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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갤문학) 사회복무요원
게시물ID : humordata_18253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눔계
추천 : 19
조회수 : 2761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9/07/24 04: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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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그와의 만남은 반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서있기만해도 눈물이 고일정도로 강풍이 부는 늦겨울의 새벽이었다.
검은 바람막이를 뒤집어쓰고 스냅백을 쓴 남자가 편의점 도시락과 함께 에쎄 체인지를 요구했다.
어느정도 성인이란 짐작이 들었으나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판매하게 됐을경우 리스크가 너무도 크니 신분증을 요구했다.
신분증을 꺼내는 그의 지갑속에는 파란 광이 나는 기업은행 나라사랑카드가 보였고, 나라사랑카드는 그가 성인임을 증명하고있었다.
신분증속 증명사진도 이상없고, 나이도 97년생이다.
요컨대 그는 담배를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밝게 웃으며 눈을 마주치고
"팔 천 팔 백원 계산 도와드릴게요." 
라고 말했다.

이제보니 그가 입고있던 바람막이에는 사회복무요원이라는 마크가 오버로크되어있었고 모자는 훈련소 조교모를 연상케하는 새가 그려져있었다.
아마 공익근무요원의 제복이리라.

그는 도시락을 다 데우고 나서 다시 봉투에 담아 문 밖을 나갔다.

그리고는 저벅 저벅 느린 발걸음으로 편의점 앞에 있는 지하철역에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철 공익일까.
지금은 새벽 두시인데, 이 시간에 근무하는건가.

문득 궁금해 구글에 지하철 공익에 대해 검색했다.
'당직'을 서야된다는 이야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공익도 엄청 고생하는구나.

며칠 뒤 늦은 새벽이었다.
손님이 바닥에 쏟고간 짜파게티와 더불어 수많은 바닥의 얼룩을 지우고자 30분 넘게 회심의 물걸레질을 끝내고 바닥의 물기가 마를 때 까지 손님이 들어오지 않길 기도하며 담배를 물었다.

맙소사.
아니죠?
그러지마세요.
오지마세요.
제발요.

마른 침을 삼키며 편의점과 서서히 가까워지는 사람을 지켜보았다.
떨리는 손으로 물고있던 담배의 불을 끄려고 하자

그는
"괜찮아요 마저 피세요."
라는 말을 하고나서
주머니의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며칠 전 봤던 그 때의 사회복무요원이다.

"덕분에 살았어요. 고마워요."
그의 호의에 감사인사를 전하자.

"원래 담배부터 피려 했었어요."
라고 답했다.

""힘드시겠어요.""
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나보고 먼저 이야기하라는 배려의 손짓을 했고
웃음으로 인해 어색함이 날아간 나는 입을 열었다.
"공익은 전부 편할거라 생각했는데 당직근무까지 서는 걸 보니까 엄청 힘들겠다 싶어서요."
그는 내 말을 경청하다 한숨쉬듯 담배를 토해내며 말했다.
"아니에요. 계속 쪽잠만자다가 핸드폰만보면서 시간만 때우고 있어요."

"어? 저랑 같네요."
내 말 뜻을 이해했는지 그는 작게 웃었다.

"전역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한 반년쯤 남았어요."
그는 말했다.

소중한 말 벗을 찾은 기쁨에 다시 물었다.
"편의점은 여기만 오시는 거예요?"

그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코앞에있으니 그렇죠 뭐."
하고 말했다.

"그럼 우리 앞으로 자주 보겠네요."
내 말 뜻을 이해한 그는 

"그러겠네요."
라고 답했다.

"동갑인데 말 놔도 돼요?"
라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제안을 했다.
앞으로 자주 볼 사이고, 사람 좋아보이고, 피차 심심한건 똑같을텐데 친구가되고싶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고민하다
"제 나이는 어떻게 알았어요?"
하고 말했다.

"그야, 담배 사셨을때 신분증을 확인했으니까요."

"아."
하고 작게 탄식하다 납득한듯 웃었다 

"그럼 뭐라고 부르면 될까 친구야?"
그는 능글맞은 웃음기가 섞인 말투로 말했다.

