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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원룸집 아줌마가 세입자에게 보내는 편지
게시물ID : humorstory_4370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병맛이야기꾼
추천 : 7
조회수 : 158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05/29 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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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원룸집아줌마.jpg

susang.jpg

문고리2.jpg



혹시 기억할련가 모르겠어요.


햇빛 쨍쨍 내리쬐던 한여름날이었죠 아마 그때가.


전화가 한 통 오더라구요. 아드님께서 훈련중에 쓰러지셨다고, 와보셔야 할 거 같다고.


무슨 걱정 말라고는 통상적인 사고라는데, 땡볕에 너무 오래 서있어서는정신을 잃어버렸다던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데 별 일 아닐거라는 그 말에 애써 마음진정시키며 올라갔죠. 그런데,



 

온몸이 멍 투성이더라구요

 



곱고 뽀얗던 내새끼가 왜 이렇게 시퍼렇게 물든 몸으로 눈도 못뜨고는 저렇게 거추장스런것들을 주렁주렁 달고서 누워있나.


도대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 통상적인 사고? 땡볕?


그런 말같지도 않은 말을 어찌 그리 내 앞에서 뻔뻔스럽게도 당당하게도 하는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게 거짓말이라는건 알아야 하는거잖아요. 누구나아는거잖아요.




그런데 아무 말 못했어요.


제가 뭐 할 수 있는게 있나요.


혹여 내가 저 사람들 심기를 건드려 우리 아들 해꼬지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저렇게 누워서는 영원히 눈 못떠버리면 어떡하나.


역겨운 얼굴로 더러운 아가리 놀리고 있는 저 시꺼먼 사내들 면상에 토악질을 해대고 싶은걸 눌러참고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화내고 분노할 겨를도 없이,


그저 우리 아들 깨어나게만 해달라고 숙이고, 엎드리고, 빌기만 했죠. 바보 천치마냥.


그렇게 비는 것 말고 제가 할 수 있는게 있나요.


의사 선생님이고 부처님이고 하느님이고 누가 됐든 우리 아들 눈만 뜨게 해 달라고 그저 그렇게 비는것외엔 아무것도.

 



하루하루 지옥같은 날들을 그렇게 몇 달이고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혹여라도 깨어나진 않을지 아들 얼굴에서 한시도 눈을 못떼고 있던 어느 날


기적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는것이었던지


글쎄 이 녀석이 눈을 꿈,,


우리 아들 눈과 마주하는 꿈에만 그리던 날이, 그런 꿈 같은 날이정말 오긴 오대요?


너무나도 예쁜 두 눈 꿈뻑이며, 그 고운 입술 달싹이며 힘겹게 말문을여는데


날더러 누구냐고 묻더라구요


아줌마는 누구시냐고 묻더라구요


 



그렇게, 내 가슴이 무너진채로 집에 돌아왔어요


어느 날은 학교에 간다며 학생도 되었다가, 출근한다며 직장인도 되었다가, 백수라며 방에만 박혀있다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매일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 아들


내 세상은 온데없이 무너졌는데 우리 아들은 자기만의 세상에서 그렇게,


누워있던동안 날아가 버렸던 시간들 보상을 받기라도 하려는듯이 그렇게,


딴에는 나름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봐요.


그렇게 열심히 나름의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가봐요.


비록 엄마는 기억못하지만요. 원룸집 아줌마 정도로 여기지만요.

 



방이 비어있는 날이면 몰래 들어가 바닥 걸레질도 해주고 쌓여있던 쓰레기도 치워주곤 해요.


창문 열어 환기도 시켜주고 햇살 쨍쨍한 날이면 이불소독도 시켜주고요 그렇게 몰래 아들 냄새도 맡고요.


가끔씩 실수인척 문을 열어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하고요.


미친 여자 보듯이 그런 아픈 눈으로 흘겨봐도 괜찮아요. 마음은 좀아프지만.


경멸어린 눈이 됐든 혐오스런 눈이 됐든 그렇게 눈 한번 마주칠 수 있으면 그거 하나로 전 됐어요.

 



사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건요.


어쩌다 문을 다 잠그고서는 보조키까지 잠그고서는 그렇게 며칠이고 집밖으로 안나오는 날이요.


열쇠를 돌리고 문을 잡고 흔들어봐도 도무지 열리질 않을때요.


행여나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닌지 가슴이 타들어가고 미칠것만 같은 때요.


쪽지하나 남겨놓고 왔네요. 다 좋으니 보조키만 잠그지 말아달라고.


여지없이 미친여자라고 생각할테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우리 아들 얼굴이라도 한번 더 볼 수 있으면 그깟게 다 무슨 상관이에요.

 



어느날은 어디서 술을 마시고 들어왔는지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인사불성이 되어서는 


혹여 넘어지진 않을지 가슴졸이며몰래 뒤따라가는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비틀거리는 눈으로 이녀석이 문을 열며 뒤돌아보더니 날 보곤 글쎄,




--

 



세상이 얼어붙은듯, 그렇게 꿈만 같은 순간이 영원이 되어 멈춰버린듯,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문을 몰래 열고 들어가 아들 얼굴 훔쳐보는것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던날에


하루하루 지옥처럼 보내고 있던날에


그렇게나 기다려왔던 말을 어찌 그리 내 앞에서 사랑스럽게도 예쁘게도 해주는지


사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게 술주정이라는걸 알아야 하는거잖아요. 누구나아는거잖아요.




그런데 아무 말 못했어요.


제가 뭐 할 수 있는게 있나요.


그저 눈물 그렁해선, 앞도 잘 안보이는채로 아들을 부축해서는 침대에눕혀서는,


정신 잃어 잠든 아들 얼굴 어루만지며 자장가를 불러주곤,


그렇게 머리도 쓰다듬고, -마하고 불러줬던 그 예쁜 입술도 쓰다듬고,


지금껏 엄마 고생했던 얘기, 네가 날 못알아봐줘서 얼마나 속상했는지도얘기해주고


신나서는 재잘재잘 떠들려는데


잠에서 깨네요 소리를 지르네요 아줌마가 여기 왜 있냐고 잔뜩 놀란 눈으로

 



그럼 그렇지.

 



뭐 별 수 있나요.


눈물이 쏟아질거 같아 목이 메어 말을 못하고있다가 겨우 눈물을 꾸욱 삼키고는,


불편한 건 없는지 확인하러 왔다고했죠.


그렇게 도망치듯 뛰쳐나왔죠.

 



그래도 괜찮아요.


저는 내일도 용기내서 문 열거거든요. 그 문 뒤에


언젠가는 날 알아봐주는 우리 아들이 환한 미소 지으며 날 안아줄거란 믿음으로


기억 못해서 미안했다며 멋쩍은 웃음 짓곤 미안해할 아들이 기다리고 있을거란 믿음으로


오늘이 아니면 내일은 그럴 거란 희망으로


그렇게 매일매일 설레이는 마음 조금과, 두려운 마음 조금, 용기 조금,


심호흡 한번 하고,


열쇠를 꽂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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