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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와서 써보는 이야기들 (4).SSul
게시물ID : humordata_17730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냥노동자
추천 : 10
조회수 : 122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9/24 22:58:12



1.


산더미처럼 쌓인 송편을 사며, 전을 부치며 나는 명절이 행복하길 바랐다.

비록 시험실패로 인해 약간의 데미지가 있다 하더라도 가족이라면 날 이해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

아주 오랜 결심 끝에 해경을 해체... 한건 다른 사람이고. 아무튼 오랜 결심 끝에 서울행을 택한 것이

나의 가장 큰 실수중 하나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며 준비했던 시험이 실패하자 아버지는 내가 노력이 부족하고 게을렀기 때문에 시험에

실패했다며 저녁먹는 자리에서 두시간동안 날 비난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아침 일곱시에 출근해서, 오후 세네시에 집에 들어와 책을 붙들고 공부를 했던

것이 노력이 아니라면, 무엇이 노력의 범주에 들어가는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자아비판의 시간이였다.


오랜 직장생활(이라고 쓰고 노가다라고 읽는)을 한 끝에 얻게 된 몇 가지 질병들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아프다는 말을 했을 때 젊은놈이 노력도 안한 주제에 아프다고 엄살이나 부리냐며 비웃는 아버지에게 나는

그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지간에 내가 서울행을 택한것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에 대해 깨닫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공부를 했던 것일까.

궁극적인 목표는 내 삶의 질의 향상과 밝은 미래였다손 치더라도 인정을 받기 위한 욕구의 끝에는 내가 아프거나

혹은 마음이 공허할 때 그나마 멘탈을 지탱해준 가족들이 있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내가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들이였다는 생각을 하니 나는 누굴 믿고 어떤 사람에게

위로를 받고 살아야 하는지가 굉장히 궁금해졌다.


희대의 간웅이냐 시대를 앞서간 군주였냐 하는 먼 과거의 조조 조차도 자신의 삶의 무게를 지탱해준 것은 가족이였다.

내가 그런 커다란 인물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런 큰 사람조차도 자신의 마음을 뉘일 곳이 가족이였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나는 대체.


마음을 닫는 것은 혈육이 아닌 다른 사람들 선에서 정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되었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존재도 이제는 정리하는 것도 크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2.


시험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나는 아무 이유없이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맥없이 빈둥거리며 밥이나 먹은게 다인,

그런 사람이 되었다. 육개월간의 시험 준비기간동안 접해보지도 못한 과목을 공부하며 머리가 빠지고 코피를 쏟으며

우울증까지 겹쳐 힘들었던 순간에도 노력을 배신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에게는 조금 더 밝은 미래가 저기 불확실한 어딘가에.

시험결과를 확인했던 피씨방에서 나는 정신나간 놈 처럼 삼십분을 넘게 앉아있었다.

그럼에도 나보다 더 실망했을 가족들을 배려해 아무렇지도 않게 '아 뭐! 이번 시험 망했으니 다음에 더 열심히 할게요!'

라고 말했던 내 선택지는 곧 '아무 생각이 없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놈' 이라는 타이틀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한참을 한구석에 앉아 담배를 한갑 넘게 태우며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곰곰히 생각했다.



3.

동생은 결혼을 한다.

좋은 남편을 만나 아주 좋은 가정을 꾸릴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결혼을 묻는 자리에서 나는 책임질 수 없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또 피식 웃었다. 없는 놈 주제에 말은 그럴듯하게 한다고 했다.

내가 말한 것이 그런 의미가 아니였다는 변명을 하기를 그만두었다.

동생은 자주 나를 언급하고 반찬을 얹어주고 필요한 것을 갖다주며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했다.

나는 그 조차도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아버지가 미웠다.



4.