"강 민호. 내이름이야."
내 말을 들은 그는 바람막이 지퍼를 내리더니 입고있는 제복의 명찰을 손으로 가리켰다.
김 하은

통성명이 끝나고나니 둘의 담배는 이미 필터 전체가 검게 그을려있었다.
지금 쯤이면 편의점 내부의 물기도 다 말랐으리라.

"도시락 사러 온 거야?"
나의 물음에 그는

"응, 출출한 시간대라서."
라고 답했다.

지금 공익 월급은 얼마일까
2017년 현역시절의 나는 16만원의 월급을 받았고
2018년 현역시절에는 4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대충 40~60쯤의 월급을 받는다면 매일 근무할때 도시락을 사먹기엔 부담되는 급여가 아닐까.

"폐기도시락 많은데 혹시 먹을래?"
자칫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 말이지만, 폐기도시락이 뭐 어떤가. 
막상 먹으면 맛있다고.

내 말을 들은 그는 환한 얼굴을 하고는
"정말 그래도 돼?" 
하고 답했다.

꽁초를 근처 쓰레기통에 던져놓고(쓰레기통에 빗나가 바닥에 떨어졌지만 어차피 내가 치우고 비울 것이니 괜찮다.)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 구석자리에있는 냉장고 속으로 따라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는데 그는 겁먹었는지

"내가 여기 들어가도 돼?"
라고 말했고
나는
"괜찮아. 어차피 새벽엔 나 밖에 없어." 
라는 말로 안심시켰다.
도시락 폐기는 세 개가 있었는데
아메리칸 핫도그 도시락 (소시지만 맛있고 밥은 느끼하고 맛없다.)
백종원의 오찬 도시락 (고기가 너무 적다. 야채만 잔뜩)
모두다 돼지 (소시지랑 되지고기가 잔뜩있다. 맛있다.)
그 세개를 가리키며 무엇을 먹을건지 고르라했는데
그는 백종원의 오찬 도시락을 골랐다.
고마워 친구야.

나는 모두다 돼지를 꺼내 그와같이 전자레인지 앞으로 다가가 그와 나의 도시락을 렌지에 돌렸다.

"어차피 사람도 없는 거 같이 밥이나먹자."
라고 말하자 그는 작게 웃으며

"그래. 나도 혼밥하기 쓸쓸했는데."
라고 답했다.

히터가 틀어져있어 편의점 내부는 더웠다.
그는 바람막이를 벗어 옆 의자에 걸어두고 스냅백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단정한 머리와 트러블 하나없이 깨끗한 피부, 사각의 뿔테안경은 그가 공부형 인간인지 게임형 인간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는 야무지게 데워진 도시락을 꺼내러갔고 나는 나도모르게 테이블에 놓여있는 그의 스마트폰 화면에 눈이 갔다.
리디북스 어플이 깔려있었다.

나는 놀라 말했다.
"혹시 책 좋아해?"
그는 도시락이 뜨거운지 요란한 몸짓으로 서둘러 도시락을 내려놓고는
"응, 너도?"
라고 말했다.

"리디셀렉트 좋지. 고전문학이 대부분이긴한데 가끔 베스트셀러들도 올려줘서 진짜 좋은것같아."
내 말에 그는 공감하며 

"그럼 마션이랑 아르테미스는 읽어봤겠네?"
하고 물었다.

"당연하지. 마션의 도입부는 정말 모든 소설 도입부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해."
호들갑스러운 나의 말에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앤디위어 마션

나는 진지한 그의 표정과 목소리로 저급 욕설을 내뱉는 그가 너무도 웃겨 크게 웃었다.

나의 웃음에 아랑곳앉고 그는 말을 이었다.
"도입부가 좋은 글들 많지. 혹시 그거 알아?"

"일단 말해봐. 왠지 맞출 수 있을것 같아."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작게 전율했다.
왠지 이걸 말할것 같았어.

"인간실격."






둘은 이야기코드가 맞았다.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지도 모른다.

