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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마왕
게시물ID : humordata_17864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흙향기
추천 : 3
조회수 : 147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12/09 07: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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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드디어 둘은 말을 타고 험준한 우금치로 올라갔다. 정상으로 올라가보니 멀리 웅장한 웅진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먼저 발견한 연모가 경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태자마마. 저기 웅진성이 보입니다.” 그러자 태자가 눈을 번쩍 뜨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멀리 웅진성이 당당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태자의 눈에 하늘에 치솟는 거센 불길이 눈에 보였다.
 

연모. 저기 봉황산을 보시오. 웅진성 가기 전 왼편 산봉우리에 불길이 하늘에 닿아 있소.” 그 말에 놀란 연모가 태자에게 말했다. “원래 봉황은 남쪽을 지키는 붉은 신입니다. 그래서 이름 값하느라고 거센 불길이 하늘높이 치솟아 타오른 것 같으니 웅진성보다 그쪽을 먼저 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냥 두고 떠나자니 뭔가 찜찜하군요.”
그러자 태자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연모. 만약 이번에도 우리가 죽을 위험에 빠지면 책임질 수 있겠소?” 그 말에 연모가 가슴을 펴며 자신 있게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이번에도 거의 죽을 것 같았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태자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럼 다시 아슬아슬한 모험을 하란 말이오?”
그 말에 연모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이번에도 그렇게 끔찍한 일을 겪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태자가 혀를 끌끌 차면서 입을 열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 하지 않소? 하여튼 연모를 한 번 더 믿어보겠소.”
감사하옵니다.”
 

두 사람이 우금치를 말을 타고 내려가 웅진 경내의 제민천가를 지나 대통사 부근에 이르렀다. 거기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금방 봉황산 기슭에 도착하였다. 봉황산은 봉황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웅진 경내의 신성한 산이자 좋은 명당이기도 하다. 그래서 웅진시대에도 관청이 이곳에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지금 사비시대에도 역시 그러하다. 백제 왕실에서 워낙 신성하게 여겼으므로 임금 이외에 다른 사람들은 산의 출입을 금하였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커다란 황소보다 몇 배나 큰 호랑이가 날뛰기도 하였고 큰 은행나무만한 구렁이도 풀숲에서 꿈틀대기도 하였다.
 

그런 인적이 없는 봉황산에 두 사람이 말을 타고 오르고 있으려니 풀숲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여왔다. “산을 오르는 저 사람들은 분명 불의 마왕에 홀려 이곳에 온 것이야.”
불의 마왕?”
봉황의 마왕을 아직도 몰라? 봉황은 남쪽 불세상의 상징이잖아.”
, 봉황의 마왕! 저 사람들 정말 불쌍하게 되었군. 잘못하면 마왕에게 잡혀가 다른 세상으로 떨어져 다신 이 세상에 못 올지 몰라.”
그래. 다른 세상에서 죽게 되면 절대 이 세상에 올 수 없지.”
그 소리가 자꾸 마음에 걸린 연모가 말에서 내려 풀숲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너무 놀라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거기에는 팔뚝만큼 큼직한 여치와 방아깨비가 다정히 머리를 맞대고 소곤대고 있는 것이다. 그때 태자가 연모를 불렀다. “연모. 거기서 무엇하고 있소? 어서 갑시다.” 그러자 연모가 아쉬운 눈빛을 곤충들에게 던지며 자리를 떠났다.
 

봉황산 정상에 솟아있던 불길은 너무 거세서 마치 하늘에 닿아 있는 불기둥처럼 보였다. 불길이 드세서 가까이 갈수록 당연히 더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상하게도 불길 바로 옆에까지 가도 전혀 뜨겁지 않았다. 연모와 태자가 불길 가까이 접근한 순간 갑자기 끔찍한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으흐흐!” 다음 순간 미친 듯이 춤을 추던 거대한 불길이 차츰 엄청난 덩치의 시뻘건 거인으로 변하여 갔다. 거인이 연모와 태자를 내려다보고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 잘 걸렸구나. 너희가 가까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래서 잠시 뜨겁지 않게 하여 주었지.”
마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은 불에 타는 듯 뜨거워졌다. 두 사람이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마침내 비명을 질렀다. “!” “!” 마왕이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으하하! 이제 맛이 어떠냐? 감히 신성한 이곳에 들어오다니 따끔한 벌 좀 받아야겠다.”
 

그러자 연모와 태자가 뜨거움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칼을 뽑아들어 크게 외쳤다. “! 누구 맘대로.” 거인이 두 사람을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역시 시뻘건 불 칼을 허리춤에서 뽑아 높이 치켜들었다. “흐흐흐! 이제 너희에게 아주 골 때리게 헷갈리는 세상을 보여주마. 잘 가거라.” 하늘까지 치솟은 흉측한 거인이 불 칼을 휘두르자 거인 자신이 어마어마한 불길의 소용돌이로 변해 태자와 연모를 타고 온 말과 함께 휩싸고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
 

여긴 태백산 깊은 계곡 옆 암자. 어둠속에 나란히 앉아있는 두 사람 혜량과 도도. 거지왕초로 떠돌던 도도는 영랑을 만나 한눈에 반해 당당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였다. 그래서 거지생활을 청산하고 멋진 장군이 되기 위하여 무예를 닦으러 태백산에 들어와 괴승 혜량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된 것이다. 앞날에 뚜렷한 목표와 희망이 생긴 만큼 도도의 생활 자세는 누구보다도 성실했다. 그것을 눈여겨 본 혜량은 도도를 친자식처럼 아껴 우선 마음공부를 하게 하였다. 도도도 혜량을 무슨 일이든 친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다.
 

