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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했던 기억
게시물ID : humordata_17561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데트르
추천 : 12
조회수 : 178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06/14 22: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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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
 
나는 처음으로 가출을 했다.
 
지금 이 얘기를 하면
 
"중 2병이구만, 철이 없네"와 같은 반응이 예상되지만
 
서른이 넘은 지금 생각해 봐도 가출의 이유는 타당 했다.
 
 
 
지금의 나는 완전하게 철든 어른은 아니지만
 
가출한 중학생이었던 나를 충분히 이해를 한다.
 
뭐 예전의 나를 이해만 할뿐 지금 하라고 하면 가출은 안하겠지만
 
 
너무 사적인 얘기라 그 이유는 설명을 안하겠지만
 
형과 나는 가출이라는 적극적 반항을 실천으로 옮겼다.
 
그때 당시 패딩이라는게 있을리 없었고
 
고등학교 형 누나들이나 떡볶이 코트를 입고 다닐때여서
 
짧디 짧은 중학생에겐 방한 용품이라는게 크게 없었던 시기였다.
 
 
옷도 제대로 못갖춰 입고 가출을 한 형과 나는 아주 혹독한 겨울 밤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리 저리 떠돌며 잠을 잘곳을 물색하던 형과 나는
 
문이 열린 아파트 옥상을 발견하였다.
 
옥상에는 칼바람이 몰아쳤지만
 
가출한 이상 남들 눈에 최대한 띄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옥상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옥상에는 사람이 한명 억지로 들어갈만한 박스가 하나 있었고
 
거기에 교대로 들어가 추위를 피했다.
 
근데 박스가 참 신통한게 바람이 그렇게 부는데
 
안에만 들어가면 포근했고 잠이 솔솔 왔다.
 
박스 하나만 더 구하면 일주일도 거뜬할거 같았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 몸이 약했던 형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 이정도 했으면 어머니도 경각심을 가지실 것이라며 집에 들어가자고 설득을 했다.
 
형보다 고집이 있었던 나는
 
박스를 형에게 양보하고
 
자존심을 내세우며 한참을 버텼지만
 
진짜 춥긴 춥더라...
 
새벽 네시가 넘은 시간에 결국 형과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현관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거실에 불은 커져있었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들어오는 현관문 소리를 들으셨지만
 
방에서 나오지 않으셨고
 
잠시 후에 안방 불이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형과 나는 여태 어머니께서 우릴 기다리셨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방에 들어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침대에 누웠다.
 
 
 
잠에 들면서 나는 다시는 가출하지 말아야지라는 건설적인 생각대신
 
겨울에는 가출하지 말아야지라는 철없는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시간이 흘러 한여름이 되었다.
 
나는 저번과 같은 이유로 또 가출을 했다.
 
이번에는 나 혼자 가출을 했었다.
 
혼자서 밤을 보낼곳을 물색하다 저번 그 옥상으로 찾아갔다.
 
옥상은 변함이 없었지만 대화 상대도 없고 심심하던 나는 옥상을 이리저리 물색하다
 
물탱크를 따로 보관해 놓은 창고같은 곳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왜 저번 겨울에는 발견을 못했었나 싶을정도로 생각보다 아늑했던 그곳에서 나는 밤을 보내기 시작했다.
 
딱딱하고 더럽고 먼지 많은 시멘트 바닥에 누워
 
모기와 싸움을 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낙인이론이란 말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남들이 나를 불량학생으로 낙인을 찍으면
 
그 낙인에 따라 점차 불량학생처럼 행동을 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때 당시 내 기준에 가출을 하는 사람은 본드를 불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금품을 갈취하는 등등
 
불량이란 단어의 집합체였다.
 
이렇게 불량한 행동을 하고 있는 나는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으며
 
집에 아예 안돌아가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2병 맞는거 같기도 한데...
 
 
 
학교에서 그럭저럭 모범생이었던 나는
 
가출한 주제에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오자
 
학교를 갈까 말까 고민까지 했었던거 같다.
 
시간은 점차 흘러 오전 9시가 지났고 학교 가기를 포기한 나는
 
스스로가 진짜 불량 학생이 된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하고
 
불량 학생이 된 내 인생의 2막이 펼쳐질것이라고 생각했다.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오후 세시 정도에
 
물탱크 창고 안에 어머니가 들이닥치셨다.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다른 말씀 없이
 
"학교에 가"라고 하시며 나를 이끌고 집으로 데려가셨다.
 
