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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부지
게시물ID : humorstory_1870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질투는나의힘
추천 : 5
조회수 : 53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0/05/24 10:42:10
2005년의 추운 겨울

짧게 자른 머리를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입대 전날 아침이 되어서야 터덜터덜 이발소로 가서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하는 이발사 아저씨의 말에

군대 가는데요 라고 짧게 대답했습니다.

덥수룩 했던 머리가 뭉텅뭉텅 잘려서

흰색 가운 위로 한덩이 두덩이 떨어질때 마다

가슴깊이 착잡함이 몰려들었습니다.

머리를 다 자르고 나니

정말 <이등병의 편지>노래의 가사처럼

거울속의 비친 제 모습에 마음까지 굳어지더군요

입대 하루 전임에도 저는 부모님과 별 이야기도 없이

그냥 방에서 티비나 보다가 컴퓨터 게임 좀 하고

그렇게 저녁이 되어서 할아버지댁에 갔습니다.

평소 친지들이나 가족들이 모여도 외식한번 하는일이 없었는데

그날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식집에 가서

초밥을 먹었습니다.

사실 오랜만에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조금 밝게

건강하게 군대 잘 다녀 오겠습니다. 하면 좋았을것을

비싼 회랑 초밥 시켜놓고도

저는 괜히 말없이 먹는둥 마는둥 하며

할아버지께서 왜 맛없나? 그럼 이거 싸달라 하고

고기 먹으러 갈까? 하셨는데도 그냥 됐어요 라고 시큰둥 하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친척들도 제가 별말 없이 풀이 죽어 있는 것을 보고

괜히 농담 같은거 하지도 않고

그냥 잘 다녀오라는 식으로 말해주었습니다.

저녁에 할아버지 할머니께 큰절을 올리고

잘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한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원래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슬슬 준비하고 출발하기로 했었는데

아침 5시 30분 무렵에 아버지께서 저를 깨우셨습니다.

처음에 일어 났다가 시계를 보고 막 짜증을 내면서

왜 지금 깨웠냐고 하자

오랜만에 앞산에 한번 가자고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랑 산에 간게 10년은 된거 같아서

그러기로 했지만 짜증을 조금 내면서

투덜대며 올라갔습니다.

산이라기 보다 그냥 언덕 같은 거라서

한 30분 하면 대충 올라가는데

올라가니 슬슬 동이 터올랐습니다.

그동안 아버지랑 제가 다 무뚝뚝한 성격이라

대화라고는 밥 먹었나? 엄마는 어디갔는데?

식사 하셨어요?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이정도 밖에 없었는데

입대날인데다 또 동이 터오르고 있는 뭔가 장엄한 풍경이라

이거 무슨 말을 해야 될거 같은데

입이 자꾸만 간질거렸지만 갑자기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멍하니 앉아서 물좀 마시고 그냥 있는데

아버지께서도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셨는지

동이 터오르는 쪽을 바라보시며 잠시 말이 없으시다가

군대 잘 다녀오고 건강이 우선이고 다음에 시간이 날때면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도 가지고

아무튼 건강하고 좀더 발전된 니가 되길 바란다

뭐 그런 말씀을 하시더니 

또 한동안 잠시 머뭇 거리시다가

가슴 속에서 작은 수첩과 볼펜을 꺼내시길래

아...좋은 격언 같은거 수첩에 적은걸 말해 주실려나보다 했는데














아버지: 니 숫자 한 6개만 불러봐라..... 

나: 예???

저는 뭔 소린가 싶었지만 일단 시키니 우물쭈물 하며 대답했습니다.

나: 2랑 어...19랑....24랑....또....72....

그러자 아버지가 갑자기 흠칫 하시며....

아버지 : 아니 45 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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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생활의 참견>이라는 만화에 입대날 관련 내용이 있길래

저도 생각이 나서 끄적여 봤습니다.

이거 당시에는 안웃겼는데....

지금 적고보니.....별로 안웃기네....아....

그런데 100일 휴가 나와서 알았는데

그 번호로 4등에 당첨 되셨다고 합니다.

16만원인가 타서 니덕분에 술 잘먹었다고 하시며

냉동실에 만두 사놨다고 하셨습니다.

아....아버지 사랑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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