그런 도도가 혜량의 지도를 받아 한참 정신을 집중시키고 과거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였다. 어린 시절의 시간을 넘어 더 거꾸로 올라가니 태어나기 이전의 어두컴컴한 시기가 나타났다. 그것은 어미의 뱃속에 들어가기 이전에 전생의 영혼이 어두운 우주공간에 떠도는 시기였다. 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니 어두운 공간에 갑자기 한줄기 환한 빛이 비치면서 금강 백사장에 묶여 꿇어앉은 자신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저만치서 어떤 임금이 호령을 하자 주위에 있던 숱한 병사들 중 하나가 장검을 들어 자신의 목을 내리쳤다. “으악!” 비명을 지르고 명상에서 깨어난 도도가 식은땀을 흘리며 방금 자신이 본 장면을 이야기하며 혜량에게 물었다. 혜량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지그시 도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는 전생이 백제의 위사좌평 백가였소. 백성을 위해 백제의 동성왕을 죽였다가 그 후에 왕이 된 무령에게 금강 변에서 살해된 것이오.” 전생의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도도는 그날부터 백제에 대한 깊은 원한을 품고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
 

혜량이 묵묵히 앉아있는 도도를 바라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도도. 환계란 말을 들어본 일이 있소?”
도도가 흥미로운 듯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환계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생계라 하오. 사람이 죽은 뒤에 영혼이 심판을 받고 들어가는 극락과 지옥이 사계. 사계에 가기 전에 영혼이 떠도는 곳이 바로 환계요.”
도도가 어리둥절하여 혜량의 얼굴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자 혜량이 눈에 힘을 주고 말을 계속했다. “환계, 즉 환상계는 시간의 문이 열려 있소.”
시간의 문이 환계에서 열려있다니요?”
그렇소. 환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오.”
그건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제 환계로 들어가 모험을 하고 있는 태자와 연모를 뒤쫓아야 하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환계의 어느 누구에게도 일러줄 수도 없고 환계의 어느 일에도 직접 간섭할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몸이 죽은 상태처럼 되어 빛으로 변한 의식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고 시간을 앞질러 미래로 들어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접신하여 태자를 죽여야 하오.”
환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아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그건 아니오. 그들이 환계에서 죽지만 않는다면 다시 생계로 돌아올 수 있지만 죽으면 절대 돌아올 수 없소.”
과연 시간이 바뀌면 그 세계에선 저들을 죽이려는 의지와 생각이 남아 있겠습니까?”
그렇소. 시간을 거스른 환계는 생계와 비슷한 곳이오. 당연히 사랑과 증오가 존재하지. 내가 환계 속을 들여다보니 방금 저들이 위험한 순간을 벗어나 버렸소.”
 

그 말에 도도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길로 묻는다. “어떤 위험한 순간을 벗어났다는 말씀입니까?”
이 땅에 천년 후에 생길 조선이라는 나라에 들어온 일본군한테 잡혀죽을 뻔 했소. 우리가 일본군의 몸에 접신하였으면 확실히 죽였을 텐데 기회를 놓쳐 아깝소.”
일본군이라면 우리 신라의 원수들 아닙니까?”
필요하다면 적들의 몸에라도 접신해서 태자를 죽여야 하오.”
하지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생계의 현실로 돌아와 시간이 너무 흘러가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환계는 여기보다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흐르고 있소.”
 

두 사람은 결가부좌를 하고 깊은 명상에 들어갔다. 이윽고 자기를 잊은 무념무아의 상태에 이르자 혜량의 몸에서 강렬한 한 줄기 푸른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면서 허공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소용돌이가 생겼다. 혜량의 영혼이 그곳으로 쏟아져 들어가자 그 뒤를 방금 누런빛으로 바뀐 도도의 영혼이 황급히 쫓아 들어갔다.
 

어스름한 오색 달빛이 환히 비추고 뿌연 안개만이 가득 메우고 있는 환계. 생계와 사계의 중간에 있는 또 다른 세상이다. 위와 아래 옆 등 사방에는 영롱한 별들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환계는 빛이 가득한 곳이기는 했지만 생계처럼 푸른 하늘 아래 푸르른 풀과 나무가 우거져 있고 그림같이 멋진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빛으로 변한두 사람이 한참을 날아가니 까마득히 높은 산에 커다란 동굴이 보였다. 동굴 입구 위 벽에는 미래로 가는 문이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었다. 환계에 들어온 혜량과 도도의 영혼은 제각기 청색과 황색의 빛 무리를 이루며 거침없이 컴컴한 동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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