그와 나는 시간이 계속되면 될수록 허울이 없어졌고.
욕지거리도 거리낌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어젠 왜 안왔어 새끼야.'

"몰라 1시에 자니까 눈뜨니 9시던데?'


'야야야야야 민호야 이거봐바 이거'
그가 보여준 핸드폰 화면에는 Pornhub 영상이 재생되고있었다.
'오우..... 야 그거 링크 카톡으로 보내놔.'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가 그게 뭐지?'

'제발요 형님.'


즐거웠다.
진심으로 즐거웠다.

주말이 되면 쓸쓸했으며, 월요일이 되면 나도모르게 신이 났다.
그가 편의점에 오기 전이면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곤 했다.

이야 이 유튜브 되게 웃기네.
하은이랑 같이 밥먹으면서 보면 되겠다.
어제 본 봉준호감독의 기생충 진짜 대박이던데 하은이는 봤을까.

그 날 하은이의 옆에는 한 명이 더 있었다.
단추가 터질것같은 빨간 여름제복을 차려입은 그는 처음보는 사람이었다.
하은이는 내게
"후임이야." 라고 소개했고

눈이 마주친 후임과 나는 짧게 목례했다.

"그러고보니 이제 얼마나 남았지?"
내 질문에 하은이는 손가락을 쳐다보며 하나하나 세보더니
"7월 11일이니까.... 한 2주정도 남았네."
하고 말했다.
"그동안 고생많았어."
하은이의 어깨에 손을 턱 하고 올리며 말했다.

하은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제 진짜 갈 때가 됐네."
라고 답했다.

하은이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동안 후임은 도시락 하나와 컵라면, 주먹밥, 모찌롤케익을 들고 계산대에 왔다.
나는 바코드를 하나하나 찍고 말했다
"만 칠 백원 계산 도와드릴게요. 혹시 봉투 필요하신가요?"

후임은 고개를 끄덕였고 후임 대신 하은이가 카드를 건넸다.
계산을 끝마치자 후임은 봉투를 들고 자리를 피했다.

"나 사실 오늘이 마지막 당직이야."
그는 작게 한숨쉬며 말했다.

"그럼 나머지는 휴가인거야?"
나는 애써 눌러봤지만 목소리엔 아쉬움이 깊게 베어있었다.

"응."
그는 슬픈 얼굴로 말한 뒤 담배를 꺼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으나 담배가 없었다.
편의점에 두고온 모양이다.
편의점 내부로 들어가려하자 나를 제지하며 담배를 하나 꺼내주었다.
나는 말없이 그가 건넨 돛대를 받았다.

"너네집 여기서 멀어?"
내 물음에 그는

"미아사거리사니까 지하철타고 한 30분정도?"
라거 답했다.

"멀리서도 왔네. 언제든 좋으니까 하루정돈 와줘."
내 말에 그는 침묵했다.

"...."

"네 전역선물 주려고 시킨거 하나 있단말이야. 이번주 내로 주려했는데 아직 배송이 안왔어."
내 말에 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손사레쳤다

"아니 내가 무슨 대단한 걸 했다고 전역선물이야. 괜찮아 그런거 진짜로."
당황한채 횡설수설하는 그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그럼 빚진거 갚았다 칠게."
라고 답했다.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빚?"
하고 물었다.

나는 물고있는 담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돛대 받았잖아."

그는 말없이 웃었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돼 눈물이 맺혀있었다.
밤새 근무하느라 피곤했겠지.
그의 피로를 보니 나도모르게 하품이 나왔다.

"그동안 고마웠어. 잘 있어."
떠나기전 그는 말했다.

"무슨소리야. 연락해 임마 선물 받으러 오고."
그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치자
그는 뒤돌더니

꾸벅 하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6월이 끝나고
7월이 시작되도
e북 리더기 페이퍼프로의 포장이 뜯기는 일은 없었다.

하은이의 카카오톡 계정은 (알 수 없음) 으로 바뀌어있었다.

이제 막 공익이 끝났으니 본업으로 돌아갔을까
복학했을까
어쨋거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리라.

연락이라도 해주지.
씨발새끼.
우리의 우정은 이정도였냐
족같은새끼.
개새.끼.

