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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맨의 하루#9 세일즈맨의 아내(후편)
게시물ID : humordata_18313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ahh
추천 : 27
조회수 : 3292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9/09/07 11:42:52
영업맨의 하루(전편)
http://todayhumor.com/?humorbest_1605188
 
, 사이비 기독 신자야.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당연히 교회는 안 가고...
하지만, 가난한 자를 위해 사랑을 전파하고 단지, 그 이유, 인간을 너무 사랑했다는 이유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당한, 한 성인을 존경해.
 

저분이 그랬다면, 십자가에 못이 박히는 육체의 고통, 자기가 아버지라 여겼던 절대자로부터 마지막 순간 버림받는 정신적 고통, 그러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영육의 고통을 극한까지 감내하고서야 다 이루었다며 눈을 감은... 그분이라면 자신이 한 말들이 사실이지 않을까?
 

다툰 날, 아니 내가 일방적으로 나무란 날 늦은 저녁, 백화점을 나온 두 사람은 허기를 느꼈고 맛난 거 먹자는 말에 아내는 백화점 앞 족발집을 가리켰지.
 

푸짐하고, 먹음직한 족발이 나오자 소주를 시켰어.
 

생각나?”
 

아내는 족발 한 점을 상추에 싸 내게 건내면서 물었고 난 뭔 얘긴가 싶어 얼굴을 쳐다봤지.
 

우리 **동 살 때 골목 입구 족발집이... 그집이 요즘 자주 생각나...”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족발 쌈을 우걱우걱 씹다말고 입을 다물었지, 왜 몰라. 알지.
 

그때 난 임신한 아내를 두고 시험준비를 위해 근처 독서실을 다녔어. 저녁 10시쯤 집으로 왔고 도착할 때가 되면 아내는 늘 골목 입구서 기다렸지, 배가 부른 채로 말이야. 장모님, 친척 누군가 다녀가거나 생활비 쓰고 조금이라도 돈 남으면 우린 골목 입구, 자정 넘어까지 영업하는 족발집으로 갔었어. 얼마나 맛있던지. 족발집 만찬은 가난한 신혼부부가 누리는 최고의 사치였지. 아내가 너무 잘 먹으니까 마음 좋은 주인아주머니는 간혹 서비스라며 한 접시 더 내놓기도 하셨어.
 

고개를 들 수 없었지. 소주 한 잔 급하게 들이붓고는 담배 피운다며 밖으로 나왔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마음 추스르고는 다시 들어갔어. 충혈된 내 눈을 보고 아내는 놀렸어. 난 그냥 싱겁게 웃었고.
 

뭔가 할 말이 있는데, 해야 할 말이 있는데 입에서만 맴돌 뿐, 나오질 않는 거라. 우린 별말 없이 한동안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마셨어.
 

그때 우리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집도 있고 애들도 있고... 그때 보다 훨씬 가진 게 많은데... **동 살 때보다 덜 행복한 거 같어.”
 

아내는 쓸쓸히 웃으며 소주를 마셨어. 그래, 물질이 많으면 좋지. 허나, 누구나 풍족하게 살 수는 없는 거지. 아니, 얼마만큼의 돈이 있어야 부자인지 우린 알 수 없어. 누구는 10억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비웃으며 기십억은 있어야 명함이라도 내민다 말하지. 내 가족 기거할 조그만 집 하나 있어도 행복할 수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나도 알고 이 글 읽고 있는 여러분도 아는 게 있어. 돈과 행복이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돈이 행복의 절대 가치가 아니란 걸 말이야. 하지만 우린 늘 잊고 다니지. 가진 게 없어도, 500만원 짜리 단칸 전세에 살아도 우린 그때 너무 행복했었어. 기다려 주는 아내, 곧 태어날 아이가 있고, 일주일에 한 번, 아니 한 달에 단 한 번 골목 입구 족발집을 찾았어도 말이야.
 

모든 걸 물질로 평가하는 시대, 나 역시 물질만 보고 달렸지. 회사가 잘되어야 내가 있고, 인정받아야 승진하고 승진해야 연봉 두둑히 받고, 그래야 아파트 평수 넓힐 수 있었으니. 하지만 진짜 소중한 걸 놓치고 있었던 거지. 그때 아내 말을 듣고 다짐했지. 말해야겠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지금 또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아버님이 쇠약해졌을 때, 수년이 지나 어머님이 사경을 헤매다 잠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난 그분들께 꼭 하고픈 말을 못 했어. 돌아가시고 후회하면 뭘 해. 낳아 주셔서 감사하고 키워주셔서 고맙고, 당신의 자식이어서, 당신들이 나의 아버지고 어머니여서 행복했다는 그 말을...
 

우리가 삼십 년이 지난 오늘도 온전한 모습으로 하루를 살 수 있을까. 이십년 후에는, 아니 십년 뒤는, 어쩌면 우린 절대자가 부르면 오늘 당장 생을 마감할 수도 있는 나약한 존재들이야. 서로 사랑하고 위해주며 살아도 짧은 삶, 하지만 우린, 평생 살 것처럼, 세상에 치여 우리 의사와는 무관하게 만들어 놓은 행복의 조건에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며 살지.
예수님은 사랑을 전파했고, 부처님은 자비를 가르쳤어. 공동체가 생육하고 번성하는데 이보다 더 중한 게 있을까. 하물며 가족은? 사랑이야말로 가족 구성원들이 세상에 나가 버틸 수 있는 든든한 힘이지 않을까. 사랑은 물질을 요하지 않지.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뻔한 한마디 말로 우린 아내, 자식과 기분 좋고 행복할 수 있는데, 그 뻔한 말 한마디를 못해 정작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중요한 순간들을 놓쳐버리는 건 아닐까.
 

출장 간 얘기로 입을 열었어. 말문이 한번 터지니 줄줄 나오는 거야. 변함없었던 울진 포구 자그만 식당, 해변 한가운데 홀로 있는 월송정 정자...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아내는 감회에 젖었고, 돌아오는 직행버스 안에서 아내가 내게 해준... 그 말에 이르러 두 사람은 동시에 눈물보 터졌어. 백화점 앞, 씨끌벅적한 족발집에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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