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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게시물ID : humordata_17889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ahh
추천 : 8
조회수 : 2525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8/12/21 13: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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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아파트 공사 현장, 까마득한 층, 어정쩡한 자세로 욕실 타일을 붙이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차가운 칼바람은 앞뒤로 훤히 뚫린 베란다를 타고 들어 막바지 작업하는 인부들의 빼꼼이 드러난 맨얼굴을 사정없이 후벼 파댔다.
 
아버지, 한쪽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는 오래 앉아 작업하지 못했다. 몇 장 붙이고는 일어나 다리를 펴고 또 앉아 붙이는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 하고 있었다. 몸 성한 사람이면 반나절이면 끝낼 일, 아버지는 그 곱절의 품을 팔아야 했다.
 
주방 공사를 마친 인부가 욕실로 들어온다.
 
“아직 안 끝난능교? 한 대 피우고 하이소예”
 
“다 끝나 간다, 마치고 피자”
 
피식 웃음이 났다. 저 퉁명한 소리, 이쪽을 보며 말할 듯도 한데, 아버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아들은 잘 있능교? 요새 소방수들 사고 많이 다던데”
 
순간, 아버지는 머리를 휙 돌려 인부를 노려보았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마라, 어따대고 이자슥이”
 
“아~ 마, 알았어요, 내가 머라켔나?”
 
안부나 물으려 했던 인부는 머쓱한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물며 베란다 쪽으로 향했다.
 
 
대학 합격 통지서를 들고 아버지를 기다린 그날, 아버지는 술에 취해 저녁 늦게 집에 오셨다.
기다렸다. 어찌 되었나 물어 주기를. 하지만 그는, 오늘이 결과 발표가 있는 날임을 분명 알고 있을 아버지란 사람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형편이 어렵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다. 영민한 동생 상희도 내년이면 대학에 갈 터, 일당쟁이 노가나 아버지 수입으로 두 명이나 대학을 간다는 게 무리란 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있었다. 아버지 신세를 지지 않고서도 혼자 힘으로 해 낼 자신이 있었다.
 
거실 한 켠에 있는 앉은뱅이 탁자로 갔다. 아버지께 보여주려던 합격증을 빤히 쳐다보았다. 14평 임대아파트, 거실이라기엔 형편없는, 주방과 연결된 좁은 공간에서 3년을 보냈다. 공부하고 잤다. 그렇게 악착같이 공부해서 얻은 합격증, 같이 기뻐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서러웠다.
 
“좀 들어 와 바라”
 
한참의 시간이 지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자, 담배를 피며 앉아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동생 얘기부터 꺼내셨다. 한 사람만 대학을 가야한다면 상희가 가는 게 더 났지 않느냐, 너는 머리가 좋으니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게 어떻겠느냐, 떠듬거리며 때론 큰 숨을 쉬며 아버지는 말하셨다.
 
대학을 가고 싶다 말하고 싶었다. 혼자 해낼 수 있다, 아버지의 도움 없이 대학 다닐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었다. 입안에서만 맴돌 뿐, 터져 난 건 그 단순한 두 문장이 아니었다. 눈물이었다. 서러웠다. 무슨 아버지란 사람이 이런가. 입학금 몇 백 정도도 융통할 수 없는 무능한 아버지 아니던가.
 
그날 새벽이 없었다면 보챘을 터였다. 입학금만 마련해주십사 졸랐을 터였다. 아직은 깜깜한 새벽, 잠결에 희미하게 들렸던 흐느끼는 소리, 안방에서 가늘게 들려오던 울음소리, 참으려 꺼어꺽 대던 그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일년의 공부 끝에 소방공무원이 된 날, 동네 흐름한 중국집에서 세 식구가 짜장면을 먹던 날, 아버지는 짜장면을 먹다말고 갑자기 눈물을 쏟으셨다. 민망했던지 하얀색 봉투 하나를 디밀고서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향하셨다. 그렇게 먼저 아버지는 자리를 뜨셨다.
 
 
아버지는 여전히 뒤에서 아들이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느리지만 꼼꼼하게 타일을 바닥에 붙이고 계셨다.
전화벨이 울린다.
아버지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서면서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상희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아빠 으흐흑~~~”
 
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빠, 오빠가, 오빠가~~~ 으흐흐흐흑~~~~~”
 
휘청거린다. 누가 잡아주지 않으면 쓰러질 듯 아버지의 몸이 앞으로 쏠린다.
 
“안된다~”
 
“안 된다~”
 
이제 육십을 바라보는 중년의 남자가 울부짖는다.
 
“이래 델꼬 가면 안 됨미더~ 우리 민수 이레 델꼬 가마 안된다꼬예~”
 
아버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격하게 다리를 절룩거리며 밖을 향한다.
 
아~ 몸이 가벼워진다. 나의 몸이, 형체가 희미해지는 게 보인다. 하늘로부터 강력한 뭔가의 힘이 나를 잡아당기는 게 느껴진다. 아버지에게 다가서려 했지만 부축해주고 싶지만 마음 뿐 으스러지는 내 몸뚱아리는 아버지와는 반대쪽으로 멀어진다.
 
