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역사게시판을 바라며 적는 역사이야기 - 울산왜성
게시물ID : humordata_7532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분당청년
추천 : 3
조회수 : 638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1/03/18 15:30:20
울산왜성

  울산왜성은 지금 울산의 위치상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옥교동 옆 학성동에 위치한 성입니다.

한때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1997년 다른 왜성들과 함께 지자체자료로 격하되었습니다.

섬같이 생겨 도산성이라고도 불리는 울산왜성은 지금도 도심 한가운데 섬과 같은 형태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 울산왜성은 학성공원 내 존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울산왜성을 학성이라 부르나 이는 잘못된 명칭으로, 이는 왜성 축조 시 공원 주위에 위치했던 우리나라 성인 학성을 헐어 만들었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이 같은 지점에 위치한 왜성을 과거식 그대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이 울산왜성은 정유재란 때 신라의 계변성이라 불리던 것을 가토 기요마사가 새로 쌓은 왜성으로 임진왜란 최후의 최후라 불릴 수 있는 육지전투가 있었던 곳입니다.

가토가 직접 설계한 이 울산 왜성은 성벽이 높고 견고하여 외부 방어에 아주 효과적인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방어를 잘 한 이 성에도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성 내부 병사들의 갈증과 굶주림, 그리고 추위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 내부 병사들은 배가 고파서 말을 도축하고 피와 오줌을 마셨는데, 이마저도 가장 중요한 조총병에게만 내려지는 특권이었습니다.

목마른 일반 병사들은 옆 태화강으로 식수를 뜨러 갔는데, 오랜 전쟁으로 인해 태화강 자체가 마실 수 없는 상황이었고 우선 마시기도 전에 조명연합군이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서생포왜성과 부산에서 온 원군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여 스스로 성을 불태우고 철군하면서 전쟁은 끝이 납니다

이와 관련해서 일본에 가보면 재미있는 관련 유적이 있습니다.

일본에 쿠마모토에 가면 쿠마모토 성이 있는데, 이 성은 가토가 일본에 돌아간 이후 거의 바로 지은 성입니다.

이 성도 가토가 설계하고 지었는데, 이 성을 보면 울산왜성에서의 고충이 얼마나 심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 성을 잘 살펴보면 곳곳에 우물이 있는데, 이 우물의 수가 무려 120개에 이르며 지금도 활용 가능한 우물이 17개에 이릅니다.

그리고 건물 내부에 들어가는 다다미의 재료는 모두 고구마 뿌리를 이용하여 전쟁 시 식량으로 쓸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울산에 살면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성, 울산왜성

학성공원이라 불리우며 잠든 그 유적지가 비록 일본의 형태를 띈 왜성이라고는 하나

성을 짓는데 우리 민초들의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아직도 의문이긴 합니다.

왜성은 과연 우리 유적인가? 아니면 일본이 남긴 잔재인가?

고민끝에 내린 결론은 아직도 긴가민가하다라는 것이지만 우리 기억속에서 잊혀지면서

마을 어르신들이 고기 굽고 소주병을 버리는 장소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p.s 역사 게시물이 자주 올라오고, 많은 역사지식을 가지신 분이 많은 곳이 오유입니다.
    나라의 근간이 되는 역사, 흥미롭고 재미있는 사실이 많은 역사를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기 위해
    역사 게시판 하나정도는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