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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떠났던 여행의 기록에 대하여.NOVEL
게시물ID : humordata_17701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냥노동자
추천 : 1
조회수 : 101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9/06 01:06:04
 
 
 
좋아하는 노래가 생겼습니다.
언젠가 한 번쯤은 이 노래를 듣고 글을 써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좀 부족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모쪼록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취지에는 맞지 않으나 유머게시판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음악과 함께 읽어주신다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 본 음악은 그룹 페퍼톤스에 저작권이 있으며 해당 저작권사와 가수의 요청이 있을 시 글과 음악 일체를
내릴 것을 약속합니다. 본 글은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섹터 72. 이름 전미경. 접속코드 RN-332DHR
 
상태 : 정상
건강 : 양호
연령 : 양호
판정 : 귀환
 
 
RN-332DHR이 귀환할 시간이 채 네 시간도 남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밭뙤기 한켠에 서 햇볓을 피하다 발 끝을
살짝 그늘 밖으로 밀어봤다. 뉘엿뉘엿 지는 해라지만, 아주 더운 여름날씨에 짧은 시간이지만 발끝은 뜨거워졌다.
 
"아. 유정엄마 거기서 뭐 해. 더우면 들어오라니까는."
 
코드 불명. 식별분류 인간. 전태규가 늘상 봐왔던 모습 그대로 허리를 구부정하게 한 채 한손에 호미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닭모가지를 붙잡은 채 껄껄 웃으며 소리쳤다. RN-332DHR의 남편으로 분류되어 있는 그는
40년 째 그녀의 곁에서 남편 역할을 해 주던 고마운 지구인이였다.
 
 
 
 
 
 
 
해가 완전히 졌다.
아들딸들이 이 집으로 오기로 한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삼계탕 익는 냄새가 제법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삼계탕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닭을 죽인 뒤 털을 뽑고 내장을 제거해 물에 끓이는 음식이였다. 인간으로 살기로 한 이상
배고픔을 감내해야 하는 RN-332DHR, 미경은 그 맛이 아주 좋았다.
 
그러고보니 지구의 바다 너머 푸른 눈에 노란 머리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것을 먹어 본 적이 없다던가?
지구 생태계를 조사하러 왔다는 처지는 둘째 치고 이 푸른 산 또는 겨울엔 이 갈색짙은 산 아래서 산 세월때문에
지구생태 조사 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태규는 RN-332DHR, 미경이 이 산 밖으로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읍내에 나가 국수를 먹고 그녀가 낳은 딸이 산다는 서울시 양천구에 몇 번 갔던것이 전부였던 그녀는 원래 살던 행성에
뭘 보고해야 하나에 대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애들은 언제 온대요."
 
"아 오겠지. 금강휴게소가 응. 좋아. 거기서 밥 먹고 온다고 하네. 새끼들 엄마 가는 날이라고 일찍 올 생각들은 하지 않고 원."
 
"나무라지 마. 내 자식들이 좋은 것 보고 맛난 것 먹고 온다는데."
 
"아무렴. 자네 자식이지. 내 자식이고. 그런데 빨리 좀 오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태규는 자꾸만 20년 전에 산 마루의 괘종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일곱시. 그녀가 떠나 가야 하는 시간은 오후 열한시였다.
이제 단 네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엄마! 아빠!"
 
삼계탕이 푹 익어가는 그 찰나에, 언제쯤 올 것인가 기어코 전화기를 들려던 태규와 RN-332DHR, 미경은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사위 김서형이 넓은 공터에 차를 대고 있었다. 딸 전수연이 아이 둘의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싸락문을 지나 집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첫 째 손녀와 장난감을 손에 들고 달려오는 둘 째 손주가 사랑스러웠다. 태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RN-332DHR, 미경은 별 감흥이 없는 표정이였다. 손주손녀들에게, 그리고 딸에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엄마는 항상 그랬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그나마 웃음이고 분노고 보여주는 것은 태규밖에 없었다. 미경은 딸이 보기에도
이상하리만큼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미경은 기계적으로 손주손녀를 두 손으로 들어 번쩍 안았다. 딸 수연이 활짝 웃었다.
 
"엄마 또 그런다! 웃어 좀! 집에 가는 날까지 그렇게 해야 돼?"
 
"집에 가는 날이라고 다르니. 너희들도 와라. 그러면 같이갈 수 있잖아."
 
엄마 RN-332DHR, 미경은 수연에게 같이 자신의 행성으로 갈 것을 제안했다. 꽤 진지한 제안이였지만 수연은 깔깔 웃었다.
 
"됐어. 나 아직 대출도 많이 남았고 내일모레 출근하면 거래처도 들러야 돼. 할거 많아. 얘네 또봇도 사줘야 돼."
 
