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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봉자
게시물ID : humordata_17869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ahh
추천 : 11
조회수 : 2562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8/12/11 16:27:50
광식이 얘기로 베오베 간 김에 내 얘기도 좀 할께.

난 소위 말하는 경상도 아재야.
큰 넘은 대학 3학년이고 작은 넘은 이번에 수능 쳤어.

땔내미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봉자야. 위 사진 보이지?

사람들은 말하지. 경상도 남자 무뚝뚝하다고.
종종,  진짜 경상도 아재들은 퇴근하면
 '아는~ 밥묵자~ 자자~'
이말만 하냐고 진지하게 묻는 분들이 있지.

물론 말도 안되는 얘기지. 경상도 아재가 다 그럴라고.

근데 한번은 라디오에서 이 말이 또 나오더라.
말도 안된다 여기며 가만, 작은 넘과 아침 밥 먹을 때를 떠올렸어.

하~ 진짜 작은 넘 식탁에 앉은 후부터  '묵자' 이 말밖에 안 한 거라.

고3인데 힘들진 않으냐, 잘되고 있느냐는 둥 아버지로서 뻔한 멘트라도 몇마디 날릴만 한데. 밥 다 먹을 때까지 딱 '묵자' 이 한마디만 한 거지.

하기사 뭐 무뚝뚝하기는 아들 넘들도 마찬가지야. 
오셨어요?
식사하세요.
이 말이 끝이야. 

하지만 봉자는 달라.
아파트 엘리베이트 문이 열리고 나서자마자 후다닥 소리가 들려. 곧이어 막 짖으며 현관문 긁는 소리가 나지. 

봉자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꼬리를 흔들고 다리를 부비고, 안아주면 내 볼을 핥고 난리야.

우리 집에서 나를 가장 좋아하고 반겨주는 게 봉자야. 물론 아내 몰래 간식 주고, 산책시켜주니 그렇겠지만서도...
암튼 그런 봉자를 나도 엄청 좋아해.

아내가 집을 비워 일찍 퇴근할 때였어.
늘 그렇듯이 봉자는 날 격렬히 반겨줬어. 아무도 없는 집에 일찍 가주니 얼마나 좋았겠어. 잘만 하면 좀더 일찍 산책할 수 있으니 그날따라 더 격렬히 날 반기더만~

그런 봉자가 난 또 얼마나 이뻔지~
내가 생각치도 않은 말들이 나도 모르게 막 튀어나오더라.

"봉자 그래 심심해쪄~"
"아빠 와쪄~ 어이구 우리 봉자, 이쁜 보옹자~"
"아빠도 보고 싶었쪄~~~~"
"우리 봉자 아빠 사랑해쪄~ 나도 사랑해쪄~"

생각만해도 닭살 아니 소름 돋는 말들이 경상도 아재, 아니 할재 입에서 술술 나오는 거라. 뭐 어때 아무도 없는데.

그렇게 한참 봉자랑 나랑 안고 뒹굴며 쭈쮸~ 서로 얼굴 부비고 핥고 막 그러는데

아 슈발~ 갑자기 작은 방 문 열리는 소리가 턱~ 나는 거라.

그리로 쳐다봤지. 놀라자빠지는 줄 알았어. 아 글쎄 학교 있어야 할 작은 넘이 지 방 문을 열고는 이 무슨 시추에이션이냔 황당한 얼굴로 내를 빤히 쳐다보는 거였어.

아~ 슈발~~~. 순간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고 어찌할 바를 몰랐어. 진짜 쥐구멍 있었음 그리로 머리 박았을 거야. 내 살다살다 그리 쪽팔리는 일은 첨이었어.

밥 먹는 내내 한 마디도 않는 아버지란 사람이 
평소 자식에겐 살가운 말 한 마디 안 주는 사람이
강아지랑 한참이나 쭈쭈 거리며 핥고 부비고 있으니 그 넘 또한 얼나나 얼척이 없었겠냐고.

이후로 한동안 작은 넘 얼굴을 제대로 못 쳐다봤어. 생각날 때마다 이불 걷어찬 적이 한두번이 아니야. 쪽팔려서. 

이후론 방문 다 확인하고 봉자랑 쭈쭈거려. 그래도 봉자는 이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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