 
 
꿈이었다.
이상한 꿈이었다. 내가 아들이었고 아들이 나였다. 하지만 너무 생생한 꿈, 희미한 빛이 어둠을 밀고 들어온다. 츄리닝 차림의 남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선다. 휴대폰을 꺼내 든다. 떨리는 손으로 꾹꾹 누른다.
 
“중부소방섭니다.”
 
“박민수 소방교 아부집미더, 민수하고 통화 좀 되겠습미꺼”
 
“지금 안됩니다. 현장 출동하였습니다.”
 
숨이 콱 막힌다.
 
“어데로 출동했는데예”
 
“두시간 전에 서면 화재 현장으로 출동했습니다.”
 
어떻게 택시를 탔는지 모른다. 영문을 모르는 택시 운전수가 백미러를 힐끗 쳐다본다. 뒷자리 실성한 듯 초점 없는 눈으로 앉아 있는 남자가 보인다. 라디오 뉴스에서 서면 복계천 노래방에 불이 크게 났다는 걸 들은 터라 목적지는 대략 알만했다. 그리로 가자니, 노래방 주인쯤 되나 싶었다.
 
민수가 온 게 틀림없었다. 민수의 혼이 온 거였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을 보러 온 거 였다. 화재 현장에서 뭔 사단이 난 거다. 안 된다. 안 된다. 불쌍한 민수, 이리 가면 안 되는 거였다.
 
하나님을 찾았다. 아내를 잃고 알콜 중독자가 된 자신을 동네 사람이 교회로 데려간 적이 있었다. 한달쯤 다녔었다. 허나 술을 끊을 수 없었다. 술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었다. 술이 자신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게 한 건 하나님이 아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두 아이의 눈망울이었다. 술에 찌들어 들어간 날, 어린 동생을 돌보는 민수를 보았었다. 그 놈 역시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 사랑이 필요한 어린 애였다. 일찍 떠난 아내를 대신 해 동생을 살피는 아들을 보고선 정신이 번쩍 든 거였다.
 
하나님, 우리 민수 살려 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당신 뜻대로 살 테니 제발 우리 민수 아무 일 없게 해주십시오.
 
고마운 아들이었다. 미안한 자식이었다. 생각만하면 가슴이 콱 막히는, 미어지게 만드는 피붙이였다. 잘 자라줘서 고맙단 말 한 마디 못했다. 무능한 아버지 만나 고생시켜 미안하단 말 못했다. 맞다. 이리보내면 안 되는 거였다. 이렇게 가면 안 되는 거였다.
만나는 처자 없냐는 말에 상희부터 번듯하게 시집 보내고 가겠다는 놈이었다. 남부럽지 않게 동생 시집부터 보내겠다는 놈이었다. 그런 자식이었다.
 
 
“다 왔습니다. 여긴갑.....”
 
택시 운전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만 원 짜리 두 장을 앞좌석으로 휙 집어던지고선 급하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도로 건너편은 아수라장이었다. 검게 그을려 뼈대만 남은 5층 짜리 건물 주위로 대여섯 대의 소방차, 그만큼의 엠브란스, 경찰차 등이 뒤섞여 있었고 흰색 까운을 입은 사람들, 소방수들이 황급히 엠브란스로 환자를 옮기고 있었다.
 
긴 호흡을 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천천히 엠브란스 쪽으로 걸었다. 손이며 발끝, 세포 하나하나까지 떨렸지만 온 몸에 힘을 줘 뚜벅뚜벅 걸었다.
 
낯익은 소방수가 보인다. 눈이 마주치자 놀라는 표정으로 이쪽으로 다가온다.
 
“아버님 아입미꺼~, 하이고 이 시간에 여~ 우얀일입미꺼”
 
“민수 어딨습니까? 일로 출동했다 카던데예”
 
“아~ 소방교 님, 화재 진압하고 지금 좀 쉬고 있을낍미더, 절로 함 가보이소”
 
가리켜 준 방향으로 걷는다. 아~ 살아 있구나. 살았구나,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걸 참는다. 화재 현장에서 20미터 쯤 떨어진 건물 옆에 뭘 먹고 있는 한 사내가 보인다. 온 몸에서 증기를 내 뿜고 있는 사내가 화단 턱에 걸터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다.
 
“민수야”
 
시커먼 얼굴, 헤지고 낡은 방호복을 입은 사내가 컵라면을 먹다말고 이쪽을 쳐다본다. 사내의 눈이 똥그래진다.
 
“아부지~”
 
살을 에는 한 겨울, 난닝구에 츄리닝, 양말도 싣지 않은 슬리퍼 차림의 아버지가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다가온다. 절룩거리는 다리가 거추장스러운 듯 성한 한 쪽 발에 힘을 줘 껑충껑충 뛰며 다가 온다.
 
“민수야~ 으흐흑~”
 
아들을 껴안는다. 그제서야 눈물이 쏟아진다. 영문을 모르는 아들은 멍한 표정으로 몸을 맡긴다.
 
“민수야~ 고맙다. 미안하다. 으흐흑~~~~~”
 
아버지가 운다. 엉거주춤한 자세의 아들은 그제서야 손을 들어 아버지를 안는다. 그리고선 이젠 왜소하여 뼈만 잡히는 아버지의 팔이며 등을 쓸어내린다. 그렇게 두 남자는 한 동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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