해가 뜨고 교대가 가까워질 무렵 하은이의 후임이 찾아왔다.
나는 인사할새도 없이 그에게 물었다.
"혹시 하은이랑 연락 돼요?"

그는 작게 뜸들이다 입을 열었다.

"하은이형이랑 많이 친했죠?"

"그러지도 않았나봐. 연락조차 안해주는거보면."
이라고 답했다.

"저도 직원분들께 들은 얘기라 자세히는 몰라요"
그는 내 마음은 신경쓰지도않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은이형... 현역 갔다온 거 알아요?"
모른다.

"그런얘기는 못들었는데."

"하은이형, 현역생활하다가..."
그는 괴로운듯 이마에 손을 갖다대며 눈을 질끈 감았다.

"면회오는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대요."

아.

아.

아.

부탁이야.

더 말하지 말아줘.

부탁이야.

못 들은걸로 할게.

응?

"그렇게 의병제대를 하고 남은 기간동안 여기서 복무중이었어요."
내 마음속의 울림을 무시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하은이형은... 자살했어요."

그 순간 편의점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갔다.
반팔의 소매로 눈매를 홈치고 억지웃음을 만들며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어린 남자아이가 흑흑울면서 카운터 앞에 서있었다.
왜 우는거야.

울지마.
나까지 울것같잖아.

"끅...혹시...감기약..히끅...없어요..?"
나는 곧바로 안전상비의약품 탭으로 가서 타이레놀을 하나 꺼내 보여줬다.
"이거면 되겠니?"

"히끅... 그거...감기약..흡..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였다면 친절히 알려주며 꼬마가 울고있는 사연을 궁금해 했겠지.
지금은 그런 기분이 아니었다.
그냥 얼른 내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했다.

타이레놀을 바코드기에 찍자
12세 이하 초등학생은 구매할 수 없는 상품입니다. 라는 메세지가 떳다.
그러고보니 안전상비의약품은 유아 어린이에게 판매 불가 상품이다.

나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꼬마야 잘 들어. 감기약이든 뭐든 약은 어린이가 살 수 없어. 그니까 돌아가."

그러자 꼬마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사..야돼...요"
나는 한숨을 크게 쉬고 물었다.

"무슨 일 때문인데?"

"우리집 .끕...끅...쪼꼬가... 히끅...아파요... 쪼꼬... "

나는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기는 게 느껴졌다.
아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래로 손님에게 화를 낸 건 처음이었다.
아니.
화가 향한 곳은 내 자신이었다.

"야이 멍청한새끼야!"
꼬마를 향해 소리쳤다.
꼬마는 당황한듯 울음을 뚝그리고 내 눈치를 살피며 움츠러드러있었다.

"강아지는 이거 먹으면 죽어. 죽는다고. 쪼꼬가 네 곁에 없게 돼 죽는다고. 알아?"
어느새 내 눈에 고였던 눈물이 가랑비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잘 들어, 아무것도 모르면 소중한 걸 잃게되는거야."
나한테 하는 말이었다.

꼬마는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있었다.

나는 꼬마에게 근처의 동물병원을 알려주고 쪼꼬와 함께 서둘러 가라고 일러두었다.

교대자는 찾아왔고 눈이 불어터진게 들킬까 마스크를 쓰고 스냅백을 눌러쓴 채 인사했다.

내 발걸음은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전부 다 나한테 한 말이었잖아.
늘 밥을먹으며 내 말을 즐거운듯 들어줬던 그는 속으로 얼마나 앓고 있었을까.
왜 나는 눈치채지 못했을까.
알았다면 구할 수 있었을텐데.
내가 그에게 타이레놀을 먹인거야.

역사 앞에 쓰여있는 금연구역 팻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려했는데 놀라 물고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벽엔 매직으로쓴건지 삐뚤빼뚤한 글씨로 짧은 글이 쓰여있었다.

그냥 잘 살아요.
그냥 살아요

나는 근처에 작은 돌을 하나 주워 글자 밑에 코멘트를 달았다
- 조조 모이스 Me Befo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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