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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스압) 소나기처럼 찾아온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1,2,3통합&수정
게시물ID : humordata_18983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으컁킁컁
추천 : 14
조회수 : 1344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21/03/17 20: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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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자정이 넘은 시간


온몸으로 비를 맞은 상태로 힘겹게 현관문을 열었다

비에 젖어 벗겨지지도 않는 양말을 벗기도 전에

술에 취했다는것이 무색하게 변기통으로 달려갔다

갑자기 지나간 소나기를 피하려 뛰었던 것이

주량을 뛰어넘은 위장에 부담이었으리라

한참을 토악질을 하다 힘이 다해 변기에 팔을 걸치고 주저 앉았다


'주임님은 왜 여자친구 안사겨요?'


멍한 정신에 낮에 그녀와 나눴던 말들이 떠오른다



일손이 부족했던 회사에 그녀는 갑작스레 신입으로 찾아왔다

새로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그녀는 당돌했다

씩씩하고 당차고 예의 바른 그녀였다

처음엔 업무에 관한 이야기만 나눴으나 점점 말이 트였다

대화를 하다보니 그녀가 어딜가나 주목 받는 이유가 있었다

상당히 외향적인 그녀는 나와는 정 반대 였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대화법을 알고 얼굴은 항상 밝았다

어딜가든 누구를 만나든 가뭄에 내리는 소나기 처럼

사람들은 웃음에 젖어 들었다

우리 부서에 온지 일주일이 지났을까

그녀와 대화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허나 딱히 관심이 없었다

많은 이 오유 유저들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이쁘고 활기찬 그녀와 어둡고 칙칙한 내가 

좋은 일로 엮이는 그런 상상 조차 포기한지 오래다

그래서 더욱 허물 없이 그녀를 대했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도 그런 나의 태도가 거부감이 안들었는지 

서슴없이 나에게 나가와 이야기를 했다

업무 이야기부터 시시콜콜한 농담까지

초등학생 시절 수업 몰래 짝꿍과 이야기 하는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문득 물었다

썸타는 남자에게 줄 선물이 뭐가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역시...'


기대하지 않기로 한 내가 잠시나마 기특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가서 일이나 해"

"아니이이 그러지 말고 좀 골라줘요~ 지갑이 좋을까요 가방이 좋을까요?"

"아 몰라 몰라 난 그런거 안끼어들꺼야"

"아 왜요! 물어볼 사람도 없어서 찾아온건데!"

"너 내가 골라준거 사줬다가 잘 안되면 어쩔꺼야 나만 나쁜놈 되잖아"

"아... 그래도오오오!"

"그래도오~! 는 무슨 가서 일이나 해!"


대화를 피하려 바로 탕비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따라들어온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주임님도 여자친구 있으실꺼 아니에요 선물 받은거 없어요?"

"그런거 없어 안키워"

"아 진짜 웃겨 ㅋㅋㅋㅋ 뭘 키워요 ㅋㅋㅋㅋㅋ"

"됐고 얼른 나가라 좀 있다 회의 한다"

"주임님 모쏠은 아니잖아요 다 알고 있거든요"

"허 참 나 그건 또 어디서 들으셨대"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그럼 여자친구 지금은 진짜 없어요?"

"있었 었 었 었 었 었는데 지금은 없다 왜!"


그냥 생각없이 내뱉은 말인데 그녀는 깔깔 웃으며 의자에 주저 앉는다

쓴웃음을 삼키며 자판기에 돈을 넣었다

망할 천원짜리가 구겨져 잘 들어가지 않는다


"아 주임님 완전 웃곀ㅋㅋㅋㅋㅋ 아 배아파 ㅋㅋㅋㅋㅋ"


왠지 웃음거리가 된것 같아 기분이 착잡하다

마음을 다잡고 천원을 곱게 펴서 다시 집어넣으려는 순간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주임님은 왜 여자친구 안사겨요?"


자판기 버튼에 불이 들어오고 

나는 흐려진 눈 앞에 들어온 빨간 버튼을 아무거나 눌렀다


"연애 혼자 하냐?"


음료도 꺼내지 않고 나는 그냥 돌아서 나갔다

뒤에서 그녀가 음료수 가져가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것 같았지만

멍한 정신이 돌아온건 혼자서 연거푸 마신 술을 다 토하고 나서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

몸도 마음도 소나기를 맞았다

그녀에게 감정이 있던걸까

그건 아닌것 같다

그런데 그 한마디에 왜이리 흔들리는 걸까

채 아물지도 않은 상처에 소나기를 맞아서 그런걸까

따갑고 쓰라리다

조금은 슬픈것 같다
 
 
 
-다음날-
 
 
 
어떻게 일어났는지

어떻게 입고 출근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숙취 때문인걸까?

