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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기술격차 50년' 구라를 파헤치다 2 : 길어야 3년
게시물ID : humordata_18287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뭘먹고컸냐
추천 : 28
조회수 : 3327회
댓글수 : 27개
등록시간 : 2019/08/19 03: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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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기술, 후행기술, 요소기술, 통합기술 관점에서의 '기술격차'

 

'기술격차'에 대해서 말할 때 '기술로드맵(TRM, Technical Roadmap)'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정부기술 과제를 운용해보거나 제안서를 작성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하나의 기술이 어떤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선행기술은 무엇이며, 향후에 어떤 단계를 밟아 나갈지를 그려놓은 일종의 기술 지도입니다. 

 

기술의 발전정도나 목표, 도달시기, 효용성 등을 잘 아는 해당 기술의 종사자들의 인터뷰나 설문을 통해 만듭니다. 'A'라는 기술이 시장에서 발표되면, A와 연관된 혹은 직접적인 종사자(학계, 업계)들에게 인터뷰 혹은 설문을 합니다. 해당 기술이 어느 단계이고,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 것이고,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어떤 근접기술들이 개발되어야 하는 지 등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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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약 20년 전부터 국가적인 기술로드맵을 작성하고 있고, 이를 통해 특정 기술분야에서의 기술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한국과 일본의 기술로드맵을 비교하면 답이 금방 나온다는 말입니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한 뒤, 정부는 '어렵지만 극복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와 일본의 특정 산업기술에 대한 기술로드맵 분석이 끝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는 약 4가지의 기술 카테고리에서 일본을 앞서고 있고, 약 2~3가지 기술 카테고리에서는 약간 뒤쳐진 정도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정도죠.

 

따라잡는 게 길어야 2~3년이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버퍼(?)도 조금 있는 걸로 보입니다. 실무에서 굴러먹던 제 의견으로는 길어야 1년입니다. 빠르면 3개월 내에 많은 기술들이 일본의 기술들을 따라 잡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심 몇몇 기업들은 지금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기술을 개발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적지 않다는 건 아실 겁니다. 기본적으로 계측장비, 소규모 생산설비, 인력이 필요하니까요(제품을 제조하는 기업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그런데 이 기술과 관련된 시장이 열린다면 어떨까요? 기업은 하루라도 빨리 기술을 개발한 뒤 시장에 뛰어들어 수익을 올리려고 할 겁니다. 삼성, 엘지, SK 같은 대기업이 물량 보장해줄 테니 개발하라고 하면 다 뛰어들겠죠. 정부도 투자비용을 빌려준다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기술격차는 정부의 대응, 대기업의 구매보증만 있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거라 생각합니다. 

 

 

원천기술 측면의 기술격차 

 

'한일간 기술격차가 50년'이란 문장에서 '기술' 앞에 들어갈 수식어로 제일 적당한 건 '원천'이 아닐까 합니다. 

 

다양한 기술의 종류 중에 '순수기술'과 가장 비슷한 의미이기도 한 '원천기술'은 기업 입장에서 기술을 구매할 때 바라보는 관점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의 원천기술 특허건수엔 꽤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걸 보고 JAHAN당에서 '기술격차가 50년'이라고 우기는 건데, 최근에는 그 격차가 줄고 있죠. 50년까지 아니고, 2~3년이 최대치일 겁니다. 

 

원천기술 특허건수가 비교적 적은 데에는 한국 기업들의 자본주의적 속성에 기인한 측면이 많습니다. 즉, 돈 되는 기술에만 집중한다는 이야기지요. 

 

선행기술의 선행기술에 해당하는 이론(Base) 기술은 대학/국책연구소의 연구에서 시작됩니다. 몇 년 전부터 부상한 그래핀(Graphine)이나 카본나노튜브(CNT, Carbon Nano Tube) 같은 소재가 그러하지요. 이론의 기반은 서구가 거의 독점한 상태라 어쩔 수 없으니, 한국의 과학자들은 산업적인 활용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카본나노튜브 안에 데이터를 저장하면 기존 반도체보다 몇 배 많은 양을 몇 배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거나 이 물질을 바르면 열방출이 몇 퍼센트 증가한다던가 하는 기사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다 연구실적을 보여주는 기사들입니다.

 

사실 연구실적을 실제에 적용하는 것은 산너머 산입니다. 해외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없애기 위해 대기업이 자금을 출원해 대학교나 연구소에 비용을 지원합니다. 순수과학기술 개발을 독려하는 것이죠. 일본도 그런 측면에서는 상당히 앞서가고 있지만, 한국엔 아직 그런 풍토가 없습니다. 

 

흔히 국가공동체의 기술개발 역량을 '매출액 중 R&D 비용'으로 말하는데 미국과 일본은 전세계 탑에 이를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부분을 독려하기 위해 R&D 비용에 대한 세제혜택을 주곤 하지만, 세제혜택을 받는 기업들이 당장 돈이 되는 R&D 업무에만 투자합니다. (2019년 삼성전자의 매출액 대비 R&D 비용이 약 9.3%(10조1천267억원) 정도라고 하는데, 이 비용을 원천기술이나 순수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체 연구소의 비용으로 쓴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원천기술에 대한 기술격차 이야기가 나올만 하지요)

 

그런데 이 시점에서도 삼성이나 국내 대기업들은 이런 부분들을 인식하지 못할 거라 생각이 듭니다. 이런 부분들은 국가가 나서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 다행히도 최근 정부부처에 그런 움직임이 조금 보입니다. 