 
 
 
 
 
저녁을 먹은 후 그들은 산으로 올랐다.
아주 시커먼 산에는 조명하나 없이 어두웠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는 눈치들이였다.
RN-332DHR, 미경은 두 눈에서 나오는 빛으로 불을 밝혀 산길을 안전하게 인도했다. 두 손자손녀가 신나는 얼굴로
'우리 할머니는 눈에서 빛이 나온다!' 라던가 '할머니가 울버린보다 더 짱이다!' 라며 신나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RN-332DHR 미경의
얼굴은 미동도 없었다. 남편 태규는 천천히 뒷짐을 진 채 산을 올랐지만 힘든 기색이 없었다. 이따금 사위가 남편의 손을 잡아 부축하고
끌어줬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괜찮다고 사양하는 탓에 그마저도 그만두기 일쑤였다.
 
그들은 마침내 긴 시간 산을 오른 끝에 산 중턱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나무로 위장한 우주선이 있었다. 그녀는, 지구 생태계를 조사하기 위해 온 외계인이였다.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딸과 그녀의 사위 그리고 태규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태규와 RN-332DHR, 미경은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채 마침내 그 우주선 앞에 섰다. 그 낡은 나무로 위장한 우주선의 문이 열렸다.
태규와 RN-332DHR, 미경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눈에 눈물이 맻힌 듯 그렇지 않은 듯 한 표정의 딸과 사위가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손자와 손녀는 신비한 광경에 연신 깔깔거리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엄마. 거기 가면 언제 다시... 올... 수는 없지?"
 
수연이 애써 태연한 척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속으로부터 끌어져오는 울음은 참을 수 없는 듯 목젖이 보이도록 말을 삼키고 울음을 삼킨 채
태연한 표정으로, 아주 일상적으로 물었다.
 
"나는 거기 가면 다시 못 와. 우주선의 에너지는 딱 내가 귀환할 만큼만 있고, 좌표는 내가 거기에 도착하는 순간 없어져.
우주는 넓어. 글리제 행성보다 더 먼곳에 내 고향이 있어. 네 아빠와 나는 그곳에서 영원히 산다. 그런데 너희는."
 
"엄마."
 
"장모님."
 
딸과 사위는 동시에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아쉽다는 감정은 알아. 창고 옆 수돗가에 네 번째 장독대. 거기에 간장 있어. 모를까봐.
냉장고에 장조림하고 깻잎무침 해놨어. 오이지무침은 시간이 없어서 못했지만 나중에 짤순이에 잘 짜서 내가 알려준
방법대로 무쳐서 먹어. 애들이 좋아해. 울지 마. 울면 내가 싫어서 그래."
 
"내가? 왜? 안울어. 엄마네 집으로 가잖아. 나도 알아."
 
수연은 씨익 웃어보였다. 그리고 RN-332DHR, 미경은 보았다. 그 웃는 반달눈 끝에 맻힌 눈물이 자신에 대한 아쉬움인 것으로.
그렇게 울지 말고 헤어지자고 했는데.
 
울지말고 헤어진다? 아쉬움이다? 그러면, 지구에 미련이 남는다?
남는 사람은 불행해지고 떠나는 사람은 모든것을 초월한 채 행복해진다? 결국 서로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채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이별의 은하를 건너 마침내 죽고나서는 모든 것이 잊혀진다? 그러면.
 
 
 
 
 
 
 
"나는 엄마를 잊고 싶지 않아."
 
"잊지 않으면 불행해져. 나는 내가 낳은 자식이 불행해 지는 것을 보고싶지 않아."
 
"그러면!"
 
 
 
참지 못했다. 수연은 결국 쇤 목소리로 소리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면 가지 않으면 돼잖아. 왜 결국 가려고 해? 엄마? 임무? 외계인? 중요해? 그게..."
 
 
 
 
 
 
 
 
 
 
 
"지구의 가치적 기준으로, 그것이 너보다 중요할 수는 없을거야. 그런데 난 무엇보다 임무가 먼저야.
그런데 어떨까? 나는 너희가 좋아. 너희는 나의 복제물이야. 그것만으로 나는 너희에게, 지구인이 말하는 가치의 기준인
사랑을 언제든 줘야 해. 그러나 내가 너희를 두고 떠나지 못해 아쉬워 결국 이곳에 남는 것이 사랑일까?
언젠가 나는 이 곳에서 죽을거야. 내가 떠나지 않더라도. 길어봐야 10년. 그 시간동안 내가 조금 더 너희 곁에 머문다고
그 아쉬움이 지금처럼 간절하지 않을까? 나는 결국 너희들의 바램대로 관에 들어가 불에 타거나 땅에 묻히거나
그렇게 되겠지만.
 
