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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파리에서 싸이에게 살의를 느꼈던 썰
게시물ID : humorstory_4431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똘똘이군
추천 : 11
조회수 : 1194회
댓글수 : 52개
등록시간 : 2016/01/02 00:17:33
그렇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했다.

그러니까 나는 파리 사는 지독한 유부 집순이인데 
남편은 지독한 아웃도어파인 것부터가 문제였던 것 같다.

인간관계도 지독하게 좁고
사람을 만나야할 때도 밖에서 보게되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질질 끌려가는 인간이 바로 나라는 것도 역시 문제였던 것 같다.

한마디로 내 프랑스 인맥은 죄다 남편을 통한 인맥이 될 수 밖에 없는데,
그 중 배짱이 좀 맞는 언니 한명이 있어 이번 크리스마스에 초대 받아
그 집에서 저녁을 하게 되었던 것이 일의 발단이었다.

언니네 부부, 우리 부부 넷이 모여 언니 손맛 잡채, 수육, 골뱅이무침을 흡입한 후 부른 배를 두드리고 
이제 슬슬 집에 가볼까 하는 참에 형부가 제안을 한다.

드라이브나 가볍게 다녀오자.

...

지금 생각해보면 내 주제에 가벼운 드라이브가 세상에 어딨냐 싶지만
그 당시에는 과하게 먹은 잡채가 뇌까지 가득차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다들 집순이인 나를 쳐다 보았고 나는 우렁차게 오케이를 외쳤다.

물론 내심 형부 차를 타고 센강근처로 가면 우리집으로 갈 때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혹은 형부가 근처까지 간김에 태워다 주지 않을까 라는 개념없는 기대가 조금 포함되어 있긴 했다.

형부는 우리를 끌고 가끔 간다는 라탱지구 (관광객전용) 먹자골목 끄트머리로 데려갔다.
그 곳에는 툴루즈 로트렉과 헤밍웨이가 압셍트에 거하게 취해 피아노맨이랑 댓거리를 할 것 같은 피아노바가 있었다.

핑크핑크한 샤랄라 원피스에 넓다란 검은 가죽벨트를 한 밤색 머리의 언니가
가게 한켠에 놓여있는 딱정벌레 같은 그랜드 피아노 위에 걸터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마 내 기억엔 Paroles Paroles 였었던 것 같다.

그렇다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그 빠로레 빠로레 빠로레 맞다.

우리 테이블의 왼쪽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공기가 약간의 알코올에 힘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 백발의 부인들 한 무더기가
우리에게 과자를 권하고 감사의 인사를 받아가고

오른쪽 중년 미국 부부는 우리를 보며 지치지도 않고 파리 최고를 외쳐대던 ,
그렇다.
여기까지는 잘 자라 아가페를 주창하던 한 남자의 탄생일로 아주 적합한,
서로 사랑을 나누던 괜찮은 시간이었다.

뭐 우리 뒷 편에 떼지어 앉아 피아노맨과 핑크언니의 보컬에 연신 격한 반응을 보이는 미국 청년들이 약간 신경이 쓰였지만
아주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세계가 하나되어 (주)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움을 핑계로 술을 퍼마시며 신나하던 그 가게에 동양인은 우리 뿐이었고,
핑크언니가 잠시 목을 쉬는 동안 피아노맨은 그 길다란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놀려대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우리를 보며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고 나는 그때 파리에 산다고 말을 했어야 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듣자 그는 많이 반가워했다.
나보고 한국 노래 부르겠냐고 물어봤다.
두 손을 휘저어 강력하게 부끄러워하던 나에게 그는 말했다.

그럼 내가 불러줄게!

... 너는 왜 한국노래를 알고 있는 건데?

이루마의 곡을 유려하게 연주하던 그.

그에게 박수 갈채를 보낸 후 내 일행들은 담배를 피러 나가버렸고
나는 이어지는 부담스러운 그의 배려를 홀몸으로 감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에서 명랑하게 춤을 추기 시작하는 피아노 건반들.
그렇다.

PSY - 강남스타일.

엄마야. 내 뒷편에 있던 미국 청년들 무리가 갑자기 약기운이 돌았는지 일어나 미친듯이 호응을 하기 시작한다.
피아노에 가려 보이지 않는 반대편의 여러분들도 갑자기 호응도가 너무 많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담배 한가치 피는데 얼마나 걸리지? 2분? 3분?

피아노는 또 왜그렇게 화려한지 싸이가 죽어도 관뚜껑 박차고 일어날 정도로 신나게 쳐댄다.

동공이 흔들린다.
땀구멍이 커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미국인 청년들이 나를 바라보는 뜨거운 눈빛이 내 뒤통수에 꽂힌다.

나는 일어나야만 했고
잘 알지도 못하는 강남스타일의 안무를 독무로 소화해내야만 했다.
저 초롱초롱한 눈빛의 대국, 어메리카의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뇌가 신호를 보내면 약 2초정도 후에 이제 좀 움직여 볼까?
아 여긴가? 아닌가? 하는 근육들을 다그쳐대며 
파르르 흔들리는 입꼬리를 혼신의 힘을 다해 진정시키며
현아야 언니를 도와줘를 연신 중얼거리며 
오징어 촉수같은 팔다리를 이리저리 휘저었다.






상황이 종료되고 나의 사랑스러운 크리스마스 이브 크루들이 자리로 돌아왔다.
그들의 표정은 이러했다.
뭐야? 뭐야? 왜 갑자기 떠들썩했어? 왜?



응. 내가 한국을 좀 들어가봐야 할 것 같아.
꼭 처리해야할 일이 생겼거든.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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