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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 철옹성 이라고 불린 "진주성"
게시물ID : humordata_19313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가가
추천 : 19
조회수 : 1889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21/12/08 21: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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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이 왜 철옹성이라고 불린 이유는 간단합니다.


양쪽이 절벽이고 옆에는 남강이 흐릅니다 , 즉 성의 공격루트는 정면 하나 뿐..


만약 왜군이 죽어라 공격해서 외성을 뚫었다?


"응 조까 내성이 또 있어" 외성 뚫을 때 처럼 다시 공성전 해야 합니다.



공성전은 수비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10:1의 정신나간 가성비를 보여주는 미친 전술입니다, 손자병법의 저자 손자도 " 야 공성전 진짜 하지마라" 라고 썼습니다.





아무튼 이런 진주성의 전적은 24전 23승



당시 진주목사는 도주하고 임시로 김시민이 진주목사가 되어서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죽었는데 울음소리가 마치 천둥소리 같았다고 합니다.




진주대첩이 중요한 이유는 당시 왜군은 조선수군의 본진을 공격하려고 진주성을 넘어서 전라도로 가려고 했는데 , 진주성 전투에서 막은겁니다.



그럼 진주성 지나가야 하냐? 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거기 외에는 제대로 된 길이 없습니다..



무시하고 산으로 간다?



의병 : 왜놈이다!! 죽여!!


라며 의병을 만나서 게릴라 전술에 당합니다.




아무튼 김시민은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했는데 성 안에 있는 영남 호남 사람들 구분 없이 "우리는 어찌하는가" 라면서 통곡을 했습니다.


시신을 운구할 때는 남도 백성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으며 "우리 공이시여, 우리 공이시여! 우리 공이 없었으면 우리가 죽은 지 오랠 것입니다" 라며 관을 붙잡고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김시민의 조카 김유가 진주 근처 초가에서 어느 노인의 집에서 잠을 얻어 잤는데 자신이 김시민의 조카라는 사실을 말하자 노인이 김유의 손을 잡으면서 "어찌 김사또의 공적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라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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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uv.kr/pds111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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