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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캐나다 공격, 사실이었다.
게시물ID : humordata_18432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14
조회수 : 712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9/12/03 12: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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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미국의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가 영화 캐나다 베이컨(Canadian Bacon)을 발표하자, 

미국의 영화 평론가들은 일제히 이 영화에 대해 혹평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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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엉터리다.

미국이 캐나다와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

캐나다로 미국이 쳐들어간다는 '캐나다 베이컨'의 설정은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캐나다 베이컨의 설정은 허구가 아니라 엄연한 사실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이 캐나다를 침공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1866년 4월,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캐나다는 

아일랜드계 미국인들(미국으로 이주해 온 아일랜드인들)로 이루어진 민병대인 

페니언 민병대(Fenian Brotherhood)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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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대기근을 묘사한 삽화. 이 대기근에서 무려 200만 명의 아일랜드인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아일랜드 대기근(1845~1852년)을 피해 이주해 온 아일랜드계 주민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을 굶어죽도록 그대로 내버려 둔 영국에 대한 증오심으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였는데,

영국인들은 굶주리던 아일랜드인들의 구호에 소홀히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아일랜드 주민들은 

아일랜드 전설에 나오는 전사들의 모임인 ‘페니언’에서 이름을 따온 무장 조직인 페니언 민병대를 만들어, 

캐나다로 쳐들어가 영국에게 복수를 하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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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한테 복수 할테다!)



미국 정부는 이 페니언 민병대의 행동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감아주었습니다. 

미군 대신 이민자들로 구성된 민병대가 나서서 경쟁자인 영국을 공격한다는데 전혀 손해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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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른 척, 모른 척....................)



만약 민병대의 공격이 성공해서 캐나다를 지배하는 영국의 힘이 약해진다면 좋고, 

실패해도 영국 정부에게 “우리는 전혀 몰랐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 페니언 민병대라고 자처하는 무장 폭도들이 멋대로 벌인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도 책임도 없다!”라고 발뺌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리하여 700명의 페니언 민병대는 1866년 4월, 현재 캐나다의 캄포벨로 섬을 빼앗기 위해 쳐들어갔으나 섬을 지키고 있던 영국군의 방어에 막혀 철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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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페니언 민병대는 가증스러운 적인 영국에 대한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두 달 뒤인 1866년 6월 1일, 1300명의 페니언 민병대가 나이아가라 강을 건너 캐나다를 침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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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 리지웨이(Ridgeway) 마을에서 영국군의 매복 공격을 받고 패배하자 탈영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다시 이들은 철수했습니다. 


1866년 7월 2일, 캐나다 온타리오의 포트 에리(Fort Erie) 전투에서도 400명의 페니언 민병대는 영국군의 수비를 뚫지 못하고 끝내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니언 민병대는 1886년까지 산발적으로 캐나다 서부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지역을 공격하여, 영국령 캐나다와 미국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이렇게 성과는 보잘 것 없었지만, 

페니언 민병대의 움직임은 캐나다를 지배하고 있는 영국에게 매우 불쾌한 일이었습니다. 

페니언 민병대가 미국에서 왔다는 사실 자체가 영국령 캐나다에 대한 미국의 위협이었기 때문이습니다.


반면 미국은 페니언 민병대의 캐나다 공격이 수포로 돌아가자, 아예 캐나다와 영국 그 자체를 직접 공격하여 무너뜨리려는 계획을 세우는데, 그것이 바로 ‘전쟁 계획 레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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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세운 전쟁 계획들을 나타낸 지도. 영국은 붉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과의 전쟁 계획을 레드라고 불렀습니다.)

 

1930년 미군은 영국령 캐나다를 공격하여 점령한 다음, 

곧바로 영국 본토까지 쳐들어가 영국을 손에 넣고 

전 세계의 영국 식민지들을 모두 독립시켜서 

대영제국의 기반 그 자체를 통째로 없애버린다는 '전쟁 계획 레드(war plans red)'를 세웠습니다.


'전쟁 계획 레드'의 구체적인 내용은 캐나다 동부의 도시인 핼리팩스를 먼저 공격해 점령하여 영국과 캐나다의 연결을 끊고, 캐나다 중부의 도시인 위니펙을 차지하여 캐나다 서부와 동부 사이를 단절시킨 다음 몬트리올과 퀘벡에 미군을 보내 장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280px-Flag_of_Canada_(Pantone).svg.png

(캐나다를 미국 영토로 편입?)



그렇게 되면 캐나다의 주요 거점 대부분은 미국의 수중에 들어오니 사실상 캐나다 전체가 미국의 차지가 된 것이나 다름없고, 미국은 캐나다를 장악한 그 여세를 몰아 영국 본토에 대규모의 해군 함대와 육군 병력을 보내 영국을 점령하고 나서 전 세계 영국 식민지들의 독립을 승인하면, 영국은 완전히 해체되고 더 이상 미국을 위협할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지닐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전쟁 계획 레드’의 최종 목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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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거대한 영국의 식민지들을 모두 해체시키는 것이 한때 미국의 목표였습니다.)



이 ‘전쟁 계획 레드’을 실현시키기 위해 미군은 1935년 5,700만 달러의 예산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 국경 사이의 5대호에 대규모 공군 기지를 세워서 캐나다를 공격하는데 사용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전쟁 계획 레드’가 실수로 유출되는 바람에 

영국은 미국에 대한 경각심을 세워 캐나다에 대한 방비를 강화했고, 

그리하여 ‘전쟁 계획 레드’는 결국 서류 상의 작전으로만 남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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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캐나다 베이컨은 바로 이런 미국의 캐나다 침공 사실과 계획을 풍자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출처 라이벌 국가들의 세계사/ 도현신 지음/ 시대의창/ 79~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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