내가 떠나는 것이 단지 10년정도 더 다가왔을 뿐이야. 그렇게 생각해야 해. 잘 생각해. 내가 아주 건강하고 또 판단을 할 수 있을 때
너희 우주를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
 
 
RN-332DHR, 미경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손녀와 손자가 양쪽으로 다가와 베시시 웃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내일은 뭐하고 놀아?"
 
"개구리 잠자기 전에 개구리 배 보여준다고 했잖아. 그거 내일 가?"
 
RN-332DHR, 미경은 아주 부드럽게 손자손녀의 어깨를 감싸쥐었다.
그리고 그들을 아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할머니 냄새 나지. 이걸 잘 기억해. 너희들이 아주 오랜 시간뒤에 날 기억해라. 그러지 않으면."
 
 
그녀는 딸 수연을 무표정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엄마에게 할머니가 무슨 냄새를 가지고 있었는 지 설명할 수 없을거야."
 
 
 
 
 
태규와 RN-332DHR, 미경은 마침내 우주선에 올랐다.
우주선의 문이 닫히기 전에 광속 워프엔진은 이미 가동을 위해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지구 궤도 밖으로 나가기 전, 인간의 몸을 가진 태규가 버틸 시간은 3초 정도였다. 그나마도 늙은 육신으로 버티지는 못할게 뻔했다.
왜냐하면, 태규는 진짜 인간이였기 때문이다.
 
 
"당신, 아이들에게 할 말 없어요?"
 
"뭘, 당신이 내가 하고싶은 말 다 했고 내가 말한들 무슨."
 
"아빠!"
 
그 때였다. 딸 수연이 마침내 참지 못하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두 손자손녀 사이로 뛰쳐나와 가방에서 검은 봉지를 꺼내
RN-332DHR, 미경에게 거칠게 건넸다.
 
 
 
"김밥... 김밥... 가져가. 엄마가 나 소풍갈 때 맨날 싸주던 그 김밥. 내가 쌌어. 지구 나가면 먹어. 우주정거장 보일 때 먹어. 꼭.
햄 두줄 넣었어. 엄마 아빠 햄 좋아하지. 금성 넘어가면 쉴거야. 그 전에 꼭 먹고 쓰레기는 아니 비닐은 꼭 가져가."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해석은 어떨 지 모르겠으나 RN-332DHR 미경은 마침내 봉지에 든 세 줄의 김밥을 울먹거리며 내려다보는 태규를 보았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광속 워프엔진이 마침내 미친듯이 가동하기 시작했다. 슬픈 와중에도 수연은 두 아들딸을 품에 안은 채 점점 뒷걸음질 쳤다.
 
"태규씨. 여보. 영감."
 
"응? 왜 그래. 여보."
 
"그동안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남편 태규의 손에 들린 김밥 봉지를 부드럽게 가져와 제 품에 안고 그를 우주선 밖으로 툭 밀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였다. 놀란 눈의 태규가 우주선 밖으로 떨어지고 놀란 사위와 딸이 온 몸을 던져 그것을 받았다.
 
 
 
- 콰앙!
 
우주선의 해치가 닫혔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그들은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굉음을 내며 푸른 빛을내고 멀고 먼 밤하늘로 사라지는 우주선을 바라보던 태규가, 그제서야 아. 어. 아. 윽. 아. 하며
뭔가 말 하려다, 마침내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나뭇잎이 성성한 모양의 우주선은 우주의 어딘가를 향해 미친듯이 내달렸다.
 
 
 
 
 
 
 
 
홀로그램 명령 수신 장치에 사령관의 명령이 들려왔다.
 
 
 
 
- 행성 지구, 인간 멸종프로토콜 시행 여부 송신바람.
 
 
 
RN-332DHR, 미경은 잠시 눈을 감은 뒤 김밥 꼬다리 하나를 먹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도 RN-332DHR, 미경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계속, 그녀는 김밥을 먹었다.
잠시 뒤 다시 송신이 들려왔다.
 
 
 
 
 
 
- 재차 요망, 행성 지구- 인간 멸종프로토콜 시행 여부 송신바람.
 
 
그녀는 고요한 우주선 안에서 수없이 흐르는 별빛과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아주 익숙한 행성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점점 멀어져가는 푸른 빛의 행성 지구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녀의 허벅지에 놓인 김밥의 절반이 줄어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이야기했다.
 
 
 
 
"아니, 시행하지 않는다."
 
 
 
 
약간의 침묵 뒤에 다시 통신이 들려왔다.
 
 
 
 
 
 
 
 
 
 
 
- 이유를 말하라.
 
 
 
 
 
 
 
 
 
 
 
 
 
 
"거기에 내 딸과 사위, 손자 손녀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별빛이 흘렀다.
 
 
 
 
 
 
 
 
 
 
"사랑하는 우리 태규아저씨가 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화신고등학교 졸업축제에서 포크댄스를 추자고 손을 내밀던 젊은시절의 전태규가 그녀의 눈에 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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