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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온다. 나는 낙수와 함께 멀고 먼 아래로 눈을 감고 떨어진다.SSul
게시물ID : humordata_18627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현장노동자
추천 : 4
조회수 : 135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5/10 04:28:43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게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사랑 아니면 우정 뭐 그런
아주 보편타당한 단어들, 어제 뜬 태양이 오늘도 그렇게
떠 있다던지, 어느날 내렸던 비가 오늘 또 내리고 있다던지.
 
그런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기에 우리는
늘 소중함을 잊고 산다라던지. 그래, 이 문장도 영원히 변하지
않지. '리더스 다이제스트' 나 '좋은생각' 같은 책에 나오는
틀에박힌 문장들이니까.
아.
 
 
그렇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게 있어. 변하지 않는건 그런
실체없는 것들 뿐만이 아니야. 예를들면 나라는 인간이 있지.
이 인간은 영원히 변하지 않아. 상처받고 이를 악물고 소주잔을
옆에 놓는거야.
 
 
온갖 세상의 고통, 내가 겪을 수 있는 불행한 일들이란 사실 거기서 거기다.
4차선 대로에서 나는 3차선을 달리고 있는데 초보운전 딱지를 떼지못한
한 자동차가 내 앞에서 비상깜빡이를 켜고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운전석에서
사람이 내려 뒷문을 열고 물건을 꺼내는 상황을 겪었는데, 나는 신경질적으로
클락션을 울렸고-이거, 내가 그냥 넘어가면 4대 성인 반열에도 들 수 있지 않을까?-
그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다른 차선으로 가라며 손짓하는 그런 사소한
불행들.
 
항상 그랬다.
신호는 내 앞에서만 멈추고 좋은 음식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면 그날은
일이 끝나지 않고, 난 그냥 건담을 좀 집에서 만들면서 쉬고싶었을 뿐인데
원청사장은 또 날 불러내 술을 먹이고, 어느 햇살이 좋았던 오전에 나는 그냥
건담베이스에 가고 싶었을 뿐인데 전날 비가 와서 흙이 좋아졌으니 밭에 비닐을
다시 씌우러 가야 하는 상황이 온다던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까, 돈을 버니까 휴일에 그런 일 하는 것 쯤은
괜찮다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그 염병할 상추를 안먹는다던가
돈을 좀 덜벌어도 좋으니까 나는 그냥 쉬는날에는 아무 연락도 받지 않고
아무 제약도 받지 않고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는 없을까?
 
사실 그렇게 큰 불행은 아니다. 뭐... 내 앞에서만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고, 뭘 좀 하려고
계획을 잡아놓으면 그날은 여지없이 아홉시 열시에 집에 들어가는 날이 되어버리고,
간신히 돌아온 휴일에 나는 하고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갑자기 벌어진 다른 일들을
해야만 하는 신세. 그렇게 큰 불행은 아니야 하지만,
 
난 최근 1년 넘게 그 굴레속에 갇혀있었고 이쯤되면 내가 분노해도 될만하지 않나 싶어.
 
 
사실 이 글을 다 쓰고, 잠깐 앉아있다가 나는 또 일을 하러 나가야 한다.
어제 마저 다 하지 못한 일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월요일날 하고싶은데 그게...
월요일은 어떤 일이 있을 지 모르니까 토요일날 벌려놓았던 일은 다 끝내놔야 한다.
 
진심으로 그냥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굳이 어버이날에 가족식사 약속을 잡아놨는데 그 말을 뻔히 듣고도 안해도 될 일감을 던져준
그새끼도, 비오는날 굳이 사람을 불러 하기싫은 일을 나에게 토스해버린 그놈도.
3차선 한가운데 달리다말고 비상깜빡이 켜고 서서 자기 할일 하던 그사람도, 굳이 오늘 출근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사람까지도 그냥 싹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너네가 내 비오는 휴일을 다 가져가버렸어. 휴일인데, 비가왔는데,
빗소리는 좋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저 먼 산을 바라보면
구름떼가 우웅 우웅 하며 산허리를 감싸안는걸 볼 수 있었는데.
 
