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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경험담(난 피터팬)
게시물ID : humordata_19825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께레
추천 : 10
조회수 : 1594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23/04/01 20: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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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이들과 함께 보낸 날들이 대략 18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몸 담았던 시설이 7군데 가량 되는데 한곳에 오래 근무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사연들이 갖가지입니다.

아이들과 지내는 이야기를 의외로 재미있어 하는 분들이 많아 조금 더 써볼까 합니다.

 

 

제가 어린이집에서 퇴사한 이유는 거의 저의 고지식함 때문이었습니다. 원장의 비리에 분노해서, 원장의 가혹함에 분개하다가, 어린이집이 소재한 아파트 전 부녀회장과 다투어서, 아부하고 굽신거리는 것은 참을 수 없어 난 정의로우니까.... 우리 딸이 그러데요 아빤 뉴스보면서 화좀 내지마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사회생활을 잘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그래서 친구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여지껏 저에게 가장 수준 맞는 친구는 어린이들이었습니다.

 

 

-해마다 신학기가 되면 어린이집은 아이들 울음소리가 진동합니다. 집에서 엄마랑 잘 놀았는데 느닷없이 아침마다 노랑 병아리차가 와서는 납치해버립니다. 울어도 떼를 써도 안된답니다. 그런데 나랑 비슷한 아이들이 여럿 있네요 우는 아이는 나밖에 없어 조금 자존심 상합니다. 처음에는 두시간만 놀다가 집에 갔는데 며칠 있으니 점심먹고 가라고 하네요. 토요일이 되어서 어린이집 안가고 엄마랑 있으니 기부니가 참 좋았지만 다시 월요일이 되어 병아리차가 또 잡으러 왔어요.

또 울면서 차를 타고 갔는데 이제는 점심도 먹었는데 낮잠을 자고 가라고 해요. 그러더니 좀 더 있다가는 점심 먹고도 한참 놀다가 집에 보내 주는데요. 엄마는 보고 싶지만 이상하게 어린이집에서 좀 더 놀다가 가고 싶어요. 그래서 집에 안가겠다고 또 울었어요. 저기 예쁜 수민이랑 소꿉놀이 더 하고 싶은데 그만 놀고 집에 가라해서 속상해요.....

 

 

신학기에는 아이들 적응기라고 해서 어린이집 맛보기 기간이 있습니다. 엄마들이 데리고 오고 고기도 하고 두시간, 반나절 이렇게 점차 시간을 늘려가며 적응을 시킵니다.

어떤 아이는 첫날부터 아주 잘 놀고 엄마를 찾지도 않지만

어떤 아이는 두달, 석달을 울기도 하지만 제가 본 최고 울보는 무려 2년을 울며 다녔습니다. 우리 작은 딸은 1년을 울고 다녔는데 그때 생긴 분리불안이 치유가 안되어 어른이 되어서까지 엄마가 어디 가면 따라가려고 합니다. 큰일....어서 남자친구가 생겨야 할텐데......

 

 

드라마 우영우에 나오는 구교환씨(어린이대통령?)를 보면서 참 나와 비슷하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린이는 즐거워야 하고 많이 웃어야 하고 늘 재미있어야한다고 생각해서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동안 내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까를 연구했고 생각한 놀이를 함께 하며 즐겼습니다. 어떤 이는 이상하다. 왜 저래? 아 지금 공부해야 하는데 뭐함? 이런 반응이었지만 잘한다, 최고네요 라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력서만 내면 금방 채용이 되었던 이유는 일인 다역이 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사자격증과 1종대형면허를 가진데다가 어지간한 고장을 고칠 수 있는 손재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근무했던 곳에 이력서를 낼 때 취미, 특기란에 할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적었더랬죠. 초보실력인데 기타 스무살 무렵 1년배웠던 드럼, 유아교육과 후배에게 기초만 배운 풍선아트(만들줄 아는거 강아지, ,,왕관...) 그랬더니 원장님이 그 모든 재주를 아낌없이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답니다.

매달 돌아 오는 아이들 생일 잔치에서 축하노래 기타치며 불러주기 아이들은 라이브 통기타에 환호하며 신청곡을 청하면 동요와 포크송을 함께 부르며 신나 했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가 화창한 봄날에 코끼리아저씨가 가랑잎타고 태평양 건너갈적에 고래아가씨~” 였습니다.

천생연분 결혼합시다~ 엄머 엄머 엄머 엄머...하면 자지러지며 딩굴었습니다. 그후로 매달 생일에 다른 노래 부르자고 해도 그노래를 불러 달라해서 다행이었습니다. 모르는 노래 불러달라하면 어쩔뻔...

드럼을 칠 줄 안다고 하니 아이들 국악 수업에 장구를 가르치라고 합디다. 장구 못한다고 하니 다같은 북인데 양악이나 국악이나 우겼지만 끝내 그것만은 고사했습니다.

풍선아트는 아이들 수만큼 칼과 꽃과 푸들을 만들어 마음에 드는 것 가져 가라 했더니 남아 여아 모두 칼을 제일 많이 선택해서 의외였습니다.

야외 놀이 가서는 칡넝쿨을 잘라서 줄넘기를 하고 줄다리기를 하니 아이들이 너무 재미있어 했고 풀밭에서 메뚜기 베짱이를 잡아주니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더군요. 갈대꼭지를 뽑아 피리를 만들어 함께 불고 민들레 씨앗을 후후 불고, 토끼풀꽃 반지 만들어 묶어 주고 나 어릴 때 산과 들에서 놀던 그대로 아이들과 놀아주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내 기분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변하고 아이들도 변하고.... 이제 아이들은 제 스스로 폰을 들고 유튜브를 즐겨보고 동요보다는 가요를 부르고 자연과 함께 할 장소도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보육과 차량운행을 겸해서 근무하니 담임은 무리라 장애아 통합반 보조교사, 영아반 보조교사 같은 직책을 수행했는데 제 근무 경력이 10년 쯤 지날 무렵부터 거의 차량운행이 주 업무가 되었습니다.

하원길도 즐거워야 한다. 엄마를 만날 때 즐겁게 웃는 모습으로 만나면 엄마도 아이도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에 제가 운행하는 차에는 항상 음악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USB에 음악을 담아 들려주기도 하지만, 동요나 구름빵, 뽀로로, 영상을 많이 틀어 주었습니다. 신학기에 엄마 떨어지기 싫어 우는 아가들에게 뽀로로는 특효약이었습니다. 말을 아직 잘 못해도 뽀요요..뽀요요..”하는 아가들도 많았어요.

그렇지만 차에서 음악 트는 것을 싫어하는 교사들도 더러 있었답니다. 하루 종일 아이들 소리에 귀가 쟁쟁한데 좀 조용히 가자고....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쫌 그랬어요.

제 휴대폰 사용내역을 보면 아내와 하루2~3회 통화, 가족방 카톡 20회 정도 말고는 외부인과 통화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노래 들려주고 뽀롤 보여주려면 무제한 데이터라야 감당이 되더군요. 생각난 김에 이제는 낮은 요금제로 바꿔야겠네요.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온지가 8~9년이 되는데 아직도 친구는 사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가들하고는 만나면 인사 꼭 합니다. 아직도 아가들은 날 보면 잘 웃어줘요.

이제는 빡빡 깎은 머리 감추느라 모자 꾹 눌러쓰고 다녀서 아가들이 무서워 할 것 같아 아는채 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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