잠은 충분히 잔것 같은데

넋이 나간채로 자리에 앉아 업무창만 띄워두었고 

그렇게 오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무런 업무도 못하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다들 밥을 먹으려 움직이는 기척에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는 사이에

모두들 빠져나간 사무실은 조용했다

그리고 대각선에 앉아서 눈만 빼꼼 나온 녀석의 시선이 느껴졌다

무언가 불만이라는듯한 눈빛을 한채 나에게 성큼 성큼 다가왔다


"주임님! 제 카톡 안보고 뭐해요 업무 맡긴거 다했다니까요"

"어? 아아... 뭐야 뭐이리 많이 보냈어 56개?"

"아무리 불러도 답장이 없으니까 그렇죠 시킨거 메일로 보내놨어요"

"어... 응 나중에... 응 나중에 확인할게"

"아우~ 술냄새! 어제 술 마셨죠?"

"어, 많이 나?"

"진동하거든요 어제 혼자 술마셨죠? 근처 포차에서 혼자 울면서 마시는거 봤어요"

"뭔소리야 그게 내가 울었어?"

"혼자 술마신건 맞나보네 울었다는건 거짓말이고 최대리님이 지나가다가 봤대요"

"근데 그걸 니가 어떻게 알어"

"이미 회사에 소문 쫙 퍼졌어요 어제 무슨일 있는지 아는 사람 있냐고들 그러던데"


역시나 느끼는 거지만 사회생활에 진정 사생활은 없는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입방정 가득한 최대리가 나불거렸으니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여기요 어제 음료수 뽑아 놓고 안챙겨 간거"

"엉, 고맙다"

"이온음료니까 지금 마셔요"

"오냐"

"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그래요?"

"몰라"

"어제 씻고 자긴 했어요?"

"몰라"

"아니이 모른다고만 하지 말고!"


나는 대답을 무시한채 캔을 다서 둘러 마셨다

실온에 두었으면 지적지근 했을 터인데

왜인지 시원하다


"그럼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푸붑! 켁켁! 콜록! 콜록!"

"아니 그걸 모니터에 뿜으면 어째요!"

"니가 켁! 이상한... 콜록! 콜록!"

"아니 그럼 여자친구 어쩌고 물어보니까 왜 혼자 말도 없이 나가고 혼자 퇴근해요!"


녀석은 내 모니터를 물티슈로 닦으면서 궁시렁 궁시렁 짜증냈다

뭐가 그리 불만인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너무 열심히 닦느라 모니터가 덜컹 거렸다


"어으... 콜록!... 아 죽겠다... 됐으니까 이건 냅둬 부셔먹지 말고"


난 녀석의 손목을 잡고 물티슈를 뺏었다

얼마 뿜지도 않앗는데 오히려 물티슈 때문에 자리가 더 흥건하다


"그정도로 안부셔지거든요!"

"아니 이 쪼끄만게 자꾸 소릴 질러"

"안 쪼끄매요!"

"뭔소리여 앉으면 파티션때문에 가려서 얼굴도 안보이는게"

"그건 의자가 낮아서 그런거죠!"

"얼씨구, 니껏만 낮냐?"

"손이나 놔요!"

"아....."


본의 아니게 손목을 계속 잡고 있었다

평소 였으면 화를 내거나 나를 때릴법도 한데

이상하게 뿌리치지도 않았다


"미안... 그게...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

"됐거든요 넋나가서 모니터에 음료수나 뿜는 아저씨가 뭐가 무섭다고"

"혹시나 해서 그런거지 니가 그렇게 느낄수도 있잖아"

"됐고 밥이나 먹어요 해장국 먹죠"

"어 그래"

"그래서 여자친구 만들 생각 없어요?"

"몰라"

"아 왜요~! 어떤 타입이 이상형인데요?"

"아 몰라아아!"

"아 쫌! 아는게 뭐에요!"

"몰라 배고파"

"으으으! 짜증나! 괜히 걱정했어!"
 
 
 
-며칠 뒤-
 
 
 
다사다난 했던 날은 뒤로하고 모처럼의 휴일이 찾아왔다

그녀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늘어지게 잘수 있는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이 될꺼라 생각했다

핸드폰이 신나게 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전화가 온것 마냥 진동은 쉴새 없이 울렸고

무시하고 자려고 해도 전화인지 문자인지 알수가 없어

결국 몸을 일으켜 세워 핸드폰을 확인했다

확인 하는 도중에도 쉴 새 없이 핸드폰이 울려댔다

전화는 아니었고 카톡이 울려대고 있었다

어떤 정신 나간 녀석이 카톡을 울려대나 싶었지만

역시나 그녀 였다

대충 내용은 이러했다


'주임님 이거 어떻게 해요? ㅠㅠ'

'저번에 주신 자료 어디서 찾아요?ㅠ'

'왜 카톡 안봐요!'


아.... 내 평화로운 주말...

요즘 그녀 때문에 내 업무도 제대로 못했는데

일요일 아침부터 날 괴롭히다니 거 참...


