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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
게시물ID : humordata_18113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uena1
추천 : 8
조회수 : 184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9/04/22 1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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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이발


출근길 회사 여직원과 우연히 마주쳤다.

"이발하셨어요?"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는 없었다. 으레 하는 인사치레
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스릴 이, 터럭 발 머리카락을
다스린다는 의미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동사로서
머리털을 깎아 다듬는다는 의미이다.

통상적으로 머리 자르셨어요? 라고 많이 쓰지만, 엄밀
히 말하면 굉장히 잔혹스러운 표현일 수 있다. 머리카
락 다듬으셨어요? 라는 표현이 더욱 적합하며 이를 한
자어로 쓴 것일 뿐이다.

물론 이런 표현에 욱할 필요는 없었다.
어제 우연히 여직원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더라면 말이
다.

"아재들은 미용실 못가지 않아? 다 이발소가자나?"
"이발소? 어차피 티도 안 나서 어디든 똑같을걸?"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옆에서 누가 붕어빵 주제로 한참
수다떠든 날, 마침 퇴근길에 붕어빵 가게가 눈에 띄어서
가게 된 그런 날 말이다.

동네 이발소를 가보지도 않고 폄하 발언을 하는 무리들
에게 오랜 장인의 손길로 무력시위를 하고 싶었던 것은
딱히 아니었다.

마치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최면에 걸린듯 이발소를
그냥 갔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 문제의 이발이라는 단어가 어제의 대화와 연
결점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수다의 중심과
내 사이에는 방음 안되는 얇은 벽면이 있었으니까.

내가 당연히 이발소를 갔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 직원의 판단에 내가 분개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긍정적인 것은 내가 머리가 변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경우 머리 참 어울리시
네요 등의 덕담을 주고 받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고 윤활
유같은 역할을 한다.

용기내서 머리 어떠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생각보다 단호한 대답이 나왔다.

"짧으니까 더 휑해보여요~"

아무리 일류 정원사라도 민둥산에서 일류가 될 수 없기에
이발소든 미용실이든 싼게 최고가 아닐까?

오늘도 교훈을 얻으며 긍정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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