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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세손(世孫)이 기록한 영조(英祖)의 노인성 질환 증세.jpg
게시물ID : humordata_19551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가가
추천 : 11
조회수 : 218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22/07/02 23: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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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를 읽고 직접 만든 자료입니다.


 


승정원일기 1330책 (탈초본 74책) 영조 48년 9월 21일 〈계축〉 25/27 기사 1772년 

http://sjw.history.go.kr/id/SJW-F48090210-02500

 

洪國榮進前, 上曰, 誰也? 承旨對曰, 洪樂純之姪也。上曰, 其貌, 何如? 承旨曰, 甚精矣。


홍국영이 앞으로 나아오자, 상이 이르기를, 누구인가라고 하였다. 승지가 대답하기를, 홍낙순(洪樂純)의 조카입니다 라고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모습은 어떠한가? 승지가 아뢰기를, 매우 정밀합니다.


(나머지 합격자들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승지를 통해 계속해서 물어보는 내용이 있습니다.)

 

 

 

명의록 / 명의록 권수 / 존현각일기 상 (尊賢閣日記 上 ) 을미년(1775, 영조 51)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1434A_0020_010_0010_2008_001_XML


연화문(延和門)에서 상참(常參)을 행하셨다. 이때 상의 환후가 날로 점점 악화되었는데, 이날 담후(痰候) 증세로 헛소리를 하시며 전좌(殿座)하라는 명을 내리셨다. 상이 정섭(靜攝) 중이셨지만 밤낮없이 나라 걱정을 자나 깨나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전좌하라는 명을 도로 취소하시기를 안에서 우러러 청하였으나, 상이 허락하지 않으셨다. 연화문에 나아가 향(香)을 지영(祗迎)한 뒤 보좌(寶座)로 나아가려 하시어 좌우에서 부축하여 모셨는데도 오히려 하지 못하셨으니, 이때 아랫사람의 초조하고 다급한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이날 대신과 제신도 감히 일을 아뢰지 못하니, 즉시 대내(大內)로 돌아오셨다. 시급한 회계(回啓)에 판부(判付)할 일이 있었는데 중관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마구 뒤섞어 써서 내렸으니, 조정의 일을 생각하면 “섬뜩해지면서 한심하다”는 것도 오히려 헐후(歇後)한 말이 된다. 이날 상이 하교하시기를,


“내가 오늘 상참을 열라고 한 것은 담후 증세로 헛소리를 한 것이지만, 이미 비망기(備忘記)를 써서 내렸기 때문에 내 근력(筋力)도 시험해 볼 겸해서 억지로 일어나 연화문에 나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지영한 뒤에 지척도 분간하지 못하였으니 이 무슨 일인가. 이제는 내가 스스로 애써 보려고 해도 억지로도 움직여 볼 도리가 전혀 없다. 내가 작년 여름에 세손(世孫)에게 명하여 명례궁(明禮宮)의 일을 점검하여 살피도록 하였으니, 궁의 일은 나랏일에 비할 것이 아니지만 세손이 어떻게 재결(裁決)하는지를 시험해 보고자 한 것이다. 이것이 작은 일이긴 하지만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이 다름이 없다. 더구나 근래 크고 작은 제사(祭祀)의 의전(儀典)을 반드시 대신 섭행(攝行)하도록 하는 것은 내 뜻이 또한 깊고도 원대하다. 지금 내 기력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마음속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 있다. 예전 황형(皇兄)의 하교를 내가 지금까지도 공경히 외우고 있으니, 내 어찌 몸소 그대로 하지 않겠는가. 나이 어린 세손이 숙성하여 나를 지성으로 섬기니, 결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내 담후가 그래도 더 심해지지 않았을 때 기무(機務)를 대리청정(代理聽政)하게 하면 어찌 좋지 않겠는가. 나도 친히 볼 수 있을 것이니, 내게도 어찌 영광스럽지 않겠는가.”


