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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맨의 하루#4 어떤 보증인(후편)
게시물ID : humordata_18280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ahh
추천 : 42
조회수 : 4870회
댓글수 : 24개
등록시간 : 2019/08/13 10:53:55
어떤 보증인(전편)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data&no=1827987&s_no=14817321&kind=member&page=1&member_kind=total&mn=452019
 
 
아내는 명의만 대표로 되어있을 뿐, 운영은 김*섭이이 다 했기에 그녀는 회사 사정을 알 수 없었어. 평생 집안일만 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피고소인 자격으로 경찰에 불려 가 장시간 조사를 받고 또 남편이 거액을 빼돌렸다는 혐의로 거래처로부터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뚜껑이 열린 거였어.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사람은 도장만 안 찍었다뿐 준별거상태. *섭이 도박에 많은 재산 날리고 그것도 모자라 바람피다 걸린 것만 두어 번, 다시는 도박하지 않겠다. 바람피우지 않겠다. 재기하겠다고 하여 명의를 빌려준 건데 자식들 출가하기 전까지는 살은 섞지 않아도 어쨌든 같이 살아보려 했는데...
 
아내는 경찰 조사관에게 이전에도 도박하다 회사 말아먹었다. 사업하면서도 집에 돈 가져다 준 적이 별로 없었다. 그 돈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툭하면 집에 들어오지 않는데 아마 노름했을 것이다. 등등... 예전에 바람피우다 걸린 사적인 얘기까지 줄줄 진술한 거였어.
 
결국엔 아내분이 눈물까지 펑펑 흘리며 신세한탄을 하자. 조사관은 무슨 이런 개쓰레기같은 시키가 다 있나 싶었겠지. 이후 김*섭에 대한 조사는 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어.
 
사기죄가 인정되어도 왠만해선 구속하질 않어. 죄질을 보는 거야. 지금이야 턱도 없지만, 당시는 1억이 구속요건의 마지노선이었어. 정상 참작이 되거나 유능한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두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그렇지 않으면 구속시켰지. *섭은 돈의 사용처를 밝히지 않았고 유능한 변호사를 두지도 않았어. 그러니 이건 뭐...
 
다급해진 김*섭은 이 과장을 통해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 구속을 면하려면 고소인이 고소를 취하하는 방법밖에 없으니 안달이 났겠지. 약속된 날 00호텔 커피숍으로 갔어. 작은 키에 뽀얀 피부, 처음 본 김*섭의 얼굴이여 차림새는 부잣집 도련님 같은 스타일, 나이에 비해 아주 젊어 보였어.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더니 횡설수설, 얼토당토않은 말을 주저리주저리 내뱉는 거야.
 
내가 그랬어.
 
사장님, 우리 회사는, 사장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사장님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 다음 달 0000일 열리는 종친회 정기모임에는 가실 거죠. 바쁘시면 제가 대신 가 드릴까요?”
 
날짜까지 정확히 얘기했어. 순간, *섭의 얼굴이 확 굳어지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더라.
 
아드님이 00대학 3학년이고, 따님이 00자동차에 다닌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고선 말했어.
 
회사가 사장님의 사정을 감안해서 내린 조건입니다. 15백만원 중, 0000일까지 3천만원을 우선 변제하고 그 다음달부터 이자 포함 나머지 잔금은 따님과 아드님을 보증인으로 해서 월 22십만원 씩 36개월 동안 결제하는 겁니다. 더이상 우리가 해드릴 건 없습니다. 결정하시고 내일 18:00까지 답을 주십시오.”
 
이 과장과 난 바로 나왔어. 더 할 말도, 들어 줄 얘기가 없었으니까.
 
다음 날, 퇴근해서 친구들과 한잔하는데, 늦게 김*섭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이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어. *섭이 그랬다는 거야. 조건을 변경해주면 어떻겠냐는 거였어. 이천만원 결제 후 5년에 걸쳐 잔금 및 이자를 변제하되, 대학 다니는 아들에겐 차마 말할 수 없으니 보증인을 딸 한 명만 세우면 어떻겠냐는 거였어.
괜찮았지. 하지만 이 과장에게 그랬어. 즉답을 주지 마라, 어려울 것 같은데 일단 내일 보고는 해보겠다고 해라... 이쯤되면 반은 성공한 거였어.
 
