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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행복은 허상이다
게시물ID : humordata_18098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쓰는이혁
추천 : 3
조회수 : 152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9/04/13 1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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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제목: 행복은 허상이다
 
 
  20대 때 내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바로, 행복이었다. 행복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왜 나는 불행한지.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면서 20대를 보냈다.
  30대에 접어든 지금. 최근에 드는 생각은 행복이란 게 허상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행복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이러든 저러든 결국 삶은 괴롭다. 이게 내가 최근에 내린 결론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힘들게 힘들게 산꼭대기에 올라서면, 일시적으로 욕구의 충족감(혹은, 해소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산꼭대기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때가 되면 반대편 비탈을 향해 내리막 걸음을 걸어야 한다. 내리막길을 걸을 때 찾아오는 번민. 공허와 불안, 외로움과 괴로움.
  어찌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 같기도 하다. 온몸으로 바위를 밀어 힘들게 산꼭대기에 올려놓으면, 바위는 곧장 반대편을 향해 굴러 떨어진다.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시지프스의 무의미한 노역(奴役)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바위를 산꼭대기 위에 멈추어 놓을 수 없듯이, 우리는 행복한 상태에 멈춰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인생은 늘 괴롭다. 예를 들어보겠다.
  일자리를 얻지 못해 백수 신세로 지내고 있노라면, 일 없는 자기 처지가 불행하게 느껴지고, 일자리를 얻으면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일자리를 얻으면, 이젠 일하고 있는 자기 처지가 불행하게 느껴지고, 일을 때려치우면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정말 일을 그만둬버리면, 이제는 다시 일하던 시절이 그립다. 현대판 시지프스.
 
  애인이 없으면, 애인 없는 자기 처지가 불행하게 느껴지고, 애인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막상 애인이 있으면, 귀찮고 만날 싸우기만 하다가, 차라리 헤어지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꼭, 헤어지고 나면 사귀던 때가 그립고, 헤어지진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든다. 지금 내가 불행한 이유는 헤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역시 시지프스와 다를 바 없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나도 먹는 것 좀 줄이고 날씬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막상 체중 감량을 시작하면,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사는 게 행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다이어트를 하나 싶어진다. 그래서 결국 체중 감량을 포기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 순간만 견딜 걸, 왜 먹었지’ 하며 후회가 든다.
  같은 메커니즘으로, 담배도 마찬가지고, 술도 마찬가지고, 모든 게 다 마찬가지다.
 
  인간은 늘 괴로울 수밖에 없다. 일을 해도 괴롭고, 일을 안 해도 괴롭고. 돈이 있어도 괴롭고, 돈이 없어도 괴롭고. 애인이 있어도 괴롭고, 애인이 없어도 괴롭고. 결혼을 해도 괴롭고, 결혼을 안 해도 괴롭고. 예뻐도 괴롭고, 안 예뻐도 괴롭고, 담배를 피워도 괴롭고, 담배를 안 피워도 괴롭고. 오래 살아도 괴롭고, 오래 못 살아도 괴롭고.
  부처님께서도 일찍이, 인생은 고해(苦海) 즉 "고통의 바다"라고 하셨다. 인간의 번민은 하루이틀 일이 아닌 게다. 한쪽에서 만족감을 느끼면 곧장 반대쪽에서 불만감이 올라 온다. 그러니 인간은 죽을 때까지 괴로움을 붙들고 살 수밖에 없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행복은 허상이다. 행복이 허상이므로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헛수고일 뿐이다.
  나는 이게,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유전자의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아프리카에 만족하는 유전자였다면 인류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갔을까? 현재에 만족하고 현재에 안주하며 행복해하는 유전자는 일찌감치 도태되고 멸종된 것이 아닐까. 과학 쪽은 잘 모르지만 요새 드는 생각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가 불쑥 튀어 오른다. 의식의 문제든 유전자의 문제든, 어쨌든 행복해지는 게 불가능하다면, 이러나저러나 늘 괴로울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늘 괴로워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답을 나는 두 가지로 생각한다.
  하나는, 그러니까 대충 살고 일찍 죽는 게 최선이라는 것(링크 1). 다른 하나는, 행복해지려는 노력 대신, 삶의 재미와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라는 것(링크 2, 3).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두 가지 답은 각각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더 다루지 않겠다. 링크를 참조하시길.
  한편 '일체유심조'의 원리로, 이러든 저러든 괴롭다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러든 저러든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나는 그게 매우 불완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게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의식의 영역에서만 통하는 말이다. 무의식은 마음 먹기에 달린 게 아니다. 모든 게 마음에 달린 거라면 우울증이나 PTSD로 괴로워 할 사람이 있겠나.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게 완벽한 해법 같아 보이진 않는다. 좋다 좋다 되뇐다고 스트레스나 정신적 상처를 없앨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오해는 말자. “인생은 늘 괴로울 뿐이고 행복은 허상에 불과하다”라고 하는 것은 염세주의나 허무주의가 아니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卽久)”란 말처럼, 끝에 다다르면 새 길이 열리는 법이다. 이러나저러나 괴로운 줄을 알면, 거꾸로, 이러든 저러든 거리낄 게 없어진다! 어차피 이러든 저러든 괴로울 뿐이라면, 그냥 지금 이 순간 "꼴리는 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겠나!
  허상이 허상인 줄을 깨달으면 그때 비로소 진짜 세상이 눈에 보인다. 허상이 허상인 줄을 모르면 죽을 때까지 허상만 좇게 된다. 허상 좇는 허깨비 놀음을 그만두고, 진짜 세상에서 진짜 인생을 살자.
  행복은 허상이다. 진짜는 삶의 의미와 재미요, 내 행동과 그에 따르는 책임이다. 행복해지려는 노력 대신, 눈앞에 펼쳐진 ‘지금 이 순간’을 의미 있게 혹은 재미있게 보내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결과는 기꺼이 내 몫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짜 삶의 자세가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https://blog.naver.com/dolgamulchi/221510234048
 
 
링크1 https://blog.naver.com/dolgamulchi/221494671672
 
링크2 https://blog.naver.com/dolgamulchi/221429254328
 
링크3 https://blog.naver.com/dolgamulchi/22142930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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