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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로로님 왜 안보이나요.
게시물ID : humorstory_3859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여름은덥다
추천 : 0
조회수 : 53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17 01:56:23
 
간간히 올라오는 그녀의 글에 매력적인 글솜씨를 감탄하며 나도 글 잘 쓰고 싶다 생각했는데
 
2월에 책 발간했다는 소식 이후로 그녀의 글이 보이질 않네요.
 
리리로로님 어디서 무얼하시나요.
 
다시 재밌는 글 올려주세요.
 
보고싶습니다.
 
 
 
 
아래는 리리로로님의 글 중 '채변검사'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주기적으로 채변검사를 했었다.
첫 채변검사는 초등학교1학년에 갓 입학한 어느날이었다.

매우 인자하고 기품있으신 여자담임선생님께서
교탁에 올곧게 서서는
"여러분, 내일까지 똥가져오세요" 하시기에
어린 나이에 나는 채변검사라는 의미를 모른채
담임선생님의 취미가 똥수집인줄로만 알았었다.

난 낯가림이 심한성격이라 별로 친해지지 않은 담임선생님께
내 똥을 갖다드린다는게 아직은 이른 것 같아서는 개뿔 그때부터 변비가 심해서
몇날며칠을 나만 똥을 내지 못했었다.
난 매일 아침마다 선생님께 아침인사대신
"똥가져왔니?" 소리를 들어야했고
그때마다 난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흔들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가고...
선생님께서는 드디어 내게 최후통첩을 하셨다.

"송이야. 안되겠다. 너만 똥을 안냈어. 빨리 지금 집에가서 똥눠서 가져와."

난 선생님께서 건네주시는 채변봉투를 들고 5분거리에 있는 집까지 터덜터덜 걸어갔다.
하교시간이 아닌데도 집에돌아온 나를 보며 엄마는 깜짝놀라셨고
나의 자초지정을 들으시더니 화장실변기 옆에 신문지 한장을 깔아주셨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줘도 응가는 나올생각을 하지않았고
급기야 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어어엉 엄마 똥이안나와 으어어엉 나만 똥 안냈대"
라고 울부짖었다.

순간 엄마의 눈은 매섭게 빛났고
자신의 딸이 남들에게 뒤쳐진다는 생각에서였는지
날 화장실에서 얼른 끌어내시고는 문을걸어잠그고 힘을주기 시작하셨다.
엄마의 힘주는 소리는 화장실문밖까지 들려왔고
나도 덩달아 손에 힘을주며 끙끙거리며 엄마를 응원했다.
그렇게 오분여의 시간이흘렀고
엄마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뿌듯한 표정으로 내게 채변봉투를 건네주셨다.

난 너무나 기뻤다.
엄마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길로 난 채변봉투를 흔들며 학교까지 미칠듯한 속도로 뛰어갔다.
그리고 수업중인 뒷문을 열어제끼며
"선샌닌!!똥가져왔어영!!!!!!헤헷"
이라고 외쳤다.
선생님은 당황하셨지만, 애써 웃으시며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셨고
그런 선생님의 고운 두 손위에 채변봉투를 올려놓자
갑자기 엄마야를 찾으시더니 집게손가락으로 채변봉투끝을 들어올리며
양호선생님께 가져다주라고 명하셨다.

난 해맑은 표정으로 양호실에 달려가서 문을 열어제쳤는데
그곳엔 이미 나에 앞서 도착한 똥봉투들이 가득했다.
난 아직까지 살면서 그때처럼 여러사람의 응가를 본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 무리속에 자랑스럽게 내 봉투를 끼워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후, 난 정상판정을 받았고 회충약을 먹지 않아도 됐다.

그후로도 몇번 채변검사를 더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마다 난 내것을 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오빠도 같은 초등학교였으므로 오빠것을 반띵해서 가져가거나
(서로 더 많이가져가겠다고 서로 더 푸느라 싸운기억도 난다.)
아빠가 출근전 모닝응가를 하실때 앞에서 기다렸다가 젓가락을 건네드리곤했다.
(나무 젓가락으로 퍼야하는데 아빠젓가락을 드렸다가 요단강에 발담그고옴)

지금은 어른이 돼어서 채변검사를 할 일은 없지만
가끔씩 채변검사를 했던 순수한 옛 시절이 떠오를때면 밥맛떨어짐.
 
 
 
 
http://www.liliro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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