(중략) 


이때 상의 담후가 오락가락하여 덜했다 더했다 하니, 정섭하시는 중의 하교는 본래 경우에 따라 좋은 쪽으로 봉행해서 바깥사람들이 동요치 말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흉도들은 성상의 환후를 숨기려는 것만을 능사로 여겨, 성상의 하교를 경우에 따라 좋은 쪽으로 봉행하는 것을 권도(權道)로 삼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새벽에 담후가 나타나는 중에 하신 헛소리로 “오늘 진하(陳賀)하는 백관(百官)은 집경당 뜰에 들어와 예를 행하라.”는 하교를 하셨는데, 시각은 5경(更)이고 또 진하하는 날도 아니라 백관이 애당초 들어온 일이 없었다. 내 생각에는 “아랫사람의 도리로 실로 우선 반포(頒布)하지 말고 담후가 조금 가시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니, 담후가 조금 가라앉으면 이런 하교를 다시 내리지 않으실 것이다. 더구나 헛소리로 하신 하교를 5경에 반포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더구나 백관이 어찌 무단히 와서 모일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때 홍인한이 입시하는 일로 궐 안에 있었는데, 내가 누차 언급하기를,


“이것은 헛소리를 하시는 중에 내리신 하교에 불과하여 한두 번 그러신 것이 아니니 우선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또 담후가 조금 가라앉기를 기다려 이 하교를 반포해도 오히려 늦지 않을 것이다. 도리로 헤아려 볼 때 터럭만큼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또 더구나 근래 상이 하교하시어, ‘매번 헛소리를 하던 중의 일을 기운이 회복된 뒤에는 나도 모르니 만일 눈에 거슬리는 하교가 있으면 반포하지 말라.’고 누누이 말씀하셨으니, 이것도 이 하교에 따라 결코 반포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니, 홍인한이 답하기를,


“안 됩니다.”


하였다. 5고(鼓)부터 거의 날이 밝을 때까지 누차 왕복하였으나 마침내 내가 다시 다투지 않고 그가 하는 대로 놓아두니, 그가 “백관은 와서 모이라.”는 뜻으로 마침내 반포하게 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진하할 백관이 와서 대령하였다고 우러러 여쭈니, 상이 하교하시기를,


“이것이 무슨 하교였는가?”


하여, 좌우가 대답하기를,


“분명히 이런 하교가 있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시기를,


“이미 모인 백관을 다시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고, 안에서 하교문(下敎文)을 지어 선유(宣諭)하는 예대로 써내도록 하셨다. 이날 상이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병중에 항상 헌가악(軒架樂)을 듣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헛소리를 할 때 설령 이와 같이 하교하였더라도 중관이 너에게 묻지도 않고 지레 먼저 반포한 것은 놀랍다. 백성들이 모두 나를 노망난 임금이라 하겠다. 반포한 중관을 즉시 내시부(內侍府)에서 이름을 삭제토록 하라.”


  


명의록 / 명의록 권수 / 존현각일기 하 (尊賢閣日記 下) 을미년(1775, 영조 51)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1434A_0020_020_0010_2008_001_XML


상이 이르시기를, “내 사업을 장차 내 손자에게 전할 수 없단 말인가. 내가 이처럼 노쇠할 뿐만 아니라 헛소리를 하고 담후가 오르는 것이 또 별도의 증세라서, 크게는 한밤중에 쪽지를 내어 경들을 부르는가 하면 작게는 담후가 점점 심해져 경들이 입시하더라도 내가 영상(領相)이 누군지 좌상(左相)이 누군지도 몰라 중관(中官)처럼 쫓아내기까지 하니, 나랏일을 장차 어찌하겠는가.


어제 수응하신 일이 너무 많았던 데다가 상선(常膳)까지 거르시어 밤중에 담후(痰候)가 더 심해져 참기름을 드시기까지 하셨다.




원래 링크만 걸어놓는데 내용도 같이 적어놓은 이유는 다른 커뮤니티 돌다가 제가 만든 자료가 올라왔길래 봤더니 댓글에 글쓴이의 주관이랑 재해석이 첨가되어있다고 적혀있는 걸 보고 이렇게 내용도 같이 올립니다. 


이 내용을 어떻게 대화 형식으로 만들어볼까? 라고 생각하며 적기 때문에 글의 형식만 바꾸는거지 안에 내용은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링크출처를 적어놓은 이유도 이 글을 못 믿겠으면 저기 들어가서 읽어보라고 올려놓는겁니다.


그리고 욕이 너무 많이 있다는 댓글도 있길래 욕은 안넣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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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uv.kr/pds116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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