'뭐야 전에 알려줬잖아'

'까먹었어요 ㅜㅜ'

'자료실에 있다 그랬잖아'

'뭐가 너무 많아서 못찾겠어요'

'일단 다른거 하고 있어봐'

'하던건요?'

'일단 다른거부터 하고 있으라고'

'네..'


망할

왠지 사고쳤을꺼 같은 느낌이 팍팍든다

월요일날 수습하려면 끝이 없어 보이니

빨리 가서 도와주는게 월요일이 평안할듯 한데

갈아입을 옷도 딱히 없고

저번에 주문했던 택배에서 옷을 찾아 입었다

20분 거리의 회사를 정신없이 뛰어 10분만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자료실에 불이 켜져 있었고

역시나 했던 그녀가 자료 뭉텅이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하얀 바탕에 꽃무늬 원피스

이쁜 구두에 화장도 곱게 했지만

왜 인지 울상이다


"뭐야 너 왜 여깄어"

"아! 깜짝이야! 주임님이 왜 여깄어요?"

"니가 사고 쳤을까봐 와봤지 임마"

"사고 안 쳤거든요!"

"내가 다른거 부터 하라고 그랬잖아 왜 다 어질러 놨어"

"어제 최대리님이 이거 빨리 끝나면 오늘 집에 빨리 가도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끝나고 데이트 하러 가시려고 이렇게 입었구만"

"맞아요... 근데 이거 너무 할게 많아요"

"그니까 딴거 부터 하라고 그랬잖아"

"주임님이 올줄 알았나 뭐... 근데 제가 하기에 너무 많아요"

"그러게 대충 카톡 보니까 양이 꽤 많던데 누가 시켰어?"

"최대리님이요"


아 그 망할 최대리, 신입한테 일을 다 짬때린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만년 대리에 맨날 혼나기만 하는게 당연하다


"내가 할꺼 걸러줄테니까 그것만 하고 끝내자"

"진짜요? 그래도 돼요?"

"그럼 이거 다 하고 가든가"

"안돼요 저 약속 늦어요"

"그럼 어제 나한테 말을 해놨어야지 이것아"

"피... 어제 그냥 가놓고..."

"가기 전에 말했으면 됐잖어"

"정신 없었단 말이에요! 그리고 퇴근한 사람 부르기도 좀..."

"그래놓고 쉬는날에 카톡을 신나게 울려대냐?"

"아..."


둘이서 옥신각신 했지만 자료는 차근차근 정리 해뒀다

신입한테 일을 떠넘기든 말든 관계는 없지만

중요한 일을 고작 신입에게 떠넘기다니

덕분에 쉬는날을 망친 대가로 최대리 일은 그대로 두었다

옆에서 그녀가 혼나면 어떡하냐고 난리였지만

되려 내가 화낼 입장이다

최대리 일을 제외하면 쉽고 간단한 일이었다

난장판인 자료실도 정리하고 시계를 보니 11시 반

점심도 먹기 전이다


"일단 끝났고 넌 이제 자료실 들어가지 마라"

"최대리님이 뭐 시키면요?"

"들어갈일 있으면 나 부르고 넌 들어가지 말고"

"엥? 왜요?"

"니가 저기 난장판으로 만들어 놔서 그거 정리하느라 허리 아프다 이것아"

"열심히 찾느라 그랬단 말이에요오..."

"알았으니까 들어가지 말라고 괜히 다치지 말고"

"오~ 걱정해주는거에요?"

"불끄고 나와 집에 가게"

"우...씨..."

"어허 요것이 점점 말투가 사나워지네"

"주임님 때문이에요"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유치한 말장난이 계속 됐다

티격태격 대면서 서로 어린애 마냥 굴었지만

경비아저씨에게 점잖게 인사를 드리고

문 밖을 나오는 순간

누군가 내 팔을 확 끌어 안았다


그녀였다


"주임님 저 점심 사줘요~!"

"아니... 야.. 너 썸남인지 만나러 간다며"

"에이~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요"

"밥은 니가 사줘야지 내가 너 때문에 출근도 했는데"

"신입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래요~ 우리 순대국 먹으러가요"

"알았으니까 이것 좀 놔"

"순대국 사주면 놔줄게요 ㅋㅋㅋㅋ"

"너 썸남 있다며 빨랑 놔 이것아" 

"사귀는 것도 아니라 괜찮아요~ 어? 지금 얼굴 빨개진거?"

"너 때문에 열받아서 빨개졌다 왜"

"으~ 진짜, 암튼 저 집 맛있대요 빨리가요"

"최대리가 그러디? 아니 고만 잡아 당기고!"

"빨리 가요 저 배고프단 말이에요!"
 

적절히 비추는 햇빛과 환한 그녀의 미소가
 
소나기에 젖어들듯 밝게 내 마음을 적셔간다
 
간만에 호사를 누리는 기분에다 기대는 딱히 안하지만
 
모처럼 이런 휴일도 나쁘지 만은 않은 것 같아서
 
괜시리 나도 모르게 그녀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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