적이 강성함을 알고 연기하여 나오지 않았다. 적은 숫자로 굶주린 상태에서 금산성의 왜군 일만 명의 대병력과 싸웠으니 전멸을 하였다고 대사는 원통해하는 것이다.

 

영랑과 대사는 금산의 산길을 계속 타고 마침내 논산의 노성에 도착했다. 그때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간질이더니 제비가 땅바닥 가까이 낮게 날았다. 큰 비가 오려나 보다. 들판 너머 저 먼 하늘에 검은 구름이 한 점 떠돌더니 삽시간에 뭉게뭉게 퍼져 하늘을 온통 칠흑빛으로 덮으며 비를 뿌린다. “쏴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자 기겁한 영랑이 옷을 벗어 대사의 몸을 감쌌고 급히 나무 아래로 피했다. “두두두둑! 쏴아!”

 

비는 세상이 떠나가도록 줄기차게 내렸다. 아무리 영랑이 대사의 몸을 감싸고 있어도 워낙 거센 빗줄기를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한참이 지나자 비가 그쳤다. 날이 갠 후 강렬하게 대지에 퍼붓던 뙤약볕도 누그러지고 빗물을 품고 반짝이는 나뭇잎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축축한 나무 위에선 비오는 동안 멈추었던 매미소리도 다시 시끄럽게 들려왔다. 하지만 대사의 상처는 물이 들어가 덧나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이따금씩 대사는 처절한 신음소리와 함께 내 이놈들 모두 죽여 버릴 거야.”하고 무서운 저주를 뱉었다.

두 사람이 계룡 월암 마을에 도착했을 때 대사가 눈을 힘없이 뜨고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말했다. “! 어머니가 하늘에서 나를 부르는구나. 어머니!”하고는 환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대사님! 흑흑! 흑흑!”

 

영랑은 대사를 근처 유평마을에 모시고 가서 땅을 파고 정중히 묻었다. 봉분을 올린 다음 그는 풀죽은 얼굴로 갑사로 발길을 돌렸다. 비가 많이 내려 불어난 계곡의 물결이 급류를 이루며 거세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올라가니 커다란 바위 뒤에 맑은 물이 고여 있었다. 물 위엔 슬픈 눈을 한 아름다운 사내가 보였다. 대사와 함께 갑사에서 지내던 몇 달이 꿈만 같았다. 대사와 갑사의 승병들 덕분에 왜병들도 큰 타격을 입어 호남점령을 포기하고 결국 금산성에서 철수할 것이다. 나라를 구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한을 품고 돌아가신 대사가 너무나 그리웠다. 물끄러미 물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영랑의 귀에 저 멀리 갑사에서 은은한 풍경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고요하게 고여 있던 물에 거센 바람과 함께 소용돌이가 어지럽게 일어났다. 그것을 바라보던 영랑은 물에 빨려들 듯 몽롱해져 그만 물 위에 넘어져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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