그런주제에 아버지는 대단히 합리적인 사람인 척을 하며,

두시간이 넘는 비난과 비웃음 그리고 설교 끝에 '이야기를 너무 오래 끌면 안된다' 라며 대단히

자신의 관대함에 대해 자랑하는 투로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를 너무 높게 봐 왔고 생각 이상으로

존경해 왔다는 사실이 들었다. 내가 알던 세계가 무너져 가는 그 순간에 우리 가족이 있길 바라지는 않았다.

그런데,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일어났다. 내가 알던 세계가 무너져 가는 그 순간에 내가 알던 가족도 그 자리에서

같이 무너져갔다.



5.

엄마는 내가 노력했고 힘들어서 어떡하냐고 했다.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며 노력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결과만 아는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노력을 안한거라고 했다.

지금은 어머니의 그 말 조차도 너무 상투적인 말에 가까운 것 처럼 느껴진다.



6.

나는 양산의 짐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오려던 계획을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닌것 같다. 오랜 경험이 말해준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7.


언젠가 본적도 없는 고래아저씨에게 나와 함께 바다 여행을 가 달라고 기도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바람은 공허와도 같은 것이여서 생에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잘 안다.

아버지는 남들이 앞을 보며 걸어갈 때 너는 별이며 달이며 하찮은 것들에 신경썼기에 실패한거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고래와 펭귄 그리고 닿지 않는 오로라와 우주의 동경에 관한 것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그것은 내가 가진 온전한 세계이기에 나와 대척점을 가졌던 아버지에게 말할 만한 것들은 아니였다.

나는 아주 오래전 동경하는 삶에 대해 언급을 하기도 전에 아버지에게 소주잔으로 맞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문득 내가 집을 떠난 이유에 대해 다시한번 상기하게 되었다.



8.

아버지는 사위를 좋아한다.

동생의 남편은 건실한 회사의 높은 사람이고 아버지 마음에 들게도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이다.

나 역시 동생의 오빠라는 이유로 깍듯하게 대하고 살갑게 인사도 하는 동생의 남편을 좋아한다.

나는 명절 당일에 식사를 마치고 집을 떠나 나가는 동생 부부 내외에게 웃으며 십만원짜리 수표 한장을 건넸다.

담배를 피우겠다며 핑계를 내고 나간 자리에서 건넨 돈이였다.


'ㅇ서방, 괘념치 마시고 이 돈으로 마음에 드는 것 맛난 건 간단하게 하시게. 내가 형편이 부족해 많은것은

못 해주겠지만 동생 잘 부탁한다는 성의라 생각하고 받아두시게.'


통장에 남아있던 20만원 중 10만원을 건네던것은 아깝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그들에게 많은 것을 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행여 동생이 우습게 보일까 끝내

건네지 않으려 했던 돈을 건네고야 말았다. 그거라도 주지 않으면 내가 너무 비참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거의 모든것을 준 셈이였다.

내 사정을 잘 모르는 동생의 남편은 잘 쓰겠다며 감사하게 받았지만 동생은 주저주저 하더니 결국은

받고야 말았다. 그리고 자주 날 돌아보다 차에 올라 아파트 단지 밖으로 사라졌다.



9.

실패했고 또 말씀대로 게으르고 그래서 미안합니다.

나는 이제 아무 미련을 갖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렵니다.

뭔가 노력을 하고 또 애썼지만 마음에 차지 않으셨으니 나는 앞으로 어떤 것을 하더라도

그저 그런 인간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입을 아주 조용히 열고 조용히 닫고, 별을 바라보고 달에게 소원을 빌며 나 한몸 사는 정도의

생활력이나 가지고 기타를 치고 그렇게 살렵니다. 책을 보고, 귀여운 고양이나 개 같은 것을 사랑하고

앞으로 절대 올 수 없는 사랑과 애정은 멀리한 채 풀과 나무 같은 것에서 위안을 얻고 가족은

나를 그동안 키워준 고마운 분들이나 감히 내가 앞으로 어떤 비전을 제시하거나 함부로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잠시나마 위안이 되어 주어서 감사했습니다.



10.

아. 그 월급 230 준다는 공장 가야지. ㄱㄱㄱㄱㄱ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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