 

 

소재기술과 정밀부품기술 간의 기술격차

 

 

소재기술 부분은 일본이 전세계 탑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정밀화학 분야나 유기화학 분야에서 상당히 뛰어나죠. 

 

이번 무역조치로 인해 특정 몇몇 소재 쪽은 문제가 될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소재란 게 특이해서 특성이나 물성을 가진 제품을 사용해야 합니다. 제품의 질을 보장하는 경우가 많아서 특히 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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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소재'에는 일정부분 대체재가 존재합니다. 소재를 만드는 원료에 해당하는 물질 대부분은 우리가 잘 아는 듀퐁이나 바스프 등의 대규모 장치산업 화학회사에서 받아옵니다. 그걸 적절히 혼합하면서 물성을 만드는 건데, 유럽, 미국, 일본의 화학회사가 각각 전혀 다른 설비를 사용할 리가 없잖아요. 화학회사들 모두 비슷한 설비와 장치로 소재의 원료를 만들고, 이 원료를 이용해서 만든 소재를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 '일본이 독점하는 소재'도 유럽이나 미국의 화학회사가 투자대비 수익성이 없어 진출하지 않은 것 뿐이지 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중소기업 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화학회사들도 한일간의 무역분쟁으로 인한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겁니다. 일본의 특정 소재를 수입해서 사용하는 한국회사 담당자들은 지금쯤 듀퐁이나 바스프와 같은 해외 유명 화학회사의 한국지사들과 소재의 특성과 제작 가능여부를 미팅하고 있을 거고요. 아마 일본의 소재 수출기업들은 한국시장을 고대로 잃겠죠.

 

R&D라는 게 창의적인 업무 같지만, 실제로는 시도와 오류의 연속입니다. 다양하게 시도하고 분석하고 다시 시도하고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물질이나 제품을 생산하는 게 R&D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에서 소재를 생산하는 업체들도 시장에 뛰어들겠죠. 단언컨대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국가 공동체가 보유하지 못한 기술을 구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소재산업은 빠르게 '대체'하는 형태로 진행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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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정밀기계기술이나 정밀부품기술 쪽이 고전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정밀부품 관련기술은 최근 10년 한국의 금형 및 사출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큰 문제 없을 거 같지만, 정밀기계 기술은 좀 타격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일본은 독일과 함께 기계기술에 장점을 갖고 있는 국가입니다. 독일이 규모가 큰 기계기술(자동차, 중장비 등)에 특화되어 있다면, 일본은 소규모 기계(조립공정 로봇, 절삭/가공을 비롯한 장비 등)에 특화되어 있는 편이죠. 그런데 신규 공장을 설립할 땐 소규모 기계설비가 많이 필요합니다. 특히 반도체와 같이 자동화되어야만 일정수율을 보장하는 산업에는 매우 필수적입니다. 

 

다행인 것은 최근 5~6년 일본의 정밀기계를 그대로 들여오기보다는 한국 업체에 해당 모듈이나 부품을 공급하고, 한국 기업이 이를 조립해서 납품하는 형태로 산업이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개발 기간이나 난이도가 매우 어렵거나 난해한 것도 아니고, 그동안 쌓은 기술력으로 자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기업도 많다고 합니다. 

 

몇 가지 통칭하는 기술들을 가지고 한일간의 기술격차를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어떤 기술에선 한국이 앞서있거나 대등하지만, 또 어떤 기술에선 일본이 앞서 있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생각만큼 차이가 심각하지 않으며, 한국의 연구소가 해왔던 일들을 그대로 진행된다면 큰 문제가 없는 사항입니다. 그러니 JAHAN당 류의 사람이 기술격차 이야기를 한다면 유용하게 써먹으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언제쩍 이야기하냐'고 핀잔도 좀 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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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말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의 기술개발은 지극히 자본주의적 논리를 따르는 형태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시장에 대응하려고 양산기술에 집중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장의 성과를 바탕으로 신기술을 수입하고, 수입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체 개발 혹은 외주 개발하는 흐름이라는 거지요.

 

한국에서 순수기술이나 원천기술에 관심을 갖게된 것도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기술로드맵을 논의하고, 장/단기적 기술개발과제를 정부기술과제화해서 추진하는 것도 길어야 10년 조금 넘었습니다. 이전에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정부주도의 기술개발을 추진했지만, 제대로 된 방향성을 갖고 움직이지는 못했으니까요. 

 

그렇다고 정부주도의 기술개발이 바람직한 방향이란 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기술개발의 영역, 국가간 기술격차의 영역이 정부주도라는 데에는 그리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기업이 투자해야 할 기술개발 재원을 정부 돈으로 대신하려는 속셈인 거 같아서 반갑지 않네요. 기술 개발하라고 할 때는 돈 되는 거만 하다가 정작 무역규제로 인해 기술개발이 필요해지니 JAHAN당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걸로 보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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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국의 R&D 문화가 임계점에 이른 게 아닐까 해서입니다. 기존에 하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는 산업적/학문적 '특이점'이 현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기고문은 아마도 이런 부분에 대한 개인의 고민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출처 http://www.ddanzi.com/ddanziNews/571757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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