그걸 너네가 다 빼앗아가버렸어.
난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너네가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글쎄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제일 죽고싶은건 나다.
원망해도 바뀌는 건 없고, 욕을 하고 윽박을 질러도 돌아오는건 없다.
하루에 열네시간씩 일하는데, 일주일에 하루쯤 쉬고싶다고 하는게 그게,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인가 싶다. 남들은 꽃놀이 아니면 뭐 그런 비슷한
것들을 하고 다닌다는데 난 그들 틈바구니에 섞여 별을 보며 일을 나갔다가
별을 보며 퇴근한다. 그러니까 내 말은
 
 
제발 하루만이라도 아무 방해받지 않고 좀 쉬고싶다.
쉬고싶다라는 생각을 하니까, 나도 모르게 물건을 집어던지고 다 때려부수고 싶다.
너네는 도대체 나를 왜 이렇게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야?
 
좋은 곳에 놀러가려고 한 날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날만큼은 꼭
내가 해야만 하는 많은 일들이 생기고, 어쩌다 한가해진 날에는 그 때 가지못한
좋은곳에 가야지 라고 다짐하자마자 거래처들이 불러내 꼭 술을 먹자고 한다.
낮부터, 그래 낮부터.
 
 
 
나는 휴일 어느날,
귀중하게 얻은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홍대에 토핑이 잔뜩 올라간 카레를 먹으러
갔다가, 하비팩토리에서 피규어와 건담을 사고 다 쓴 메탈릭 블랙 도료를 사려고
했어. 다녀오는 길에 고양이카페에 들러 고양이를 무릎에 놓고 커피를 마시고
연남동을 걷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 오려고 했어.
 
 
토핑이 잔뜩 올라간 카레집은 그날 휴일이였고, 하비팩토리에는 못생긴 자쿠캐논과
내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HG만 잔뜩있었어. 알고보니까 하비팩토리 홍대점은
곧 영업종료를 눈앞에 두고 있어서 새 물건을 들여오지 않기로 했던 모양이야.
간신히 메탈릭도료 몇개와 먹선용 회색먹을 샀어. 궁여지책으로 라멘집이라도 가려고
했는데 라멘집은 또 공사중이였고. 고양이카페는 어디있는지도 까먹어서 홍대만
빙빙 돌다 집으로 왔는데,
 
회색먹조차도 불량이라 붓이 안들어있었어.
 
이쯤되면 아
 
 
그냥 넌 행복하지 말라고 누가 뒤에서 자꾸 등떠밀면서 나 괴롭히는것 같아.
너무 욕하고 싶다. 그냥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내가 행복한게 싫은가봐 사람들은, 그래서 내가 가는 곳에 일부러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잔뜩 깔아두고 넌 여기서 벗어나지 말라고 비웃는것 같아.
내가 엄청난 보물이나 돈을 가지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하는게 아니잖아.
 
난 그냥, 좀, 산책을 하고 마음에 드는 건담을 사고 예쁜 음식을 먹고싶었을 뿐이야.
젠장 그냥 좀. 그날은 인스타도 엉망이였고 집에 오자마자 또 밭에가야 했다고.
내 뜻대로 된 날이 한번도 없어.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이렇게 글을 쓰는 이 조용한
순간이 지나가면 나에겐 또 내가 마주치고싶지 않은 수많은 일들이 나를 괴롭힐거야.
 
 
 
 
 
 
 
 
 
하고싶은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다시 빗소리를 들어.
배수관을 타고 내려가는 저 빗물소리가 영원히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
계속 비가 내렸으면 좋겠어. 토핑이 올라간 카레집은 이번엔 안닫았으면
좋겠어. 건담샵에는 내가 갖고싶은 아스트레이 턴레드와 퍼펙트지옹이 있으면 좋겠어.
이번엔 고양이카페를 찾을 수 있을거야. 도지마롤은 유행이 지나서, 이젠 안나오려나?
파는데가 없던가?
 
 
 
염병 ㅋㅋ 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어. 이거 다쓰면 또 출근해야되는데 ㅋㅋ
 
 
 
죽어야만 이 지겨운 일들 끝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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