결국, *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변제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한 날, 계약서 공증을 위해 법무사를 동행, 이 과장과 나는 00호텔 커피숍으로 갔어. 먼저 나온 김*섭이 보증인이 지금 회사서 오고있는 중이라기에 기다렸지.
 
네 사람이 멀뚱멀뚱, 먹먹하게 앉아 있는데, 커피숍 문이 열리고, *섭이 입구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어. 작은 키에 뽀얀 피부, 너무 여리게 보이는 젊은 아가씨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어.
 
빨리 끝냅시다. 좋은 자리도 아닌데... 서류부터 주시죠.”
 
말하면서 보증인을 한번 쳐다봤는데, 당장이라도 눈물을 왈칵 쏟을 표정이었어. ‘... 이건 아닌데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
 
보증인이 가져온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가 일치한 지를 확인하고 주민등록등본, 재직증명서 등 서류를 법무사에게 넘겼어. 이제 보증인이 계약서 확인하고 도장만 찍으면 끝나는 거였어.
 
계약서를 찬찬히 읽던 보증인이 마지막장 날인 란에 도장을 찍으려던 순간, 손이 가늘게 떨리더니 계약서 위로 커다란 물방울 하나가 똑 떨어졌어. 눈가가 그렁그렁해진 그녀는 순간 동작을 멈추더니 김*섭을 빤히 바라봤어. 그러면서 낮은 목소리로 묻는 거야.
 
아빠, 나 이 도장 찍으면 엄마와 화해하는 거지.”
 
그녀는 재차 다짐을 받고 싶은 듯 아버지 얼굴을 한동안 쳐다봤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김*섭은 담배를 꺼내 물었고 법무사는 헛기침을 했고 이과장 얼굴은 굳어졌고 나는 시선을 어디둘지 몰라 허공을 두리번거렸어.
 
일이백만원도 아닌 8천만원, 날밤새워 공부해 어렵게 입사한 대기업, 좋은 남자 만나 연애도 하고 차곡차곡 돈 모아 결혼해도 해야 할 젊은 청춘, 도박에 바람기에, 이 무능한 아버지가 약속을 이행치 못하면 오롯이 그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처지, 만에 하나 급여가 차압이라도 된다면 회사도 그만둬야 할 터... 그 모든 위험부담을 자신이 짊어지며 아버지께 내민 조건은 하나였어, 엄마와 화해하는 거.
 
계약서 들고 회사로 오는 차안, 이과장과 난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 ‘이건 할 짓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죄는 아버지가 지었는데 여차하면 한 젊은 청춘이 망가질 수 있는 거였으니까.
 
삼년 후, 내가 퇴사하기 전까지 꼬박꼬박 김*섭으로부터 돈이 들어왔어. 하루, 이틀 정도 늦은 적은 있었지만 말이야. 이 과장 말에 의하면 김*섭이 그래도 사업 수완은 있는지라 친구 회사에 들어갔대. 기본급도 높았고 무엇보다 김*섭이 진행한 건에 대해선 이익을 사장과 반씩 나누기로 한지라 수입도 괜찮았데.
 
*섭이 이후에 도박을 끊었는지, 또 바람을 피웠는지는 몰라. 또 그 보증인의 바램대로 아내와 화해했는지도 모르겠어. 다만, 시간은 걸렸지만 김*섭은 자신의 짐을 딸에게 미루지는 않았어. 그러니 난 믿고 싶어, *산업 사장님이 마음을 굳게 먹어 도박을 완전 끊었고, 아내와도 화해하고... 무엇보다 젊은 청춘인 그 보증인이 좋은 사람 만나 잘 살고 있기를...
 
이게 회사 관두고 독립한 지 이년 차 되던, 김*섭이 채무를 완전 변제한 날, 이 과장과 내가 두 발로 걸어 들어가 네 발로 나올 만큼 술을 퍼마신 이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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