어머니의 등장에 너무 놀란 나는
 
반항도 못하고 집에 이끌려 가서 교복으로 갈아입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니까 친구들은 청소를 하고 있었고
 
선생님께서는 "xx(다시읽어보다 본명이 적혀있어서 놀라며 지웠다)야 많이 아프다며
 
지각처리해줄께 얼른 집에가서 마저 쉬렴"
 
이라고 나를 돌려보내주셨다.
 
 
'어머니께서 아침에 전화를 하셨나보다, 내가 가출한걸 모르시네..'
 
라고 생각하며 집에 돌아갔다.
 
집에 돌아왔을때 어머니께서는 계시지 않았고
 
붙잡힌 마당에 다시 나가기 머쓱해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지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두번째 가출이 마무리 됐다.
 
 
 
하지만 한 달이 채 가기도 전 토요일 아침이었다.
 
저번과 같은 이유로 어머니와 또 트러블이 생겼고
 
학원 갈 시간이 되자 집에서 도망치듯 형과 집을 나섰다.
 
화가난 나는 학원이고 뭐고 다 필요가 없는 상태였고
 
형은 그래도 학원은 가자라며 날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형의 설득이 통하지 않았고 주머니에 있던 2천원을 들고 나는
 
세번째 가출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교통수단을 이용해 멀리 멀리 가버려야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제일 가까운(그래도 버스로 한시간 정도 걸리는) 지하철역으로 갔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예전에 살던 동네로 가기로 마음 먹은 나는
 
1호선 끝자락에서 4호선 끝자락까지 2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움직였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동전은 350원 있지, 예전 살던 동네가서 뭘 해야할지 계획도 없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이리저리 배회를 하던 나는 한 대형 마트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날은 점차 어둑어둑해지고 불안감은 커지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르자 어쩔 수 없이 이 지역에서 자취를 하던 막내누나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50원을 공중전화에 넣었는데 작동이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이라고 기껏 누나에게 의지를 하기로 했는데 공중전화마저 되지 않았다.
 
어쩌지 어쩌지라고 30분 정도 고민을 하다가 내 전재산의 1/3인
 
100원을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공중전화에 넣었는데
 
공중전화가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보니까 공중전화 비용이 40원에서 70원으로 오른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다.
 
이것도 모르고 멍청하게도 30분을 불안해했으니..
 
 
 
당시 막내누나는 이 지역에서 재수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울면서 전화한 동생이 걱정되서 학원을 조퇴하고 나를 데리러 한걸음에 달려와줬다.
 
택시에서 누나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또 쏟아질뻔 했지만
 
애써 의연한척 하며
 
어머니한테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 날 누나와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겠다.
 
 
 
당연히 누나는 나 몰래 어머니께 전화를 했고 다음 날
 
저승사자처럼 등장한 큰 누나 손에 붙잡혀 집으로 연행당했다.
 
집에 도착했을때는 10시 정도였던걸로 기억한다.
 
여태 내가 가출같지도 않은 가출을 했을 때와 달리 어머니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회초리를 들고 거실에 앉아 계셔서 더욱 더 분위기가 달랐다.
 
큰누나는 방으로 들어갔고 어머니와 나는 둘이 앉아서
 
트러블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이나 했다.
 
어머니는 내 의견을 이해하시며 이야기를 마무리를 지었지만
 
그래도 가출을 한건 잘못한 거라고 하시면서 종아리를 걷어 올리게 하셨다.
 
 
 
10대를 맞은 나는 붉게 부어오른 종아리를 부여잡고 방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잠이 막 들 무렵 어머니께서는 약을 들고 내 방에 들어오셔서 약을 발라주기 시작하셨다.
 
 
 
전에 아버지께 맞고나서 한참 자고 있어서 의식도 못할 때
 
약을 발라주셨다는 얘기는 가끔 들었는데   
 
 
잠이 들지도 않았고 어머니께서 때리시고, 어머니께서 약을 발라주시는게 참
 
뭐라그럴까... 오글거리고 싸구려 신파를 보는 느낌이었어서
 
자는척을 했다.
 
어머니께서 약을 발라주시고 나가셨는데
 
뭔가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러면서 "이럴거면 때리지나 말지"라고 말하며 쌘척을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날 이후로 두 번 다시 가출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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